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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유명해진다 [Boyhood]

title: 털ㄴ업 (1)lignis2024.05.13 14:04조회 수 1567추천수 10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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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모 정규 1집 <Boyhood> (2019.11.29 발매)

 

트랙리스트

1. 빌었어

2. [title] METEOR

3. 위업 (Feat. 오케이션, 언에듀)

4. 2 minutes of hell (Feat. 폴 블랑코)

5. [title] 더 위로

6. Dearlove (skit)

7. 세레나데

8. 031575 (Feat. 기린)

9. [title] REMEDY (Feat. 청하)

10. meet me in Toronto (Feat. 폴 블랑코)

11. Hotel Walkerhill (Feat. 해쉬 스완)

12. S T A R T

 

나 평생 꿈만을 꿨죠 알잖아요 꿈은 안 들잖아 돈 나 이 순간을 나 평생 떠올렸죠 친구들이 대학을 갈 때 난 한강에 가서 술을 마셨네 되뇌이면서 '세상은 날 싫어해' 그렇지 그렇지 그럴만했어 그때는 몰라 그리고 애써 알려고 하지도 않잖아 눈물을 흘렸지 내 방 속에서 눈물 흘려 여의도에서 두 눈물 맛이 달라 - 빌었어

 

영원히 약속해 영원하기로 어둠 가득한 저 뒤로 돌려보내지 말아요 제발 제발 영원히 난 영원할 거라 믿어 흥분으로 가득차 이 도시에 나 외칠 꺼야 드디어 내가 여 왔다” - METEOR

 

난 내 생을 사랑해 헤네시를 따 내 모든 걸 자랑해 I said i’m not lying 내 적들은 사방에 저 radio 안까지 여길 거야 넌 거물로 이 복수극 안의 스타를 더 위로 저 위로 더 위로 너가 닿지 못할 데까지 더 더 위로 저 위로 더 위로 신이 나의 손에 닿을 데까지 더 - 더 위로

 

이 밤의 별이 빛을 멈추길 소원하는 것 건 너무나도 허튼 일 키워봐 볼륨, 울리게 저쪽이 yeah You like this sound? 멜로디는 해내 더 큰일 Damn 흘러 흘러 흘러 흘러 원하던 나 별이 됐네요 홀려 홀려 홀려 홀려 온 세상 멜로디로 - S T A R T

 

 이런 감상이 물론 내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202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코로나19 사태는 삶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거대한 변곡점 중 하나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삶을 이루고 있던 현실의 고리들이 연약해졌고, 그 자리들은 온라인 속 장치들로 채워졌다. 조금씩 대중화되고 있던 키오스크와 같은 기계들은 코로나19 때 탄력을 받아 일상의 필수적 요소로 자리잡았고, 대면으로 이뤄지던 공무들도 지금은 반 이상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면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변화가 있기 전의 시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부분도 존재한다. 마치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었음을 깨닫는 것처럼, 거시적인 과점에서 야만의 시대였던 세월은 추억의 보정을 받아 낭만의 시대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특정 시기의 문화 작품들은 사람들의 머리에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로 각인되는데, 내게는 창모의 <Boyhood> 앨범이 그러한 작품이다. 나는 아직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거리에는 다모임의 '아마두'가 울려퍼지고 이어폰에서는 '빌었어'와 'METEOR'가 흘러나오던 2019년의 그 겨울을 기억한다.

 

 <Boyhood>가 나오기 전 창모의 솔로 앨범 디스코그래피는 다음과 같이 이뤄져 있다. (음원 사이트 FLO 기준)

- EP <M O T O W N> (2016.3.18)
- EP <돈 벌 시간 2> (2016.7.21)
- EP <돈 벌 시간 3> (2016.12.15)
- EP <돈 번 순간> (2017.5.24)
- EP <닿는 순간> (2018.6.11)
 일종의 연대기처럼 <M O T O W N>을 시작으로 창모의 앨범 주제는 일관적으로 '돈'이었다. 특히 <돈 벌 시간> 시리즈에서 돈을 갈망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는데 대표적인 히트곡들인 '마에스트로', '아이야' 등이 이러한 캐릭터성을 잘 드러내어 리스너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귀에도 좋은 평가를 받아 차트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유명세를 얻은 창모는 성공 이후의 느낀 점들을 <돈 번 순간>과 <닿는 순간>에 독특한 색채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특히 <돈 번 시간>은 '돈 벌 시간'이라는 준비의 과정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게 됐음을 의미하며, 나아가 <닿는 순간>은 돈을 넘어 자신이 꿈꾸던 삶에 도달했음을 가사에 담았다.
 
 이런 창모의 행보에 리스너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며 창모라는 아티스트가 낼 정규 1집은 어떨지 기대와 궁금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창모의 정규 1집은 그동안 자신이 다뤄왔던 돈과 꿈이 아닌 창모 자신이 걸어온 과거의 길을 조명하는 데에 집중했다. 이는 본 앨범의 첫 트랙 '빌었어'의 인트로에 삽입된 내레이션의 내용을 통해 잘 드러난다.
'옛날 옛날에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서 자란 한 소년이 있었어요. 아이는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가득해 항상 웃음 짓던 소년이였죠. 어느 날 그 소년 앞에 금을 두른 부자가 나타났답니다. 부자는 그에게 물었어요. '너에게 미래를 줄 테니 지금 이 순간을 나와 바꾸지 않겠니?'
 창모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다면 이 내레이션에 등장하는 '금을 두른 부자'가 창모를 앰비션뮤직에 영입한 일리네어 3인방(더 콰이엇, 도끼, 빈지노)임을 모르는 리스너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일리네어가 창모에게 제시했던 제안의 내용이다. 일리네어가 창모에게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미래'였고, 반면 창모가 일리네어에게 줄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이었다. 이 제안을 수락한 창모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유니크한 아티스트가 됐고, 아무것도 없었던 주머니에 돈과 꿈을 채울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창모가 정규 1집 때 평소에 다루던 돈과 꿈이 아닌 소년기로 회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나는 그 답이 상술한 내레이션의 제안 속에 있다고 본다. 부자의 제안은 '미래'와 '지금 이 순간'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이를 수락한 창모는 순조롭게 '미래'에 도착했다. 그런데 미래에 도착하고 나니 문득 뒤에 놓고 온 '지금 이 순간'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래서 돈과 꿈만이 있는 미래의 시점에서 이미 두고 온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앨범의 초반부인 '빌었어'와 'METEOR' 속 창모의 말은 평소와 조금은 온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빌었어' 속 창모는 대학에 떨어진 이후 한강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고, 평소에는 찾지 않던 신에게 돈과 꿈의 성공을 빌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에서 내려온 기회의 줄을 잡아 창모는 'METEOR'에서 성공의 맛을 보지만, 음원의 서사를 보충하는 뮤직비디오에서는 여전히 가난한 시절의 자신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니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창모의 행적은 위업 ~ Hotel Walkerhill까지 다양한 면(현실, 가족, 여행 등)에서 이어지다가 마지막 'S T A R T'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나보내고 어리석었던 옛날에 대한 사과와 용서를 구하면서 마무리된다.
 
 본작 <Boyhood>를 소개하기 위해 창모가 쓴 문장은 딱 하나, 제목에 있는 '결국엔 유명해진다'였다. 실제로 창모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성공을 맛보면서 너무나 빠르게 하늘에 닿은 탓인지, SNS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구설수를 일으켰었다. 예상보다도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온 창모는 아직 미숙한 존재였고,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갔다. 그래서 충분히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는 <Boyhood>라는 정규 1집을 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당시에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재기를 통한 차트 의혹을 받아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긴 했지만..) 이후 창모는 <BIPOLAR>, <Underground Rockstar> 등 다양한 앨범을 만들었고, 군대를 갔다온 뒤에도 (그 와중에 군대에서 만든 '전선을 간다' Drill-Mix를 유행시킨 위엄) EP <Wonderful Days>로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어쩌다 보니 조금 많이 길을 돌아간 것 같지만, 요컨대 창모의 <Boyhood>는 비단 그만의 소년기를 상징하지 않는다. 2010년대 후반 한참 한국 힙합의 파이가 커져 있을 때 본격적으로 힙합을 접했던 청소년에게 <Boyhood>와 그 속의 '빌었어', 'METEOR' 등의 곡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험 생활의 길에서 의지할 수 있는 지팡이와 같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코로나19도 끝나고, 청소년기도 끝나버렸지만 아직까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청춘의 길에서 창모가 생각한 '미래'와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며,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느 곳에 있을지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의 공감으로 뻗을 수 있는 좋은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 창모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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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1 5.13 14:22

    담백하고 멋있는 글이에요!!

  • title: 털ㄴ업 (1)lignis글쓴이
    5.13 14:31
    @랍온어럽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1 5.13 16:13

    잘 읽었습니다 정성추

  • title: 털ㄴ업 (1)lignis글쓴이
    5.13 16:29
    @yevvest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ㅎㅎ

  • 1 5.14 06:49
  • 1 5.14 09:02

    보관해서 두고두고 읽고 싶을정도로 좋은 글이네요.

  • title: 털ㄴ업 (1)lignis글쓴이
    5.14 11:54
    @플러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쓰기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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