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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but gOld, Founder 리뷰

건배2020.04.27 12:38조회 수 3305추천수 50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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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로우는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한때 그는 언더그라운드의 동의어를 자처했으나, 영웅 서사시격인 ‘양화’가 거짓말이 되었다는 그의 말과 행보를 보면서 꽤 실망했다. 

그래도 나는 그와 그의 식구들인 VMC의 헤이터가 되지는 못했다. 인스턴트의 시대에 굵직한 앨범들을 꾸준히 뽑아주는 아티스트들을 어떻게 팰 수 있을까. QM의 앨범 WAS / HANNAH를 구매하고 콘서트까지 다녀온 나는 그의 행보에 실망했지만 QM이 있는 VMC에 어느 정도의 애착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VMC의 수장인 딥플로우가, 5년의 침묵을 깨고 정규 4집 Founder로 돌아왔다. 

1. Founder, VMC의 설립자 – 양화 이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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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MC의 사장이자, 변절 논란으로 잡음을 내고, 저스디스 / 던말릭과 진흙탕 디스전을 하면서 힙합씬에서  핫했던 딥플로우.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정규 4집의 썰들을 보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신념을 소재로 당당함을 어필하던 딥플로우는 5년의 시간이 지난 후 ‘잘 어울려’에서 비판했던 대상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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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딥플로우 – 던말릭 / 저스디스의 디스전이 뜨거울 때 딥이 언더그라운드와 동의어라는 말을 꺼내자 '지금 그가 그럴 말을 꺼낼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어떤 스탠스로 차기작을 낼지가 관심사였다. 

어설프게 가족이니, 성공에 대한 갈망이니 뭐니 하면서 변절을 합리화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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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딥은 이러한 변절 논란에 대해서 의외로 쿨하게 인정한다. 각종 인터뷰들과 쇼미7 사이퍼에서 변했다는 걸 인정했고, 다른 곡들에서도 자신이 'TV에서 볼 수 있는 힙합'이 된 것과 비즈니스맨이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난 여론도 가지고 가겠다는 스탠스를 취한다. 그 태도는 앨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변절 논란에 대해서 어설프게 변명하지 않고 담담하게 랩을 뱉는다. 

앨범의 서사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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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1~6번 트랙으로, VMC의 건국 서사시(?)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앨범의 제목인 Founder, 설립자의 면모가 1부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인트로인 Panorama에서는 딥의 양화 이전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500 / Low Budget / 품질보증에서는 VMC 식구들을 만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을 담았다. 

대중문화예술기획업에서는 코믹하게 기획사 설립 과정을, Big Deal에서는 500만원이 뒤의 0 9개로 바뀌며 VMC가 정착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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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7번 ~ 13번 트랙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CEO 딥플로우의 변질된 모습과 앞으로의 각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Harvest에서는 1부에서 해왔던 고생에 대한 대가로 수확을, BEP에서는 음악 하는 식구들의 마음보다 수지 타산과 손익분기점을 더 신경 쓰게 되어버린 자신을 표현한다. 

Dead Stock에서는 안 팔리는 아티스트가 되어 버린 QM의 서글픈 랩에 시니컬하게 대답해 주며, VAT에서는 언더그라운드와 동의어였던 자신을 과거형 'ed'로 표현하며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36 dangers에서는 힙합씬에 겨울이 오고 있다는 말과 함께 불침번 모드에 들어가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Blueprint에서는 VMC의 청사진인 로한과 자신의 페르소나들인 식구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앨범을 따뜻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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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의 최대 강점은 단연 앨범의 유기성과 서사이다. 갈수록 앨범 = 타이틀 + 쩌리 수록곡이 되가고 있는 현실에서 Founder는  12+1곡의 트랙들이 마치 하나의 트랙인 것처럼 철저하게 유기적인 구성을 보인다. 

전체적인 앨범의 무드와 맞지 않더라도 흥행을 위해서 대중에게 먹힐 만한 곡을 수록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 앨범은 모든 트랙이 전체적인 무드를 깨지 않는 선에서 프로듀싱되었다. 그 때문인지 전작의 '작두'처럼 화끈한 곡은 없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에 못지 않게 좋은 곡들이 많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 4개나 되기에 무슨 생각인가 싶었는데 오히려 전 곡이 타이틀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트랙에 공을 들인 것이 느껴진다. 트랙마다 주제와 서사를 담고 있고, 그 서사들이 모여 하나의 장편 영화를 만든다. 딥플로우의 삶의 일부를 그대로 욺겨놓은 듯하다.

2. 킬링 트랙 – 돈은 언제 만져봐

https://www.youtube.com/watch?v=_DyLFWfqNSM

킬링 트랙에 대해서 의견이 나뉠 수 있지만 나는 1부에서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 2부에서는 Dead Stock과 Blueprint라고 생각한다. 작두처럼 신나게 손을 흔들며 날뛸 만한 트랙은 이번 앨범에서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은 진지하게 흐르던 앨범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3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마포 세무서와 콘진원 입구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쩔쩔매는 딥플로우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특히 '대표가 두 분이시네요'라는 라인은 앨범을 들으면서 빵 터졌다. 만약 뮤비를 만든다면 이 곡을 추천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5iJ-MsK7k1k

Dead Stock은 악성 재고라는 뜻으로, QM의 전작의 킬링 트랙인 '중앙 차선'이 묘하게 생각나는 트랙이다. WAS / HANNAH를 듣고 나서 QM의 벌스를 들으면 가사의 씁쓸함이 더 깊게 느껴진다. 

HANNAH에서 앨범 한 장으로 세상을 바꿀거라는 패기를 뱉던 QM은 Rockstar가 되지 못한 Dead Stock이 되어 BEP를 넘지 못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신념도, 영혼도 잃은 QM의 한 맺힌 랩에 시니컬하게 대답하는 딥플로우와의 티키타카가 일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lgVkzEMGXg

 

Blueprint는 12번 트랙의 skit과 함께 2부에서 보여준 씁쓸한 분위기를 전환하며 희망찬 마무리를 보여준다. 수확의 시간은 끝나고, 홍대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딥은 그래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하에서 탈출하여 커진 식당에 손님들이 많이 오길 기대하는 식당 주인의 뒷짐진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특히 앨범의 마무리를 장식할 트랙에 로한을 넣은 것은 인상적이었다. 로한이 VMC의 청사진이자 비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했고, 이 앨범의 마지막 라인인 '날 대신하는 내 페르소나들'라는 라인을 통해 이 앨범의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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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딥의 앨범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이고, VMC의 식구들을 위한 앨범이라고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스너를 위한 공감대가 없는 이 앨범에 나는 크게 공감했다. 

사장이라는 감투, VIP 대접, 35평 아파트라는 그럴싸한 겉모습보다는, 그의 뒷모습에서 욕을 얻어 먹더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 있는 가장의 책임을 느낄 수 있어서일까.

이 앨범을 들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최고 수준의 가사 – 내 파노라마 중 그저 한 컷이었던 양화

https://www.youtube.com/watch?v=shyBU2_jsd8

 

그동안의 랩에서 보이듯, 딥플로우는 오토튠 / 싱잉 / 트랩이 주도하는 현재의 트렌드에 익숙하지 않다. 딥의 장기는 붐뱁 위주의 사운드에 묵직한 가사로 랩을 때려 박는 것인데, 이번 앨범은 철저하게 그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물론 그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이러한 노선을 채택한 것은 아니다. 차붐의 에쿠스에서 오토튠을 시도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트렌드를 읽었으나, 그 흐름에 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의 자조처럼 힙합계의 트로트(?)인 그의 앨범은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지만, 대신 엄청난 밀도의 가사를 매 트랙마다 이 앨범에서 느낄 수 있다. 인상 깊은 라인들이 하도 많아서 최대한 추려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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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현실과 꿈 사이를 갈라놨던 한강

내 파노라마 중 그저 한 컷이었던 양화 – Panorama –

품질보장된 듣보잡들 2014

늘 유유자적하게 입장 – 품질보증 –

드디어 증명서를 받아 이걸 구청에 내고

3주 기다리면 끝 마지막 관문

근데 담당자 뚱한 표정 '대표가 두 분이시네요?' – 대중문화예술기획업 –

500짜리 계약서가 이제 뒤에 0이 아홉 개

투자제안은 좋지만 지분까지는 no thanks – Big De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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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흰 아직 내 선택을 믿지 나도 너네를 믿지만 maybe

불안한 듯 부는 입김 자꾸 계산기를 켜는 미팅

너흰 때론 내가 밉지 네 욕심 알아도 난 FM

야 정산 받아야지 일찍 넘겨보는 거야 BEP – BEP –

누가 더 나은 자식놈인가를 나누다가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처음과는 다른 사람 – Dead Stock –

뱉어내야지 VAT, 찌꺼기의 benefit so

underdog, underground, 양화, respect

날 수식한 단어 뒤에 붙은 과거형 ed

더 꼬리 달기 전에 다시 만들어내 be – VAT –

방심할 수 없지 거품 샤워는 막바지고 

꼭지를 잠궈 녹음실은 꼭 오픈해둬 밤까지 – 36 dangers –

 

내 청사진의 전제는 꼭 내 가족과 shooting

각자 다 달랐던 그 약속의 장소에

만약 내가 못 닿아도 여기 함께인 걸로 됐어 나는

날 대신하는 내 페르소나들 – Bluepri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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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것은 가사의 대부분이 리스너보다는 VMC 식구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특히 2부에서 변절한 딥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뱉는 가사들은 VMC 식구들에게 하는 변명이자 해명으로 들렸다. 

어떨 때는 술 잘 사주는 형이자 동료이지만, 돈 문제에 있어서는 손익 분기점을 따질 수밖에 없는 사장의 딜레마가 느껴졌다. 라임 노트 대신 엑셀을 다루게 된 딥이 꺼내 든 것은 경제 용어들이다. BEP는 손익분기점, VAT는 부가가치세, Dead Stock은 악성 재고를 의미하는 단어로, 전작인 양화의 트랙 리스트와 사뭇 달라져 있다. 

양화의 딥과 Founder의 딥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곤조만 지키면 되었던 양산대형은 언제부터 그의 자조처럼 처음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던 걸까. 

2) 탄탄한 프로듀싱과 피처링 – 오토튠과 트랩이 나를 젊게 해주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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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씬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난제가 있다. 바로 듣는 즐거움 (청각의 쾌감)을 우선시할 것인가, 아니면 가사의 깊이를 더 중시할 것인가이다. 1세대 ~ 2세대 + 소울컴퍼니 시절까지는 대체로 가사가 더 중시되었으나, 점점 청각의 쾌감을 중시하는 쪽이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가사를 지나치게 중시하면 음악이 리스너에게 줘야 할 청각적인 즐거움이 감소되어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노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기에 붐뱁과 깊은 가사를 무기로 삼는 래퍼들의 최대 난관은 메시지를 중시할 경우 필연적으로 떨어질 청각적인 즐거움을 어떤 식으로 보강하느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딥은 청각의 쾌감보다는 가사와 앨범의 유기성에 베팅을 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트랙이 조금 느린 bpm으로 전개된다. 자칫 심심한 앨범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앨범을 차별화하는 것은 바로 빼어난 프로듀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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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의 핵심인  TK와 딥은 고전적인 사운드를 복각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앨범을 설계했고, 그 결과 트랩과 오토튠으로 점철된 씬에서 이 앨범이 오히려 내게 더 신선하게 다가 왔다. 

사람이 맨날 햄버거 세트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가끔은 집 앞의 밥집에서 순두부찌개 백반을 먹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From all to human과 풍부한 밴드 사운드 + 드럼이 주축이 되어 앨범을 이끌고, 때로는 3류 서부극, 무협 영화에서 들어 본 듯한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Panorama / Dead Stock은 한 편의 단편 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한 묘사와 비트가 일품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ZbOgfzJ7fM

 

또한 트랙에 딱 맞는 피처링을 통해 심심할 수 있는 앨범을 한 차원 더 위로 끌어올린다. 이 앨범의 피처링 전원이 다 제 역할을 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빛난 피처링은 단연 최항석과 QM일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류의 블루스 사운드를 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처음에는 본토에서 모셔온 아티스트인 줄 알았다. 

B급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처럼, Founder 역시 곳곳에 영화적인 사운드와 전개가 눈에 띈다. 각종 장치들과 섬세한 묘사가 단조로울 수 있는 랩을 탄탄하게 보강해 준다. 개인적으로 양화보다 Founder의 사운드가 더 마음에 든다. 양화에서 느꼈던 투박한 맛은 줄었지만 사운드적으로 훨씬 더 풍성해졌다고 느꼈다.

3) 양화의 그림자 – 묘한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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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매우 뛰어난 완성도의 앨범이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앨범에서 양화의 그림자가 언뜻 보인다는 것이다. 장점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으나, 익숙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비유하자면 양화에서 사용했던 냄비를 사용하면서 내용물을 VMC의 건국 서사시 + 사장님의 고군분투와 갈등으로 바꾸고, 거기에 풍성한 밴드 사운드를 추가한 듯하다. 

딥플로우 특유의 단조로운 플로우도 아쉬움이 남는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해야겠다는 마인드는 이해하나, 청각적인 쾌감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심심하게 들릴 수 있다. 트랩이나 오토튠을 넣으라는 것이 아니라, 한 트랙 정도는 플로우 설계를 익숙한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4. 어쩌면 양화 그 이상, Founder – 다 갚아가는 거지 지뢰 같던 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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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수많은 앨범들이 나왔지만 그중에서 내가 자주 들었던 앨범은 이현준의 Mainstream이었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현준이라는 아티스트가 나는 있는 줄도 몰랐다. 엘이에서 호평 받았다는 ‘끓는 물의 개구리‘도 듣지 않았었다.

'좀 오그라들 수 있지만 환원해야 하는 책임감이 약간은 느껴져서' 라던 딥은 무명의 아티스트들을 VMC의 Boiling Point를 통해 조명해 주었고, 나는 그렇게 이현준을 알게 되었다. 그의 정규앨범인 Mainstream은 불편하고 안 팔릴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화를 위해서'라고 말한 수없이 많은 래퍼들 중에 실질적으로 씬에 도움을 준 래퍼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의 당위성을 얻기 위해서 이 문화를 들먹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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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록 변절자라도, 설령 그게 위선일지라도 실질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딥플로우를 어느 정도 이해하려 한다. '100만 원'을 주어 QM의 믹스테잎을 지원해 주었던 것도 그였으니 말이다. 

딥플로우도 역시 언더그라운드를 들먹이며 수면 위로 올랐고, 과거 그가 뱉었던 라인들은 그가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할 업보이지만, 그의 황홀한 변명인 Founder를 들으니 딥이 애증의 대상이라도 그의 앨범만큼은 결코 비난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나 역시 이상과 곤조가 사회에서 먹히는 경우가 적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고, 밥벌이와 처자식들 앞에서는 어떤 숭고한 신념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씁쓸하지만 이해하게 되었다. 30줄에 들어서서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있는데 이상을 추구하면서 식구들 굶기는 것은 멋있는 게 아니라 무모하고 철이 덜 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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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던 이 구역의 미친 놈' 이 이제 철이 들어 BEP를 따지게 되버린 상구형을 보면 안쓰럽지만 이해하려고 한다. 지뢰 같던 혀로 업보를 갚아가려고 하는 게 보이고, 그의 페르소나들의 앨범들이 BEP는 못 넘을지언정 대체로 만족스러웠으니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팔지 않는다더니 팔아버린' 어른이 된 피터팬의 추한 변명이겠지만, 나에게는 VMC 식구들을 위한 헌사이자 류상구의 회고록이다. 그의 변절을 이해할 수 없다면 침을 뱉고 꺼지면 된다. 

올드한 사운드와 랩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유행을 바랬다면 상구형 말고 다른 트레퍼들을 주문하면 된다. 순두부찌개 백반을 시켜놓고 감자튀김이 없다고 화 내는 건 넌센스다. 

이젠 거짓말이 되어버린 삭막한 느와르인 양화보다 개인적인 갈등과 고백을 털어놓는 인간적인 딥플로우의 Founder가 나에게 더 와닿는 이유는 뭘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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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영화 광팬이라는 딥플로우가 그려놓은 페르소나들의 이야기와 청사진은 어설픈 B급 영화가 아닌, 특 A급 앨범이자, 명반의 대열에 들 만한 작품이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처럼 그가 식구들과 함께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고, 약속했던 그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번 Founder는 양화처럼 거짓말이 되지 않기를 리스너로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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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1
  • 4.27 12:42

    정성스럽게 잘 쓴 글 잘 읽고 갑니다

  • 건배글쓴이
    4.27 19:56
    @마라돈나

    감사합니다.

  • 4.27 12:57

    피지컬 오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ㅋㅋㅋ

  • 건배글쓴이
    4.27 19:57
    @Alonso2000

    저도 한정반 샀는데 기대되네요.

  • 4.27 13:04

    잘읽었어요..추천합니다.^^

  • 건배글쓴이
    4.27 19:57
    @소심한아이

    감사합니다.

  • 4.27 13:07

    일단 ㅊㅊ 박습니다

  • 4.27 14:51

    1, 2부로 나눠 해석하신 게 인상 깊네요

    영화 <파운더>에서도 처음엔 주인공에 몰입되어 그의 성공이 즐겁게 느껴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가 씁쓸해지거든요

  • 건배글쓴이
    4.27 19:57
    @스니꺼즈

    파운더 영화에서 그런 뜻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 4.27 13:33

    추천! 잘 읽었습니다!

  • 건배글쓴이
    4.27 19:57
    @jiaaalil

    감사합니다.

  • 4.27 13:39

    이런리뷰는 ㄹㅇ 닥추

  • 건배글쓴이
    4.27 19:58
    @김만두

    감사합니다.

  • 4.27 13:41

    잘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 건배글쓴이
    4.27 19:58
    @마재헌

    감사합니다.

  • 4.27 13:45

    Ah Choo

  • 건배글쓴이
    4.27 19:58
    @LongLivetheIdols.

    아츄.

  • 4.27 14:40

    멋진 글

  • 건배글쓴이
    4.27 20:05
    @무인

    감사합니다.

  • 4.27 14:45

    너무 좋은 리뷰라고 생각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건배글쓴이
    4.27 20:05
    @증평윤

    감사합니다.

  • 4.27 15:33

    글이 뭉클하노..

  • 건배글쓴이
    4.27 20:05
    @vvip

    그의 행보에 실망했지만 앨범을 들으니 또 묘하게 납득이 되네요.

  • 4.27 15:47

    완벽한 리뷰네요bb

  • 건배글쓴이
    4.27 20:05
    @왈왈왈

    감사합니다.

  • 4.27 17:21

    우와 잘봤습니다

  • 건배글쓴이
    4.27 20:05
    @Jazzy Moon

    감사합니다.

  • 4.27 17:38

    진짜 잘쓰신듯

  • 건배글쓴이
    4.27 20:06
    @지우개

    감사합니다.

  • 4.27 18:14

    오예 좋은 글만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

  • 건배글쓴이
    4.27 20:06
    @그린진

    감사합니다.

  • 4.27 18:35

    뭉클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건배글쓴이
    4.27 20:06
    @PARAM

    감사합니다.

  • 4.27 20:08

    정말 공감되고 잘 읽히는 글이네요. 큐엠 팬인데 언급이 많아서 괜히 뿌듯함까지 갖고 갑니다

  • 건배글쓴이
    1 4.27 20:26
    @TEVR

    사실 저도 큐엠 팬입니다. 'HANNAH라는 나만의 명반은 먼지와 적자를 잔뜩 먹고 빛 바래버렸지 난'이라는 가사에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 글이 잘 읽히네요. 저도 실망하고 양화 갖다 팔아버렸는데 어찌저찌 딥을 보고듣게 되네요

  • 4.27 21:34

    좋은 리뷰네요!저도 감상문 남긴적이 있는데 저 역시 앨범이 어느 부분을기점으로 나뉘어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딥플로우가 이런식으로 구성하는걸 좋아하는거 같아요 Heavy Deep, 양화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서ㅋㅋ

  • 4.27 21:51

    입을 잘못 놀린 변절자의 뛰어난 앨범

  • 4.28 00:25

    리뷰 너무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 23K
    4.28 04:28

    글 정말 잘쓰시네요. 추천 박고 갑니다

  • 4.28 15:49

    좋은 글입니다. 딥플로우의 커리어에서 Founder의 위치를 생각해보게 되네요. 근데 딥플로우 사진이 전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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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13 음악 누구 해명영상이든 안 보신 분들 많네요9 마라돈나 2020.04.27
132812 일반 테이크원이 사무실 방빼라고 하는건 그냥9 나비 갈구기 2020.04.27
132811 음악 뜬금없지만 박재범 진짜 대단한것 같아요.17 김치힙합 2020.04.27
132810 일반 MBC에서 (또) 힙합 프로그램 하나봐요36 title: [로고] Vismajor브린이갑이다 2020.04.27
132809 음악 여러분이 들은 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펀치라인 한줄은?69 title: Run the Jewels (2)VRIKGUY 2020.04.27
132808 일반 쌈디랑 머쉬베놈 등등 같이 뭐한거 나오나봐요10 title: Eminem (2)MarshallMathers 2020.04.27
132807 일반 와 불편러들 진짜 많네.10 베트남쌀국수 2020.04.27
리뷰 Old but gOld, Founder 리뷰41 건배 2020.04.27
132805 일반 언에듀가 불편한 분들은12 그랴그럼 2020.04.27
132804 일반 온라인수업 듣는데 스윙스 나왔습니다14 title: Lil Tecca돈벌아이MOFAN 202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