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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엠 정규 4집-개미

title: Kendrick Lamar (4)Alonso20002024.05.15 21:03조회 수 752추천수 5댓글 3

https://m.blog.naver.com/alonso2000/223445425528



https://youtu.be/oNv23xRD0vU



개미는 보통 성실과 근면을 상징한다. 개미 무리가 생존을 위해 양식을 그러모으듯,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 성실함의 목적은 살아남기 위한 물질적인 자원일 것이다. 돈이 부족해서 '섬'에 갇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던 큐엠에게 있어 이러한 소재, 돈에 대한 목마름과 이를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은 꽤나 중요한 테마였을 것이다. <돈숨>(2020)의 성공에 힘입어 갈증은 어느 정도 해갈이 됐지만,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탐이 나는 것이 돈이기에 큐엠은 여전히 배고파했다. 결국 개미처럼 무언가를 잔뜩 모으고자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달려나가던 와중에, 공황과 두려움, 본능과 유혹, 그리고 죽음 등 욕구의 여러 반작용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떠오른 여러 생각들은 <개미>를 구축하는 주요한 자양분이기도 하다. 물질에 대한 이야기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전작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개미>는 특히나 적나라하고 파격적이다. 어쩌면 그만큼 큐엠을 넘어서 '홍준용'이라는 사람이 지녔던 날것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개미>일 것 같다.


언제나 뛰어난 필력으로 리스너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던 큐엠이지만, 이 앨범의 큐엠은 유독 노골적이고 지독하다. 특히 돈에 대한 본능으로 일로 매진하는 전반부의 표현들은 그 날카로움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순수한 소년성의 상징인 피터 팬조차 날기 위해서 금가루를 뿌린다는 모순("금"), 아버지의 유산으로 사치를 누리는 자신을 상상하며 느끼는 자조, 그리고 이와는 모순되는 물질에 대한 광기 어린 추구("Bust down")는 무뎌진 신실함 아래서 욕망의 밑바닥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나이롱"에서 절정을 맞는다. 그 수많은 야망과 이면의 두려움까지 한데 품고 변태하는 "번데기"에서 앨범의 분위기는 차츰 반전되기 시작한다. "개미굴"까지 물질과 물욕에 그렇게 매달리던 것은 결국 "Just do it"에서 드러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고, 이는 공포와 공황, 우울 사이로 침잠하는 "망가진것들"의 쓸쓸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가라앉으며 내려진 결론은 결국 어떠한 욕망이건 간에 쇄도해 오는 시간, 그리고 이로 인해 유실되는 모든 것의 앞에서는 그저 개미와도 같은 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물질적인 모든 것을 쫓아 발버둥 치던 큐엠이라는 개미는 죽음과 시간 앞에서, '죽어야만 시간을 이길 수 있다'라는 해답을 남기고 만다. <돈숨>에서 큐엠은 꿈을 좇아 섬을 떠났다가 돈 때문에 섬에 다시 갇혔지만, 사실 그가 섬에 갇힌 것은 물질적인 무언가 때문이라기보다도 돈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집착은 죽어야만 비로소 끊긴다는, 음원 버전의 <개미>의 결말은 퍽 우습고도 서글프다(물론 보너스 트랙 "HANNAH2"가 추가되는 피지컬 앨범 버전의 결말은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한다.).



https://youtu.be/yh7FV8VeCqM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날것의 감정, 가장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가져온 큐엠인 만큼 <개미>의 사운드 역시 덩달아 포악해졌다. 큐엠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프레디 카소와 컨퀘스트가 각기 앨범의 초반부와 중후반을 책임진 만큼, 앨범이 지니는 프로덕션적인 유기성도 견고해졌다. 특히 한동안 드럼리스 사운드에 매진하다가 오랜만에 주전공인 익스페리멘탈 힙합으로 돌아온 프레디 카소의 전자적인 결은 큐엠의 과격한 퍼포먼스와 더없이 잘 어울리며, 후반부에도 프롬올투휴먼, 큐 더 트럼펫 등 세션맨들을 활용한 재지한 사운드로 상실의 두려움을 부드럽게 끌어안는다. 하지만, <개미>의 프로덕션에 있어 MVP를 꼽자면 단연 컨퀘스트를 으뜸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 "개미굴"의 지저분한 인더스트리얼함 부터 클래식하게 직조해낸 "Just do it"의 서글픈 서정, "망가진것들"의 보사노바 냄새나는 쓸쓸함과 "Slow horse"의 앰비언트한 처연함은 컨퀘스트의 주도를 통하여 보다 견고하면서도 위태로운, <개미>만의 미학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전반부의 치열한 욕구들을 갈무리하는 "번데기"의 기괴한 무드를 완성시킨 카코포니와의 호흡도 놓칠 수 없는 지점이다.


​매번 앨범에서 과하지 않은 선에서 영리하게 게스트를 이용해 온 큐엠이지만 <개미>에서의 인선은 유독 독특한 구석이 많다. 이 중에서도 돈과 욕망이 주된 테마로서 움직이는 전반부의 라인업이 유독 두드러지는 편이다. "입에총"의 타이트함과 완벽히 상호작용하는 지코의 벌스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 힙합에서 가장 '돈'이라는 테마와 밀접할 더 콰이엇의 훅은 그 상징성은 물론 사운드적인 균형점까지 완성하는 묘수였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는 최엘비의 인트로도 그 길이에 비해 무게가 남다르다.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인디 씬과 메인 스트림이 기묘한 공존을 이루는 게스트 편성이 더욱 눈에 띈다. "개미"의 재지한 결을 받아치는 최항석의 블루스 보컬이라거나, 카코포니의 뒤틀리고 몽환적인 서정이 그렇고, 큐엠의 랩 제자이기도 한, 아이돌 피원하모니의 지웅의 참여는 그 의외성만큼이나 깔끔하고 외로운 맛이 돋보인다. 언뜻 보면 큐엠(QM, Question Mark)의 예명처럼 물음표가 달릴 수도 있는 인선이지만, 각 트랙의 뚜렷한 콘셉트와 맞물리는 각자의 개성, 그리고 이것들이 종합되어 완성된 그림은 이 모든 인선에 느낌표의 설득력을 남겨놓는다.


<개미>는 지금까지의 큐엠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도 청자가 불쾌할 수도 있는 부분이 꽤 많은 작품이다. 욕망과 상실은 사실 인간 누구나가 지니는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이러한 불편할 수 있는 부분들을 대놓고 드러내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와 과감함이 요구된다. 큐엠의 언어와 퍼포먼스의 기술적 완성도, 그리고 이를 보좌하는 어그레시브하고 처연한 프로덕션 구성은 이 불쾌함과 불편을 수용할 수 있게끔 만드는 설득력을 갖춘다. 전작을 오마주한 구절들이 지속적으로 쓰이지만 이것이 단순한 답습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서사를 구축해 내었다는 것 또한 <개미>가 지닌 미덕이다. 분명한 것은, 큐엠의 작가주의는 매번 우상향 곡선을 찍고 있으며,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의 필력과 서사적 구축력은 지금까지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도 단연 순위를 다툴만하다. 이 덕에 큐엠은 현시점의 한국 힙합의 작가주의적인 움직임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날 수 있었다. 큐엠은 죽음만이 시간을 이길 수 있다 했지만 그의 결과물은 산 채로 시간을 넘을 수 있을 것만 같다.


Best Track: 입에 총 (feat. ZICO), 나이롱, 개미 (feat. 최항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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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title: Kendrick Lamar (4)Alonso2000글쓴이
    1 5.15 21:05

    * 본 리뷰는 HAUS OF MATTERS #12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khlhomofficial.wixsite.com/hausofmatters

  • 5.16 12:11
    @Alonso2000

    어느 분이 이렇게 잘 쓰셨나 했더니 매거진 기고하시는 분이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 5.15 21:53

    개미의 식욕으로 돈을 탐한다면.. 그 갈증이 쉽게 해소되지 않겠죠... 이를 QM이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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