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힙합 저널 '리드머'의 비평 중,
"세계적으로 힙합이 우파적 신념과 결합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라는 시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리드머의 생각처럼 대중문화계 전반에 리버럴한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는 진단은 새로울 것이 없다.
할리우드 시상식 무대에서 진보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배우들의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고, 디즈니를 비롯한 거대 미디어 기업들 역시 정치적 올바름(PC)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런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힙합 역시 당연히 진보나 저항의 서사와만 궤를 같이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자리 잡았다. 힙합이 태생적으로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성장해 온 역사를 돌아보면, "힙합과 우파적 신념의 결합은 예외에 가깝다"라는 시각도 나름의 명분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진 다면적인 속성 중 단 한 면만을 바라본 단편적인 분석이다. 주류 미디어 산업이 스크린 위에서 분배와 올바름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힙합 씬 내의 보수적·우파적 가치를 '변종'이나 '이단'으로 규정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힙합의 역사와 그 기저에 흐르는 DNA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 장르 안에서 우파적 신념을 견지하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선택지 중 하나다.
최근 '리드머'가 비와이(BewhY)의 앨범 《Pop is cryin'》을 다루며 보여준 시각은 꽤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리드머의 지적대로, 비와이가 이번 작품을 통해 성취한 음악적 밀도와 메시지를 단순한 '정치적 잣대'나 '우파적 프레임'으로 묶어 재단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 해석이다.
리드머 역시 이 작품을 얄팍한 정치적 논쟁거리로 소비하려는 세간의 태도를 경계했고, 이 지점에서는 깊이 공감한다. 비와이가 구축한 예술적 세계는 날 선 진영 논리보다 훨씬 넓고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성찰은 힙합과 보수적 가치의 결합이 결코 이질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증이 된다. 비와이가 커리어 내내 뚝심 있게 보여준 개신교적 신앙심과 가족, 그리고 개인의 내적 성찰은 전통적인 보수주의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를 굳이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힙합의 본토를 지배해 온 핵심 정신은 이미 우파적 가치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금이나 정부의 개입 대신 오직 자신의 재능과 치열한 노력으로 일어서는 '허슬'과 '자수성가'는, 규제를 싫어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우파의 '능력주의' 및 시장경제 논리와 완벽하게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속성은 한국 힙합 시장에서 한층 더 선명한 논리로 고착화되었다. 인종 갈등이라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태어난 미국과 달리, 한국의 힙합은 철저하게 '개인의 생존과 성공'이라는 파편화된 자본주의 서사 위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과거 쇼미더머니 체제를 거치며 한국 힙합 씬을 지배한 정서는 '각자도생'과 '공정'이었다. 내가 노력해서 일군 자산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세금과 규제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는 랩스타들의 태도는 대단히 우파 지향적이다. 집값 폭등과 취업난 속에서 능력주의를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인 한국의 2030 세대에게, 힙합의 자본주의적 성공 서사는 가장 솔직하고 현실적인 위로가 되어왔다.
결국 힙합은 특정 정치적 이념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그 안에서 보수적 신념을 가지는 것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비와이의 《Pop is cryin'》을 향한 리드머의 비평처럼 아티스트의 예술을 정치적 이분법으로 묶어두려는 시도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힙합 씬 내부에서 보수적·종교적 신념이 숨 쉬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장르적 문법임을 인정해야 한다.
칸예 웨스트의 우파적 행보 역시 기이한 돌출 행동이 아니라, 힙합이 가진 자유의지주의적 속성이 수면 위로 솔직하게 드러난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힙합은 태생적으로 진보적 저항의 언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한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개인의 자율과 성취를 노래해 온 음악이다. 문화계의 지형도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일지라도, 힙합 씬에서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비판받을 이단이 아니라 장르의 본질에 충실한 또 하나의 단단한 서사임을 인정해주길 바란다.




잘 읽었습니다. 리드머의 평론 중 힙합이 반문화적이고 저항의 메신저로 활용이 되었다는 점은 공감이 많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보층이 아직까지도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기엔 시간이 너무나 많이 지난 것 같고, 따라서 저항의식을 갖는 대한민국의 젊은 층이 우파적 성향을 많이 띄는 것이 자연스럽게 힙합에 적용되는 것은 어색하지 않아 보이네요. 진보적 저항보다는 저항 자체가 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리드머의 평론 중 힙합이 반문화적이고 저항의 메신저로 활용이 되었다는 점은 공감이 많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보층이 아직까지도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기엔 시간이 너무나 많이 지난 것 같고, 따라서 저항의식을 갖는 대한민국의 젊은 층이 우파적 성향을 많이 띄는 것이 자연스럽게 힙합에 적용되는 것은 어색하지 않아 보이네요. 진보적 저항보다는 저항 자체가 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맞말이네요
이 말에 극히 공감함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언제까지 권위에 대한 저항이 좌성향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건지
리드머 특히 강일권씨의 성향? 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ㅎㅎ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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