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에 한국말로 제대로 라이밍하면서 랩하듯이 노래를 부르고, 노래하듯이 랩을 뱉던 진짜 알앤비 아티스트가 등장했는데 그게 휘성이었죠. 직접 가사를 쓰고 랩을 하고, 리듬과 멜로디를 섞어 알앤비를 만들 줄 아는 진짜배기. 한국의 흑인음악 역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인물.
자이언티, 딘, 지디, 태양, 크러쉬 같은 뮤지션들의 한국식 알앤비힙합 음악이 가능했던 건 휘성이 탄탄하게 길을 닦아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랩, 멜로디, 발성 등 흑인음악의 작법과 무드를 지키면서 가요식 알앤비를 성공적으로 히트시킨 것도 휘성이 제일 먼저 이룬 성과이기도 하고요. 무대 위에서의 애티튜드 또한 누구보다 앞서있었죠. 프린스, 마이클잭슨, 알켈리, 시스코, 바비브라운의 DNA가 느껴지는 한국식 알앤비 무대를 한국에서 볼 수 있었던 건 한국음악계가 휘성에게 감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버벌진트 모던라임즈 EP의 '사랑해 누나'를 통해 매력적인 목소리를 접하고, 댄스그룹 A4 출신이었다는 점에 놀라고, 피나는 노력 끝에 자신만의 알앤비 아트웍을 만들 줄 아는 아티스트가 된 과정에 매력을 느꼈었는데요. 10대 때부터 친구였던 박효신, 환희, 거미 등의 타고난 발성과 보컬에 열등감을 느꼈다고 자주 밝혔었지만 그들 중 누구보다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갖추고 직접 라이밍하고 플로우를 만들 줄 아는 알앤비 THUG으로 데뷔해 포지션을 구축한 모습이 더욱 멋있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기획하여 만든 가수가 아니라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있는 아티스트의 모습이었으니까요.
구설수도 꽤 있었던 연예인의 삶을 살았지만 섬세하고 여린 성격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가요곡을 통한 방송활동 노출보단 자신이 제일 잘하는 스타일의 장르 음악과 공연 활동만 꾸준히 해왔어도 그의 재능은 더 사랑받고 오래갈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준비 중이었다는 리얼슬로우 정규 앨범이 19금 100% 알앤비 앨범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오랜 팬이었고 우연히 인사를 나눈 적도 있어서 아픈 마음이 오래갈 것 같네요. 음악에 대해선 한없이 겸손하고 부족한 점을 발전시키려고 했던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익혀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는 맛이 있었던 아티스트였는데요. 데뷔부터 완성된 한국식 알앤비 음악을 선보이고, 휘성만의 섬세하고 톡톡 튀는 감성이 담긴 다양한 음악적 활동을 즐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음? 휘성 커리어 초반엔 거의 대부분의 곡을 최갑원 및 다른 작사가들이 써줬던 거 아니었나요?
전체 작사를 말한 건 아니고 1집의 '악몽', 2집의 'Dilemma', 'Luz Control', 3집의 'Intro', 'It'z Time' 같은 알앤비힙합곡들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리듬, 라이밍, 과감한 가사 등 모두 당시 가요의 가짜 알앤비에는 없던 것들이었죠. 최갑원, 박경진 같은 분들은 시도하지 못할 스타일들. 받아서 부른 곡들의 경우도 창법이나 무대에서의 컨셉과 표현 같은 부분은 휘성이 컨트롤했죠. 애초에 휘성이 주도하지 않았다면 '안 되나요', 'With Me', '불치병' 같은 곡을 그런 아웃핏을 하고 나와서 부르지도 않았을 거고요.
안 그래도 루즈컨트롤, 딜레마 등 그루비한 몇몇 곡들에선 라이밍 맞춰가며 가사 썼었다는 말을 덧붙이다 지웠는데ㅋㅋ 첫 문단 어감이 앨범의 전체적인 작사를 맡았다는 의미로 보여서 휘성 가사 베이스에 최갑원 & 박경진이 교정해준 거였나?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었어요. 프로듀서들이 따로 있었지만 휘성이 적극적으로 컨셉 짜는데 동참했기에 그런 독보적인 퍼포먼스가 나왔다는 데에는 저도 같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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