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나의 첫번째 솔로 작업물이자 EP인 [Brainstorming]입니다.
더콰이엇의 프로듀싱과 소울컴퍼니 멤버들의 피쳐링이 돋보이며, 전체적으로 화나의 소년스러운 감성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앨범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화나의 도발적인 라이밍과 송곳을 두드리는 듯한 날카로운 플로우의 전달력이 대단한데, 1번 트랙 'Brainstorming', 2번 트랙 'When I Flow', 그리고 최적화의 팀원인 칼날이 피쳐링한 곡이면서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 3번 트랙 'Rhythm Therapy (feat. 칼날)'까지, 앨범의 첫 세 곡으로 그 위력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rainstorming, 그것은 인간의 커다랗고 복잡한 초상화.
역사와 철학관의 총망라. 언어의 조각칼은 온갖 사람들의
천상만태를 전달하는 도구이자, 교만함을 고발하고,
또한 사회의 못마땅함을 적나라하게 토로할 하나의 무기."-Brainstorming-
두 번째 트랙 'When I Flow'와 칼날이 함께한 'Rhythm Therapy'는 클래식한 드럼 비트 위에서 이루어지는 수준 높은 한국어 라임과 변칙적인 리듬감으로 순수한 청각적인 만족감을 선물하며, 첫 번째 트랙에서 예고했던 궁극적인 브레인스토밍, 즉 폭풍처럼 밀려드는 화나의 다층적인 내면세계를 사운드로 형상화해 나타내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브레인스토밍은 그저 화나의 무수한 상념과 단상을 표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식의 흐름을 넘어 존재하는 유기적인 물줄기와 총체적인 강으로 이어지는 공통된 방향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것의 시작을 알리는 앨범의 가장 핵심적인 변주가 바로 다음 4번 트랙 '시간의 돛단배'입니다.
"멀어져간 몇몇 관계를 솎아내는 건
무정한 게 아냐. 괜찮아"-시간의 돛단배-
국힙 역사에 남을 유려한 스토리텔링 곡 '시간의 돛단배'는 화나 본인을 자전적으로 투영한 듯한 화자와, 그의 오래된 친구의 단편적인 만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몽환적인 비트 위에서 더욱 침잠하는 보컬, 극적인 3막 구조를 차용한 형식미와 직접적인 대사 연기의 시도 등에선, 여러 실험을 통해 완성된 화나의 섬세한 감수성과 그 문학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곡에서 언급했던 씨앗인 사람들의 "천상만태"를 매우 강렬하게 거두고 있기도 합니다. 그 감정은 매우 세부적이고 쓸쓸하며, 시간과 망각이라는 불가항력의 법칙 앞에서 좌절하는 보편적인 인간상을 한 편으론 담담하게, 또 다른 한 편으론 감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 강력한 매력이고, 이후 이어질 화나의 유년기를 체험하기 위한 효과적인 발판으로 기능하는, 매우 뛰어난 곡입니다.
다섯 번째 트랙 '악당수업'에선 매우 유쾌하고 소년스러운 화나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의도적인 유치함과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향수, 휴머니즘은 화나라는 사람이 막연한 순수를 전적으로 긍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앨범에는 돈과 명예, 여자 같은 가사는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구요. 오히려 우리 삶의 가장 보편적인 애환을 순수한 소년의 시점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곡에서는 어릴 적 보던 전대물의 기억을 되살리는데요, 악당을 동정하게 된다는 유치한 소재 뒤에는 선과 악, 현실과 낭만의 경계를 허무고 있습니다. 이렇듯 자신만의 가치를 설파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당시 소울컴퍼니의 정체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 곡 '잉여인간'에서 화나는 매우 침울하고 자기혐오적인 한탄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사회 문제 잉여인간. 화나는 사회의 기조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을 어두운 조명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퇴영적 패배주의에 기반한 이들의 답답한 시야는 오늘도 후회에 머무는 듯 합니다. 이쯤되면 화나의 내면으로 표상된 앨범의 세계관은 사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한 곡 한 곡 편린의 형태로 파편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000년대의 몽상적이고도 암울했던 시대상 위로, 사회와 개인의 여러 드라마틱한 지점들을 지독하리만치 해체하고 있는 화나의 이러한 시도는 다음 곡에서도 이어집니다.
일곱 번째 트랙 '엄마 지갑 (feat. Rhyme-A-, Minos)'에서는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의 화나의 어리숙한 감정 상태를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락에 대한 막연한 욕망과 양아치 형들에 대한 두려움을 귀엽게 라임어택과 마이노스의 악랄한 일진 연기로 묘사하고 있으며, 가장 유치한 감성에 근접한 화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나의 내면, 그 유년의 기억들 속 풋풋했던 공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하는 듯한 감상을 줍니다. 조금 전 '잉여인간'에서 화나가 고독과 함께 방황하는 사춘기에 위치해 있었다면 지금은 그 훨씬 이전이라고 볼 수 있으니, 앨범의 시공간은 매우 뒤죽박죽 섞여 있고 비선형적인 구조를 띠고 있어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브레인스토밍이란 키워드에 잘 어울리는 구조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화나의 내면은 역시나 우리들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고 있고, 사회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점에서 화나의 고민이 엿보이는 곡이었습니다.
여덟 번째 트랙 'Game (Feat. The Quiett)'은 이전까지의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다시금 앨범 초반의 저돌적인 힙합으로 회귀합니다. 폭풍같은 화나의 스토리텔링에서 잠시 벗어나, 호흡을 돌리면서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더 콰이엇의 묵직한 톤과 화나의 높은 톤이 매우 조화롭게 섞여 들어가면서 마치 보급형 다이나믹 듀오를 듣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트랙 'Skooldayz (H&K Mix) (feat. Kebee)'는 소울컴퍼니의 컴필 [Soul Company Official Bootleg Vol.1]의 수록곡인 'Skooldayz (feat. U'noo)'를 화나와 키비가 재해석한 곡입니다. 소년 감성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키비의 단단한 플로우와 서정적이고 유쾌한 비트의 조화가 돋보이고, 화나의 앨범과도 매우 잘 연관되는 곡입니다.
"시간을 거슬러~"라는 더 콰이엇의 목소리로 마무리되는 이 앨범은, 말 그대로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넘나들며 화나의 내면과 사회의 단면을 마구잡이로 엿볼 수 있는 풍성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청년들의 꿈과 우울을 마주하고, 그것을 순수한 음악적 도전으로 만들어낸 화나의 몽상가적인 면모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https://youtu.be/wHsZj-YZIdI?si=PPHNcmlB38eZPvwg
베스트 트랙 : 시간의 돛단배(Feat. 있다)




어렸을 때가 생각나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