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스스로 느끼기도 하고
얼마전부터 레슨 받으면서 꼭 지적 받는 것이 있는데
곡 쓸 때 좀 솔직해지라고요.
가사에 대한 말이 아니고요. 전 어차피 가사 안쓰고 작곡만 하는데
그럼에도 솔직하게 쓰라는 말이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안하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이건데 내가 쓰는 곡의 방향은 정 반대에요.
솔직히 그게 원인이 뭔지 모르겠어요.
아니 아는데 일부러 회피하는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네요.
그것보다는 그냥 쉽게 쓸 수 있는 곡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개쩌는 곡 당연히 쓰고 싶은데
그 이전에 일단 제가 좋아하는 곡을 쓰는데 그게 개쩔었으면 좋겠어요.
답은 사실 너무 간단하죠.
그럼 니가 쓰고 싶은 곡을 써!
근데 왜 오선지 앞에 앉으면 "나의 음악"에 자신이 없을까요
막 자기가 뽑고싶은 비트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런걸 하면되ㅡㄴ거 아니예여?
아, 전 비트를 만들지는 않고 현대음악 작곡해요. 미디는 물론 가이드처럼 쓰긴 쓰는데 그것보다는 오선지에 악보를 직접 그리고요. 님이 말씀하신게 영감이라는 건데 물론 저도 영감을 받긴 받아요. 근데 그게 겉에 보이는 선율이나 화성진행 이런거라기 보다는 어떤 발상, 아이디어, 구조 뭐 이런 쪽이에요. 물론 선율 화성진행 이쪽도 영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쪽은 껍데기라고 생각을 해서 떠올라도 최대한 곡 쓰는데 배제하려고 하고 있고요. 예를 들어 이런거에요. 발상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제 취향에 걸맞은 발상이고, 하나는 제가 쉽게 쓸 수 있는 발상이에요. 그럼 전자를 택해야 겠지만 제가 그걸 잘 쓸 자신이 없어서 후자를 고르게 되는 것 같아요.ㅠㅠ 마인드부터 고쳐먹어야 되는데 그게 너무 어렵네요...
첫번째는 자기가 좋아하고 만들게 뭔지 좀더 구체적으로 고민해봐야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귀차니즘이거나
일단 곡 쓰는거 보다는 자기가 지금 뭔 생각을하고 있는지 돌아보시는건 어떰
저는 일단 후자의 귀차니즘이 아닐까 하는데 생각을 해보니 제 음악에 대해 깊게 생각 해보지 않고 나는 그냥 이런 음악을 좋아하니까 나도 이런곡을 써야하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던거 같네요. 이런저런 음악을 다 깊이 있게 공부해보지도 못했던것 같구요.
아무튼 전자가 됐든 후자가 됐든 일단 제 곡에 자신감을 좀 갖고 싶어요. 그 첫번째 단계가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쓰는것 같았거든요.
저는 방송 작가하다 때려친 사람인데 저 역시 그같은 고민 때문에 갈팡질팡하다 그만둔 케이스거든요.
제가 원하는 건 소설가였는데 그러지 못해(재능 부족, 근성 부족, 노력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요), 두 번째로 제가 하고픈 일을 선택했지만(평소 제 3세계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아 그런 문제를 방송으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결국 차선책은 어디까지나 차선일 뿐이라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더랬습니다.
뭐, 생리도 완전히 다르긴 했어요. 저는 문장을 쓰고 싶었는데 방송이란 건 결국 아주 약간의 교양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말을 다루는 거거든요. 제가 원래 현학 기질이 농후했던 놈이다 보니 작가 생활 하면서 단 한 번도 제 마음 속에 은밀히 잠재되어 있던 문장에 대한 현시욕을 만족스러울 만큼 발현해낼 수가 없었어요.
헌데 작가 생활 그만두고 1년 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왔더니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는게 제가 갖고 있던 저의 최대 장점이자 최대 장점인 현학 기질이 상당 부분 소실되었던 겁니다.
1년간 노트북이나 태블릿 pc없이 돌아다니며 가진 거라곤 수필 한 권과 소설 두 권 뿐이라 그 단 세 권의 책을 매일밤 경전만큼이나 소중히 모시며 읽고, 가끔가다 쓰는 일기 외엔 문장을 아예 손에서 놓고 지내다 보니 문장이 기존과는 비교도 안 되게 담백해 졌달까요. 성격도 바뀌니 현학 취미를 쪽팔려서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겠더라고요. 한마디로 새롭게 바뀐 문체론 소설을 도저히 못 쓰겠더란 얘깁니다.
뭐든 수명이란 게 있어요. 재능, 감각, 그리고 뭣보다 그같은 것들을 추구하려는 의지와 그 의지를 담아낼 수 있는 노력과 시간 같은 것 말입니다.
님이 원하시는 것을 따르지 않으시면 막상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땐 지금 본인 안에 잠재되어 있을 재능이나 감각이 상당부분 소실되어 있거나 고갈, 또는 변질되어 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습니다.
물론 그같이 바뀐 상태에서 새로운 것에, 그러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과 일치되거나 가깝게 추구하실 순 있습니다.
저 역시 제 바뀐 문체가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여행작가가 되리라 했었고 출판사와 계약까지 맺었었고요.
...그런데 여행중 커다란 사고를 당해 접었습니다.
제 얘기가 지나치게 길었는데,
좀 더 노련해졌을 때 짠~ 하고 멋진걸 창작하고픈 욕망, 이해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걸 외면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원래 뭔가를 배우고 가르침받고있는 시기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그 학습활동 자체때문에 '나는 부족하고 보완할점이 많고 불완전하고 검증되지 않음' 이라는 '학생으로서의' 의식이 생길수밖에 없어서 자기 본래 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고 자기다움을 배제하고 먹힐것같은 요소만 골라서 작곡하는게 더 안전빵이라고 생각하게돼요.
이럴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런 의식 하나도 하지 않고 일부러 '남들 듣기엔 거지같고 병신같아보여도 난 내삘대로 만든다!' 라고 하고서 일부러 삘 하나만 충만한 괴작을 만들고 - 용기가 없다면 익명으로라도 - 누군가에게 들려줬을 때 '오 괜찮네?' 라는 의외의 피드백을 듣는 경험을 축적해서 자기 삘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거에요.
잘만들고싶어서 삘이 배제되는거에요.
오히려 일부러 장난스럽고 등신같이 만들고자 하면 본인 삘이 많이 포함돼요.
그렇게 일부러 병맛으로 멍청한 곡을 만들며 장난친 다음, 그게 듣기 좋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자신감이 생김.
'잘보이려는 의도'의 수갑을 풀고 자유로워지려면, 장난을 칠 줄 알아야함.
버벌진트 건물주flow도 일부러 멍청한 플로우로 바보같은 곡을 쓰려고 만든 곡인데 이상하게 자기다운 스킬을 자랑하는 곡이 되어버린 재밌는 곡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한 번 시도해보시길
글쓴이 분 엘이에 글 올리실때마다 보고 있어요 .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음악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 화이팅!!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