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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자리로의 여정, 소울쿼리언스에 대하여 #1

title: Frank Ocean (2024)NikesFM2시간 전조회 수 118추천수 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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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um Village - Fantastic, Vol. 2

 

밀레니엄의 "popular Hip Hop albums" 리스트에 <MM..FOOD>의 뒤로 <Donuts>가 서있는 모습을 보면 매번 재미있는 생각이 든다. 짧은 한 줄에 최고의 라임과 플로우, 미려하거나 재치 있는 어휘를 단 하나라도 더 욱여넣으려던 황금시대의 별들은 과연 이 앨범에 열광하는 힙합 팬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 재미있는 것은, 으레 덕후들의 천성이 그렇듯, 모든 발자취와 냄새까지 쫓으려는 열성적인 힙합 팬층을 가장 많이 보유한 이가 딜라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의 음악을, 독특한 그 리듬을, 그의 일생을, 말 그대로 그의 모든 것을 추적하고 분석하여 기어코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댄 차너스의 [Dilla Time]이 음악 역사에 손꼽을 음악 도서가 되었다는 사실은 또 어떠한가. 그러나 또 한 번 으레 그렇듯, 덕후들을 미치게 만드는 결정적인 차이는 이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딜라의 매력은 톨킨의 레젠다리움처럼 거대한 디스코그래피를 구축했다기보다는 음악 그 자체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끝없는 호기심을 자극한다는데에 있다. 그렇지만 이제 슬슬 딜라를 향한 찬양은 미뤄두고 이 글의 목적이 저 마르지 않는 샘물을 퍼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때가 된 것 같다. 이 글은 생뚱맞게도 Slum Village라는 힙합 그룹의 <Fantastic, Vol. 2>라는 앨범에 대한 후기이다. 이 프로젝트는 [Dilla Time 1.5]가 아니라 제목대로 "About Soulquarians"니까. 

 

실은 어떤 작품으로 포문을 열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정말 빠르게 해결됐다. 이 형체 없는 그룹의 중심축은 어찌 됐든 Questlove 일 테니까. The Roots의 작품들을 다시 꺼내어 듣고 있던 와중 <Things Fall Apart>가, 아니,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보니 닳고 닳도록 뒤적였던 소울쿼리언스 셸프에서 딜라의 향기가 깊게 묻어 나온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그 즉흥성, 생동감, 약간의 "Dilla 스윙", 힙합과 소울 그리고 재즈, 실험주의, 소울쿼리언스를 관통하는 이 모든 키워드는 어찌 보면 J Dilla와 일맥상통하니까. 영어를 위해 문법 공부를 선행하듯, 소울쿼리언스에는 딜라라는 문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엄밀히 말하면 퀘스트 러브와 디 안젤로 모두 제이 딜라의 그 느낌에 먼저 유혹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니나 다를까 Soulquarians의 손길이 직접적으로 닿은 <Fantastic, Vol. 2>는 발매 과정의 진통에서 생긴 해프닝들로도, Dilla Time의 일면으로도, 그리고 소울쿼리언스의 영향을 엿본다는 의의로도 재미있는 감상을 준다.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글들이 통상 앨범 리뷰와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점을 미리 알린다. J88(Slum Village의 가명)의 <Best Kept Secret>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나 제이 딜라와 다프트 펑크와의 일화가 해당 글에는 빠지듯, 하나의 앨범에 초점을 둔 리뷰에 언급될 법한 디테일한 부분은 빠지며, 모든 글은 Soulquarians의 "~~"이라는 다소 거시적인 느낌에 가까울 것이다.

 

때때로 어떤 앨범은, 어느 벤 다이어그램에 속한 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벤 다이어그램이라는 개념 자체를 박살 내고 싶게 만들 때가 있다. 내게는 제이 딜라의 음악이 그렇다. <Donuts>를 RYM의 빅데이터에 의존해 Instrumental Hip Hop, Experimental Hip Hop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힙합에서 "랩"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따져봐야 할 테고, 플런더포닉스라면 <Since I Left You>와 같은 작품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이 고유한 힙합 그루브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끝없이 헤맬 모호한 안갯속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얻어 출발점을 설정할 곳이 있으니, 어쩌면 딜라의 시작점이라 부를 수 있는 <Fantastic, Vol. 2>다. 이곳에는 "<Donuts>에 랩을 하면 어떨까"라는 집착적인 상상을 하던 랩 신봉자들을 어느 정도는 만족시킬 "I Don't Know"가 있고, <Voodoo>에 수록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지극히 디 안젤로스러운 힙합 "Tell Me", 반젤리스의 신시사이저 위에서 랩을 때려 박은 "Untitled/Fantastic"과, 딜라의 목소리조차 모르는 이들을 위해 직접 마이크를 잡은 "Thelonious"가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Fantastic, Vol. 2> 저변의 개성 넘치는 샘플들은 각 트랙 속에서 저마다 아우성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이 앨범이 힙합으로 쉽게 수렴된다는 것이다. 마치 <Donuts>처럼.

 

딜라의 음악을 분석할 때면, 나는 그가 샘플링으로 힙합의 반항스러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훵크의 신기원을 이룬 동시에 힙합의 신기원을 연 제임스 브라운의 음악이 힙합이라는 장르 내에서 가장 많은 샘플링 횟수를 자랑하는 건 힙합 팬들에게는 진부한 찬가에 가까운 당연한 사실이다. 샘플링이라는 작법이 - 알려지지도 않은 무명의 아티스트가 아니라면 - 타인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그 값어치에 얼추 맞는 역할을 주고서 나의 음악 속에서 다시 박동하도록 새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DJ들에게 제임스 브라운을 샘플링한다는 것은 일종의 힙합과 맺는 약속에 가까웠다 - 여기서 힙합의 초기 역사까지 다루기에는 내 능력에 벅차기에 약간의 비약을 범하지만, 제임스 브라운을 들으며 힙합과의 연결점을 찾아보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의 여유로운 그루브는 이제는 성서가 된 촌스러운 랩 구절들을 밀어 넣기에 충분한 여백을 제공했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열정 넘치는 워드 플레이어들은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양 그의 모든 음악을 액체 괴물을 갖고 노는 아이처럼 잡아 늘리고 줄여보며 실험을 계속했다. 그런데 슬럼 빌리지의 "I Don't Know"에는 그저 'You know?', 'I don't know', 'with your bad self'라는 1초 남짓한 제임스 브라운의 더블링만이 존재한다. 오히려 바덴 파웰의 보사노바 "É Isso Aí"의 기타가 어떤 과정을 거쳤길래 "I Don't Know"의 리프가 되었는지가 더 궁금할 뿐이다.

 

뉴욕이라는 예술의 용광로, 그리니치 빌리지의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 빈티지 장비들, 지미 헨드릭스, 스티비 원더, 데이비드 보위. 이곳을 그저 거니는 것만으로 거물들을 끌어모을 상징적인 표제들을 수없이 찾을 수 있겠지만, 결국 제이 딜라와 퀘스트러브, 디 안젤로를 한 데 모은 본질적인 이유는 고전을 향한 무한한 애정에 있다. 그리고 그들이 수 천 달러를 써가며 무질서하게 디깅해와 스튜디오에 널브러뜨리고 질리도록 들었을 이 뭉치에는 소울이라는 나름의 질서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부분은 다음 편에서 집중할 생각. 그러나 우리가 <Fantastic, Vol. 2>에서 주목할 부분은 또 하나의 이유, 딜라의 음악에 유독 더 큰 생동감을 불어넣는 특유의 딜라 타임에 있다. 딜라의 드럼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인간과 기계, 규칙과 불규칙 그 사이에서 울리곤 한다. 이것은 드러머의 본능도, 기계의 이성도 거부한다. Akai MPC는 그에게 스네어와 하이 햇을 액체 괴물로 탈바꿈시켜 양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할 뻔뻔함을 주었고, 절대 끊어지지 않는 슬라임처럼, 미묘하게 엇나가고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는 특유의 리듬은 딜라의 음악에서 알게 모르게 느슨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어디 출처도 찾기 힘든 소리들로 형성된 사운드스케이프, 재즈 키보드, 제임스 브라운의 외마디 음성, 템포 조절된 록 밴드의 드럼, 보사노바 기타. 너저분하게 늘어진 예측 불가능한 소리들은 딜라의 MPC 속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절대 넘어지진 않는다.

 

딜라의 음악이나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면 매번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벽돌에 가까운 두께의 책 한 권이 하나의 주제만으로 꽉 찰 만큼 그의 음악은 예술가들에게 연구와 실험의 장이었고, 앞서 언급했듯 이 마르지 않는 샘물에는 열성적인 덕후들이 몰리기 마련이니까. 딜라가 샘플을 가지고 노는 방식이나 음악적으로 드럼 리듬을 어떻게 어긋나는 지에 대해서 조금만 디테일하게 파고들어도 <Donuts>의 무한한 루프처럼 끝이 보이질 않는다. 실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서 Slum Village를 뺄까 생각하기도 했다. 마치 신세대의 영어 공부가 문법에 치중된 방식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영어"에 집착하듯이. 그러나 소울쿼리언스의 요체가 딜라 타임과 고전 음악, 즉흥적인 잼 세션에 있다면, "The Root"의 드럼에 딜라의 느낌을 주기 위해 그의 본능을 수도 없이 억제했을 퀘스트 러브를 생각한다면, 네오 소울이 "소울 음악의 아날로그 전성기를 디지털 세대가 새롭게 부활시킨 것"이라면 그 "새로움"을 뺀다는 것이 맞는 일일까. 딜라의 음악을 들을 때면 어항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특유의 느슨하고 잔잔한 바이브는 여전하지만 그 흐름은 언제나 불규칙적이다. 최면과도 같은 그 비트 속에서 우리는 딜라가 제시한 정답이 아닌 우리의 생각을 떠올린다. 

 


 

시작하자마자 난관을 맞았습니다. 딜라로 출발점을 끊었는데 웬걸 끝이 보이질 않는 겁니다. 정말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고 보기도 많이 봤는데, 한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던 중 이대로면 글 자체를 완성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더군요. 그렇다고 제이 딜라를 생략하기에는 이후로 끊임없이 언급될 딜라의 리듬을 부자연스럽게 넘겨야될 것 같아서 "딜라식 스윙"을 짚고 넘어가자는 의의로 이 글을 인트로겸 작성하게 됐네요. 초기에 생각했던 컨셉은 <Endtroducing.....>처럼 하나하나 최대한 열과 성을 다해 써보려 했는데, 다른 아티스트에게 50 정도의 노력을 부었다면 동일하게 제이 딜라에게도 50을 부어봐야 20도 안 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마치 이제 막 입문하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으로 쓰려고 합니다. 특히 소울쿼리언스에 있는 힙합 앨범을 들을 때면 정말 그런 새로운 느낌이 들거든요. 이 글을 쓸 때마다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의 이미지가 그려져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한 쪽에서는 잔뜩 쌓아둔 고전 레코드를 들으며 토론을 하고, 또 한 쪽은 그 토론에서 얻어낸 아이디어를 녹음실에서 구현하고, 제이 딜라는 소파에 앉아 MPC를 만지며 비트를 만드는. 저 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식을 때마다 자연스레 찾게 되는 본인만의 아티스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소울쿼리언스, 특히 커먼과 더 루츠, 디 안젤로가 그런 것 같아요. 디 안젤로는 조금 방향이 틀어지긴 했지만 나름대로 쓰긴 썼으니 다음 편은 퀘스트러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일주일에 하나씩 써볼까 생각했는데 턱도 없네요. 2주 뒤에 슬금슬금 기어 오겠습니다. 아 그리고 굳이 굳이 프로젝트를 시리즈로 나눈 건 관종력때문이라기보단 커뮤니티에 조금이라도 좋으니 주기적으로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는 나름의 효과를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 큽니다. 물론 묻히면 어쩔 수 없지만요.

 

https://blog.naver.com/nikesfm/224091466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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