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좀 오냐오냐 스탠스라서 속칭 '힙합 수호자'분들과 가치관이 갈리는편이지만
그분들이 박멸되어야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담당하는 하나의 무게추라는게 분명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제가 '찬혁 말대로 힙합은 더이상 안멋진가?'의 논쟁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찬혁의 저 라인이 '한국힙합의 수준에 대한 진단' 이라고 읽힌다는것같습니다.
그래서 굳이 글을 쓰게 됐는데요,
시대마다 대중에게 가장 멋있게 여겨지는 '멋'의 모양은 계속 변하는듯합니다.
그래서, 힙합 내부에서 힙합이 잘 굴러가고있었는지 아닌지의 여부와는 독립적으로,
대중들이 '멋의 선봉장'이라고 여겨온 문화장르는 계속 변화해왔고,
그게 힙합인적도 있고 힙합이 아닌적도 있던것같아요.
마치 패션으로 따지면,
몸에 딱 맞게 핏되는 dapper한 비지니스 캐쥬얼 룩은
100년전부터 지금까지 미학적으로 멋없던적이 한 번도 없지만,
대중들이 '요즘 멋있는건 dapper look이다' 라고 여기는 트랜드는
밀물 썰물처럼 계속 오갔다는걸 생각해볼수 있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엔 dapper look이 더이상 유행이 아니더라고' 라고 하는게
빈티지한 dapper look을 만들어가는 디자이너들에게 '너네 잘못만들고있어' 라고 하는건 아니잖아요.
그런것처럼,
전 아무래도 이찬혁군의 라인이 이런식으로 읽힙니다:
'더이상 대중들이 힙합을 멋의 정의로 생각하지 않게 되어버렸어.
대중들이 멋의 정의라고 생각하는것이 교체되는 흐름이 너무 빨라져버렸거든.
난 그게 아쉬워.
불협화음이 일어나더라도 변하지 않는 멋의 가치를 추구하고싶어
(동묘패션 뭐시기 예시들이 그래서 나오는것).'
그리고 이 논쟁을 통해서 찬혁이 이 라인에 대해 이효리와 주고받은 대화는 처음 접했는데,
이 해석에 부합하는것같더라구요.
반면 저 라인을
'국힙 종사자들 퀄리티 망했던데?'
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다음 둘 중 한 경우 같습니다.
(1) 원래 힙합 싫어해서 아이유나 장기하가 랩하면 '풉!!! 힙찔이 발라버렸쬬???' 하는 사람들
(2) '한국힙합, 이대로 괜찮은가' 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던 힙합팬의 입장에서, 찬혁이 그 토론에 참여해 '한국힙합, 망했음' 이라고 발언한것으로 오해한 사람들.
아마 국힙노잼론쪽 분들은 국힙노잼론이 그 라인을 통해 지지받은 기분에 통쾌해하셨겠고,
국힙이 욕먹는게 두려운분들은 찬혁이 국힙조롱 밈을 만들어버렸다는데에 화가 나시겠지만,
뭔가 둘 다 오해인것같은 느낌?
좀 사족입니다만,
‘지금 가장 멋있다고 여겨지는것’의 대략적 바로미터는
‘고등학교 축제때 애들이 어떤 공연에 가장 열광하는가’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이 변화해온것으로 보여요:
80년대: 락 기반 그룹사운드
90년대: 힙합이 처음 멋있었던 10년. 밴드음악, 비보잉, 서태지음악
2000년대 전반기: 밴드음악, 노래방 발라드 (DT를 위시한 무브먼트와 주석을 위시한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잘됐었지만, 어디 놀러갈때 멋있어보이기위한 정답이 그들의 스타일은 아닌 분위기)
2000년대 후반기: 노래방 발라드, 밴드음악, 혹은 힙힙동아리들이 구현한 빅딜이나 솔컴류의 힙합. (저처럼 이 때 학창시절을 보낸 분들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지역마다 상이할수는 있지만 전교에서 힙합 음악을 열심히 듣는 사람이 열 명이 채 안됐던것같네요. 이 때 학교 축제에서 힙합을 부르는건 '언더그라운드에 이런 음악도 있다!' 라고 외치는 사회운동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에픽하이, 리쌍, 스나이퍼 등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그들도 '멋의 척도'는 아직 아닌..)
2010년대 전반기: 아이돌 커버, 발라드, 힙합동아리음악 (빅딜, 솔컴 감성의 연장), 24:26같은 얼터네티브 힙합 (제가 이 때 대학생이었고 2011년인가에 정말 풋풋한 빈지노가 몇 곡 부르러 왔었는데, 힙합 안듣는 친구들이 옆에서 물어보는게 '저 사람이 다듀보다 랩 잘하는거야?' 였던게 기억나네요).
2010년대 후반기: 힙합이 다시 멋있었던 5년. 인디고 곡들이나 (띵같은 단체곡, 혹은 노엘 키드밀리 저스디스 등을 랩차력쇼처럼 커버), 쇼미 음원 (거북선, 겁, 오빠차 등등)으로 축제 분위기를 띄울수 있던 시기.
2020년대 (현재): 대중들이 더이상 힙합을 가장 멋있고 신나고 힙한 장르로 여기지 않는 흐름의 시작. 힙합조롱 짤들의 유행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연법칙(?)적인 쿨타임.
다른 글에서도 종종 이야기했지만,
저는 국힙 노잼론, 국힙 위기론, 게임체인져 웨이팅론 등의 우려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힙합 자체는 잘 가고있다고 생각해요 (하말해에서 JJK님과 쿤디판다님이 하신 말을 빌어서).
힙합은 대중이 멋있다고 봐주든 말든 멋없던적이 없고 앞으로도 멋있을겁니다.
다만 변덕 많은 대중들이 가장 멋있다고 여기는 대상은 항상 교체되어왔고,
힙합은 2010년대 후반기에 잠깐 그 대상인적이 있었고,
쿨타임이 돌아오자 '멋의 선봉장' 역할을 슬슬 다른 문화체에 양보하고있다는 흐름이 아쉽긴 하지만
그 흐름을 인정하는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힙합 말고도, 제가 오랫동안 좋아했던것들에 대해, 외부에서 보는 대중들은 좋아했다 싫어했다를 반복하는걸 많이 봐왔어요).
아마도 임플란티드 키드가 하필 2020년에 출현해서 뜬 것도, 힙합이 지금도 누구에게나 가장 카리스마있고 멋져보인다고 믿고있는 어찌보면 순박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귀엽고 코믹해보일수도 있다는 간극을 캐치한게 먹힐 맥락이 대중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라서 그런것같기도 해요.
물론 아쉽긴 하죠.
내가 사랑하는 래퍼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이 돈벌이의 핵심은 지금 힙합이 유행이냐 아니냐거든요.
김심야, 스윙스, 제이팍이 국힙 인더스트리의 미래가 그 다음 슈퍼스타의 출현에 달려있다고 말한 이유도 이거일거구요 (장르 자체의 미래 말고, 인더스트리의 미래).
그래서 비록 지금은 힙합의 쿨타임이 시작된것같지만
곧 또 왕좌에 올라갈 날을 기다려봅니다.
쿨타임이 5년 10년일수도 있겠지만, 몇 개월일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부분에서 저랑 의견이 다르시지만 솔직히 덕분에 떡밥 굴러가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찬혁이 힙합을 공격했다는 투로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던데요, 거기에 동조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뿐이고
그 사람들이 다 힙합 망무새는 아닐 건데요. 그렇지 않나요?
그냥 좀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근데 그걸 짚어주는 사람들보고 제발 양비론같은 관점으로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멋의 기준이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걸 몰라서 지금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건 단언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아서조아요님 글에도 제가 댓글로 달았지만 저도 힙합문화에 극성팬보이짓하느라 욱한 사람들도 있다고 당연히 생각해요 (거기에 제가 힙합PC충 이라고 했던것같아요)
다만 그건 입장이라고 치부하기도 민망해서 굳이 글에 넣고싶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긴 토론이 되어야하나... 싶은 생각이 너무 크네요.
아까 써주신 댓글에서 캔슬컬쳐라며 언급하신 부분에서 정말정말 백프로 동감했거든요. 깔끔하게 논쟁을 끝내고 싶은데 님 댓글이 짱이었어요. 좀 이 글에다가 넣어주시지...
근데 논쟁을 끝내는 건 제 욕심이었는지 괜히 신경질 부렸습니다. 어투가 좀 공격적이었던 건 사과드리고요.
하지만 이게 상식 비상식 문제로 딱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싸우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곳에는 너무 많아서요. 작성자님 글 내용은 틀린게 없지만 이런 좋은 글들은 진짜 싸우는 댓글 백개 있으면 한두개 가뭄에 콩나듯이 납니다.
아니에요 맞는말 하셨어요
소모적인 주제는 사실 떡밥으로 굴러버리기 전에 먹이를 안주는게 최선일테고 제가 쓴 이 글도 불필요한 장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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