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 한곡을 가사나 비트로 평가하는 것은
굳이 제가 여기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이 앨범이 지니는 '가치' 혹은 '감상시 접근법' 에 대한
고찰을 살짝 해보려 합니다.
90년대에 20살 나이로 데뷔해서 한 시대를 풍미한
미남 배우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나이를 먹고 전성기를 지나 50대가 되어서
오랜만에 작품활동에 컴백할 때
그 배우에게서 20대 시절의 외모나 혈기왕성함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늙고 약해진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고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채 그 배우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왕년에 유명한 배우라더니 이게 뭐임?' 이럴 수도 있습니다.
근데 늙어버린 모습이나 기운 없는 연기보다
더 실망감을 줄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부자연스러운 성형수술과 노란 머리로 나와서
젊은 척하면서 억지로 연습한 요즘 말투로 연기를 한다면?
그것보다 초라해보이는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 앨범이 나오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형님들이 혹시라도 어설프게 트랩/드릴 비트에 랩을 한다거나
붐뱁을 하더라도 드럼리스 비트 위에 랩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행여 "뿌르르르...." 이런 추임새라도 넣는 날엔 ㅋㅋㅋ)
'촌스럽다' 혹은 '언제적 힙합하냐'는 얘기를 듣더라도
가리온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가리온답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앨범이 나오는 것이
가리온 데뷔 20주년이자
가리온 2집 이후 14년만에 나오는 정규앨범으로써
가장 의미가 있는 어프로치가 아닐까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총괄 프로듀서로
딥플로우가 들어가서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은
아주 적절한 (혹은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거장 퀸시 존스가
자신이 직접 작곡이나 연주를 하지 않더라도
앨범의 방향성을 잘 잡고,
서로 뭉칠 수 없을 것 같았던 뮤지션들을
하나로 모으고 아울러서 명반들을 많이 만들어 냈기에
닥터드레 같은 후대의 전설적 프로듀서들이
그의 죽음에 큰 애도와 존경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앨범에서 사실 조금 다른 스타일의 비트를 주로 만들던
이안캐시나 프레디카소 같은 비트메이커가
가리온 색깔에 맞는 비트 질감을 주조할 수 있도록
사전에 잘 설명해주고 추후에 다듬는 역할을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딥플로우가 한 것은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리온도, 딥플로우도...
이 앨범을 제작하기로 마음먹고 2년간 작업하면서,
상업적 성공이나 트렌드에 부합하는
앨범을 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과거 1,2집보다 더 뛰어난 앨범을 내야한다는
부담감으로 지나온 세월을 통해
진짜 중요한 것은 '더 나음'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함' 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낸 앨범이기에
우리는 이 앨범을 바라볼 때
'스킬'보다는 '스토리'와 '전반적 무드'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조금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지난 여름에 우연한 기회로 메타 형님과 딥플로우와 함께
늦은 밤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으며, 그 자리에서 그동안의 작업 관련 비하인드를 조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다 적을 수는 없지만
그 자리에서 얻은 감상이자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이 앨범은 이 자체로 '열정'이자 '순수'이고,
동시에 가리온이라는 토대 위에서 자란
다음 세대 힙합 뮤지션들의 '헌정'이자 '영광'인 것입니다.
솔직히 가리온 1,2집이 국힙 명반으로 불리긴 하지만,
그 당시 실제 힙합을 듣던 사람들의 수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적었던 것이 사실이고,
절대적인 인원이 적었던 대신에 그 적은 인원들이
'힙합'이라는 마이너한 음악에 자신의 삶을 바치던
그 당시 뮤지션들에게 온전히 애정과 리스펙을 보낸 것이
후대에 이어져서 '전설'이자 '명반'으로 남은 것일 뿐,
가리온 앨범이 차트에 올라가거나 판매량이 엄청났던
이른바 '대중적 성공'이 아니었던 것을 이해한다면...
그들의 과거 앨범들이나 이번 [가리온 3] 바라보는 데에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두서 없지만 긴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에 대해서 공감도 반박도 대환영이지만,
'최소한의 매너'를 갖춰서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메이킹 필름 보면 메타옹이 랩 톤을 일부러 1집때의 톤으로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콰이엇이 프로듀싱한 곡을 예로 들면서 말씀 하시길, 예전 스타일의 향수를 자극하는 앨범을 만드는게 의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이 올드하다, 심심하다는 평이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올드 리스너인 저에게는 그 의도가 확연히 느껴져서 가뭄 속 단비 처럼 너무 좋은 앨범이었습니다.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 참여한 프로듀서진들이 너무 과하게 많은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앨범을 듣고나니 프로듀서는 한명이 라는 착각을 할 정도로 앨범 전체적인 질감이 일관되면서도 개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딥플로우의 의중이 아닐까 싶네요. 참여한 모든 프로듀서들에게 악기 선택에 대한 일종의 제한을 두었고 그게 적중했네요. 아이디어 너무 좋았습니다. 다시 한 번 딥플로우의 똑똑함을 느꼈네요.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상업적 성공이나 트렌드랑 스킬이랑은 다른 범준데요 이 앨범 피쳐링진들이 비트에 훨씬 더 잘묻게 랩해요 그렇다고 그사람들이 상업적이거나 아주 트랜디한 사람들도아니고
피쳐링진들이 더 잘한다는 것에 상당부분 공감합니다.
제 글의 핵심은 이 앨범이 지니는 가치에 있다는 것이었는데
제 글이 좀 두서없다보니 전달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당
앨범을 냈다는 자체가 대단하고 고맙고
항상 리스펙하기에 현역 래퍼들의 앨범과
동일선상에서 보고 맛을 리뷰한 것입니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너무 의미에만 초점을 맞춰서 바라본다면
가리온 분들 입장에서는 김빠지는 관점일 수도 있겠네요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글입니다.
1,2집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하면서
3집에서는 냉철하고 날카카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기대했던 부분과는 사뭇 다른 방향을 잡았구나하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이제는 플레이어보다는 조금 더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이 되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여전히 존재함'... 그 부분이 가장 와닿네요
'여전히 존재함' 이란 것도 참 나타내기 쉬운 게 아닌데 말이죠
가장 우려하던 부분은 ll cool j나 rakim같이 80,90년대 호령하던 래퍼가
2000년대 들어서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모양새처럼 흘러가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그러진 않았습니다만 기존 음악을 현재까지도 자주 듣던 사람으로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말씀하신 것처럼 감상 포인트를 잡고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4번 돌려봤는데 어제오늘 느낀 것과는 다른 감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기억하는 '가리온'의 상당부분에는 '최선생 J-U' 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컸던 것 같습니다.
JU 없이 후배 비트메이커들의 곡들 위에 빚어진 앨범에서 1,2집의 완성도를 기대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앨범을 들으면서 ATCQ 의 We Got It from Here ... (2016) 같은 느낌에서 접근했습니다!
오늘 다시 들으시면서 조금 더 좋은 감상이 되시기를 기대해봅니다!
오우 저랑 같은 포인트!!
메이킹 필름 보면 메타옹이 랩 톤을 일부러 1집때의 톤으로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콰이엇이 프로듀싱한 곡을 예로 들면서 말씀 하시길, 예전 스타일의 향수를 자극하는 앨범을 만드는게 의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이 올드하다, 심심하다는 평이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올드 리스너인 저에게는 그 의도가 확연히 느껴져서 가뭄 속 단비 처럼 너무 좋은 앨범이었습니다.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 참여한 프로듀서진들이 너무 과하게 많은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앨범을 듣고나니 프로듀서는 한명이 라는 착각을 할 정도로 앨범 전체적인 질감이 일관되면서도 개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딥플로우의 의중이 아닐까 싶네요. 참여한 모든 프로듀서들에게 악기 선택에 대한 일종의 제한을 두었고 그게 적중했네요. 아이디어 너무 좋았습니다. 다시 한 번 딥플로우의 똑똑함을 느꼈네요.
비트가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두곡 쯤은 노랑머리 염색을 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일관성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호'의 이유였을 것이고
다채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불호'의 이유였을 것 같습니다
랩스킬이야 지금하는 애들이 훨씬낫죠
랩퍼블릭만봐도 날라다니더만요
근데 전 가리온이 하던 묵직한 형님들이
왔다는 느낌으로 와서 좋긴하네요
어설프게 예전에 변 이라는 노래처럼
삑사리 플로우하고 최신거 어설프게 안따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힙합 역사 그자체인 분들이
앨범 내는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앨범
맞아요 공감합니다!
가리온이 추구하는 음악 자체가
화려함보다는 묵직함으로 가는 게 맞고,
노스탤지어를 주기에 적절한 앨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선생님의 글은 다르군요
쓸쓸님 안녕하세요!
과찬에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너무 행복합니다. 가리온 정규 넘 좋다
저도 너무 좋았어요 일매틱(만큼은 아니더라도) 듣는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느낌?
글도 좋지만 댓글의 ATCQ 의 We Got It from Here ... (2016) 비유하신 부분도 정말 좋네요.
고집스럽게 트렌드를 쫒지 않고 과거 그들의 그것이 메인스트림이던 시절 만큼의 파급력은 없는 배경에서의 가리온3 는
대한민국 힙합의 태동에 있었던 이들의 여전히 존재함. 그 자체 인 듯 합니다.
사실 요즘 스킬 운운하며 구리다던 글들이 따갑고 거슬렀는데
얘기하고자 하시는 감상포인트는 이들의 열정이나 순수를 정확히 바라봐주는 팬으로서의 리스펙이 함께하는 느낌에
작성하신 글을 여러 차례 읽게 됩니다.
좋은 글로 바라봐주실 수 있는 여유와 시야를 가지신 분이 계셔서 저 역시 감사한 마음입니다!
초창기 국힙도 좋아하고 골든에라 미국 힙합도 좋아하는 분들께는 좋은 앨범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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