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쯤, 가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아마도 영화 한 편을 보고, 어쩌면 누군가의 음악을 듣고 나서,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어쩌면 한 인간은 평생 한 가지 생각을 하며 사는 것 아닌가.’ 어떤 이의 뿌리 깊은 생각은 자라는 방향이 바뀔지언정 쉽게 들어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것이 그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체성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소위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유달리 깊고 굵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평생을 생각과 의식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이들이니 말이다. 이들이 보는 세상을 완전히 똑같이 보고 듣고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우리는 이들의 작업물을 통해 그 의식의 어느 면면들을 조금씩 맛볼 수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소리 그리고 상징은 개개인의 뿌리를 흔들 뿐 아니라 이 세상에 깊숙이 뿌리 내린 무언가를 뒤흔들기도 한다.
김심야는 계속해서 뒤흔들기를 시도하는 자였다. 그 누구와도 섞이지 않으며 썩어빠진 이 씬에 토해내듯 분노를 퍼부었다. 자신이 뭐라도 되는 듯 뻐기는 이들에게 침을 뱉었으며 동시에 그들보다 성공할 수 없을 스스로에 대한 무력함 또한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랬던 그가 낯선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던 것은 [Dog]의 발매부터다. 입대를 코앞에 두고 낸 [Dog]는 언젠가 김심야가 말했듯이 ‘내게는 더 남은 화가 없다’는 뉘앙스가 물씬 묻어났다. 김심야를 사랑했던 이들은 지금까지 그를 움직였던 분노라는 강렬한 연료가 이제는 고갈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반가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으리라. 그리고 그 이후부터 김심야의 음악은 계속해서 힙합과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김심야의 정규 앨범은 수많은 이들의 기대와 기다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Dogma]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첫 트랙 “Me Life & Nothing Else”는 경전을 외는 듯한 보이스 샘플과 ‘텅 빈 내 손에 Dharma’라는 가사를 통해 그간 크게 영향받아 온 불교적 색채를 전면에 드러낸다. ‘나의 집착 나의 고집 나의 Dogma’라는 가사 또한 이제껏 꼿꼿한 자세와 날카로운 단어들로 상대를 공격하던 김심야를 적절히 설명해 주는 가사다. 외부를 향하던 김심야의 칼끝은 이제 그 방향을 내면으로 돌렸다. 그의 가사들은 그간 그가 미처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도려낸다(“Move My Feet”). 앨범의 초중반부에 위치한 트랙들은 마치 명상하는 듯한 감상을 준다. 반복되는 문장, 단조로운 톤,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듯한 내용까지, 번뇌로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되뇌는 김심야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김심야 스스로 ‘그때’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구분한다. ‘어린 나의 꿈 이제 그건 Not my thing(“Hanat Dool Set”)’이라 말하는 그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분노는 없음을 확실시한다. ‘이제는 느껴 이 과정의 힘/ 결과보다는 이 발전의 미를/ 느림의 의미(“SOTS”)’라는 가사는 그가 자신의 리듬과 박자로 걷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이전보다 더욱 날카롭고 예리하다. 순간적으로 XXX 시절로 회귀한 듯한 라인인 ‘계속 털어댄 이빨/ 전문의라더니 새끼야/ 결국 못 유명해져서 안달이 난 개새끼가(“Zulu Love”)’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폐부를 비집고 들어온다. 결국 김심야는 이전에 악에 받쳐 휘두르던 분노를 내려놓았을 뿐, 그 고요한 품에는 더욱 날카롭게 벼려낸 언어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해치기 위한 힘보다 지키기 위한 힘이 더욱 강한 법이다.
앨범 내내 반복과 순환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점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HDI HDI HDI HDI HDI HDI”의 반복되는 문장, “Keep Counting”의 ‘Somehow I’m still running but 원을 그려 다시 원점’이라는 가사, 패닝을 장치로서 활용한 “T-H-I-R-S-T-Y” 등의 요소들이 그러한데, 이는 끊임없이 번뇌와 싸우는 그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듯하다. 번뇌에 빠지고 번뇌에 맞서며 번뇌에서 벗어난 뒤 다시 번뇌에 빠지는 과정은 인간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패턴이다. 그렇기에 삶의 도식은 직선이 아닌 나선이다. 인간은 비슷한 문제를 계속해서 대면하게 되며 그때마다 반복되는 단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 나간다. 앞서 서론에서 인간은 평생 한 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어쩌면 인간은 평생 단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며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Dogma]의 반복과 순환은 이 우주를 살아가는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한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Dogma]는 전반적으로 공空과 색色의 균형과 조화를 보인다. 김심야만의 예리한 가사로 가득한 곡과 비트 인스트루멘탈에 가까운 곡이 공존한다. 같은 문장을 반복하며 경전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고, 김심야의 랩이 아예 뒤로 빠지며 하나의 악기로만 기능하기도 한다. 인스트루멘탈과 랩은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앨범을 채우고 있으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앨범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T-H-I-R-S-T-Y”에서 김심야의 랩은 그저 하나의 보이스 샘플로서 기능하지만, “Keep Counting”에서 김심야의 랩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이러한 인스트루멘탈과 랩의 균형과 조화, 즉 앞서 말한 공空과 색色의 균형과 조화는 앨범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종의 공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Dogma]를 통해 김심야는 또 한 번 독보적인 영역을 점한다. 그곳은 그 누구도 감히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그렇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는 공간이다. 지금껏 김심야를 있게 했던 그의 집착과 고집은 한때 그를 가두고 고립시켰지만, 지금은 그의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굳건한 기둥이 되었다. 고요함이 지닌 강렬함, [Dogma]는 김심야라는 한 인간이 용화를 거쳐 우화해 삶의 또 다른 챕터에 들어섰음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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