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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리뷰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4.03.24 12:01조회 수 987추천수 15댓글 8

언니네 이발관의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은 그야말로 앨범의 주제에 부합하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 본디 '가장''보통'이라는 모순되는 듯한 말속에서 밴드가 지닌 서정성과 문학성은 '평범함'한 것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러니까, 앨범의 이야기로 따지면 별 볼 일 없는 이야기조차도 하나의 객관과 주관을 아우르는 '존재'라는 말로써 특별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진부함이 아닌 보편적인 이야기로 나아간다. 존재라는 말의 위력은 하나의 인식 체계를 뒤바꿔 놓는 데 있으며, 단어의 범위를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애초에 존재라는 것은 누구에게 인식되느냐에 따라 특별성과 평범성의 좌우 근간을 달리하는 것이지만, '가장 보통인 순간'에야 사람들의 시선을 유달리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언니네 이발관 전체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본작은 더욱 특별해지는 까닭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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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언니네 이발관 소개 中

언니네 이발관은 감상에 앞서 본작이 컨셉 앨범으로 만들어졌고, 그에 따라 차례대로 앨범을 감상하길 권했다. 실제로도 본작은 각 곡의 가사들과 구조가 서로 하나의 대주제를 현상하는 식이 되었다. 즉, 1번 트랙의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시작된 과거 회상이 2~10번 트랙을 이어나가게 된 것이다. 만약에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 "산들산들"을 들은 뒤의 다시 첫 트랙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는다면 그 감상이 사뭇 달라질 수도 있겠다. 본인을 "가장 보통의 존재"라고 인식하는 시점에서 로파이한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그렇게 필연적인 순간으로 자리 잡았다.

본작의 이야기는 일관적이다. 일관적이라는 말은 진부하거나 지루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리더를 맡던 이석원의 완벽주의의 바다에 작품을 담가 놓아서 였을까. 앨범의 주제가 지독하게 일관적인 만큼, 수록곡 전부 군더더기를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깔끔한 구성을 자랑한다. 분명 크나큰 파국을 맞이하거나 절망적인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앨범이 대자적인 주제로 쉽게 향할 수 있던 것은 각 곡의 흐름을 잇는 데 있어서 그 완결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슬픔이 아닌, 모노톤으로 점철된 슬픔의 이야기가 색다른 매력을 자랑하는 까닭도 이에 있다.

하나의 평범한 이야기에 따른 멜로디 역시 가라앉지 아니하며 정제되어 있다. 분명 감상의 방식은 수직적일 것을 권하나, 수록곡의 흐름은 수평적이다. 컨셉 앨범이라는 이름 하에 각 소리의 질감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조절되었다. 긴박감이 느껴지는 기타 리프를 자랑하는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뒤에 다소 도드라진 멜로디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것"이 오더라도 자연스러운 이유는 의도된 편곡과 특유의 서정적인 가사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시점의 전환이 달라짐에도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히려 불분명한 주인공의 시점이 객체적 자아와 주체적 자아를 모호하게 흩뜨려 놓음으로써 사랑과 이별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즉, 가사의 농도가 어찌 되었건 이야기는 수평적이고 그 흐름 속으로 듣는 이를 버젓이 올려두는 것이다. 얼마든지 감정의 농도가 진해져도 상관없을 가사를 자랑함에도 여러 개의 트랙에 걸친 이야기가 '너'와 '나' 둘 사이에서 이어진 것이기에 어떤 식으로 대입되든 "가장 보통의 존재"로 귀결되는 점이 중요하다. 이 사실이 "산들산들"로 나아가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훌륭한 컨셉 앨범의 성공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뚜렷한 기타 사운드와 한뜸한뜸 빚어낸 정교한 멜로디, 중간중간 삽입한 브라스 소리와 서정적인 가사들은 충만한 유연함을 그려낸다. 그중에서 언니네 이발관이 가장 잘 빚어낸 무기는 '서정적인 가사'에 있다. 너와 나의 아련함을 자아낸 "100년 동안의 진심"과 같은 짧은 시구와 같은 이야기, "아름다운 것"에 대한 미련과 비애가 가득한 사랑 이야기, "작은 마음"이 커지는 듯한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경쾌한 기타 리듬과 대비되는 비관적 가사를 자랑할 "인생은 금물"조차도 누군가의 별이 되어 주로 가는 길을 배웅하니 말이다. 이석원의 작사는 일관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작곡으로 생명을 넣어주므로, 언어 자체의 모호한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식이다. 모호함, 시처럼 느껴지는 언어의 갈무리는 청자로 하여금 감정 이입의 유도를 용이하게 하며, 나라는 존재를 규명하는 과정 그 자체를 그리기에,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쉽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꾸린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언어의 힘을 실어준 데에는 작곡 역시 중요하다. 간결한 기타 소리를 자랑하는 "100년 동안의 진심"의 연주가 없었다면 한산하고 쓸쓸한 느낌은 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의 긴박한 기타 연주가 없었다면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쉽게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언니네 이발관이 가장 공들였다고 전해지는 "아름다운 것"의 멜로디 선율이 오로지 가사를 비추기 위한 적절한 거울이 되어주었고, 구태여 피할 수 없는 이별을 그리는 가사가 더욱 돋보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 비애가 절실하게 와닿긴 충분하다.

앨범의 주제, 정제된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는 함께 어우러지며 가장 보통의 존재를 그려낸다.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일반적인 사랑과 이별을 담은 듯하나, 위의 조합으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보편적, 평범, 보통이 여러 단어들로 치환되며 하나의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은 쉬운 듯하지만 쉬운 결과물은 아님을 안다. 애초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표현하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내재적이면서도 나를 제외한 외재적 감성에 속하기도 한다. 언니네 이발관의 본작은 찰나의 간극을 묘하게 비틀어 전하는 동시에, 보편적인 감정선을 아릿하게 재현해냈다. 그들의 솜씨가 비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평범에 대한 감정선의 농도가 누구보다 진했기 때문일까. 내 감상으로는 후자에 가까워 보이지만, 존재 자체로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감정 존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본작의 커버의 목적지 없이 떠나는 하나의 새 한 마리처럼, 우리의 인생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별 볼일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존재라는 원론적 실존은 변하지 않으니 우리는 고독하게 자리에 앉아 회색빛을 새로운 색으로 채워줄 매개체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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