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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힙합과 소년만화

낙타빛가죽샤쓰2018.03.27 21:11조회 수 3502추천수 40댓글 21

최근까지 한국힙합에서 말하는 서사에 이제 공감을 얻지 못할만큼 나이가 들어서, 

한국힙합은 간간히 새 앨범 소식만 듣고 '새로 나왔구나' 하는 정도가 다였다. 

힙할엘이에 들어갔다가 스윙스의 <upgrade3>의 'holy'라는 곡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어서

들어보게 되었다.  3벌스 후, 장장 15분 넘는 스킷. 

힙합에는 양아치 문화가 일부 존재한다는 말로 시작되는 스윙스의 스킷.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기로도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힙합은 남자 고딩들의 전유물이었다.  

네이버 웹툰에서 학원물이 항상 인기 있는 것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는다고 느낀다. 

한국힙합의 서사는 언제나 소년만화를 닮았다. 원피스나 나루토 같은. 혹은 조금 더 오래된 버전인 슬램덩크나 드래곤볼 같은.

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는 조금씩 다르지만 언제나 한결 같은 면도 있다. 

당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앨범이나 싱글들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90년대 초반에 한국힙합씬이 조금씩 형성되던 시기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나스와 투팍, 제이지 등 갱스터의 삶을 동경. 그들이 말하는 스웩

보면, 거의 20세 전후의 소년-어른 경계의 래퍼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들이 항상 인기가 있었다.  

이센스가 제이지와 나스만 듣는 것처럼 

2000년대 중반한국힙합은 거의 미국 동부힙합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가리온의 <가리온>(2004)

피타입의 <헤비베이스>(2004)

지옥 같은 언더그라운드 현실에서 아직도 꿋꿋이 버티고 있으며, 리스너들의 응원 아래 명반으로 자리잡는다. 

버벌진트의 <누명>(2008)은 결이 조금 다르지만, 다음의 주제 의식을 공유한다. 

'막귀 사냥', '지진아 퇴치'라는 주제들. '현재 래퍼들이 랩을 너무 못한다.' '라임도 없다.' '그루브도 없다.' '이걸 끌어올려야만 한다.'  

물론 버벌진트는 <모던라임즈>(2001) 때부터 지속되었던 주제였고

가끔 <사랑해 누나> 같은 사랑 노래도 있었지만, 이 역시 소년-어른 경계의 랩퍼가 겪는 아픈 사랑을 겪어 어른이 되는 서사라는 점은 공유된다. 

때론 소울컴퍼니 같은 레이블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는 서사라는 점에서는 맥락을 공유한다. 단지 거친 상남자의 이미지보다 풋풋한 소년의 이미지가 강조되었다.

키비도 사랑노래를 많이 불렀지만, <소년을 위로해줘>는 앞으로의 성장담 그 과정에서 겪는 아픔들. 소년만화의 정석이다. 루피가 그냥 강해지는건 아니지 않나. 낭만이 있어야지. 

또한 당시 키비의 주특기는 프리스타일 배틀랩이었다. 예외적이라면  '이루펀트'가 결이 다르다고 할까. 

빅딜은 뭐 말할 것도 없었다. 

디스전만 해도 그렇다. 

2000년대 초반 디스전은 라임을 두고 한 판했다. 조PD vs DJ uzi/ DJ Uzi vs 버벌진트 and 4wd  등 누가 더 랩을 잘하냐

다시 말하면 누가 더 스킬이 좋으냐(무술을 잘하냐)에 대한 싸움. 다른 이야기를 할 틈이 없었다. 

확실히 디스전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부흥한 사건은 제이독과 버벌진트 사이의 디스전이었다. 아직도 그 'C+'은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다. 

이때부터 지속적인 디스전의 양상은 누구의 스킬이 뛰어난가. 마치 무림에서 고수가 다투듯이 그들의 스킬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반 힙합 음원을 올리는 차트 이름도 심지어 정글을 연상시키는 '밀림'이었다. 

소울컴퍼니와 빅딜의 양대 구조에서 튀어나왔던 래퍼가 스윙스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윙스는 참 쓸데없이 욕을 많이 먹었다. 특유의 랩에서 느껴지는 공격성, 호전성 등은 버벌진트와 유사했지만 거기에 언제나 가사가 과장되었다. 

펀치라인킹, 트레이드마크인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 항상 다른 래퍼들 못하고 자기가 제일 잘 한다는 가사, 내가 이 판을 이끌고 있다는 호언장담. 

버벌진트가 약간 샤프하고 지적이고 약간 찌질한 캐릭터였다면, 스윙스는 거침없이 막 뱉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가끔 모르겠는 묘하고 되게 강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바야흐로 2007년 오버클래스 결성. 스킬이 쩌는 힙합커뮤니티 아마추어 고수 '산이'의 등장과 함께. 

오버클래스는 정말 열심히 지진아 사냥에 전념했는데 그 주된 목표는 이전에 1세대, 2세대 래퍼들을 갈아치우는 것이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적은 당시 인기가 많았던 붓다베이비를 향해 있었다. 그 이후로 누구도 MC스나이퍼가 랩 잘한다고(쇼미더머니에서 다시 봤다는 평가 빼고) 여기지 않았다. 

2000년대 초중반에 형성된 '라임'이라는 스킬에 대한 집착이 어느새 '그루브'로 바뀌어 있었다. 리스너들이라면 싱코페이션이니 하는 박자감, 즉 그루브가 중요했다.

그루브는 원래 있었던 것이지만, 어느 새 리스너들 사이에서 꼭 필수적인 스킬로 자리 잡았다. 1,2세대 래퍼들에게는 '라임이 없다'와 더불어 '그루브가 없다'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언더에서 올라온 이센스, 사이먼디, 모두 무림의 고수들이었다. 이들도 단박에 슈프림팀으로 이른바 메이저에 나오는 그룹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2000년대 중반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했던 무브번트 크루의 타이거jk, 다이나믹듀오나 에픽하이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춘추전국시대 같은 씬에 뛰어들 필요가 없었다. 누구도 그들의 실력을 의심하진 않았다. 그들은 이미 TV에도 나온 성공한 힙합 그룹들이었다. 

오히려 <택시드라이버>나 <평화의 날> 같은 앨범의 가사를 들어보면, 언더그라운드 씬에서의 성장담과 같은 가사가 그리 많지 않았다. 여전히 배틀랩은 필수적이었지만.  

이후에 점차 미스라진이나 최자의 실력을 리스너들이 의심했지만 말이다. 

항상 언더그라운드의 남은 적자는 누구인가라고 귀결되었다. 

소울컴퍼니의 해체, 빅딜의 몰락

 후에 소울커넥션 같은 크루도 제이통의 디스로 급작스럽게 몰락한다. 

그 즈음에 터졌던 디스전이 스윙스 vs 빅딜이었다. 2010년 쯤이었나. 

빅딜의 행보가 저조하자, 이내 곧 스윙스가 씬에서 급격히 올라간다. 

래퍼들의 평가기준은 이미 세분화되어 있었다. 

유려한 플로우(독특한 플로우), 딕션, 라임, 그루브, 펀치라인 이것들이 래퍼들의 평가 요소. 거기다 가사를 더 잘쓰면 +알파였다. 

힙합은 여전히 고딩들, 혹은 고딩 때부터 들어왔던 20대 초중반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성팬들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래퍼들은 20대 혹은 30대 청년으로서 발화했다.


소년만화는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인기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새로운 강적이 나타나고, 그를 무찌르고 또다시 성장해야 한다. 

2011년 그 다음은 아마 일리네어의 결성

이미 씬에서 인정을 받았던 더콰이엇과 도끼, 그리고 신예 빈지노의 등장

씬의 판도는 이제 '돈'을 얼마나 잘 버냐를 중심으로 흐르게 된다. 스킬뿐만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룰을 지키며 올라와 돈을 거머줘야 한다. 

2012년에 등장한 '쇼미더머니'

근데 레디의 가사대로 당시 '쇼미더머니'는 스타에서처럼 치트키 같은 것이었다. 물론 레디도 쇼미더머니 나갔지만. 

일리네어의 성공을 토대로, 레이블을 키우는 VMC, 하이라이트, 저스트뮤직, 코홀트, AOMG 등등이 자리 잡았고.

쇼미더머니의 플랫폼을 쓸데없는 경쟁구도 혹은 언더그라운드를 배신하고 돈을 쫓는 래퍼들의 수단으로 읽어내지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쇼미더머니는 사실 한국힙합씬의 축소판이다. 

한국힙합씬은 언제나 소년만화와 닮았다. 누군가보다 나은 스킬(혹은 돈)로 단박에 서열의 상위를 차지해야 했다. 

사실 쇼미더머니는 한국힙합씬과 매우 유사하다. 


쇼미더머니의  룰 :  

수많은 인파 속에서 비트없는 무반주 랩 -> 심사위원 앞에서 올패스 -> 1대1 데스매치 -> 팀결성 및 경연

한국힙합씬의  룰 : 

아마추어(무명)에서 스킬을 보여줌 -> 레이블에 안착-> 정말 시도때도 없는 수많은 피쳐링 -> 리스너들의 인정(혹은 쇼미더머니를 통한 성공) -> 공연으로 많은 수입

-> 앨범을 정말 잘 뽑으면 레전드


이게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저 수많은 피쳐링에서 스킬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들을만한 앨범은 별로 없다. 피쳐링에서 혼신을 다하니까(?)

활동경력도 꽤 있고 인지도 있는 래퍼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한국 힙합씬이나 쇼미더머니나 사실 비슷하다고. 

그래서 발라드랩을 그렇게 욕하는 거 아닐까. 

한국힙합씬의 룰을 따르지 않는 자? 피쳐링없이 자기 음악만하는 뮤지션들은 정말 인기 없다. 

이들은 이 춘추전국시대에 방관자들이니까. 스킬이니 뭐니 언급도 없다. 

대표적인 게 와비사비룸.  또 이상하게 이루펀트 앨범은 인기없다. 

보이지 않지만 한국힙합 씬의 촘촘한 룰에서 래퍼들은 항상 순위 매겨진다. 

래퍼들은 소모되다 결국 후발주자들을 못 따라가면 그저 퇴물이다. 왜일까. 그들이 랩을 못해서일까. 단순히 늙어서? 랩피지컬이 딸려서? 

이게 한국힙합의 현실이다. 

10년 뒤면 경력 30년차 래퍼들이 곧 생길 것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살아남은 자는 누가있었지? 누가 살아남을까? 유력한 건 에픽하이나 다듀? 

어느부턴가 소년만화를 읽지 않았듯이, 자연스레 한국힙합보다 차라리 알앤비를 듣는게 편해졌다. 

스윙스는 일진들 욕하지 말고 생각하라 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마녀사냥 비스무리 하다고.

난 꼬아서 생각해본다. 왜 댓글에서, 커뮤니티에서 그렇게 그들을 욕을 했을까? 

한국사회에서 경험하는 철저한 서열과 순위. 강한 자가 약한 틈을 보이면 반드시 끌어내려야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 씬은 철저히 서열과 순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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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1
  • 3.27 21:17
    흥미롭네요
  • 글 좋습니다
  • 3.27 21:42
    세.상.에. 오랜만에 엘이 들어왔는데 국게에서 이런 글을 보다니 국게 수준이 이랬었나
  • 3.27 21:57
    정말 잘 읽었습니다.
  • 긴글 잘 안읽는데 끝까지 다 봤다.... 가독성 무엇
  • 찔리는 글이네요
  • 3.27 23:21
    재밌당
  • 3.28 00:58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ㅎ
  • 3.28 01:18
    글을 읽으면서 추억들이 스치듯 지나가네요 ㅋㅋㅋ
  • 3.28 01:2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고 든 생각은 한국힙합에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대중음악계 자체역시 소년만화인거 같습니다.
  • 3.28 01:28
    나는 언제까지 소년일수 있을까 생각이 드네요
  • 인상적이에요
  • 3.28 02:27
    모순이고 딜레마. 그럴듯한 말로 마녀사냥을 정당화 할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게 오히려 더 현실인듯.
  • 3.28 02:28

    절대악이 존제하고 그것을 욕하는 소년만화의 구성을 따라간다면 참 편한 이분법적인 세상이지만 무었이 옳고 그른지 또한 시대마다, 상황마다 급변하기 때문에 결국엔 본이이 믿고 싶은걸 믿으면 된다. 마녀가 악인가? 그럼 마녀를 욕해라. 대중들이 악인가? 그럼 대중을 욕해라.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방관하던가.

  • 3.28 08:04
    쇼미랑 힙합씬이 매우 유사하다는건 동의 못하지만서도
    항상 치열하긴 했죠 뭐 안 그런 분야야 없겠지만..
  • 3.28 12:31
    알앤비를 듣는게 편해졌다란 말에 정말 공감되네요 추천박고 갑니다
  • 3.28 12:39
    멋진글이에요
  • 3.28 15:15
    00년대부터 한국힙합을 들어온 사람만이 느낄수있는 생각과 감성... 잘봤습니다
  • title: Nas (2)x8
    3.28 19:52
    와 간만에 모든구절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흥미롭네요
  • 3.28 20:06
    10년 넘게 국힙을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피타입이 말하고 엄청난 욕을 먹었던
    "폭력적인 잡종 문화"만큼 힙합을 명징하게 정의하는 문장도 없다는 생각.
  • 3.28 21:21
    힙합문화의 한국화를 정말 잘 표현한 글이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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