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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폐허에서 피어난 가장 창의적인 증명 - <살아숨셔 4>를 듣고

karimin7시간 전조회 수 503추천수 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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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폐허에서 피어난 가장 창의적인 증명

 

염따의 《살아숨셔 4》를 듣는 경험은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동시에 누군가의 비밀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감각을 선사한다. 우리는 그의 가장 내밀한 상처와 치부를 엿보고 있다는 죄책감과, 너무나도 흥미롭게 쓰인 그 기록에 대한 감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이 앨범은 그 명제가 어떻게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하나의 ‘경험’으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다. 염따는 한때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가장 영리하게 상품화하여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냈지만, 그 성공의 끝에서 마주한 공허함마저도 한 권의 흡인력 있는 일기장으로 완성해냈다. 《살아숨셔 4》는 그가 스스로 구축했던 성공적인 페르소나의 장례식을 치르고, 상품이 아닌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고통스러운 여정의 기록이다.

 

이 흥미진진한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간이 기록되기 시작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그의 음악은 아버지의 부고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무거운 사건에서 출발했다. 갑작스레 가장이 된 청년의 책임감,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성공에 대한 절박함은 그의 초기 음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정서였다. 《살아숨셔 1》, 《살아숨셔 2》, 그리고 한 여성과의 사랑과 이별을 통째로 담아낸 앨범 《Mina》까지, 이 시기의 음악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투박하고 거친 질감의 비트 위에 자신의 삶을 꾸밈없이 녹여낸, 한 편의 자전적 소설이자 세상에 처음으로 펼쳐 보인 그의 일기장 첫 페이지와도 같았다. 이때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직 상업적 문법에 길들지 않은 날것의 에너지였으며, 음악은 생존의 수단이자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처절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다모임’ 프로젝트의 폭발적인 성공과 함께, 그의 음악과 '개인적인 것'의 의미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플렉스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그의 ‘일기장’은 더 이상 내밀한 고백이 아니라,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정제되고 연출된 브이로그에 가까워졌다. 더 많은 대중에게 즉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전면에 나섰다. 당시 유행하던 트랩 비트, 한 번 들으면 귀에 맴도는 중독적인 후렴구, 그리고 돈과 성공을 과시하는 가사들이 그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음악은 그의 SNS 활동, 티셔츠 판매와 같은 굿즈 사업과 결합하여 ‘염따’라는 하나의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했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이제 진솔한 서사가 아닌, 잘 만들어진 페르소나 연기의 일부가 되었다. 대중은 그가 보여주는 성공의 판타지를 대리 만족하고, 쉽고 빠른 쾌락을 소비했다.

 

하지만 이 화려하게 연출된 삶의 이면에서는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언젠가부터 니 힙합은 안 멋져”라고 말했듯, 상업적 페르소나와 실제 자신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누렸던 시기가, 역설적으로 아티스트로서는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시기가 된 것이다. 《살아숨셔 4》는 바로 이 성공적인 페르소나를 스스로 해체하고, 그 폐허 속에서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진실을 길어 올리는 과정의 기록이며, 이 과정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창작 행위가 된다.

 

앨범의 첫인상은 마치 모든 포장을 뜯어내고 날것의 속지만을 드러낸 일기장을 마주하는 듯하다. 화려하고 자극적이었던 과거의 사운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건조하고 미니멀한 비트가 놓인다. 이 비워냄은 단순히 미학적 선택을 넘어, 이 일기장의 감정적 구조를 설계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유튜버 룩삼은 이 앨범의 구조를 마치 조울증과 같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청자가 느끼는 감각을 정확히 짚어낸 표현이다. 앨범은 우리를 기쁨과 슬픔, 충만함과 공허함의 양극단으로 쉴 새 없이 이끈다. 예를 들어, 「윽!」 트랙에서 염따는 성공담을 이야기하지만, 비트는 의도적으로 공허하게 구성되어 왠지 모를 불안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바로 다음 트랙인 「더콰이엇」으로 넘어가는 순간, 사운드는 갑자기 충만함으로 가득 차며 불안감을 단번에 해소시킨다. 이 극적인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우리가 그의 일기장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그의 감정 변화를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앨범이라는 일기장 속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 자기혐오로 얼룩진 페이지 같은 트랙 「IE러니」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곡의 천재성은 밴드 실리카겔의 「T」를 샘플링한 선택에서 극대화된다. 「T」가 가진 '공허함'이라는 정서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난 좆도 즐겁지가 않아"라고 말하는 염따의 내면과 완벽하게 겹쳐진다. 공허함을 노래하는 곡 위에서 자신의 공허함을 토로하는 이중의 구조는, 겉과 속이 완전히 망가진 그의 상태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이 몽환적인 루프는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한 여성이 "오빠 참 좋겠다 하고 싶은 걸 하잖아"라고 말하는 순간, 극적으로 무너지고 변주된다. 이는 마치 일기장 속 독백에 빠져 있던 주인공이 현실의 목소리에 의해 정신을 차리는 듯한, 극적인 자기 인식의 순간을 소리의 변화만으로 그려낸 압권의 연출이다.

 

그는 이 일기장 위에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과오들을 숨기지 않고 기록한다. 과거 ‘노예 계약’ 논란으로 함께 상처를 입었던 마미손과 황세현에게 "딱히 널 위한 것도 아니었지"라며 자신의 이기심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더콰이엇을 흉내 내며 “나도 왕인 척을 해”라고 고백하는 것은, 성공에 취해 자아를 잃어버렸던 과거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이다.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아프고 숨기고 싶었을 법한 순간들을 이처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그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는 놀라운 보편성을 얻는다.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해 질투와 동경, 우정과 배신, 성공과 상실감 등 누구나 삶에서 한 번쯤 겪게 되는 인간적인 감정의 파고를 마주하게 된다.

 

창의성은 결국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일이다. 염따는 ‘빠끄’와 ‘플렉스’로 대표되던 과거의 상업적 언어를 폐기하고, 상처 속에서 길어 올린 새로운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 언어는 서툴고 투박하며, 때로는 거칠다. 하지만 자신의 부끄러움을 포장하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어떤 세련된 표현보다 큰 힘을 가진다.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트랙 「순정(純情)2025」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이 곡은 90년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그룹 코요테의 메가 히트곡 「순정」을 샘플링했다. 염따는 모두가 함께 즐기는 이 집단적 파티 음악을 가져와, 팬들을 향한 자신의 가장 연약하고 절박한 속마음을 고백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차마 진지하게는 말하지 못할 진심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나는 노래 뒤에 숨겨서 외치는 이 영리한 방식이야말로, 그의 창의성이 빛나는 순간이다.

 

이 모든 자기 파괴와 방황의 서사가 끝내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 이유는 앨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명확해진다. 마지막 트랙 「마」는 염따에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정서적 안전지대가 있음을 보여준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는 자신의 가장 어두운 면까지도 용감하게 탐험하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개인적인 고백과 서사를 감싸 안는 가장 거대한 주제는, 아이러미컬하게도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염따의 순수한 사랑이다. 랩, 컨트리, 댄스 등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앨범의 구성은,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깊이 탐구하는 아티스트인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살아숨셔 4》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명제에 대한 완벽한 화답이다. 염따는 자신에게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던 상업적 페르소나를 스스로 파괴하는 가장 개인적인 선택을 통해, 역설적으로 아티스트로서 가장 위대하고 창의적인 성취에 도달했다. 이것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듣는 이에게 동참하게 만드는 ‘사건으로서의 음악’이며, 그의 가장 내밀한 상처가 어떻게 우리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증명은, 비단 염따 개인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의 앨범이 던진 깊은 울림은, 2025년 한국 힙합 씬에 불어오는 거대한 파장과 맞물려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식케이(Sik-K)가 선보인 《K-FLIP》의 음악적 성취, 대니 브라운에게 실력을 인정받으며 떠오르는 신예 에피(Effie)의 등장, 그리고 염따의 《살아숨셔 4》에 이르기까지, 최근 한국 힙합 씬은 오랜 침체기를 지나 새로운 활력으로 꿈틀대고 있다. 이 앨범들은 단순히 차트 상위권을 노리는 음악을 넘어, 아티스트의 고유한 철학과 서사를 담아낸 수작들로, 장르 팬이 아니더라도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곧 방영이 예정된 ‘쇼미더머니 12’는 이러한 흐름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과연 이 거대한 방송 프로그램이 새롭게 피어나는 예술적 성취들을 더 넓은 대중에게 소개하는 긍정적인 촉매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자극적인 경쟁과 소모적인 논란으로 씬의 에너지를 흩트려 놓을 것인가.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차트와 알고리즘의 논리를 넘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드는 아티스트들이 다시금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음악이 열어젖힌 새로운 가능성 속에서, 한국 힙합은 다시 한번 심장 박동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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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karimin글쓴이
    7시간 전

    힙합엘이에 처음 적어보는 글입니다.

    다들 이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블로그도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jaemin7362/223942480947

  • 7시간 전

    캬 글 잘 쓰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 karimin글쓴이
    7시간 전
    @vilence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3시간 전

    글 진짜 잘쓰시네요

  • karimin글쓴이
    1시간 전
    @MorninGlory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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