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SNS에 올려둔 후기인데 LE에도 옮겨 봅니다.
1. 개인적으로 올 여름에 랩레슨을 받기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다. 이제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시작했고 지난 몇 달 동안 정말 재밌게 가사 쓰고 녹음하고 피드백 받고를 반복하고 있지만, 솔직히 너무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는 후회도 늘 있다. 시작했다는 후회가 아니라 진작 할걸 그랬다는 후회. 요즘은 고등래퍼를 넘어 중딩 때부터 랩을 시작하는 경우도 갈수록 많다고 들어서인지 더더욱.
2. 그렇게 뭔가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당시 락을 좋아했고 힙합엔 조금의 관심만 있었는데, 힙합을 좋아하는 애들과도 교류가 있긴 했다. 허구헌날 지들끼리 마스터플랜 뮤지션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 중엔 현재 나름 잘나가는 레이블 대표이자 현역 뮤지션이 된 인물도 있다. 연락은 끊겼지만.
3. 암튼, 그렇게 노력도 하고 재미도 느끼고 후회도 하고 추억도 팔며 지내다가 최근 이 영화 '라임 크라임'의 개봉 소식을 들었다. 한국 독립 영화판에서 힙합을 소재로 삼은 극영화가 만들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짜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중영화이긴 했지만 명장 이준익 감독의 '변산'이라는 끔찍한 전례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힙합 커뮤니티 힙합LE에서 이번 영화가 그리 짜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일단 의심을 거두고 예매했다. (나름 응원한답시고 게시판에 GV상영 홍보글도 올렸는데, 정작 나는 그 자리에 못 가고 이 날에야 여섯 편 연속 영화감상의 마지막 작품으로 택했다.)
4. 고맙게도 학창시절 힙돌이 친구들을 간만에 떠올리게 해준 이 영화, 일단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짜치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대충 흐뜨려놓고 런닝타임이 끝날 때 쯤 대충 파하는 식이 아니라 끝까지 제대로 힘주어 마무리 지어 더 좋았다. 이센스가 수감되어 있던 2015~6년 당시라는 시기적 배경과 중학생인 주인공 2인방 중 한 명이 소개하는 이전 세대 힙합 뮤지션들과 그들의 이야기들이 현실과 가깝게 느껴져 극에 더 몰입하기 쉬웠다. 주인공들이 래퍼로서 성장하는 과정과 가끔씩 등장하는 공연씬들도 딱 그 시기의 것처럼 보이고 들려 연출가와 스탭들이 씬을 제대로 이해하고 만든 영화란 생각도 들었다. 중학생이라는 인물 설정 덕에 그들이 다소 과한 행동을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었고. 시기는 좀 다르지만 힙합 팟캐스트 '매콤한 라디오'의 아이삭스쿼브와 수파사이즈 두 분의 학창시절 그룹 '와일드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도 떠올라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5. 물론 장점만 있지는 않았다. '래퍼는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해야지'라는 식의 디테일들이 조금씩은 거슬렸다. 주인공 2인방의 감정선이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었고, 곳곳에 어떤 상징들을 넣은 듯한데 편집 탓인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넘어간 듯한 인상도 받았다.
6. 그러한 단점들에도 불구, 국내 힙합씬에 관한 각자의 추억이나 학창시절의 기억들을 지닌 사람이라면 80여분 동안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 꽤 괜찮게 잘 뽑혔다.
덧1. 그래. 쌈박질이나 하고 펜타닐이나 구하러 댕길 시간에 랩하면서 자기표현하는 게 훨 낫지. 랩 일찍 시작하는 애들이 여전히 부럽기만 하다 나는.
덧2. 꽤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온 올티의 연기는 뭐랄까, 그래, 그래 그래. 그래도 랩은 잘하니까.
올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성담긴 후기 감사합니다 저도 한번 봐야겠네요~
신의 형평성을 실감하는 올티 연기력
장윅님, 감사합니다!!
인스타에서 쓰신 글을 보고 기쁘고,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영화제같은 하루를 보내셨더군요.ㅎ
지금도 영화 속 장면들이 잔상으로 남아있네요. 라임크라임 덕분에 영화제 같았던 하루를 멋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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