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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ecdote'(2015)를 계기로 이센스는 '슈프림 팀의 누구'를 넘어 한국 힙합 씬에서 가장 아이코닉 한 인물로 부상했다. 물론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유례없는 옥중 발매 앨범이라는 사실이 화제를 불러 모은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센스의 동물적인 플로우 설계와 영화를 보는 듯한 자전적이고 냉철한 가사, 그리고 오비 클라인이 주조해낸 고전적이고 묵직한 사운드에 힘입어 'The Anecdote'는 한국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었다. 이러한 전작의 성공이 부담이 되어서였을까? 처음에 믹스테이프로 예고되었던 '이방인'은 발매일이 연 단위로 미뤄지며 정규 2집으로 완성되었다. 2016년에 처음으로 '이방인'이라는 작업물이 언급된 걸 감안한다면, 거의 3년 가까이 리스너들을 기다리게 만든 셈이다. 그리고, 또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물은 우리가 3년간 품었던 기대와 기대림을 차고 넘치게 만족시켜주었다.
오비 클라인과 같이 1MC 1PD 앨범에 가까운 형태로 완성시킨 'The Anecdote'와는 달리 250, FRNK 등 BANA의 동료들은 물론 디캡, 드류버드 등 해외 프로듀서들에게까지 비트를 추렴한 뒤 이를 추리고 추려서 앨범의 프로덕션을 설계했다. 언뜻 보면 앨범의 유기성을 완성시키기 힘든 방식이지만, Cautious Clay와 FRNK의 애프터 프로듀싱 덕에 앨범은 내내 차가운 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완성된 프로덕션은 굉장히 미니멀하면서도 전자적이다. 'COLD WORLD', '그XX아들같이', 'BUTTON' 등의 찌그러진 듯한 보이스 샘플은 앨범에 음산한 맛을 불어넣고, 'ALL GOOD THING'에서 플럭 사운드와 808베이스로 조성해낸 준수한 타격감도 일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BUCKY', 'CLOCK', 'DANCE'등 붐뱁의 BPM과 드럼에 전자적인 악기를 배치하며 칠(Chill)한 그루브를 형성하거나 'RADAR', '05.30.18'과 같이 보다 빠른 템포로 타이트한 순간을 자아내기도 하는 등 이센스는 '이방인'을 통해 보다 세련된, 트랩에 가까운 최신의 사운드에도 완벽히 적응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완벽한 적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부적응'이라는 점은 꽤나 아이러니하다. 앨범의 제목부터가 인간과 세계, 인생의 의의와 현대 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로 대표되는 카뮈 류의 부조리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만큼 자본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이에 대한 조소, 그로 인한 역설이 앨범에 복잡하게 섞여있다. 1년 반 동안 일반적인 사회와 격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이센스가 느끼는 괴리감을 형성했고 이것이 앨범을 지배하는 모순적인 정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수필집에 가까운 구성이지만, 고된 삶을 경험하며 얻은 통찰력의 힘은 앨범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성공적으로 엮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한국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올라선 아티스트의 차기작이었으니 만큼 참여진의 구성에 대한 루머도 꽤나 많았다. 빈지노, 오케이션, 디보, 나플라 등 여러 아티스트의 참여 설이 돌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스타 우, 김심야, 그리고 김아일 이 세 명으로 게스트가 좁혀졌다. 특히 이 앨범을 통해 처음으로 협업을 하게 된 김아일은 'X나 랩'을 해달라는 이센스의 요청에 맞춰 허스키한 하이 톤의 촘촘하고 시니컬한 그루브로 'BUCKY'의 후반을 장식하며 예상 외의 준수한 호흡을 선보인다. 같은 레이블인 것을 떠나서 현재 이센스의 최고의 파트너 중 하나인 김심야가 예사롭지 않은 훅메이킹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마스타 우가 착 가라앉은 그루브로 으스대거나 여유를 부리며 앨범에 유연한 순간을 만들어 준다. 13트랙(한정반은 15 트랙) 짜리 앨범에 3명 정도의 게스트가 적어 보일 수 있으나, 각 곡의 표정을 형성하고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만큼 이센스가 앨범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주도해나가고 있다.
'이센스'라는 이름이 지닌 브랜드 가치를 제하고 봐도 '이방인'은 굉장히 훌륭한 앨범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프로듀서들의 힘으로 완성된 트렌디한 프로듀싱의 품질도 물론 일품이고, 게스트 활용, 앨범을 관통하고 있는 괴리와 모순, 부조리의 미학과 이를 탁월한 통찰력으로 직조해내는 가사에 이르기 까지 우리가 '좋은 힙합 앨범'에 기대하는 모든 가치를 높은 수준으로 만족시킨다. 여기에 'The Anecdote'이상으로 날카롭고 본능적인 이센스의 랩까지 더해져 '이방인'은 리스너들의 기대를 넘어 2019년의 한국 힙합을 상징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한 아티스트의 음악적 변화가 어떻게 진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는 제일 이상적인 예시인 동시에 한 개인이 느끼는 부조리와 모순이 가장 날 것으로 전시된, 한 젊은 거장의 또 하나의 역작이다.
Best Track: BUCKY (FEAT. MASTA WU, QIM ISLE), 그XX아들같이, 05.30.18




잘 읽었습니다! 미니멀하고 차가운 사운드.. 공감합니다ㅎㅎ
오히려 이센스라는 이름이 지닌 브랜드 가치를 배제하고 봐야 더 훌륭한 앨범인 것 같네요
그새끼아들가치
나는 사인cd가 있찌
이센스 앨범에서 베스트 수록곡을 뽑는 건 너무 어려운 일 베스트라고 하면 5개가 최대일 텐데 어떻게 5개만 뽑냐고~~~~~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신 사운드에 대한 완벽히 적응해보이면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부적응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는 구절이 참 좋네요
블로그 링크 출처로 표기하고 퍼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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