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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모가 단기간에 한국 힙합 최고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비결에는 뚜렷한 캐릭터와 이를 뒷받침하는 다재다능함이 있다. 가사마다 셀 수 없이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를 외쳐대고, 그의 이상향이었던 일리네어의 3인방처럼 허슬과 스웨거를 쫓는 창모에게는 확실히 인간적 친숙함과 장르적 호방함이 배어있다. 그런데 이것이 클래식과 트랩, 칸예 웨스트가 절묘하게 조합된 창모만의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프로듀싱과 낮고 거친 톤에 기반한 화려하면서도 견고한 랩, 오토튠을 활용한 대중적인 멜로디부터 힙합의 클리셰에 충실한 타이트함까지 두루 오가는 소화력과 결합되는 순간, 창모가 지닌 거칠고 포악한 멋에 고급스러운 위엄이 섞이며 '양복을 쫙 빼입은 야수'와도 같은, 창모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아티스트리가 완성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믹스테이프들로 생긴 하입에 더 콰이엇이라는 든든한 후견인까지 확보한 창모의 커리어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마에스트로'(2016)와 '아름다워'(2016), '아이야'(2016)와 'Selfmade Orange'(2018)로 이미 수많은 대중과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은 창모였지만, 그는 여기에서 만족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METEOR'가 2019년의 연말을 수놓고, 뒤이어 'Boyhood'에 여러 평론 매체들이 격찬을 아끼지 않자, 리스너들은 깨달았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한국 힙합이 목말라 마지않던 젊은 슈퍼스타가 마침내 등장했다는 것을.
창모의 앨범 단위 작업물이 거의 언제나 그렇듯 창모 본인이 직접 앨범 본인의 프로덕션을 주도하고, 여기에 웨이 체드, 프리마 비스타, 폴 블랑코 등의 든든한 동료들이 가세한다. 이렇게 완성된 앨범의 프로덕션의 범위는 가히 놀라운 정도이다. 동화적 감성을 지닌 인트로 넘버인 '빌었어'를 지난 뒤 창모의 주장기라고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샘플과 트랩 드럼라인을 조화시킨 팝 랩 넘버인 'METEOR'가 그 서정성을 이어가고, 바로 그다음에 날카로운 기타 소리가 주가 되는 포악하고 맹렬한 트랩 넘버인 '위업'과 '2 minutes in hell'을 후려치는 초반의 구성은 그 몰입도가 상당하다. 그 뒤로 '더 위로'의 하프시코드와 일렉기타가 긴장감을 당겼다가도, 'Dearlove (Skit)'에서 스트링과 건반이 교차되며 분위기를 이완시키고, 이는 동화적이면서도 극적인 구성을 갖춘 서정적인 붐뱁 넘버인 '세레나데'로 그대로 이어진다. 모자이크의 '왕자와 병사들'(1995)를 샘플링하여 90년대 가요를 세련되게 재해석한 '031576', 웨이 체드의 대중적인 터치가 더해진 팝 트랩 위에 '힙합'이라는 이질적인 성공담에 대한 시선을 다룬 'REMEDY'가 앨범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데 큰 역할을 하고, 이러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는 색소폰과 바이올린이 곁들여진 트랩 소울 'meet me in Toronto'에서 말하는 초심에 그대로 스며든다. 'Hotol Walkerhill'의 2000년대 칸예 풍의 사운드 위에 자신의 이상을 다시 반추하고, 'S T A R T'의 오르간 위에서 다시 미래를 그려가며 앨범은 마무리된다. 자신의 야심과 혼란, 초심과 첫사랑, 가족과 벗에 대한 애정 등 앨범의 다양한 사운드적 흐름을 통해 갈라지는 여러 주제들은 마치 한편의 동화와도 같은, 어느 '동네 놈'의 성공기를 향해 그대로 수렴한다. 여기에 창모의 견고하고 동물적인 랩 피지컬이 훌륭하게 작동하여 앨범의 서사적 흐름에 설득력을 부여한 것은 물론이다.
앨범의 게스트들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배치되었다. 가령 앨범에서 가장 트랩의 클리셰에 충실한 '위업'에 과거와 현재의 트랩 아이콘인 오케이션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를 배치시키고, 의도적으로 복고주의적인 사운드를 가져온 '031576'에 현재 시점에서 가장 90년대 분위기를 가져오는데 능한 기린을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폴 블랑코나 해쉬 스완 등 자신의 주요 파트너들을 이용해 트랙의 감정적 흐름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REMEDY'에서 케이팝 스타인 청하를 불러와 스타로서 이질적인 자신을 묘사하는 부분은 창모의 재치가 특히나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창모의 그간 작업물이 그렇듯, 최소한의 게스트를 통해 앨범의 흐름에 변칙을 주고, 그 가운데를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맥시멀한 스케일의 프로덕션과 러프한 퍼포먼스로 가로지른다는 전략이 훌륭하게 유지되고 있다.
창모가 앨범에서 그려내는 소년기는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세레나데'에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학이 좌절되는 모습, '2 minutes in hell'에서 성공 직후에 밀려드는 여러 혼란에 직면하는 모습, 'S T A R T'에서 생각없이 내뱉었던 자신의 옛 가사들을 후회하는 모습, '031576'에서 잃어버린 첫 사랑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좌절과 실수, 시행착오들로 상처 입은 그 모습이야말로 '소년'이기에 가능한, 청춘이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성공의 한 과정이다. 수없이 많은 충돌의 끝에, 창모는 유성이 되어 한국 힙합에 떨어졌다. 덕소의 어느 소년은 이제 전국을 휩쓰는 큰 별이 되었다. 소년이기에 미숙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그만의 치기 어리고 야성적이면서도 세련된 새로운 성공 서사는 이렇게 한국 힙합에 새겨졌다.
P.S. 다만, 샘플 클리어의 문제로 '나의고향서울'의 수록이 무산된 부분은 개인적으로 애석하기 그지없다. 여러 공연에서 등장한 바에 의하면, '나의고향서울'은 김추자의 '무인도'(1974)와 어떤날의 '취중독백'(1989)이 칸예 웨스트 식으로 샘플링 된 강렬한 트랩 넘버로, '2 minutes in hell'의 혼란을 야성적인 성공담으로 돌파하여 '더 위로'의 상승 의지로 잇는 곡이었다. 언젠가는 이 곡을 음원으로도 들을 날을 기대해 본다.
Best Track: 위업 (Feat. Okasian & Uneducated Kid), 031576 (Feat. KIRIN), REMEDY (feat. 청하)
나고서 문제 때문에 계속 리뷰를 미뤄오다 결국 지금 리뷰!
완벽한 커리어를 가진 아티스트중 한명이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친 앨범 여태까지 엄청 많이 들었고 앞으로도 더 들을 예정
좋은 글 잘 읽었슴다 사실 이미 스타로서는 더 말할게 없는 아티스트긴 하죠
리뷰글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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