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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라는 플랫폼이 한국의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본격적으로 등용문으로 인식이 되기 시작한 시점은 역시 2014년의 쇼미더머니3일 것이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일리네어 레코즈와 브랜뉴 뮤직은 물론, 대형 레이블인 YG, 그리고 씬 최고의 멀티 엔터테이너인 YDG가 프로듀서로 투입 되었고, 여기에 YG 연습생들, 그리고 지금도 한국 힙합 최고의 컴필레이션 중 하나로 회자되는 '파급효과'(2014)의 발매 덕에 한창 입지를 확장하고 있던 저스트 뮤직의 핵심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하여 유례없던 화제성을 이끌어냈다. 쇼가 끝나고, 거대한 본선 경연과 음원의 성공으로 생긴 엄청난 돈 덕에 참가자들의 삶은 말 그대로 뒤집혔다. 그리고 이중에는 2000년대 초반 부터 활동해온 베테랑이자 당시 저스트 뮤직의 중역이었던 바스코(現 빌 스택스)도 있었다. 한순간에 뒤바뀐 삶과 성공의 맛에 대해 바스코는 그가 가장 잘하는 방식인 지극히 마초적으로 강렬한, 원초적인 힙합으로 구현해 냈다. '강도'라는, 굉장히 자극적인 비유와 함께 말이다.
물론 이 앨범의 대다수의 트랙이 지닌 감성은 굉장히 공격적이지만, 그렇다고 앨범이 완급조절도 없이 격렬함으로만 매진하지는 않는다. 가령 구름의 도움으로 밴드 풍이 더해진 인트로 트랙인 'I'm Back'이라거나, EachONE의 네오 소울적인 접근이 돋보이는 러브 송인 'Bonnie & Clyde'같은 트랙이 앨범 전체의 숨을 고르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 중간중간 휴식을 취해주고 나면, 곧바로 스케리피와 돕플라밍고('Nobody 2 Somebody'), 그리고 제이 키드먼('말달리자')이 팡파레와 808베이스를 쾅쾅 울려대며 강한 템포로 앨범의 분위기를 돌려놓는다. 특히 가장 주목해야할 프로듀서가 있다면 천재노창(現 그냥노창)인데, '파급효과'를 지탱하던 그의 광기 어린 프로듀싱이 선사하는 파괴력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오드 퓨처나 푸샤 티가 연상되는 느릿하고 어두운 붐뱁('Bang Bang')부터 렉스 루거, 에이스 후드로 대표되는 2010년대 초반의 타이트한 트랩('Don')에 이르기까지, 그만의 기괴한 감각이 앨범 곳곳에 더해지며 MSG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어느 프로덕션이건,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있다면 성공의 쾌감, 그리고 이에 만족하지 않고 돈이건 리스너의 마음이건 싹 다 털어가겠다는 야심이다. 단지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들을 위한다는 의리와 절박함이 그 야심 뒤에 숨겨져 있다.
저스트 뮤직 동료들의 아낌없는 지원 사격 중에서도 천재노창의 존재감이 역시 독보적이다. '말달리자', 'Don' 등의 트랙에서 뭉개지는 발음으로 훅을 내려치는 그의 모습은 '훅 중독자'라는 블랙넛의 표현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씨잼과 기리보이가 '파급효과'에서도 보여준 타이트한 벌스와 고수위의 가사를 선보이는 가운데, 군대 가기 직전이라고 특별히 더 기합이 들어간 벌스를 남기고 간 스윙스(라지만 벌스 후반의 머더퍼커 32연발은 조금 과했던 것 같다.), 그리고 블랙넛의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재치가 앨범의 대미를 장식한다. 레이블의 동료들 이외에도, 일리네어 레코즈의 수장으로서 씬의 트렌드를 선도하던 도끼와 더 콰이엇이 톤을 높이거나 뒤집어가며 트랩에 어울리는 단단한 랩을 남겼으며, 당시만 해도 신예였던 넉살이 특유의 찍어누르는 듯한 하이 톤으로 쫀득한 랩을 뱉기도 하였다. 'Bonnie & Clyde'에서 소울풀한 보컬을 뽐내는 태완과 제시는 덤이다.
사람들은 성공을 목표로 달리지만, 막상 원하던 바를 이루고 나면 그 뒤에 오는 감정은 제각기 다르다. 예상과 다른 성공에 허무해 하거나, 성공을 뺏길까봐 불안해 하거나, 성공을 누리며 도취하거나. 바스코의 선택은 성공에 만족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굶주린 마인드 셋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100원도 안남기고 탈탈 털어
to the zero, 다시 start it from the bottom 그래 초심대로'라는 그의 가사대로, 그는 성실하게 커리어를 이어갔다. 믹스테잎 'MADMAX'(2015)로 기존의 터프함을 다시 과시하는 가하면, '빌 스택스'로 이름을 바꾸고 ''Buffet' Mixtape'(2017)에서 멈블 랩과 클라우드 랩을 시도하는 등 음악적 실험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대마초 흡연이 발각되고, 저스트 뮤직을 나가는 부침 속에서도 'DETOX'(2020)을 통해 '대마'라는 위험한 소재를 한국적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낸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성실함과 변신에는 끝이 없다. 불혹을 넘긴 노장이 끝없이 도전하고, 그 모든 도전에서 성취를 이뤄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러한 그의 욕심과 굶주림, 그리고 그 곳에서 비롯된 수많은 시도와 성실함이, 비슷한 시기 모습을 드러냈던 동료들이 침몰하는 와중에도 그가 여전히 그 위치를 굳건하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Best Track: I’m Back, Don (Feat. Dok2, The Quiett, 천재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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