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emih - Late Nights: The Album
1. Planes (Feat. J. Cole)2. Pass Dat3. Impatient (Feat. Ty Dolla $ign)4. Oui5. Drank6. Giv No Fuks (Feat. Migos)7. Feel Like Phil8. Royalty (Feat. Future & Big Sean)9. I Did (Feat. Feather)10. Actin' Up11. Remember Me12. Don't Tell' Em (Feat. YG)13. Woosah (Feat. Juice J & Twista)14. Worthy (Feat. Jhené Aiko)15. Paradise
지난해 8월, DJ 칼리드(DJ Khaled)는 [I Changed A Lot]의 두 번째 싱글인 “Hold You Down”에서 네 명의 보컬과 함께했었다. 많은 게스트를 모아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내온 DJ 칼리드지만, 보컬만 네 명을 모아 곡을 구성한 건 조금은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곡에는 올해 각각 스튜디오 앨범을 한 장씩 발표한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 어거스트 알시나(August Alsina), 퓨처(Future), 그리고 근래 들어 소식이 뜸했던 제레마이(Jeremih)가 참여했었다(퓨처의 경우에는 보컬로만 명명하기 어렵지만, 이 트랙만 놓고 보면 보컬적인 성향을 더 많이 드러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고유의 음색, 억양, 발음을 통해 한데 어우러졌었는데, 제레마이의 경우에는 특유의 얇은 톤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었다. 이는 나머지 세 명에 비해 커리어적으로 탄탄하지는 못해도 알앤비라는 장르 내에서 제레마이만의 영역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간 제레마이는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성과의 개인적인 갈등, 소속 레이블인 데프 잼(Def Jam)의 시원치 않은 지지로 인한 비즈니스적 갈등으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새 앨범을 미뤄왔었다. 데뷔 싱글인 “Birthday Sex”가 수록된 [Jeremih]와 소포모어 앨범 [All About You]가 각각 2009년, 2010년에 나오고, 이후 무려 5년이나 되는 공백기를 가진 걸 생각하면 그 갈등이 얼마나 컸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 5년 동안 충실히 커리어를 채웠다면 앞서 언급한 세 보컬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영역을 지켜내면서 지금보다 훨씬 입지가 든든한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나온 그의 새 스튜디오 앨범 [Late Nights: The Album](이하 [Late Nights])은 마치 김성모 만화의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라는 대사처럼 긴 공백기를 무색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제레마이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의 보컬과 음악을 구사해냈다.
보컬적인 측면에서의 제레마이가 가진 특징이라면 단연 얇은 톤의 목소리다. 풍부한 성량이나 보컬 레인지보다는 간결하고 빠르게 많은 글자와 음을 툭툭 쳐나가면서 곡 전개에 디테일을 더할 줄도 안다. 그로써 청자들로 하여금 부담스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이는 “Birthday Sex”를 비롯해 그의 전작에 수록된 곡들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는 본 작에서도 그런 자신만이 가진 보컬적 특징을 십분 살린다. 이에 맞춰 악기를 많이 배치하지도, 과잉된 소리가 많이 들어가 있지도 않은 고요하고 침잠된 무드의 미니멀한 프로덕션을 주로 선보였다. 또한, 여러 음을 촘촘하게 소화해내는 데 필요한 여유 공간을 위해 곡들의 템포가 전반적으로 느린 점도 주요한 공통 요소다(YG가 참여한 래칫 넘버 “Don’t Tell’ Em”이 그나마 빠른 편일 정도다). 즉, 제레마이는 자신이 가장 유려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놓고 장기를 한껏 발휘한 셈이다. 이에 대표적인 트랙으로는 자신을 현 NBA 팀 뉴욕 닉스(New York Knicks)의 사장이자 명장 필 잭슨(Phil Jackson)에 비유한 “Feel Like Phil”이나 “Pass Dat”, “Drank”, 그리고 “Remember Me”가 있다. 더불어 소개한 네 곡과 결은 다르지만, 얇디얇은 목소리를 극대화하여 뽐낸 “Oui”도 그의 장점이 잘 드러난 곡이다. 기타 연주 위에서 유려함을 표방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음을 쭉 뽑아내기만 하는 “Actin Up” 역시 빼놓을 수 없다.
♬ Jeremih - Oui
사실 위에서 언급한 트랙들은 모두 피처링 없이 제레마이 혼자 채운 경우인데, 게스트들과 함께 한 곡들도 한결같이 적은 악기, 느린 템포의 프로덕션을 바탕으로 한다. 섹스를 나누는 두 대상을 비행기와 조종사로 비유한 “Planes”에서는 제이콜(J. Cole)이 전매특허인 허스키한 보이스를 더하며 곡의 섹시함을 배가한다. 완전체가 되기 전 상태의 3인조 그룹 미고스(Migos)의 두 래퍼가 참여한 “Giv No Fuks”는 트랩 비트 위에서 거의 벌스나 브릿지스러운 구성에 가까운 제레마이의 후렴이 흥미롭다. 여성 보컬 피더(Feather)와 함께한 “I Did”도 트랩 기반의 프로덕션을 통해 느릿함에서 오는 관능적임을 담고 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쥬시 제이(Juicy J)와 속사포 랩으로 “So Sexy”의 그것을 재현해낸 트위스타(Twista)가 함께한 “Woosah”, 별다른 이펙트 없이도 몽환적인 무드를 자아내는 즈네이 아이코(Jhené Aiko)와 농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Worthy”에서도 제레마이와 게스트들은 네스티함을 한껏 뽐낸다.
하지만 앨범에는 제레마이만이 가진 특징에만 정확히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발생한 단점도 존재한다. 앞서 잠시 언급한 “Giv No Fuks”나 “Woosah”, 그리고 퓨처와 빅 션(Big Sean)이 참여한 “Royalty”까지, 모두 래퍼들과 너무 길게 각 파트를 주고받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고, 전반적으로 루즈한 편이다. 또한, 타이 달라 싸인(Ty Dolla $ign)이나 쥬시 제이처럼 너무 잠깐 나와 별다른 역할도 없이 물러나는 게스트들의 참여도 조금은 의아한 구석이 있다. 급작스레 래칫으로 방향을 돌려버리는 “Don’t Tell’ Em”이나 소리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Paradise” 역시 앨범이 전체적으로 머금고 있는 분위기와는 달라 산통을 깨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 Jeremih (Feat. J. Cole) - Planes
현재 [Late Nights]의 차트 성적과 판매량은 영 신통치 않은 편이다(빌보드 200 차트 42위, 첫 주 만 장 판매). 아마도 제레마이가 없는 동안 신흥 알앤비 아티스트들의 강세가 뚜렷했고, 또 기존의 아티스트들도 건재한 채로 왕성하게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작은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신의 바운더리가 명확하게 존재함을 뚜렷한 특징을 극대화함으로써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Planes”가 다가오는 2월에 있을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의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이를 충분히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즐겨왔던 수많은 섹시한 알앤비 싱어들의 음악과는 또 다른 제레마이만의 음악을 [Late Nights]를 통해 즐겨보길 바란다.
글│M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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