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parzival0604/223847152981
Alive Funk, 그는 대한민국의 프로듀서이다. 그는 2020년 6월, 샘플을 배제하고 모든 소스를 '직접' 연주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한 정규 1집 'DI-ANA'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2023년 6월에는 가상 악기를 사용해 전작보다 편안한 분위기의 앨범인 정규 2집, 'SHAM'을 발매한다. 'SHAM'의 앨범 소개글에 '자. 언젠가의 세 번째 장을 위한 두 번째 장이 열려'라는 문장으로 3집을 암시하였는데, 그러나 약 2년 후, 그는 정규 3집이 아닌 EP 1집 '산업 현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저는 현재 앨범을 준비중입니다.
꽤 오래 준비한 앨범인데요.
'산업 현장'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표 예정 중에 있습니다.
- Alive Funk, HIPHOPLE (2025) -
산업 현장 (2025.04.15. / 8트랙 / 23분 23초)
-트랙
1. Don't try this (feat. 오도마)
2. 생고생 (feat. dsel, Young Jay)
3. 투올더힙합피플 (feat. JJK, 딥플로우)
4. 산업현장 (feat. Rohann, 버벌진트)
5. 워커 (feat. Chaboom, Skull, Loopy) <Title>
6. 숫자 (feat. Ja Mezz)
7. 동네 (feat. 스카이민혁, Ambid Jack)
8. UnderLine (feat. 오도마, Bona Zoe) <Title>
'산업 현장'은 그 현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막을 연다. 어디론가 빨려드는 것만 같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멜로디 속에서 딱딱한 질감의 사운드들이 들려온다. 멜로디가 멈추고, 노이즈와 함께 분위기가 전환된다. 래퍼 오도마가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Don't try this'는 '현장'에 들어가기 전 그곳에서 일하는 자들의 마음가짐을 엿보기에 가장 적합한 트랙이고, 그에 따라 인트로에 가장 걸맞다고도 할 수 있다. 오도마는 말한다. 이 음반을 가볍게 돌릴거면 나가라고. 첫 트랙의 가사 한 마디만으로 이 앨범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킥과 함께 다음 트랙 '생고생'이 재생된다. 공명이 느껴지는 드럼과 함께 울려퍼지는 붐뱁 비트 위에서 dsel과 Young Jay의 랩이 어우러지며 깊은 공간감을 형성한다. 이들이 풀어내는 건 그들이 산업 현장에서 가졌던 마음가짐과 노력이다. 그 현장에 진심이기에 자처했던 생고생 말이다.
십년 전쯤 나도 사서했지 생고생
자신 있게 올라섰던 무댄 백여개
/
힙합이 유행이라서
한 적 따윈 없지 man
오히려 내 시작엔 반대였어
이해 돼?
- 2번 트랙 - 생고생 -
'투올더힙합피플'에선 래퍼 JJK와 딥플로우가 여유로운 랩을 보여준다. 신선놀음 같은 그들의 관록있는 랩은 어두운 비트와 어울려 마치 느와르를 연상하게 만든다. 다음 트랙 '산업현장'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Rohann과 버벌진트 역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 산업에 몸을 담아온 사람들로, 이 트랙에선 왠지모를 굳건함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우려, 반대, 무시에도 불구하고 이 현장에 뛰어들고 지금까지 이 씬을 아끼고 지탱하는 사람들인 그들의 속얘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곡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진한 붐뱁 비트가 귀를 강타하며 분위기가 한층 바뀐다. '워커'를 튼 순간 그루브를 느끼며 머리를 흔드는 것을 멈출 수 없다. Chaboom, Skull 그리고 Loopy, 피쳐링진만 봤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은 아니다. 그러나 각각의 방식으로 높은 비트 이해도를 보여줬고, 이 셋이 모였을 때 역시 이질감이 전혀 없다. 워커의 삶을 한국식으로 재미있게 녹여낸 Chaboom과, Loopy의 박자를 가지고 노는 그루비한 랩, 그리고 Skull의 묵직한 후렴과 이들을 총괄해 뒷받침하는 Alive Funk의 훌륭한 비트, 이 생소한 조합은 엄청난 킬링트랙을 만들어냈다.
누군 뜨기 위해
힙합을 쓰고 버릴 때
당연히 말해
I still make rap music
/
흔히 빛나는 장면만을
기억에 담아두지
보이지 않으니,
상처와 잘려나간 부윈.
그 증거?
Here it is.
- 4번 트랙 - 산업현장 -
Ja Mezz가 홀로 이끌어가는 '숫자'는 그의 회고와 같은 트랙이다. 곡 내에 숫자와 관한 여러 단어들이 등장하는 점이 재밌는데, 생일(주민번호), 나이, 기간, 가격, 머리숱, 출산율, 가사 몇 글자까지. 숫자와 관련된 단어들로 그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청자에게 전달한다. 그가 지금까지 현장에서 해온 '기간'을 잊겠다는 등 숫자를 못 세겠다는 의미의 가사들은, 이제 숫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껏 그의 음악세계를 펼치겠다는 해방감이 느껴진다.
트랙이 바뀌고, 다시 암울한 분위기가 찾아온다. '동네'에선 분노가 느껴지는 스카이민혁과 Ambid Jack의 무게감 있는 랩을 느낄 수 있다. 이 트랙의 수위는 강한 편인데, 언더인 척 하거나, 힙합이 아닌 인지도로 뜰려 하는 경우 등 현장의 참의미를 무시하는 경우를 거세게 비난한다. 그들의 동네는 언더그라운드, 즉 힙합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이러한 비난은 그들이 동네를 얼마나 애정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며 그에 따라 설득력을 갖는다.
못 뜬 주제에 언더인 척
그만 하고 꺼져
/
가진 거라곤 fake fans
유지할 방법이랍시고 생각 한게
유튜브 채널 나와 춤 추기
- 7번 트랙 - 동네 -
마지막 트랙인 'Underline'은 처음부터 꽉 찬 사운드를 동반한다. 다시 등장한 오도마의 탄탄한 랩과 Bona Zoe의 파워풀한 후렴은 강렬하게 청자의 귀를 파고든다. 혼돈적인 느낌마저 드는 이 곡은 오히려 그들의 다짐을 보여주는 듯 패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뭇 진지하고 깊게 축적된 앞 트랙의 분위기들을 깨부수며 환기한 채 앨범은 시원하게 마무리된다.
뿌옇게 노이즈 걸린 누런 배경과 희미하게 그려진 건설장비, 그 앞에 서있는 사람 형체의 붉은 무언가를 그려낸 앨범아트는 직관적으로 현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둡고 강렬한 색감, 몸을 잔뜩 관통한 날가로운 것들, 축 쳐진 머리와 핏방울들까지. 앨범아트는 굉장히 날카롭게 다가온다. 마치 이 산업 현장이 쉽지 않은 곳임을 묘사하는 것만 같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온몸이 관통되고도 겨우 서있는 것을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제가 만든 저의 앨범 중에
가장 어두운 앨범이 될거라고
예상하는데요.
- Alive Funk, HIPHOPLE (2025) -
앨범아트와 걸맞게 앨범 사운드 역시 농후하다. 여기서 인상깊게 살펴볼 부분은 베이스와 드럼이다. 먼저, 베이스는 멜로디를 뒷받침하다가도 어느새 곡의 중심을 도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무게감과 공간감을 채워주며 이는 곧 청자에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또한, 드럼은 붐뱁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공사장을 연상시키는 인공적인, 딱딱한 질감의 사운드가 주로 사용된다. 마치 쇠를 두드리거나 무엇을 세게 두드릴 때 나는 소리들 말이다. Alive Funk가 만들어 놓은 이 깊고 어두운 조합은 '산업 현장'이란 추상적 이미지를 청각으로 구현하는 데 일조하며, 피쳐링 아티스트들이 메세지를 전달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되도록이면
제가 겪었던 힙합씬 안에서의 이야기들과,
현장 르포의 느낌을 담은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시작한 프로젝트이며,
지금부터 제가 예술가로써
어느 지점까지 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던 시기에 만든 곡들을
발매하려 합니다.
- Alive Funk, HIPHOPLE (2025) -
가사를 살펴보면 쉽게 눈치챌 수 있는데, 이 앨범에서 말하는 현장은 국내 힙합씬이다. 그래서 앨범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즉 래퍼들을 피쳐링으로 모셔와 그들의 솔직하고 직관적인 이야기를 청자에게 전달한다. 곡을 듣다 보면 힙합에 대한 존경, 꿈을 쫓다 마주한 역경과 극복, 주변의 만류와 반대를 무릅쓴 결심 등 힙합에 대한 그들의 진심을 고스란히 전해받을 수 있다. 그 진심만큼 그들의 강도 높은 가사도 종종 보인다. 그들은 힙합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사용하거나, 음악이 아닌 인지도로 뜨려는 사람과 같이 힙합 문화를 얕보는 자들에 대해 스스럼없이 비판하고, 힙합씬을 존중하는 스탠스를 보여준다.
제 기준에
이 산업에 있는 분들을 섭외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요청한
피쳐링 진들이 대다수입니다.
- Alive Funk, HIPHOPLE (2025) -
최근 2020년대를 기점으로 힙합 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말이 있다. 국내 힙합에 '침체기'가 왔다는 것이다. 들을만한 음악이 없다, 예전 음악보다 못하다, 씬을 주도할 넥스트 랩스타가 등장하지 않는다 등 여러 의견이 불특정 다수 사이에 오갔고, 이는 화제의 논란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래퍼들이 노력하지 않아서, 힙합을 등한시해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절대 아니다. 힙합 침체기, 즉 무관심을 이 문화에게 건낸 것은 대중이었다. 힙합을 대중화시킨 데 큰 영향을 끼친 '쇼미더머니'가 시즌 11을 마지막으로 종영되고, 그 명맥을 이을 대규모 히트 힙합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고 있는 지금, 대중들이 힙합을 접할 수 있는 큰 통로가 닫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밴드 열풍이 불어온 것으로 말미암아, 힙합씬이 죽었다는 말보단 힙합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었다 보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유행은 늘 돌고돌며, 성공에는 적합한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래퍼들은 진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고,
좋은 앨범들이 쏟아지고 있고,
어느 때보다도 진짜 열심히 하고 있어서
씬 자체는 침체기가 아니죠.
근데 이제 대중들의 관심은
침체기가 맞아요.
뭘 내면 조회수가 진짜 안 나오잖아요.
- pH-1, 유튜브 <남궁재불> '[시즌2] 원앤온리 팟캐스트 EP #18' 中 (2024) -
Alive Funk의 든든한 비트를 기반으로 래퍼들은 진지하게 이 씬에 대한 애정, 진심을 청자에게 전달한다. 이는 역으로 청자가 그 '산업 현장'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이것이 이 앨범을 진지하게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이다. 침체기라 평가받는 지금 이 순간도 산업 현장 종사자들은 이 현장을 위해 고민하고 밤을 지샌다. 그 노력의 산물로 탄생한 많은 음반이 누군가에겐 명반 내지 수작, 히트곡이 되어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재생될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경험과 행복을 청자에게 선물한다. 오늘도 현장에서는 그들의 땀과 음악이 살아숨쉰다. 우리가 즐기고 향유하는 이 산업은 누군가에겐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현장이다. 그 치열한 '산업 현장'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이 앨범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그 어감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환상이었거나,
아님 망상이었거나,
어쨌든 그들이 사는 세상.
- Alive Funk, 앨범 소개글 中 (2025)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