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온전히 힙알못의 관점에서 쓴 앨범 감상문임을 알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근에 염따의 《살아숨셔4》가 발매되었다. 앨범을 들어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들었나 싶어 이리저리 글들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자주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너네 살아숨셔는 들어봤냐', 이 댓글을 여러 번 보고 든 생각은 '《살아숨셔》가 되게 좋은 앨범인가 보다. 한 번 들어봐야지.'였다. 그래서 들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들어봤다. 듣고 난 이후, 이 글을 쓰기 전에 찾아보니 저 말이 그다지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들은 《살아숨셔》는 꽤 인상 깊은 앨범이었다. 아무래도 10년 가까이 된 앨범이다 보니 사운드적으로 특출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좋았던 이유는 《살아숨셔》가 염따에게 갖는 의미와, 내가 생각하는 지금 염따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과거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욱이 이 두 가지 이유가 겹쳐져 있기 때문에 더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정규 1집인 《살아숨셔》를 내기 이전의 염따는 음악적으로 뚜렷한 행보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숨셔》를 이후로는 어엿한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염따에게 《살아숨셔》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며 들으니 앨범 곳곳에서 들리는, 음악을 향한 그의 태도가 더 진심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나도 만약 죽는다면
내 관속엔 스피커를 넣어줘
날 보러 오면 다같이 춤추게
여자들은 정장 말고
Crop top에 짧은 skirt
입고 와줘 내가 다시
벌떡 일어나서 춤추게 진짜야
내 장례식이 열린다면 말야
내가 원하는 건 5만원이 아냐
나를 기억해주는
내 음악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빠처럼 많았으면 해
- "하이파이브"에서 염따
난 세 평짜리 작업실로
다시 돌아와서
가사를 써내려 갔지
늘 그랬듯이 난
강동에 살아
노래 만들고 자전거도 타면서
잘 있냐고 물어 보면
오 예 당연하지 그럼
오 여전하지 그럼
- "그럼"에서 염따
영빈이 한 곡 뽑네
나도 마이크를 잡네
근데 내 노래는 없네
나만 조용해졌네
그때 난 생각했지
나도 앨범을 내야지
그 중에 한 곡은 무조건
내 친구들도 다 좋아하는
이런 느낌의
노래야 좋지 어때
그런 반응은 싫어
그냥 좋아 라고 해줘
이런 느낌의
노래야 어때
망설이지 말고
느낌을 말해
- "이런 느낌"에서 염따
《살아숨셔》를 듣기 이전에 '염따'라고 하면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Don't Call Me"에서의 이미지다. 장난스럽고 가볍게 소비되기 좋은 래퍼. 그런 이미지가 안 좋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Don't Call Me"라는 노래도 좋아하고, 그런 이미지의 염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그의 과거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반전이다. 나는 그런 반전 덕분에 이 앨범이 또 좋았다.
지금의 염따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기 이전, 사실상 음악적 커리어를 시작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앨범의 염따는 내게 순수한 모습으로 비쳤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돈보다는 음악인으로서의 존경을 바라는 모습,
아빠의 가르침이 나를 더
올바른 곳으로 이끌겠지
늘 말하셨지 돈 버는 것보다는
얻어라 존경을
열심히만 한다면 언젠간 홈런을
- "하이파이브"에서 염따
조용한 밤, 자신의 고민들로 잠 못 이루는 모습,
아주 조용한 밤이 찾아오면
숨겨놨던 고민들이 들리지
미치광이 광대들도
다 잠드는 깨끗하고 이 깊은 밤
난 올빼미처럼 잠들지 못해
- "올빼미"에서 염따
여자와 관련된 경험과 생각들,
너는 내가 만든 작품인데
넌 지금 또 어디서 어떤 놈이랑
뒹굴거릴까 뒹굴거릴까
넌 지금 또 어디서 대체
어떤 어떤 놈이랑
뒹굴거릴까 뒹굴거릴까
처음은 난데 처음은 난데
- "처음은 난데"에서 염따
그녀는 올라타 스타렉스
돈 벌러 돈 벌러
춤추며 노래하러
가야 돼 그녀는 또
돈 돈 벌러 돈 돈 벌러
- "스타렉스"에서 염따
그리고 아들로서 홀로 남은 어머니를 위한 소망까지
자유롭길 원해
자유롭길 바래
그대가 행복했음 좋겠어 그냥
소파에 앉아 맥주도 한잔
자유롭길 원해
그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대가 자유롭길 바래
그대가 건강하길 바래
엄마가 영원하길 바래
아빠도 지켜보길 바래
거실은 환하게 불 켜있어
- "거실"에서 염따
가식 없이 음악으로 그려낸 그의 이러한 순수한 모습들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염따에게 이 앨범 《살아숨셔》는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입증한 앨범이고, 동시에 내게 이 앨범은 현재 염따의 모습과는 다른, 시작하는 염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이렇다 보니 염따의 '나는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과거의 메시지와, 나의 '염따가 이런 음악도 하는구나'라는 현재의 생각이 겹쳐 더욱 풍성한 감상을 할 수 있는 앨범이었다.
이 《살아숨셔》를 통해서, 방송에서만 봐왔던 염따라는 아티스트의 이면을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정말 뜻깊었다. 《살아숨셔4》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현재, 기회가 된다면 그의 다른 앨범들도 들어본 후 《살아숨셔4》를 또 다르게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염따가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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