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무료 공개된 초판 버전)

(2006년 공식 발매의 10주년을 기념하여 두 곡이 추가된 2016년 리마스터링 앨범 버전)
라임어택의 데뷔 앨범인 [Story At Night].
원래는 2016년에 나온 10주년 앨범을 기준으로 보려 했으나, 초판의 11, 12, 13번째 보너스 트랙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고, 10주년을 기념하여 초판에는 없던 마지막 두 곡이 추가되어 있기도 해서 편의상 두 버전의 앨범을 통합해 살펴보겠다.
스스로를 "90년대 문을 열 마지막 열쇠"라고 지칭할 정도로 90년대 힙합의 황금기에 대한 존경과 향수를 과감하게 드러내던 라임어택은 당시로써도 과감한 캐릭터였다. 어떻게보면 고지식하고 유행에도 뒤떨어진 청년이었지만, 이후로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꾸준히 수준높은 작업물을 내놓은 그는 힙합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고도의 아나크로니즘의 형식으로 표현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한 라임어택의 정체성이 아낌없이 들어간 화제작 [Story At Night]은 우선 앨범의 주요 프로듀서인 마일드비츠의 세련된 비트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클래식한 붐뱁 드럼과 몽환적이고 멜로디컬한 사운드는 그가 훗날 차붐과 함께 작업할 [Still ill]보다도 날 것에 가까운 원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랐던 것은, 랩네임에서 느껴지는 직관과는 다른 결을 드러내는, 라임어택의 섬세한 래핑에 있었다. 투박하게 강조되는 라임 배치의 구조적 완성도를 제외하고서도, 앨범을 관통하는 유려한 스토리텔링에서 나는 앨범의 이름부터가 그것을 암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치 애써 모르기라도 했다는 듯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라임어택이 회상했던, 그날 밤의 시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일단 그 과정에서 우리는 라임어택이 앨범 단위에서의 스토리텔링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일종의 실험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3번째 트랙 'It's Been A Long Time Pt. 2'와 10번째 트랙 'It's Been A Long Time Pt. 1'이 그 정체다. 길가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전 애인에 대한 통일된 이야기로 진행되는 두 곡은 특이하게도 파트 원과 파트 투가 순행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두 번째 곡을 먼저 듣게 된 우리는 앨범 최후반에 위치한 첫 번째 곡을 들으며 두 곡에서 반복되는 키워드와 역순행적 구조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대를 뒤집고, 인연의 우연적인 발생에서 탄생하는 순환과 회귀의 구조를 곱씹어볼수록 앨범의 시네마틱한 가치 또한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렇듯, 라임어택은 자신만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내 돌아본 침대 머리맡엔
모래 한 줌과 낡아빠진 나침반이
두번째 트랙 '사막'에서는 음악 작업에 한창이던 화자의 한밤 중 꿈을 바탕으로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마치 지옥같이 느껴지는 사막에서의 힘겨운 유랑은 너무나 실감나고 고통스러운 꿈이었다. 그러나, 꿈에서 깬 화자가 본 것은 꿈이 현실로 넘어온 흔적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부서지며 다가오는 공포.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의 절망은 사막처럼 광활한 시간 속에서 서서히 커져가고 있다.
달빛 한가운데 자칫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대도
급하게 약을 삼키며 또 다시 거울을 쳐다봤을 땐
이미 일그러져버린 내가 쓰러지고 있을 뿐
시간은 곧 새벽인데
깊게 잠든 영혼은 왜 깨지 못하는지?
오래된 일기장 속에 남아 있는 향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의 기억들
라임어택의 존재론적인 고뇌와 두려움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꿈에 취해 바라본 달빛을 낭만적으로 노래하는 'Moonlight Pt.2'(이 곡은 아마도 프라이머리 스쿨의 앨범 [Step Under The Metro]에서 본인이 피쳐링했던 트랙의 후속곡인 듯 하다), 자아의 상실로 혼란을 겪는 어느 살인마의 이야기를 담은 'Story About K', 내면의 비관을 담은 도회적인 감성과 재즈풍의 비트가 돋보이는 'Quiet Night'(참고로 이 곡의 후속격인 라임어택의 정규 4집 [Untitled]의 수록곡 'Darkest Night (Feat. Deepflow)'도 추천한다), 과거의 향수와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일기' 등등, 정말 냉소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청춘을 그려내고 있다. 그 청춘에는 꿈, 사랑, 고독, 소외, 향수, 미련 등의 감정이 녹아있고, 직후의 'It's Been A Long Time Pt. 1' 까지의 전개를 끝으로 두 버전의 앨범은 두 갈래의 결말을 향해 갈라진다.
야 형래야, 힙합 제대로 하자
우선 초판 버전의 첫번째 보너스 트랙 '독백'은 '사막'과 더불어 이 앨범의 킬링트랙으로 꼽힌다. 옛 친구들과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곡은 그동안 꿈이라는 막연한 대상에 의지해왔던 스토리텔링이 처음으로 힙합이라는 구체화된 영역으로 옮겨간 순간이기도 하며, 동시에 라임어택이 힙합을 대하는 애티튜드를 엿볼 수 있다. 때문에 일종의 내면을 향한 고해성사로써, 라임어택의 뚜렷한 딕션과 둔탁한 플로우의 장르적인 올드함까지 합쳐져 청자의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트랙이 되었다.
두번째 보너스 트랙 'Lyrical Street Remix'과 세번째이자 마지막 보너스 트인 'MC'까지도, 초판의 결말은 힙합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앨범 전체적으로 가장 퀄리티 높고 탁월한 래핑과 클래식한 사운드를 구현해냈던 세 곡이기에 10주년 앨범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다소 아쉽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Lyrical Street Remix'의 후반부에는 제한적이긴 하나, 무려 1975년 발매된 성인가요 포크송인 박인희의 '왜 기다릴까'가 삽입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힙합과 한국 가요의 조화를 고려했던 시도의 흔적이 아닐까! 이 곡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팔로알토의 감각이 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13년이 지난 후의 라임어택은 어떤 결말을 냈는지, 더욱 그 귀추가 궁금해진다.
센스 말마따나 스물한 살 그때의 난 밀림의 왕자였지
힙합 차트의 맨 위가 바로 내 왕좌였지
10주년 리마스터링 앨범의 교체된 첫번째 결말이자 11번째 트랙 'Story At Night'은 급격하게 현대적으로? 또는 선명해진 라임어택의 목소리와, 이센스의 곡 'Next Level' 속 본인을 향한 리스펙이 섞인 구절이 들려오면서 시작된다. 이 버전의 결말 역시 힙합과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이제는 20살의 어렸던 루키가 아닌, 베테랑 MC가 되어있는 라임어택의 시점이다. 과거에 대한 회상, 마이노스의 까메오 벌스도 있는 이 곡은 결정적으로 본 앨범인 [Story At Night]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일들을 밝히는 오리진 스토리이자 프리퀄 혹 에필로그의 역할을 한다. 앞서 시도했던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드라마투르기가 13년이 지난 이 앨범에서 다시금 오마주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왠지 모를 찡한 감정이 밀려온다.
더 놀라운 것은 마지막 트랙 '03-72018619'의 존재감이다. 마치 마블 영화가 끝나고 후속작을 암시하는 쿠키 영상이 나올때 열광하는 팬들의 반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싶기도 한 이 곡은 군복무를 하던 라임어택의 자유와 힙합을 향한 열망,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일드비츠와 2006년 발매되었던 그와의 정규 합작 앨범인 [Message From Underground 2006]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또 다른 앨범의 또 다른 오리진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는 것으로 앨범을 마무리 하고 있다. 여운이 남겨지는 탁월한 선택이 아닌가.
한 마디로, 라임어택의 데뷔 앨범인 [Story At Night]은 청춘의 고뇌와 힙합에 대한 애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해낸 명반이다. 정말 대단하고 과감했던 것은 20살의 젊은 혈기가 작가주의적인 열망을 뽐내며 본인의 고전론을 펼쳐내었던 점이다. 이러한 순수를 간직하고 있는 데뷔 앨범은 수없이 나타나고 빠르게 저물어가는 트렌드의 늪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베스트 트랙 : 사막,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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