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앨범에서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민감한 단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상에 있어 각별한 주의 바랍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미 이 리뷰는 오염되었다.
누굴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첫 문장을 어떻게, 테마를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는 동안 합합엘이에 들렀고, 안고독방에 들어가 있었고, QM의 인스타 스토리를 봤다. 그리고 불현듯 나는 이 문장을 쓰기로 했다. 내 리뷰는 오염되었다. 나는 토크 콘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르고, QM의 인스타 스토리에 박제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쓸 것이다. 첫 문장이 써졌으므로.
그나마 남겨진 것 중 가장 순수한 반응을 끌어와서 적어볼까. 나는 QM의 이 앨범을 ‘심리부검서’라 부르고 싶었다. 물론 QM은 아직 죽지 않았고 멀쩡히 살아서 음악을 하고 있다. 지금도 안고독방에서 그는 보이스룸을 열어 앨범에 관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오늘 나온 얘기 중 그는 “이 앨범은 하나의 결말로 나아가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다(『HANNAH』, 『돈숨』과는 다르게)”라고 밝혔다. 아니다. 적어도, 개미는 나에게 있어 기승전결이 굉장히 뚜렷한, 하나의 결말로 숨 막히게 치닫는 앨범이다. 어쩌면 오독이겠다. 그렇다면 이건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오독이 될 것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사운드나 비트, 장르와 스킬에 대해서는 딱히 하고자 하는 말이 없다. QM은 이미 여러 앨범과 참여곡에서 자신이 얼마나 랩을 잘하는 래퍼인지 증명해왔고, 다만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에만 도달하는 정도이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이번 앨범에서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한 것 같다. 그 하고 싶었던 것 같은 말들을 이제 천천히 대술(代述)해보려 한다.
너도 뺏고 싶잖아 저 새끼꺼 거짓말은 틴더 밀어버리고 싶어
뭘 꼴아봐 띠꺼? 네가 샀다는 집도 엄마가 사준 거라며 다 알아 see through
감히 비웃어? 너랑 내가 보낸 시간 같은 줄 아냐? 난 똥통에 키갈
첫 트랙 「금」이라는 제목은 언뜻 전작 『돈숨』의 「은」과 겹쳐 보인다. 「은」은 전작 『HANNAH』가 가족에 대한 메시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작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가족의 경조사로 모인 자리를 묘사한 뒤, 솔직히 이제는 영세한 예술가로 남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드러내며 『돈숨』이 시작되었고, 그러나 앨범 말미에 QM 자신이 벗어나고자 했었던 상태인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으로 만든 섬’으로 다시 돌아오며 끝났다. 그렇다면 「금」은 어떨까.
여기에 대해서는 『Empire State Motel』로 요약되는 시간차를 보아야 하는데, 어쨌든 QM은 『돈숨』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쇼 미 더 머니 11>에도 출연하며 대중에게 널리 그 존재를 각인시켰다. 본인 스스로가 말했듯, 『돈숨』까지는 ‘돈이 없던’ 상태였다면, 『Empire State Motel』부터는 ‘돈을 쓰는’ 상태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QM은 행복했을까? 「금」에서 나타난 그의 모습으론 아닌 것 같다. 어머니를 사이판에 여행을 보내드리고 손목엔 금시계를 두른, 가난했던 자신을 떠난 ‘너’가 원했던 돈을 벌어온 그에게 모두는 “침묵은 금이니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그럴수록 그는 어쩐지 더 필사적인 어투와 플로우로 그의 금을 자랑하면서 다른 이들의 부에는 태클을 건다. “난 똥통에 키갈”하며 처절하게 돈을 벌었는데 “네가 샀다는 집도 엄마가 사준 거라며”라는 말은 그의 박탈감과 보상 욕구를 드러낸다.
그가 보냈다는 “똥통에 키갈”하며 보낸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 트랙 「입에총」에서는 문창과 출신/래퍼라는 직업/무명 래퍼로서의 시간 등에서 겪은 주변인들의 무시와 이에서 비롯된 그의 분노를 엿볼 수 있다. 그가 콘서트에서 밝힌 것처럼 이 곡에는 자신의 이전 대표였던 사람이 자신에게 했던 무시의 말이 담겨있고, 그에 대해서 “나는 입에 총을 가져왔으니 당신도 할 말있으면 어디 갖고 와 장전해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본격적으로 랩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지금으로 오기까지, 그에겐 무시당하던 설움과 응축된 분노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미친 듯이 노력해서 벌어온 돈은 충분했을까. 아니다. 그가 이렇게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동안 그는 시간을 써야 했다. 「Bust down」은 래퍼들에게 흔히 부의 상징으로 그치는 다이아 박힌 손목시계에 정말 시간의 의미까지 부여한다.
시간을 얼려 둬야겠군, 금보다 비싼
시간이 공평하단 말은 시간을 맘대로
쓸 수 있는 놈들이 하는 책 팔이 위선
서울에서 부산으로 간다면 서민들은 버스를 타고, 그보다 여유가 있다면 KTX를 타고, 진짜 부자는 전세기나 헬기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돈보다 시간이 더 귀한 재화라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돈을 벌어본 QM에게도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알바와 랩을 병행해야 했던 시간은 사실 애초에 돈이 많았다면 필요 없지 않았을까, 오히려 성공에 이르는 시간이 좀 더 짧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문득 현타가 왔을 것이고, 그럼에도 부모에게 물려받을 것 하나 없는 자신은 결국 랩으로 “백금의 Rollie”를 차야겠다는 악에 받친다. 부모님이 오래 사시길 바라지만 돌아가신다면 남긴 유산으로 시계를 살 생각하는 모순, “월에 500부턴 행복 수치가 똑같”다는 말을 “평생 세 들어 살라”는 말로 꼬아 듣게 되는 열패감, 다이아가 가득 박힌 백금의 롤렉스를 찬다면 정말로 잊을 수 있을까? 정말로 그걸로 충분할까?
바꿀 거야 그게 뭐가 됐던
기록해 갈 거야 그게 뭐가 됐던
그게 QM이란 래퍼의 존재 이유
랩은 내게 시계를 내 딸에겐 새 시대를
우린 모두 하나 H-A-N-N-A-H
이런 난 어때? 우리 모두 하나라며
딸 팔이 래퍼는 누리고 부리고 싶어 하녀
바로 이전 트랙에서 끝없이 자신을 갉아먹는 돈에 대한 열등감과 그에서 파생되는 모순을 얘기한 QM은 이어서 자신의 컨셔스한 이미지 뒤 추악함을 고백한다. 전작 『HANNAH』에서 그는 보통의 존재들을 대변하겠다는 포부를, “하나”라는 가상의 딸을 상정하면서 평범한 가정을 언젠가 이루고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은 소망과 함께 드러냈었다. 그러나 「나이롱」에서 QM은 아이를 가진다는 행위에서 ‘아이’라는 순수함에 집중되느라 자주 지워지곤 하는 섹스의 과정을 부각한다. 결국 아이라는 결과물은 남녀의 성욕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앞서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은’ 소망은 사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회에 핏줄을 하나라도 남기고 싶다는 욕망으로 덮인다.
딸이라는 자식이 있다면 심리적으로 그와 비슷한 나이에 노동해야 하는 여성인 ‘하녀’를 고용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이롱」 속 QM에겐 그런 도의적인 의식이 없다. 이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친구의 자랑에 “너의 신부마저 뺏고 싶다”는 파격적인 고백은,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부를 물려줄 핏줄 하나 남겨줄 여성을 욕망하는 그의 민낯에서 비롯된다. 그러면서 전작 『HANNAH』의 숭고했던 메시지를 익히 들어온 리스너들은 ‘나이롱 신자’가 된다. 그들이 신처럼 떠받들어 온(흔히 ‘갓-’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그의 팬들은 사실 완전히 다른 사람을 믿고 따르고 찬양했던 것이기 때문에.
날아가기 위해서 배를 터뜨려
이걸 듣는 너만이 조용히 하면 돼
너만 조용히 하면 돼, 미니카 박스를 몸에 숨겨
그리고 갑자기 적막해지는 반주에 흘러나오는 카코포니의 「번데기」에선 앞서 다뤘던 「나이롱」을 상기하듯 “치장된 모습”과 상반되는 “나약한 심장”이 병치되며 자신에 대한 증오로 이어진다. 해당 트랙은 이어지는 「개미굴」이라는 트랙과 떼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데, 사실 이전까지의 트랙들에서 ‘개미’라는 메타포는 「입에총」과 「나이롱」에 잠깐씩 등장하며 다소 일반적인 의미에서 ‘낮은 존재’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반면, 「번데기」-「개미굴」 이후의 트랙에서는 QM 자신과 주위 가족의 아주 개인적 층위의 비유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번데기」에서 “모두 입 안에 넣고 곤히 잘도 잔다/날아가기 위해서 배를 터뜨려”는 개미의 생장 과정 한 부분을 함축한다.
개미의 생활은 알에서부터 시작된다. 부화된 유충은 다리가 없고, 이동할 능력도 없으므로 보통 일개미가 입으로 물어서 개미집의 환경 변화에 따라 적당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먹이도 먹여준다. 3회 탈피하여 다 자라면 종류에 따라 고치를 만드는 것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개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여기서는 “날아간다”라는 서술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암개미는 공주개미가 아닌 이상 일개미로 태어나기에 날개가 없다. 병정개미도 마찬가지고. 개미의 사회에서 날개가 있는 개체는 공주개미와 수개미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QM은?
여름이 처음인 난 물어 남친 있다면서
세상은 장님인데 우리만 조용히 하면 되지
이불에 감긴 우린 들어온 거야
개미굴
교미를 위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수개미는 땅에 떨어진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죽는다. 먹이를 찾을 줄도, 먹을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땅 속에 있던 시절엔 일개미들이 먹이를 먹여줬다. 결국 수개미는 단 한 번의 사정을 위해 태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인천투데이(http://www.incheontoday.com)
그 자신을 ‘개미’로 여기는 자의식은 아마도 이 기억에서 본격화된다. 아직 말랐던 시절, 도둑질로 돈을 모아 PC방에 가던 시절에 그는 남친이 있다는 어느 ‘누나’의 방에서 첫 성관계를 갖는다(“여름이 처음인 난”이라는 표현은 수개미와 공주개미가 교미하는 계절이 여름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다만, 이 첫 경험이 그에게 긍정적이었을 것인가 하면 이 첫 벌스의 서술 자체가 ‘도둑질을 했던’ 홍준용, 그리고 ‘남친이 있는 여자와 잔’ 홍준용이 연쇄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첫 섹스 = 도둑질”의 공식이 성립한다고 본다면 이 기억은 부정적이었을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게다가 교미가 끝난 후 수개미는 땅으로 떨어지며 죽는다는 사실 자체는 어떤 타락 내지는 몰락을 의미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QM이 꺼내는 기억은 다름아닌 그의 식이장애이다. 불어난 체중과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 모습, 반복적인 폭식과 바로 이어지는 구토 그리고 그렇게 불편한 속을 안고 잠드는 모습은 다시 「번데기」 속 “목 끝까지 차오른 구토”, “모두 입 안에 넣고 곤히 잘도 잔다” 등의 서술과 겹친다. 이런 자신을 혐오했던 시간을 리스너, 팬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그가 말하는 “이걸 들은 넌 지금 발 들인 거야 어서 와 나의/개미굴/Trust nobody because everybody lies”의 의미이다. 알고 보면 개미인 자신이 살아온 그 심연을 보고 듣는 ‘너’는 과연 언제까지 나와 “하나”일 수 있겠냐며 웃는 그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소름이 끼친다.
‘개미’로 대표되는 자기 혐오적 인식은 이제 가족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손엔 4천짜리 시계, 목엔 2천”을 매달아도 아직 자신과 가족의 부는 개미처럼 낮은 곳에 있는 것만 같고, 이렇게 오래 걸려서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동안 벌써 늙어버린 부모님은 이제 죽음을 쉽게 이야기한다. 여기서 추측을 조금만 더한다면, 작중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마도 경미한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환이 진행되기 시작한 듯하다. “개미 페로몬 쫓듯” 길잡이가 크게 없이도 집으로 잘 돌아오던 사내는 “아이가 될 준비”, “미아가 되는 모습” 등의 서술을 통해 그의 상태를 짐작케 한다. 이런 상황에서 QM은 진심으로 부모를 잃으면 자신이 더이상 살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슬픈 건 싫은데 가족을 더 늘리지 말까 봐
지구에 머무는 이유, 행복이라는 기준
결혼을 안 한다면 아마 HANNAH는 그저 비유
그 편이 낫지 뭐 음악은 영원히 사는 기술
미아가 되는 모습은 나 보지 않을까 해
내가 먼저 죽으면 불효자 되는 거 맞지?
Just do it like Nike
자기 자신에게서 삶의 동력을 찾을 수 없으니 가족에게 의탁했던 것,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딸의 존재를 꿈꿨던 것. 그러나 가족이 더 생긴다는 건 상실할 수 있는 대상이 늘어난다는 의미일 테고, 그렇다면 QM은 그렇게 슬퍼지기 전에 생을 스스로 마감하고자 한다.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을 뇌까리면서. 어차피 자신에게는 핏줄 대신 자신을 세상에 영원히 남겨줄 음악이 있다 자위하면서.
이어서는 한 쌍의 연인이 등장한다. 한 명은 술을 먹고 약을 먹은 뒤, 팔에 스스로 상처를 가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네 곁에 남아서 물려도 주고 같이 죽어도 주겠다고 말하는 사람(화자)이다. QM은 일부러 이 곡 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별을 추리할 수 없도록 애매하게 서술했다고 밝힌 적있다. 그렇다면 이런 추측도 가능할까, 사실 이건 연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저 홍준용과 QM의 대화라고.
끝이 오길 바란 우리 성은 John Doe
문이 열리고 발견될 우리 둘 거린 폼페이 연인 0센치 정도
John Doe는 영어권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을 일컫는 표현이다. 여성형 표현은 Jane Doe이고. 만약 이것이 정말로 연인과 주고 받은 대화라면 – 결혼 후에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라가는 영어권 국가 문화를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 John&Jane Doe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어색하다. 차라리 이 곡을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우울증과 공황을 실제로 마주 볼 자신이 없었던, 다음 생엔 이런 초라한 자신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인간 홍준용과 음악을 해야 하고 생을 이어나가야 해서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는, 그러니 그 말은 의미 없다 답하는 뮤지션 QM의 대화라고 보면 어떨까. 조현병이라는 추측이 아니라, 그의 감정 기복에서 비롯되는 자신과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둘은 감정적인 상태는 조금 달라도 결국 한 명이고, 살아있는 한 영원히 떨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둘의 의견이 적어도 이 곡 내에선 같다.
내 피사체는 모래밭에
애들 장난감에 치인 수개미 같애
쓸쓸한 정감의 피아노로 시작해서 묵직한 베이스와 처량하게 깔린 트럼펫 위로 결국 세상을 떠나버린 QM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화를 받지 않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애써 찾는 안심, 같이 음악을 했던 딥플로우와 프로듀서 프레디 카소, 인스타 스토리에 올라오는 그의 명복을 비는 글들과 그의 머리맡에 장난감을 물어다 놓는 그의 고양이가 대비된다. “원치 않는 우연에서 억지로 태어난/내가 적어도 정했단 거야 지구를 떠날 때”라는 그는 어떤 계기로 그의 죽음을 설명할까.
남이 되고파 샀던 금색 데이데이트
부자 친구 카시오 앞엔 손목 가리게 돼
비교하는 삶 여기 천국은 없기에
내 질투를 끝내는 방법 너에겐 아니길
그건 앞서 QM이 수차례 설명한 가난에서 비롯된 그의 열등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QM은 언젠가 결국 금통 롤렉스를 샀었지만, 감흥이 별로 없길래 다시 팔아버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아마도 콘서트였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누구든 아마도 그가 돈에 대해서 초탈했구나 하고 생각했을 법하다. 그러나 지금 여기까지 『개미』를 들어보았을 때는 어떤가? 「금」에선 다소 절박하게 느껴질만큼 그의 금을 자랑했고, 「Bust down」에선 돈(금)보다 비싼 시간(백금의 롤렉스)을 가져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열등감과 함께 표출해내지 않았나. 그 열등감과 함께 자신의 추악한 여러 다른 욕망들까지 마주하지 않았나.
치열하게 컨셔스 랩을 팔아 금통 롤렉스를 샀지만 결국 태생적으로 부자인 친구의 카시오를, 아니 그의 배경을 부러워하는 건 살아있는 한 비교는 끝이 없음을 시사한다. 돈을 벌고 쓸수록 그는 더욱 초라해질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항석의 거친 목소리를 빌려 “나를 사랑해줄래?”라고 부르짖는다. QM은 끝끝내 홍준용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하지 못할 효도를 어릴 때 예뻤던 모습으로 다 했길 바라면서.
솔직함의 맛은 떫고 비려
너무 거울 같은 내 가사들 너를 닮아 싫어?
나도 때론 날 지워 버리고 싶은 맘에 미워
한 내 모습 여기 담았지 90도인 감정 기복
그렇게 QM은 죽었다. 정확히 말하면 앨범 『개미』 안에서 QM은 스스로를 죽였다. 음악과 글이 스트리밍과 숏폼에 맞춰 짧아지는 세상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을 앨범이라는 긴 단위로 빚어냈고, 그 앨범에서 목과 팔을 매달아 생방송으로 부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확인 가능한 마지막 트랙인 「Slow horses」는 장례식에 가깝다. 리스너는 앨범의 처음부터 여기까지 들으며 그에게 음원 수익이라는 부조를 할 것이다.
QM이 죽음으로 끝내고자 한 건 비교와 열등감이었다. 그렇다면 죽음으로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단순하게는 마음의 평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오히려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날 때부터 정해진 숫자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의 출처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그 돈으로 만든 섬에 갇힌 건 아마도
너와 나
섬에 갇힌 이유 돈인 줄 알았지만
비로소 죽어야만이 이길 수 있어 시간
앞서 밝혔지만, QM은 전작 『돈숨』을 통해 돈이 없는 상태의 자신에 대한 소회를 밝혔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현실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삶 때문에/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렇고, 래퍼로서 자신은 그런 허덕이는 상태(섬)를 떠나고자 했지만 섬으로 돌아오며 앨범을 마무리했었다. 그리고 돈을 어느 정도 번 지금(「금」)은, 시간이 돈보다 훨씬 값어치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획득할 만큼의 돈이 없는 현실에 분노했다(「Bust down」). 돈은 경험상 ‘벌 수 있는 것’이겠지만, 남아있는 시간은 ‘줄어들기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수명이 천년만년 정도 아득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아깝지 않아서 돈을 더 중시했을지도 모른다. 삶 속에서 만나는 모두를 아주 오래오래 보면서 점이 아닌 선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사람의 수명은 길어봐야 100년이어서 그럴 수 없다면, 그는 이렇게 줄어들기만 하는 시간을 보며 헐떡이느니 차라리 스스로 떠날 때를 정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이기려 든다.
그러나 여기까진 정말로 “손가락 하나로 훑어 들여다볼 수 있는” 영역이다. 우리가 SNS에 전시하는 순간은 우리 삶에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듯, 우리도 실제 홍준용의 삶은 앨범과 참여곡, 심지어 믹스테입과 SNS를 모두 그러모아도 100% 알지 못할 것이다. 비록 그는 자신이 느껴왔던 처절한 열등감, 고통스러운 식이 장애와 징그럽게 느껴졌던 욕망, 죽음을 기도하게 했던 우울과 공황장애 등을 최대한 솔직하게 이 앨범에 담았지만, 이렇게 아팠던 시간에도 웃었던 날이 있었을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이겨냈다고 말하는 지금도 그는 끙끙 앓고 있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그는 실제로 죽지 않았고 지금도 살아 있으니까. 한편 이것은 달리, ‘손가락으로 훑는’ 세상, 즉 스마트폰 속의 세상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앨범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마지막 CD only 트랙 「HANNAH 2」가 있으니까.
도입부에서 밝혔듯 이 리뷰는 오염되었다. 창작자의 코멘트와, 열렬한 다른 팬들의 해석과 감상으로 내 감상은 얼룩졌다. 얼룩이 졌다는 측면에선 앨범에서 드러난 QM의 삶도 그렇다. 사실 그건 나의 삶도 그렇다. 그는 이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너무 거울 같은 내 가사들 너를 닮아 싫어?”라고 묻는다. 나도 처음엔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지만, 사실은 조금 불편했던 것 같다. 이 집에서 나에게 방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질처럼 잡고 가족의 마음을 후벼팠던 내가 생각났고, 지질하게 끝난 나의 연애들이 기억났으며, 나에게 열등감이란 감정은 긍정적인 연료였던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대부분을 이겨내지 못한 채 악에 받쳤던 게 생각났다. 지금도 나는 인스타 본계정을 취직하지 못한 내 자신이 초라해서 닫아버린 상태다. 그런 주제에 안고독방에선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말고 봄볕이라도 쬐며 건강하자고 말했다. 타인이 그 봄볕을 받으며 어떤 기분이 들지 하나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모두 혼자 살 수 없는 개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거라면, 나는 QM의 말마따나 개미가 사는 법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돌보지 않는 우를 범한 것이다. 아마 나는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을 것이고.
나의 최애 트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CD가 도착하지 않은 지금으로선 「개미」를 꼽을 것이다. 인간 홍준용이 겪은 다른 어려움들은 나의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었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죽는다면’이라는 상상은 나도 수없이 해왔던 것이었다. 어느 때엔 아무 이유 없이 자다가 심장이 멈추고, 어느 때엔 차도의 어린이를 구하려다 대신 치여 죽는다. 그런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견한 듯 내 일기장 맨 뒷면엔 유언이 적혀있고, 가족과 지인들은 내 영정 사진 앞에 망연자실하여 앉아있다. 나는 유언대로 화장되어 새로 심어진 나무 한 그루 밑에 뿌려진다.
그 상상 속 내 유언장에는 “울지마 머리 아파”라는 말이 쓰여 있지만 사실 나는 그들이 충분히 무너져 주기를 바란다. 그토록 모순적인 건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들도 나를 그토록 사랑하고 있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비정한 브라스 사운드 위에 걸걸한 최항석의 목소리로 부르짖는 “나를 사랑해줄래? 아니 나를 사랑해야만 해”라는 라인은 그런 맥락에서 쓰인 것처럼 깊게 다가왔다. QM의 작업물 중 최애 트랙인 「HANNAH」는 나에게 인간 보편적인 층위에서 보내는 거대한 응원으로 다가왔다면, 이번 앨범의 「개미」는 지금껏 어떤 아티스트도 건드리지 못했던 나의 내밀한 기억을 건드리고 재발견하게 했다는 점에서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다시, 나는 이번 QM의 정규 4집 앨범 『개미』를 그의 ‘한 발짝 앞에 있던 자살을 해부하다’라고 정리하고 싶다. QM은 자신이 겪었던 우울과 공황장애, 그리고 그로 인해 시도했었던 마무리까지 인정해낸 다음, 그 감정의 출처를 치열하게 되짚어 인간에게 있어 가장 부끄러운 감정인 ‘열등감’의 면면을 포장하지 않고 하나의 타임라인대로 구성하여 불특정 다수의 청자 앞에 내보였다. 흔히 사람 간의 관계가 그렇듯 이런 이야기는 앞으로의 그에게 큰 약점이 될 수 있음에도 용기내어 자신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로써 청자는 이 앨범을 청취하며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고, 그의 상황에 따라서 이겨낼 수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심연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결론에 다다르며 나는 아직 나에게 도착하지 않은 「HANNAH 2」를 상상한다. QM은 전전작 『HANNAH』의 동명의 마지막 트랙에서 비교적 보통의 감정이라 할 만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우리들을 대표”하겠다는 포부로 응원을 보냈었다. 그러나 이 앨범은 QM의 아주 깊은 내면, 모두가 가장 외면하는 감정을 바탕으로 했으니 일방적인 응원을 바라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이에 대한 힌트로 그는 현재 자신의 상태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곡이라 밝히긴 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가 우울을 이겨내는 100가지 방법 같은 것들이 아닌, 인간 홍준용을 설득한 뮤지션 QM의 이야기를 썼을 거라 추측해본다. 아직 쓰고 말해야 할 것이 있어서, 그의 심연으로 청자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들이 있어서 말이다. 또,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마지막이 아닌 계속을 선택해야 할 타당한 이유도. 이런 설득을 당할 나 자신을 기대하면서 나는 이 글을 마친다. 『개미』는 나에게 가장 돌려 듣기 힘든 앨범이면서, 나의 맨살에 가장 가까운 앨범으로 남을 것이다.
잘 읽었습니다.
앨범을 들으며 느꼈던 글쓴이님의 감정을 훔쳐보는 듯한 글이었어요. 감사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