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이에 글은 처음 써봐서 이런 게시판에는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완성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게시판에 쓰는 글이니 키워드 위주로 몇가지 드는 생각을 그냥 적어봅니다.
1회차 - 갸우뚱
힙합음악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각자 다를 것입니다. 누구는 랩 퍼포먼스에서 오는 청각적 쾌감을 중요시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비트를 중요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힙합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라면, 서사입니다. 랩이라는 보컬장르 특성상 다른 장르에 비해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훨씬 넓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빠르고 빡센 랩을 하느냐라는 식의 물음이 힙합의 스포츠성을 드러낸다면, 누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라는 식의 물음은 힙합의 문학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태균의 상업예술은 분명한 서사구조를 지닌 작품입니다. 상업예술 속 김태균은 '자의식과 분투하는 예술가이자, 사랑에 달고 쓴 맛을 살아내는 남자이자, 광기 속에서 스스로를 건져내고 화해하는 어른'입니다. 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트랙은 '자유'였습니다. 가장 찌질한 민낯을 이렇게까지 토해낼 수 있구나 싶어 트랙이 뿜어내는 악받친 마음에 압도당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갸우뚱하기도 했습니다. 후반부의 뜬금없는 화해와 해탈의 메세지는 '우린 서로 달랐지만, 이젠 서로를 이해해.' 수준의 단편적인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사자에서 어린아이로"를 이야기할 때는 헛웃음마저 나왔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이미 이야기하신 걸로 알지만, 해당 구절은 버벌진트를 향한 오마주이자 니체를 인용한 부분입니다. 당연히 버벌진트의 '누명' 역시 예수에 관한 상징이나 니체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토록 향기 진한 앨범을 만들어놓고, "난 이제 깨달음을 얻었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와 같은 유치한 감상을 적어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영화로 따진다면, 본편 수준에 한참 미달하는 쿠키영상을 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청담'이나 '강남' 같은 트랙의 환기는 그렇게 나쁘게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앨범의 종반부가 이 앨범을 완전히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뒷맛이 씁니다. 이제는 홍대를 비롯한 몇몇 트랙만 골라 들을 뿐, 더 이상 이 앨범을 통째로 들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2회차 - 절절함의 휘발
제 favorite을 뽑아보라면, 저는 별 고민없이 이센스를 얘기할 것 같습니다. 이센스의 마음 풍경을 그려내는 단어 선택은 언제나 감탄스럽습니다. 이센스는 언제나 쉽사리 전달하기 힘든 감정들을 가장 쉬운 단어들로 전달합니다. 이센스는 모든 상황을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세세히 묘사하는 래퍼는 아닙니다. 행간에 청자의 상상력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고, 꼭 필요한 단어로 꼭 필요한 이야기만을 전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이 문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게 김태균은 항상 블랙넛과 겹쳐보였습니다. 둘의 이미지가 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게다가 이제는 더 이상 블랙넛의 음악에는 잘 손이 가지 않아서 정확한 비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작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두 래퍼가 항상 비슷하게 여겨졌습니다. 블랙넛과 김태균의 작사 방식이 언제나 지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토해내듯 한줄 한줄 적은 가사가 심장을 때리는 경험은 다들 한 번씩 있으셨을 겁니다. 다만, 그것도 1시간이 넘는 앨범 단위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절절함이 반복될수록 아티스트 본인은 속이 풀릴지 모르나, 답답함은 리스너의 몫이 되기도 합니다.
제게 상업예술은 2회차부터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회차에서 압도당했던 절절함이 휘발되고, 그 자리에는 냉소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이 앨범을 두번째로 들으면서 왜 그토록 김태균이 인정 욕구로 가득 차 명반 칭호에 매달리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드러내려 한 것인지 은연중에 드러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앨범 전반에 녹아있는 열등감이 비릿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쯤되니, 과연 버벌진트가 앞선 곡들을 다 듣고 참여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n회차 - 리드머
그래도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다시 한 번 돌리긴 돌렸습니다. 그 전에도 몇 번 돌리긴 했지만, 집중해서 듣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이토록 솔직하게 본인의 인정욕구를 고백하는 래퍼를 real하다고 해야할지, 철이 없다고 해야할지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긍정적인 점이라면, 김태균이라는 래퍼에게 앞으로 조금 더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태균이나 손심바 같은 래퍼들이 "한국 힙합의 적폐 리드머!"를 지목하며 드잡이질할 때마다 비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오천원짜리 이어폰"같은 것에서 찾는 래퍼들은, 한국 힙합의 발전같은 것을 논하기 전에 본인 커리어나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앨범을 듣고 김태균에 대해 보다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고, 그의 천진하기까지한 인정욕구에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저는 차라리 이 곡이 다음 앨범의 첫 트랙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앨범의 제목과 동명의 곡인 '상업예술'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싫지 않았습니다. 그 가사들에 당당한 래퍼가 될 것 같다는 기대감과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동시에 있습니다.
애초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리드머(개인적으로 조금 짜다고는 생각하지만, 뭐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평론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저 같이 김태균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김태균의 달라질 모습을 기대했다면, 당연히 김태균의 팬들은 제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아티스트를 이해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냥 바보처럼 긍정적이던 예전 내 원래 모습 난 드디어 되찾아!" 하고 선언하는 래퍼의 팬들이 별점과 한 페이지 평론에 이토록 분개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다른 분들이 지적하시는 리드머의 비판점(팩트 체크 오류라거나, 부실한 설명)들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리드머고 헤비리스너고, 좋은 음악 계속해 나올 수 있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다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평론가와 헤비리스너를 동치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취미로 평론을 한다지만, 어느 정도 업무라는 의무감에 온갖 앨범을 여러 번 돌려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업무의 관성에서 오는 전문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봅니다. 박평식 같은 영등위 심의위원들은 연 800편의 영화를 봐야 한다고 하죠.
생각해보면 힙합만큼 음악 하나로 평가받기 좋은 장르도 또 없거든요. 비프리의 행실을 보고 혀를 차던 강일권씨도, FTB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이 장르입니다. 전 그게 좋습니다. "래퍼라면 랩으로 말하라"는 말이 다른 장르 팬분들께는 우스꽝스러울 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장르의 팬들은 랩으로 말하는 래퍼들에게 박수를 쳐주거든요. 평론가들에게 박수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요. 이 장르 역시 아이돌 팬덤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 같지만, 앞으로도 계속 랩으로 말하는 래퍼들에게 박수치는 전통은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며 글을 줄입니다. 두서 없고 너무 긴 글이라 얼마나 읽힐지는 모르겠네요.




리드머에 대한 비프를 단순히 아이돌 팬문화로 동치시키는건 동ㅇ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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