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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RAIN (에이트레인) - POVIDONE (feat. 단편선) MV

title: Earl Sweatshirt그린그린그림11시간 전조회 수 56댓글 0

https://www.youtube.com/watch?v=AB3A1jRnaG0

 

당신의 초록이 분홍으로 피어나기를 응원하는 주황색 마음, [POVIDONE 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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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는 언뜻 부드러운 위로처럼 들리지만, 배후에는 언제나 따가운 소독의 과정을 동반한다. 에이트레인의 상처 3부작을 마무리하는 [POVIDONE ORANGE]는 어린 시절 학교 양호실에 가면 볼 수 있던 포비돈 요오드 용액, 그 ‘빨간약’에 담긴 양가적인 기억에서 출발한다. 한 아이가 보건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과 함께 뒤따르는 날카로운 통증을 참고 견딘다. 당장이라도 손을 뿌리치고 싶지만, 감염을 막고 새살이 돋을 자리를 마련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고 씹어 삼켜야 한다. 치유는 그제야 시작된다. 여린 피부 위로 주황빛 자욱이 웃돌 때 비로소 통증과 희망은 공존할 수 있다.

5년의 여정. 에이트레인은 죽음의 문턱에서 짙은 녹빛의 구천(九泉)을 거닐던 [PAINGREEN]을 지나, 삶에 남겨진 분홍빛 생채기를 주마등처럼 바라보던 [PRIVATE PINK]를 거쳐, 마침내 오렌지색 연옥에 도달한다. 그는 전작으로 하여금 “이야기꾼으로서 소임을 다했다”라고 술회한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밑바닥까지 모든 걸 싹싹 긁어내고 비워냈기에 이제야 가벼워진 고개를 치켜들 수 있다는 이치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에는 지금 한국이 직면한, 어쩌면 인류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거대한 사회 문제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동안 외면하고 피해 온 아픈 진실들이 서 있다. 그건 어쩌면 영화 매트릭스 속 ‘빨간약'을 삼켜버린 자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초점은 과거에서 현실로 옮겨온다. 점점 뜨거워지는 온난화 속 지구는 마치 ‘불기둥’ 같다.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가 떠오르는 불온한 신시사이저와 가녀린 현악이 교차하고, 드럼 앤 베이스(drun’n’bass) 리듬이 조금씩 전진하며 우리를 옥죄어 온다. 다가오는 종말에 결국 사랑이 해답이라 주장하는 낙관론자의 말도 어느 순간 미덥지 않고(‘LOVE IS THE ANSWER’), 광고와 매체에서 매일같이 외치는 환경 수칙들은 그저 말로만 공허하게 떠돌 뿐이다(‘UTOPIA’). 위기를 극복하려면 하루빨리 힘을 합해야 한다지만 지금 당장 나조차 챙기기 어려운 무기력한 상황. 이러한 처지를 대변하듯 침잠하는 덥(dub) 사운드가 묵직하게 뒤덮이기도, 팽팽한 워블 베이스와 스네어가 긴장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전자음악의 비중이 대폭 늘어난 작품은 포비돈 용액의 살균 과정처럼 따끔거리는 화학 작용을 고스란히 귀로 전달한다.

물론 이 치유 작업에는 조용히 다가와 등을 토닥이는 위로도 존재한다. 간소한 피아노 리프 위 명료한 선율, 웅장한 전개를 합한 타이틀 ‘POVIDONE’은 에이트레인만이 할 수 있는 감동과 메시지의 결정체다.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N포세대’와 ‘쉬었음 청년’에게 당장 필요한 건 희망의 씨앗이다. 누군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던 [PAINGREEN]의 그는 이제 발을 딛고 일어나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려 한다. 뒤이어 등장하는 ‘짠’은 그들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건배다. 여기에는 동반자가 함께해 온기를 더했는데, 인디 신의 연대와 투쟁을 상징하는 단편선은 ‘POVIDONE’에 우렁찬 목소리를 보탰고, 청춘의 단상을 그리는 싱어송라이터 담예는 ‘짠’에 피처링과 블루스 기타를 덧대 무르익는 술자리 속 풍기는 몽롱한 취기와 낭만을 그려냈다. 감미로운 보컬과 기타로 ‘LOVE IS THE ANSWER’의 분위기를 적신 신설희, 노련한 반도네온 연주로 ‘낡은 사랑과 집에 두고 나온 늙은 개’에 애절함을 배가한 김국주의 연주도 괄목할 지점이다.

모든 곡의 핵심 중추로서 에이트레인의 보컬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담백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가도 순식간에 감정의 깊은 골짜기로 파고드는 집중력, 그리고 희망과 슬픔의 위태로운 경계를 넘나드는 완급은 여전히 탁월하다. 온몸으로 체감되는 위기의식을 애써 무시하는 자신을 덤덤히 그려낸 ‘DISTOPIA’는 익살스러운 연출과 장엄한 작풍 가운데서 노련함을 드러내는 트랙이다. 거시 담론에서 천천히 내려와 다시 온전히 자신의 속살로 파고드는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보컬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악기가 된다.

여정은 어느덧 산산조각 난 모든 자존심과 자존감의 조각들이 차곡히 쌓인 ‘BROEKN HILL’을 지나 그가 추구해 온 미학, 즉 마음껏 흔들리고, 아름답게 추악하며, 한없이 진실한 고백들이 뾰족하게 담긴 내면의 비밀 서랍장을 향한다. 거울 속에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음악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돈이 안 돼도 해’), 그럼에도 다시 한번 자신을 믿어달라 말하는 이기적인 본인의 얼굴이(‘SELL FISH’) 넘실거린다. 자신의 구원이자 살아가는 이유의 이름을 묵묵히 나열하는 ‘낡은 사랑과 집에 두고 나온 늙은 개’, 그리고 그저 남들처럼 살고 싶은 소박한 꿈에서 피어오른 독백 ‘나도’는 처연한 일인극의 막을 내리는 밀도 높은 클로징이다. 각박한 현실 속 꿈의 끝자락을 잡고 흔들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미쳐버린 불기둥 같은 세상 속 앞으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우리의 초상을 닮았다. 그의 고행을 꾸준히 추적하며 목격해 온 관객들 역시 어느새 그의 이야기 안에 서 있다.

독특하게도 에이트레인은 [PRIVATE PINK] 발매 이후 우연처럼 겪은 연대와 치유의 파편적인 경험들이 앨범의 토대가 됐고, 이를 온전히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작품을 아름답게 정돈하며 결을 그려낸 마스터링 엔지니어 김예준과의 인연을 또 한 번 이어간 것은 물론, 공연에서 합을 맞추며 가까워진 밴드 멤버 조우재(건반 및 공동프로듀서), 김일로(기타), 이재성(기타), 김진규(베이스), 곽지웅(드럼), 여소흔(바이올린)과의 호흡을 유지하며 동행의 소중함을 되짚는다.

일본의 mbt 쇼케이스에서 우연히 만난 스페인 듀오 아티스트 Rani Bober와 호주 기타리스트 Cameron Whelan과의 우연한 만남은 각각 ‘불기둥’에 등장하는 비명과도 같은 메탈 첼로와, ‘BROKEN HILL’의 파괴적인 전자 기타로 환산됐다. ‘돈이 안 돼도 해’에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Ben T Kadar와의 협업 역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난 자가치유 여행 중 친해진 것이 계기였다. 에이트레인은 가볍게 나눈 대화가 어느 순간 국경을 넘는 교류로 확장되는 이 기적적인 일화를 들려주며,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호주 울루루(Uluru) 지역에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러 갔을 때 스친 인연의 흔적도 곳곳에 스민다. 다 같이 은하수를 바라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듣는 스타 피칭 프로그램 체험은 ‘LOVE IS THE ANSWER’의 내레이션으로, 우연히 만난 호주 원주민 악기 디저리두(Didgeridoo) 연주자 Dwain Phillis가 현장에서 들려준 신묘한 소리는 ‘POVIDONE’에 들어가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앨범을 장식했다. 이 앨범이 스스로를 위한, 그리고 인류를 위한 ‘테라피’에 가까운 이유다.

분명 [POVIDONE ORANGE]가 건네는 빨간약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아프고도 따갑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일상 속 마주치는 따스한 손길이, 들리는 모든 구절이 위로의 어법으로 치환되며 극적인 치유로 바뀌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 내게 그의 음악이 왜 좋은지에 대해 물을 때마다, 나는 ‘한없이 처절하기 때문’이라 답한다. 항상 진심으로 모든 걸 쏟아붓는 자세가 지구상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동력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험적 사운드와 보편의 언어로 마무리한 상처 3부작의 최종장. 5년 전 깊이 팬 상처는 흉터 자국을 남겼지만, 이는 에이트레인이 알앤비 신(scene)과 대중음악에 새긴 분투의 기록이자, 쉬이 지워지지 않을 웰메이드 시리즈의 증표로 남을 것이다.

- 대중음악평론가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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