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기획] 힙합엘이 5주년, Here Are 5 Stories That Must Be Told

Melo2015.11.06 22:58추천수 22댓글 19

thumbnail.jpg

[기획] 힙합엘이 5주년, Here Are 5 Stories That Must Be Told


사람들은 대체로 무언가를 기념할 때, 시기적으로 5년과 10년에 꽤나 큰 집요함을 보일 때가 있다. 10년은 앞에 숫자가 바뀌어서, 5년은 그 숫자가 바뀌는 10년의 절반이기에 전환점이라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무튼, 실제로 어떤 특정 집단의 시각에서 5년째와 10년째는 그 의미가 나름 있을 수도 있다. 비즈니스 계열에서 스타트업 기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는 게 5년 차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힙합엘이(HiphopLE)도 그런 5년째에 접어들었다. 운영자이자 대표인 히맨(Heman)의 조그만 움직임이 이제는 말 그대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그 사이 이곳을 짧고 굵게, 혹은 길고 가늘게 유지해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힙합엘이 스태프들이다. 이번 5주년 기념 글에서는 그 스태프 중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풀어낸 힙합엘이에 관한 짧은 에세이를 모아봤다. 각 연차에 해당하는 스태프를 한 명씩 선정해보았으며, 순서는 5년 차부터다.


* 필자 고유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편집한 점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D.jpg

DanceD



0. 힙합엘이 5주년이라. 사실은 나 역시 힙합엘이 스태프이 된 지 5주년이다. 처음 사이트가 오픈할 때부터 같이 해왔으니… 그런 내게 이번 5주년을 맞아 우리가 함께 걸어왔던 시간을 돌이켜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글쎄. 썰을 풀어보자면 이렇다.


1. 나는 올해로 나의 해석 게시판을 13년째 운영 중이다. 물론 닫았던 시간이 꽤 많긴 하지만… 늘, 질은 몰라도 양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해석하기 가장 꺼리는 힙합 가사에서 있어서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덕에,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가사를 퍼갔다. 이 중에는 간간이 새로운 사이트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은 늘 사이트의 콘텐츠로 내 자료들을 활용하려고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퍼가는 것에 대해서 늘 관대했기 때문에 -그 흔한 출처 표시도 하든 말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다-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용도로 퍼가는 이들은 자신의 사이트에 들러 활동해주기를 바랐다. 가끔은 단골로서, 가끔은 ‘그’ 댄스디(DanceD)로서.


2.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사실 별것이 아니다. 이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테니 대개는 방금 그 말을 듣고 벙쪘을 테지만, 뭐 아무튼 그런 때가 있었다. 가사 해석 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유명한 그 댄스디. 기분은 좋았지만, 나는 참 별것이 아니었다. 별것 아닌 사람 하나가 그 사이트에 들어와서 글이랑 댓글 몇 개 남긴다고 안 되는 게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야심 차게 시작한 그런 사이트들은 대개는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올리는 네이버(Naver) 블로그 이상의 개성을 갖지 못하였고, 그렇게 전부 무관심 속에 잊혔다. 운영자마저 몇 달 지나 더 이상의 업로드(혹은 퍼감)를 포기하고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디씨트라이브(DCTribe) 쪽지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은 히맨 님 역시 첫인상은 그런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3. 이쯤에서 두 번째 고백을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나는 사실, 한국힙합이 미국힙합보다 좋다. 이건 5년 전에 훨씬 더 심했다. 원인을 파헤치자면, 글쎄 직업병이었을까. 늘 같은 얘기만 늘어놓는 미국힙합에 나는 질려버린 지 오래 되었고, 투팍(2Pac)의 가사나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의 플로우도 내겐 늘 거기서 거기였다. [Illmatic]을 느끼지 못하고 [Enter The Wu-Tang (36 Chambers)]을 느끼지 못하고 [The Chronic]과 [Doggystyle]은 아예 들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잠시 삼천포로 빠져 중요한 얘기를 더 하자면, 소위 말하는 ‘힙합 명반’으로 입문하는 거, 그거 쉬운 일 아니다. [Illmatic]을 통해 외국힙합 쪽으로 꼬시려고 하지 말라. 개인적으로는 느끼는 데 10년이 걸렸다.


여기까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히맨 님이 새로운 사이트를 열겠다며 가사 해석 분야에서 스태프진이 돼주기를 부탁하는 것은 요약하자면, '외국힙합을 별로 안 좋아하는 별것 아닌 애'가 바빠져 가는 생활 속에서 짬을 내서 외국힙합 관련 사이트의 운영진으로 활동해주기를 부탁한 것이었다. 맙소사! "자료는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근데 제가 함께 활동하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그래도 자주 들를게요."가 내 답이었다.


4. 우여곡절 끝에 힙합엘이는 오픈하였고, 주요 콘텐츠는 ‘국내에서 가장 빠른 외국 힙합 뉴스’와 자막 뮤비였다. 힙합엘이 오픈 전에도 자막 뮤비는 이곳저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기에, 그 콘텐츠 자체가 신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힙합엘이에서 제공하는 자막 뮤비의 강점은 체계적인 업로드 구조에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지금에 비하면 그 당시에는 꽤나 난잡하게(?) 이뤄지고 있었긴 하지만, 어느 특정한 업로드 장소 없이 여기저기서 개인적으로 제작하여 산발적으로 올리던 자막 뮤비가 한곳에 모여 꾸준히 업로드되었으니 사람들에게는 이런 유용한 콘텐츠들을 한 곳을 지정하여 자주 방문하면서 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지 않았을까 싶다.


위에서 얘기한 이유로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나였지만, 당시 제작된 자막 뮤비의 우측 상단에는 해석자와 자막 제작자의 이름이 들어갔는데, 그렇게 뮤직비디오에 들어간 내 아이디를 보면서 묘한 뿌듯함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미디어팀(이랄 것도 없었지만)에는 영다스 (YoungDass) 님과 근육맨 님이 전부였는데, 뮤직비디오 속에 들어가 있는 영다스 님의 이름이 늘어날수록 알 수 없는 경쟁심도 느꼈던 게 사실이고.


구체적인 과정은 기억이 안 나는데, 어쨌든 어느샌가 나는 스태프와 다름없는 활동을 하고 있었고, 어느새인가 스태프가 되었다. 일주일마다 열리는 정팅에 참여하고, 비정기적으로 모여 술을 마시면서. 낯을 참 많이 가리는 내가 여튼 힙합엘이 스태프의 일부가 되었다.


5. 힙합엘이는 어느샌가 다른 사이트 부럽지 않게 크기가 커져갔다. 돌이켜보면 힙합엘이가 커지는 데는 선두에 서 있던 히맨 님의 활약이 대단했던 것 같다. 꾸준히 인재(?)를 스카우트하여 데려오고, 새로운 아이템을 내놓고, 일주일마다 정팅으로 스태프들을 초대하여 끊임없이 함께 달리도록 자극을 주었다. 현재의 미디어팀보다 작은 규모였던 사이트는 어느새 팀을 나누고, 팀장이 생기고, 각자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어엿한 기업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6. 힙합엘이가 내가 과거 마주쳤던 그렇고 그런 사이트와 다르게, 역사(?)에 남을 사이트가 될 것이라고 확인한 것은 첫 번째 <힙합엘이 토크 콘서트>를 열었을 때였다. 아마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스태프들이라면 각자에게 그런 포인트가 있었겠지만, 내게는 인터넷 사이트가 오프라인으로 현재 활동하는 음악가를 섭외하고 초대하고, 회원들을 컴퓨터 밖으로 불러모은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쉽게 5화로 끝났던 <힙합엘이 토크 콘서트> 후에도 이러한 신선한 충격은 꾸준히 있었다. 카카오 페이지로 발행되었던  <힙합엘이 더매거진>과 그 안에 수록된 영상 시리즈 <힙토쿠>, 팟캐스트 <아트 오브 힙합>, 다양한 음감회와 <W.T.F. (Wild Talk Forum)>, 3, 4주년 파티, 책 <아메리칸힙합> 출간… 어느 순간부터 힙합엘이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아무렇지 않게 구상하고 추진하고 있었다.


7.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내 개인적인 시간은 점차 줄어갔고, 힙합엘이에서 활동하는 부분도 많이 줄어들었다. 거의 모든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고, 정팅에서도 빠졌다.


힙합엘이는 끊임없이 진화하였다. 나는 악플러가 들끓으면 그 사이트는 어쨌든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힙합엘이는 네이버 부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된 아이디어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나와 달리 스태프들의 열정은 여전해 보인다. 얼마 전에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와의 인터뷰를 멋진 팀워크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고, LA에서 활동하는 재미 교포 MC들의 다큐멘터리 <KHILA> 5부작도 끝이 났다. 고개를 돌리니 <서울 힙합 영화제>가 성황리에 열려 막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5주년. 꽤 오래된 시간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이 시간 내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컸단 말인가 싶다.


8. 이쯤에서 세 번째 고백을 해볼까 한다. 나는 정말 별 것 아니었다고.


겸손하려고 애써도 때로는 내가 이뤄놓은 것에 지나치게 자랑스러워지고 자만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어느 때부턴가 어렴풋하게 느껴왔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돌아봐도 분명하다. 힙합엘이가 수십 수백 배 커진 것에 나의 도움은 참 미미하였다. 이 혁신에 가까운 성공은 온전히 흔들림 없던 한 사람의 포부와, 그에 공감하여 뭉친 이들의 끝을 모르는 열정과 추진력 덕택이었다.


그런 프로젝트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이유로 내 직업을 여러 번 대곤 하지만, 실은 내 게으름이 가장 큰 문제란 걸 알기에 나는 그들을 존경하고 스스로를 거듭 반성한다.


여전히 나는 미국힙합보다 한국힙합을 더 많이 듣는 리스너이지만, 힙합엘이가 시작되기 전보다는 분명 나의 듣는 귀가 넓어졌다. 이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데뷔해서나 에미넴(Eminem)이 컴백해서가 아니다. 힙합엘이에서 내가 활동했기 때문이다. 'One Step Closer To Hiphop & R&B Music'이라는 익숙한 구절이 생각나는 찰나, 나는 이 사이트와의 만남에 감사하고 있다.


끝으로,이 글을 읽을 많은 힙합엘이 이용자분들. 겉으로 보이는 게시판과 뉴스, 자막 뮤비 뒤편에는 오늘도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해 뛰고 있는 스태프들이 있고, 잊을만하면 요즘 너무 바쁘다면서 페이스북에 투덜대지만, 실제로도 너무 바쁜 히맨 님이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굳이 게시판 관리만을 가지고 너무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지지 말기를. 대신 하루하루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 그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T.jpg

Twangsta


힙합엘이에 몸을 담은 후, 나는 첫 앨범을 발매했고, 프로젝트 <No Flash Photography>를 힙합엘이에서 공개했으며, 결혼을 하고 득녀까지 하였다. 누가 봐도 '힙합엘이에 있으면서 좋은 일이 많았구나.' 하고 생각할만한 일들인데, 아마 나보다 힙합엘이라는 곳에 여러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선 힙합엘이의 스태프이면서 프로듀서로 활동한다는 것은 씬 안에서의 내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주었다. 앨범을 낸 후에도 나는 '프로듀서'보다는 '힙합엘이의'라는 수식어와 함께 타 음악가와 관계자들에게 소개되곤 했다. 앨범 발매 후 첫 인터뷰 대상자를 정할 때 역시 나 자신을 인터뷰 대상 후보에 올리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팀장이 만약 정말 원한다면 나를 인터뷰해줄 수 있다 생각했지만, 나는 역시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나 대신 선정된 음악가의 인터뷰에 참여한 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힙합엘이가 내게 무엇인지 이제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다. 직업이라기엔 돈을 받고 있지 않고, 취미라고 하기엔 길게 보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으며, 단순 재능기부라기엔 나도 바라는 것이 있고, 내 사업이라기엔 내게는 소유권이 없다.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 큰 프로젝트들이 현실화되면서 2016년부터는 조금 더 확실해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뭐라 하기 힘들다. 아이를 갖게 되고, 이사와 작업실 폐쇄가 겹치며 작업을 쉬게 되어 애매해진 프로듀서라는 타이틀까지 내 정체성을 흐리고 있다.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일까지 겹쳐 막상 바쁘고 하는 일도 많으면서 막상 내 직업이 뭐라고 하기 모호해져 버린 것이다. 이젠 누가 무슨 일 하시느냐고 물어보면 웹진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할 때가 가장 많아졌다.


벌써 5주년이다. 4년 차로 이제 꽤 오래된 멤버이지만 히맨 형이나 댄스디처럼 OG는 못 되는, 연차조차도 애매한 나는 이 공간에서 힙합엘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혹은 앞으로 어떤 방향성으로 나갔으면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공감하기도 쉽지 않고 딱히 즐겁거나 재미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굳이 썼지만, 사실 나는 힙합엘이를 정말 좋아하고 매년 발전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우며 많은 것을 계획하고 실현해나가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 즐겁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힙합엘이를, 나를,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의 행보를 주목하며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힙합엘이의 트왱스타(Twangsta)다.






A.jpg

ATO


사실 내가 힙합엘이 스태프가 되기 전에는 힙합엘이라는 곳에 큰 애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물론 자그마하게 시작된 '힙합 뉴스' 시절부터 그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 보고는 있었다. 다만, 웹사이트 자체를 그리 자주 들어가진 않았고, 특별히 선망하고 있지도 않았었다. 그저 '이런 색다른 게 있구나.' 하는 정도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힙합엘이의 스태프가 된 계기는 어떻게 보면 단지 '할 일이 없어서'에 가까웠다. 대학 졸업을 하고 좌로 뒹굴 우로 뒹굴 반복하던 어느 봄, 트위터에서 힙합엘이 스태프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고, 생각보다는 까다로웠던 양식에 맞춰 큰 기대 없이 지원서를 적어 냈다. 지원서를 보고 나서 힙합엘이 스태프분들은 나에게 디자이너로서 일종의 테스트를 하기 위해 몇 가지 이미지를 제작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당시 속으로 나는 '뭐 이런 것까지…'라는 생각을 조금 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때 나에게는 힙합엘이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대단하게 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힙합엘이의 스태프가 되면서 내가 바란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힙합엘이 웹 사이트의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었다. 당시의 난 힙합엘이의 웹 디자인이 좀 답답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두 번째는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음반 디자인'에 관한 것인데, 힙합엘이 스태프로서 한국힙합 시장과 인연이 닿다 보면 한국힙합 음반의 디자인 같은 '일감'을 얻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힙합엘이라는 유명한 사이트의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취업 걱정 따윈 팽개쳐두고 일단 졸업을 선택한 무직의 디자이너에게는 꽤 좋은 기회로 보였었다.


그게 2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사실 그 두 가지 목표는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힙합엘이의 웹 디자인은 여전히 그때 그대로이고, 꿈이었던 음반 디자인이라는 목표는 힙합엘이를 통해서가 아닌 머지않아 이어진 정규직 취업을 통해서 대신 이루게 되었다. 대신 나는 힙합엘이 스태프로서 수많은 기사에 들어갈 이미지들을 만들어 왔고, 꽤 많은 뮤지션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솔직히 평가하자면 대개 이런 작업들은 '어찌 됐든 상관없는' 범주에 속한다. 사진을 찍거나 디자인을 하는데 들어간 정성과 무관하게 글의 내용에 따라서 한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리플과 함께 조용히 지나가기도 하고, 반대로 바빠서 급히 디자인을 만들어 내더라도 좋은 내용의 글이나 이슈가 되는 뮤지션에 관한 내용은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기도 한다. 따라서 그 모든 것에 내가 얼마나 기여를 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리 큰 비중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시간 동안 힙합엘이 스태프로서 내가 얻은 자산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와 그렇게 관련된 건 아니었다. 대신 힙합엘이라는 집단을 내부에서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몹시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다. 힙합이 '콘텐츠'라는 단어보다는 '유행'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한국에서, 불과 5년 만에 힙합엘이가 이뤄낸 성과들은 결코 아무렇게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힙합엘이는 착실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뭐 하나 판을 벌여 놓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머리를 싸매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는 곳이 힙합엘이다. 가장 정확하고 약삭빠르게 움직인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힙합엘이의 어떤 프로젝트들은 기획 단계에서 엎어지거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위대한 것의 공통점은 불완전할지언정 과감히 한 발을 내디딜 줄 알고, 실패마저도 기꺼이 감내하는 용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겁을 내느라, 혹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 헤매느라 예상치 못하게 좌초되곤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힙합엘이는 꾸준히 바쁘게 움직이며 자신의 자리와 존재감을 찾아 나가고 있다.


여기서 힙합엘이 스태프에 대한 찬사를 빼놓을 수 없겠다. 힙합엘이의 오늘을 만들어 온 많은 이들의 노력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재능과 성실함을 모두 갖춘 이 사람들은, 아마 밖에서 본다면 (심지어 나조차도 조금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헌신적으로 힙합엘이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 그중에는 대외적으로 꽤 많은 방문자에게 익숙한 이름들도, 상대적으로 낯선 이름들도 있을 것이다. 아주 '힙'하기 그지없는 사람들도 있고, 너무나 조용한 사람들도 있고,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를 자극하고, 때로는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만큼 멋진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이들이 한 집단에 모여서 계속해서 운영되고 있다는 건 기적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해 낸 히맨 님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2년 전 <힙토쿠>라는 영상 인터뷰 콘텐츠를 처음 만들 때, 우리가 촬영에 사용한 것은 방송용 캠코더도, 그 흔한 DSLR 카메라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그곳에 모인 스태프들이 쓰는 핸드폰을 현장에서 구한 옷걸이에 애처롭게 매달아서 몇 시간 분량의 영상을 촬영해 냈다. 아마 국내를 대표할만한 랩 뮤지션들을 모셔놓고 촬영한 것치고는 솔직히 좀 '없어 보이는' 풍경이었을 것이나, 우리에게는 그런 식으로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 더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다음 1년 동안 아마 힙합엘이는 많은 변화와 시도들을 준비할 것이다. 그 변화 중 일부는 분명 성공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아주 멋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힙합엘이는 그런 것들에 구태여 연연하지 않는다. 대신 그렇게 찾아낸 또 다른 가능성과 돌파구들이 모여서, 1년 뒤에 힙합엘이는 더 크고 단단한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전히 유행보다는 콘텐츠에 밑줄을 그으며 힙합엘이는 그것을 어디까지 확장해 나갈 수 있을지 계속 탐구하고 있다. 대단한 응원을 해 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은 언제나처럼 유익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들을 편안하게 즐겨 주시면 충분하다. 대신 주변에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소문을 더 많이 내주시면 어떨까. 이렇게 멋진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혼자만 지켜본다는 건 좀 아까운 일이 아닌가.






M.jpg

Mangdi



2015년의 끝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도 뭐 하는 것 없이 바쁜 나였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고단한 몸을 누일 때쯤 문득 오늘 하루가 아깝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잠들기 전 몇 번의 터치로 그날의 기분에 맞는 선곡 후, 노래 속 가사를 하나둘 흡수한다. 평소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나에겐 그 하나의 행사(?)가 큰 위안이자 안식처였다. 그 소통의 장을 마련해 준 것이 힙합엘이였고, 2013년 전역 후 알게 된 그 친구는 여전히 내 옆에 있으며, 우린 팀이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나는 사진 찍고 글을 쓰는 등 이것저것 하는 망디(MANGDI)라고 한다.


중3 때부터 안 나의 동네 친구 한 녀석은 음악광이었다. 아니 달리 말하면 '힙합광'이었다. 2010년 대학생이 되고 조금 더 자유로워진 우리의 상황에 여러 가지 문화를 찾아가며 즐겼다. 그 중심에 음악이 있었고, 우린 항상 패션과 음악 얘기를 나눴다. 그것이 친구와 나 우리의 삶의 방식 그 자체였다. 같은 날 입대한 그 친구는 군 복무 중에도 틈틈이 컴퓨터를 하며 메신저로 질 좋은 음악을 추천하였는데, 그 매개체가 힙합엘이였고 그 덕택에 자연스레 나에게 녹아들 수 있었다. 전역 후 찾은 힙합엘이에는 스태프 모집 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 '힙합'이란 문화를 이해하기엔 내가 거주하는 부산은 (그 당시만 해도) 너무나도 협소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었고, 힙합엘이란 출구는 나에게 항상 함께 하고 싶은 파트너였다. 여러 분야의 에디터들이 있었는데 가사 해석 분야는 엄두도 못 냈던 나였고, 고질적인 음악 편식에 음악 관련 에디터도 두려운 게 사실이었다. 단 하나 '패션 에디터'는 조금은 자신 있었다. 예전부터 여러 매체에서 패션 관련 작업과 글, 사진을 찍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되는 베이스가 난 '힙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그렇게 함께 한지 두 번째 가을이 되었다.


스태프가 되어 첫 번째 안 사실은 서울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 혹은 심지어 외국에도 스태프들이 거주하며 소통하며 작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이들이 원활하게 활동하는 놀라운 체계는 감탄스러웠다. 그 모습에 나 역시 열의에 불타올랐다. 이미 내가 스태프가 되었을 때는 가사 해석을 포함해 힙합 관련 콘텐츠에 있어서는 국내에 범접할 매체가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항상 생각하였고, 라이프스타일 팀 소속이자 두 명의 패션 에디터 중 한 명인 나는 힙합 관련 패션뿐만 아니라 거기서 파생되는 패션 정보나 생각들을 조금 더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다른 여타 패션 매거진 부럽지 않게). 당시 라이프스타일 팀장님과 대표 히맨 형은 지금 생각하면 다소 파격적이며 말도 안 될 수 기획과 제안들을 성의껏 검토하고 서포트 해 주었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감으로 충전한 나는 정식 '패션 에디터'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평소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나였고 현재도 그렇지만, 그래도 힙합엘이는 내가 다가가고 싶은 용기를 만들게 하는 집단이었고 기업이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말들에서는 비록 이름은 '힙합엘이'더라도 구수한 사람 냄새가 났다.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 2년 차가 된 지금도 '가장 어색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말이다. 


힙합엘이는 내 대책 없는 꿈들과 생각을 자유롭게 그리게 해주는 조력자였다. 누구보다 자신 있는 분야였음에도 제대로 그것들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던 나를 걷는 것이 아닌 달리게 해준 것이다. 그것에 감사하고 항상 힘을 보태려고 노력 중이다. 최근에 있었던 여러 브랜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은 나에게 뜻깊은 작업이었고 환산할 수 없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있을 많은 작업도 팬으로서 스태프로서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 그들, 아니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힙합' 뿐만 아니라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변화와 질 좋은 흐름을 가져 다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을 마무리하며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게 만들어 준 힙합엘이와 전 스태프. 그리고 항상 응원해주는 내 친구들과 사랑하는 여자친구 지향이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앞으로 더 질 좋은 글과 콘텐츠로 우리는 만날 거다. 진짜다.


Thanks to. 주변의 달콤한 말로 세상이 좋기만 한 곳인 줄만 안 맹한 나에게 호된 질타로 '세상은 만만치 않구나.'를 깨닫게 해준 히맨 형. 어여쁜 외모와 달리 촌철살인과 객관적 독설로 우리 팀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에일리(AILIE) 누나. 항상 인성이 문제가 되지만 나에겐 한없이 착한 친구 비젤(Beasel). 때로는 지적이나 정신없는 친동생같이 귀여운 HRBL. 그리고 항상 친절한 설명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영다스 형. 엄청난 열정과 다부진 신념으로 나를 자극해준 친구 최최(ChoeChoe). 의지할 수 있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또한 역시 고맙다. 라이프스타일 팀 화이팅!






J.jpg

Jamiroquai


2012년 어느 봄날,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저는 그저 호기심에 저희 학교의 어느 ‘흑인음악’ 동아리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외국의 힙합 곡 중에서 알고 있던 것이 "Nas Is Like", "One Mic" 단 두 곡뿐이었던 저는 막 걸음마를 배우는 갓난아이의 입장에서, 선배들께서 보여주셨던 자막 뮤비들로 힙합엘이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저는 힙합엘이에 커뮤니티 기능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딱히 이 사이트를 이용해서 다른 음악들을 더 찾아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 갖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힙합엘이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바로 '컨트롤 대란'이었습니다. 당시 이 사태가 큰 충격이었기에 한동안 여러 글을 찾아 읽고는 했는데, 포털 검색에서 가장 많은 글이 걸렸던 사이트가 바로 힙합엘이였습니다. 몇 번이고 이 곳의 글들을 읽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메뉴들을 조금씩 이용하기 시작했고, 힙합이나 여타 흑인음악이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관심도 점점 부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댓글을 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느덧 힙합엘이에 가입 신청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대략 14년도 늦겨울 즈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자막 뮤비를 보거나 프리보드에 간간이 글을 올리거나 눈팅하는 날들을 반복하던 중, 꽤 오랜만에 프리보드에 들어가 보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전에 전혀 이름을 들어본 적 없던 신예의 신보가 국내 음원 사이트에 풀리기 시작한 것이 화젯거리였고, 저 역시 호기심에 그 앨범을 돌려 보고 나니 수록곡들의 가사 해석이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진 랩 가사를 직접 해석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힙합엘이의 공식 해석을 그저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그 앨범을 접한 뒤 이틀, 사흘도 지나지 않아서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이 저를 덮쳐왔습니다. 결국, 당시 개인적으로 제일 빠져 있던 곡부터 해석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앨범이 바로 라직(Logic)의 [Under Pressure]였습니다.


그렇게 한 번 해석을 하고 나니 요령이 생기기도 하고, 스스로 힙합엘이에서 찾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자료들을 만들어낸다는 묘한 쾌감으로, 솔직히 이걸 해서 뭘 얻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당시 학점과 등가 교환한) 가사 해석이나 자막 뮤비 제작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료 제작을 계속해 나갈수록, 일반 회원으로서의 한계 또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당시 나름 혼을 다해 완성했던 [Under Pressure] 해석도 힙합엘이의 정식 가사 해석 게시판에 등록되지 못한 채로 스웩의 전당 어딘가 저편에 묻혀있었고요. 생각만큼 많은 분께서 자료를 활용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한심하고 어설픈 수준이어서 당시 가사 해석에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마침 그 무렵, 급작스럽게 올라온 자막뮤비 스태프 모집 공고를 읽게 되었고, 그때부터 더디게나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개인적 사정 탓에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결국 올해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처음 활동할 무렵에는 저의 멘토 스태프셨던 트왱스타 님과만 연락이 가능하고, 제작하는 자막 뮤비도 제 마음대로 정할 수만은 없다 보니 솔직히 일하기 이전의 갑갑함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올해 10월부터 교환 학생 신분으로 한국을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출국 이후의 위험성(이를테면 '먹튀'라든가)을 크게 보셨다는 것은 당연한 거겠죠. 그렇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제가 만들어내는 자료가 최소한 힙합엘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그에 의해서 영향력을 갖고, 많은 분께서 즐겨 주시는 것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껴왔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에 2, 3개 정도의 자막 뮤비를 꾸준히 만들어 오던 중, 올해 8월 무렵부터는 힙합엘이 미디어팀에서 좀 더 원활하게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해서 다른 스태프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으면서도 사실 제가 맞닥뜨린 변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실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수다를 빙자한) 회의가 시작되고,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오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그때야 비로소 제가 새롭게 짊어지게 된 책임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십 명의 스태프분들이 각자의 열정과 재능을 불태우는 모습과 업무의 스케일에 감탄하기도 했었습니다. 만약 힙합엘이 내부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 모든 것들을 알 수 없었을 테지요.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신나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이렇게 엄청난 곳에 폐를 끼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LE' 아이콘을 달고 일을 시작한 이후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일을 겪어왔습니다. 사실 갓 스태프가 되었을 무렵에는 '제가 좋은 것'을 위주로 작업하고 싶었고, 일을 하면서 제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는 생각하곤 했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생각이었죠). 이런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인해 실수를 저지른다거나 하면서 여러 차례 큰코다친 이후로는 상당한 자괴감과 두려움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 이전에 아르바이트 같은 거나 몇 번 해본 것이 전부인, 그저 사회에선 한낱 조무래기에 불과한 불과했던 제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그저 "아, 제가 잘못했네요. 죄송합니다!"로 끝나지 않는 무게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죠. '내가 하는 일은 힙합엘이가 하는 일이다.' 이 명제는 그때부터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일을 계속하면서 다른 스태프분들도 (일반 유저 시절 생각했던 것처럼) 다들 초인은 아니고, 저와 같은 인간이긴 하다는 점을 가끔이라도 느끼게 되면서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힙합엘이에서 일하면서 가장 가깝게 연락하고 함께 일하고 있는 미디어팀, (가칭) 영중일 팀 분들께 늘 감사 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하던 일 중에 거의 유일하게 끊김 없이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기도 해 더욱더 그분들께 정이 가는 것 같습니다.


스태프로 함께하게 된 지 2개월 정도가 되는 지금까지도 고민이 되고 갈팡질팡하게 되는 경우를 항상 맞닥뜨리게 됩니다. ‘댓글이건, 조회수건 무언가를 바라면서 일을 하면 언젠가는 지치게 된다.’라는 말을 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만들어 낸 모든 자료가 항상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조금씩이나마 더 일하면서 쌓아나가는 모든 자료가 결국에는 흑인음악을 좋아하시는 더욱 많은 분께 기쁨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 (인기가 없더라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힙합엘이에 처음 발을 들이고 불과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에도 힙합엘이 내, 외부에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인터뷰, 그리고 <KHILA>의 연재 등 제가 조금씩이나마 관여하였던 굵직한 이벤트들도 있었죠. 얼마 전에는 <서울 힙합 영화제> 추진으로 많은 스태프분들께서 부쩍 바쁘기도 했었죠. 앞으로 힙합엘이에는 더 많은 일이 생길 테고, 저희가 해야 할 일들도 점점 더 많아지겠죠. 하지만 그를 통해서 더 많은 분께서 과거의 저처럼 흑인음악에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가 청춘의 한 자락을 힙합엘이에서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 세월이 어느덧 강산이 절반은 바뀔 만큼은 흘렀다고 하는데, 저도 그만큼 더 함께할 수 있을까요? 10주년 기념으로도 5년간 일했던 자미로콰이라고, 스스로를 한 번 더 소개할 그 날을 기약해 봅니다.



글│힙합엘이

이미지│ATO

신고
댓글 19
  • 11.6 23:22
    You made it~ 감사합니다 스탶분들..!!
  • 11.6 23:46
    은인들이심 음악에 다시 관심갖게해주신 감사합니다~
  • 11.7 02:58
    가사 해석, 자막 뮤비 등 항상 너무나 유용하고 좋은 자료들 감사합니다.
  • 11.7 03:08
    힙합엘이 5주년 축하드려요.
    항상 응원합니다!!
  • 11.7 14:24
    힙합엘이는 국외게시판이랑 국내게시판만 없애면 지구최고의사이트임
  • 11.7 17:47
    연차 낮으면 존댓말로 쓰라는 오더가 있었나요 갑자기 풋풋하게 존댓말ㅋㅋㅋ 엘이가 이렇게 커질 줄이야. 자막뮤비라는 컨텐츠 하나 신박하다는 생각으로 가입했었는데 기존 커뮤니티들의 기능까지 흡수하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축하합니다!
  • 11.8 20:46
    @wurd
    그냥 제가 원래 글 쓸 때 말투가....
  • 11.7 20:18
    벌써 5년이네요ㅋㅋㅋㅋ축하드려요
  • 11.7 21:37
    축하하고 감사드립니다 운영진 분들!
  • 11.7 22:26
    정말 멋진 분들 b
  • 11.8 00:33
    swagswagswag!!!
  • 11.8 13:20
    굿! 저도 언젠가..
  • 11.8 20:18
    ;ㅅ; bb
  • 11.9 00:29
    사랑합니다
  • 11.11 17:23
    축하합니다~~
  • 11.13 09:52
    Mangdi님 여자친구는 좋겠다...
  • 11.18 09:50
    축하드립니다!!
  • 11.23 17:52
    엘이 포에버
  • 11.23 17:52
    엘이 포에버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