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Pac&K-Dot, 다른 듯 같은 웨스트 코스트의 두 영웅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두 번째 정규 앨범 [To Pimp A Butterfly]의 마지막 곡, “Mortal Man”에서 투팍(2Pac)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윽고 둘은 마치 실제로 마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농담을 주고받고 생각을 공유하며 함께 고민한다. 잠자코 듣다 보면 이런 생각마저 든다. '과연 투팍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투팍이 1990년대의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뮤지션이었다면, 켄드릭 라마는 지금 이 순간의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다. 둘 다 단순히 유명하고 랩을 잘하기 때문은 아니다. 랩에 담았던 가치부터, 가사에 담았던 이야기의 진중함, 아티스트로서 품은 견고한 정신까지, 둘은 닮은 점도, 서로 공유하는 부분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두 아티스트를 함께 놓고 이야기해보려 한다. 둘 사이에 놓인 2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는 분명 녹록지 않다. 그래도 그 무게는 잠시 한쪽에 치워두고, 둘의 유사한 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이름
투팍의 본명은 투팍 아마루 샤커(Tupac Amaru Shakur)다. 태어날 때는 르산 파리시 크룩스(Lesane Parish Crooks)였으나, 이듬해 부모님이 잉카의 마지막 확제 투팍 아마루 2세(Túpac Amaru II)의 이름을 따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그 이름이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부에서 건너온 투팍은 네 장의 앨범으로 웨스트 코스트를 휩쓸고, 빌보드까지 점령한다. 투팍은 마카벨리(Makaveli)라는 예명도 썼다. 감옥에서 이탈리아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의 저서를 읽고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다. 이 이름으로 준비한 앨범 [The Don Killuminati: The 7 Day Theory]는 사망 일주일 후 발매됐다.
켄드릭 라마는 과거 동네 친구들이 부르던 별명 케이닷(K-Dot)으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본명으로 활동명을 바꿨다. 그의 본명은 켄드릭 라마 덕워스(Kendrick Lamar Duckworth)다. 이름 ‘켄드릭’은 가수 에디 켄드릭스(Eddie Kendricks)의 이름에서 왔다. 그의 성인 라마(Lamar)도 별다른 의미는 없으나, 유사한 단어 중에 라마(Lama)라는 단어가 있다. 티베트어로 ‘스승(Guru)’을 뜻한다. 달라이 라마(Dalai-Lama)의 라마가 이 라마이다. 알파벳이 한 글자 다르긴 하지만, 뜻 자체만 보면 켄드릭 라마의 음악색과 꽤 어울리는 듯한 모습이다.
서부지만, 서부 같지 않은 음악
투팍은 서부에서 활동했지만, 출생지는 동부의 뉴욕(New York), 심지어 할렘(Harlem)이었다. 이곳에서 청소년기 대부분을 보냈다. 출신만 따지고 보면 진퉁 동부나 마찬가지. 하지만 17살이 되던 1988년,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California)로 이주한다. 1996년에 사망했으니, 서부에서는 8년밖에 활동하지 않은 셈이다. 투팍의 발음과 랩이 묘하게 투박하고 빡빡한 데에는 그의 출신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특징은 서부의 느긋한 프로덕션, 지훵크 스타일과 어우러지며 훗날 투팍 특유의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탄생시켰다.
켄드릭 라마는 닥터 드레(Dr. Dre), 스눕독(Snoop Dogg) 등 웨스트 코스트 인사들과 함께 여러 차례 작업했지만, 그의 작품 자체는 웨스트 코스트와 음악적으로 큰 인연이 없다. 정규 음반 전에 냈던 곡 가운데 다수는 샘플링이 기반이었고, [Good Kid, m.A.A.d City], [To Pimp A Butterfly] 등 완성도 높았던 결과물 역시 소울, 훵크, 재즈 등이 바탕이 됐다. 켄드릭 라마에게 서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가사의 주제, 그리고 그의 출신지 정도가 전부나 마찬가지다.
유려한 가사
투팍의 가사는 적지 않은 슬랭으로 뒤덮여있지만, 그 슬랭과 일상의 영어를 조합해서 그려낸 세상은 거칠지만 부드럽고, 투박하지만 유려하다. 특히 분노를 살짝 거둔 후 회상하듯 사회에게, 친구들에게 건네는 곡에서는 더욱 매끄럽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가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Changes”, “Dear Mama” 등 수많은 곡이 그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건 가사의 유연한 흐름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20년은 된 곡이지만, 요즘 나오는 힙합 노래보다도 세련된 가사를 지녔다. 투팍을 두고 ‘위대한 시인’이라고 하는 건 모두 그의 유려한 가사에서 비롯된 일이다. 사후에는 시집 <콘트리트에서 핀 장미>가 발간되기도 했다.
켄드릭 라마의 가사는 복잡하고 어렵다는 점에서 영화 속 대사를, 다양한 인격을 반영해 흐름을 극적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Good Kid, m.A.A.d City]와 [To Pimp A Butterfly]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구성이다. 고등학교를 빼어난 성적으로 마친 수재답게 어려운 단어를 구사할 때도 잦고, 곡 하나를 통째로 비유에 할애하기도 한다. 전자는 “Complexion”, 후자는 “These Walls”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To Pimp A Butterfly]에서는 하나의 시를 정해두고, 곡 끝마다 해당 시를 조금씩 잘라서 덧붙이며 내용 전개의 이정표로 삼기도 한다. 이 시는 마지막 곡, “Mortal Man”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 이 곡 막바지에서 켄드릭 라마는 투팍과 가상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직접 그에게 시를 읽어준다. 켄드릭 라마가 투팍에게 받은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 2Pac - Hit 'Em Up
디스곡
투팍과 켄드릭 라마 사이에는 의외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디스곡을 냈다는 점이다. 투팍은 아웃로즈(Outlawz)와 함께한 “Hit ‘Em Up”에서 배드 보이 레코즈(Bad Boy Records)와 퍼프 대디(Puff Daddy),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 등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뮤지션을 노골적으로 저격했다. 노토리어스 비아이지가 냈던 “Who Shot Ya?”에 대한 대응 곡이었다. 해당 곡에서 투팍의 이름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지만, 정황상 디스의 타겟은 투팍이었다. 연속된 디스곡으로 서부와 동부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고, 이 경색된 관계는 훗날 투팍의 사망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와는 상관없이, 지금도 명맥을 조금씩 이어오고 있는 서부와 동부의 라이벌 구도를 본격화시켰다는 점에서, 극도의 폭력성과 폭발적인 랩을 수반한 디스곡이었다는 점에서 투팍의 “Hit’ Em Up”은 여전히 의미 있는 곡이다.
켄드릭 라마는 무료 공개곡 “Control”로 수많은 래퍼를 동시다발적으로 저격했다. ‘다 죽이겠다.’라는 격한 표현도 아끼지 않았다. 마치 ‘모두 까기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이에 적지 않은 래퍼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호명된 래퍼가 아닌, 호명되지 않은 래퍼들이 더 열심히 대응곡을 냈다. 켄드릭 라마의 디스는 상대방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었다. 수준 높은 래퍼들에게 내민 도전이자 경쟁이었고, 그 이면에는 더 열심히 해서 씬의 수준을 높이자는 의도도 숨어있었다. 호명된 래퍼들은 오히려 켄드릭 라마에게 수준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켄드릭 라마는 “힙합 문화 전체를 키우기 위한 도전이었다. 우리 스스로를 넘기 위한 노력, 새로운 세대를 위한 쇄신 말이다.”라며 “Control”의 의미를 되짚기도 했다. 디스곡 이후의 상황을 보면, 그 의도는 적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켄드릭 라마에게 곡의 소유권을 사실상 넘겨 주게된 원주인 빅 션(Big Sean)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 Kendrick Lamar (Feat. Bilal, Anna Wise & Thundercat) - These Walls (가사 해석)
여성, 약자에 대한 메시지
투팍은 거친 곡도 많이 만들었지만,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곡도 많이 남겼다. 미국 사회에서 약자인 흑인에 대해 노래했고, 흑인 커뮤니티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더 안 좋은 환경에 처했을 여성들에게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 방법이 조금 거칠 때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의도도 거친 건 아니었다.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여성이 우리를 낳았고 우리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성을 약탈하고 강간하며 혐오를 일삼는가? 이제 우리는 여성을 진실히 대하고 보듬어줘야 한다."라며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기도 했다. “So Many Tears”, “Keep Ya Head Up”, “Wonder Why They Call U Bit*h” 등은 그런 그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곡들이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들이 많아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자막뮤비로도 몇 곡 나와 있으니 꼭 들어보길 바란다.
켄드릭 라마는 무엇을 이야기해도 그 의도를 극명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여성과 사회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칭찬하지도 않으며 약자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여성을 비롯한 약자는 곡의 흐름을 돕는 장치 정도의 역할 정도만 담당한다. “These Walls”에서 여성의 성기와 성관계를 묘사하지만, 여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코멘트도 남기지 않는 점, 제목만 보면 여성을 싸잡아 욕할 것 같은 “Bitch, Don’t Kill My Vibe”가 사실은 여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곡이라는 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장치들을 이용해 조금씩 조금씩 쌓아 올린 이야기는 끝날 때쯤이 되어서야 뚜렷하고도 탄탄한 메시지를 드러낸다. 그 메시지는 남자와 여자, 강자와 약자, 흑인 사회와 미국 사회를 모두 포함한다.
수장
투팍이 강간죄로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다. 보석금이 너무 커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할 무렵, 투팍에게 손을 내민 남자가 있다. 바로 악명 높은 음반기획자, 슈그 나잇(Suge Knight)이다. 슈그 나잇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범죄도 숱하게 저질렀다. 투팍이 명반 [All Eyez On Me]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긴 했지만, 투팍의 사망에 연루되었다는 의혹도 받고있다. 투팍에게도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슈그 나잇은 투팍이 사망한 후에도 몇 차례 범죄를 저질렀으며, 지난해에는 영화 <Straight Outta Compton> 촬영장 주변에서 사람을 차로 살인한 후 달아났다가 수사망이 좁혀오자 경찰에 자수했다. 본인은 무죄를 주장하지만, 공교롭게도 사건 현장 인근 CCTV에 범죄 모습이 고스란히 찍히고, 목격자도 워낙 많아 빼도 박도 못하고 있다. 사건의 보석금이 너무 높게 책정된 바람에 주특기인 ‘보석금 내고 풀려나기’도 못하고 있다.
켄드릭 라마는 15세였던 2003년, TDE(Top Dawg Entertainment)와 계약을 맺었다. 당시 결과물이라고는 믹스테입 한 장밖에 없었지만, TDE의 사장 탑 독(Top Dawg)에게는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동네의 재능 있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당시 신생 레이블이었던 TDE는 단기적인 흥행보다 장기적인 성공에 운영의 무게추를 두고 있었다. 제이 락(Jay Rock), 앱소울(Ab-Soul), 스쿨보이 큐(ScHoolboy Q) 등이 차례로 합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장 탑 독과 펀치(Punch)는 계약 이후 켄드릭 라마의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금전적인 이득이 많지 않다는 점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결실이 2012년의 [Good Kid, m.A.A.d City], 2015년의 [To Pimp A Butterfly]였다. 앞으로도 TDE와 켄드릭 라마의 원만한 관계는 꾸준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Pac 과 Kendrick Lamar
투팍과 켄드릭 라마. 둘은 살아온 환경도, 시기도 다르지만, 비슷한 사상과 생각을 공유한다. 그 바탕에는 웨스트 코스트라는 공통분모가 놓여있다. 두 뮤지션을 동일 선상에 놓고 하나씩 훑어볼 수 있는 이유다. 켄드릭 라마는 8살 무렵, 동네에서 투팍을 우연히 봤다고 한다. 뮤직비디오 “California Love”의 촬영 현장이었다. 우상을 본 켄드릭 라마는 투팍에게 더욱 많은 영향을 받았고, 앞으로 자신도 타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망은 현실이 되었다. 투팍이 있는 곳에 닿을 만큼 소리를 내고 싶다는 켄드릭 라마. 조심히 띄운 편지와 함께 그 꿈이 먼 훗날 투팍에게 닿기를 바란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전 8살이었어요.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표현을 잘 못하겠어요. 너무 많은 감정들. 가득 들어찬 흥분. 충만한 기쁨과 열정. 20년이 지나고서야 지금 저는 그게 뭔지 정확히 알겠어요.
'영감을 받은 거죠'
그 조그한 교차로에서 당신을 접한 사람들의 인생은 영원히 뒤바뀌었죠. 저도 언젠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어요. 당신이 들을 만큼 커다랗게 목소리를 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마워요.
K.L.
마치 왕이 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모습
자라나 다른 시대의 거리를 이야기 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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