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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Earl Sweatshirt - Live Laugh Love

title: Jane Remover예리3시간 전조회 수 200추천수 5댓글 2

해당 리뷰는 블랙뮤직 매거진 Hausofmatters 홈페이지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hausofmatters.com/magazine/w-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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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 Sweatshirt - Live Laugh Love




Earl Sweatshirt. 그는 이제서야 우리와 맨얼굴로 마주한다. 오래도록 시적인 줄글에 토로한 이야기들은 그와 친밀한 사이로 수년간 대화를 주고 받은 듯 익숙하다. 그러나 맹목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둘러매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걸어오는 말은, 그 이유 모를 어색함이 이번에야말로 진정 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가져왔다는 기대감처럼 다가온다.


Earl의 작품은 거대한 삶에서 툭 갈라져 나온 순간들의 파편이었다. 반복되는 삶과 선회하는 연속성으로 그의 고뇌와 가치관을 한 층 한 층 겹겹이 쌓아왔지만, [Live Laugh Love]만큼은 피상적으로 Earl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를 벗어난 듯 보인다. 계기는 분명하다. 그에게 반려자와 자녀라는 선물이 찾아왔으니까.


변화를 새 마음가짐에 시작하는 2막으로 본다면 Earl의 걱정이 이해된다. 그는 아내의 남편이자 자식의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청자들의 아티스트다. 이 환기가 Earl의 정체성까지 앗아간다면, Earl은 더이상 Earl일 수 없다.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청자들이 Earl을 여전히 Earl로 봐줄까에 대해 고민할만하다. 하지만 질문하자면, 정말 Earl은 시시콜콜한 가타부타를 위해 변신을 흉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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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l의 정체성이란 본래 무엇이었나. 작품이라 읽고 탈바꿈이라 쓰는 커리어엔 본래라는 단어가 무의미하다. 그는 어디에 있었나? 일리노이의 여린 소년은 의지해야할 존재를 남아공에 떠나보내며, 손 닿는 존재들을 닮고 바깥의 소리침에 젖어가며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Earl Sweatshirt. 그 이름은 한 번도 진짜였던 적이 없다. 링네임은 곧 자신인 Thebe Neruda Kgositsile에게 실로 대담하고도 잔혹한 탄생이었다. 16살이라는 나이로 거울 속 나 자신과 글러브 터치를 하며, 철창 밖 세상 누구라도 말을 얹을 수 있도록 관객들을 초대했다. [Earl], [Doris], [I Don't Like Shit-]. 그는 매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링 위에 올랐다. 쥐어터지면서도 경기를 거듭했다. 그럴수록 단단해졌다.


애벌레가 매일같이 실을 뿜어 고치를 감듯, 양손에 테이프를 덧댈수록 마음도 점차 후련해졌다. 그는 불행을 만끽하던 시간 못지 않게 그 불행에게서 작별해왔다. 주제는 공포와 우울이었다가, 둘을 오가는 따스한 불안정을 거치고, 유랑을 끝내며 뻗는 주먹은 마무리에 닿는다.


어느덧 훌쩍 커버렸다. Earl은 열 번이든 백 번이든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깨왔다. 그가 완벽한 나비가 되진 못해도, [Some Rap Songs]가 길었던 경기의 끝처럼 마무리됐다. 판정받을 승리에 맞잡을 손이 없지만 말이다. 내면의 고통에서 찾은 자유가 가사 한 줄 없이 침묵으로 끝나는 "Riot!"의 모습은, Uncle Hugh의 목소리를 듣는 Earl의 뒷모습에서 보일 듯한 말 없는 미소와 닮아있다. 남겨둔 여지는 웃고 우는 결론 대신 삶을 곱씹게 만드는 두루뭉술한 끌어안음이다. 이건 끝이 아니고, 2막을 맞이하는 분기점이라고.


길고 긴 서론처럼, 길었던 Earl의 이야기다.






"The struggle not a team sport"
투쟁은 팀 스포츠가 아니야

- TOURMALINE






"TOURMALINE"의 뮤직비디오는 두 얼굴로 마무리한다. 영상 전문은 사랑하는 남녀가 농구 경기를 주고 받는 열기로 가득하고, Earl은 잠깐씩 얼굴을 비춰 툭툭 던지는 지혜를 노래한다. 그 끝에 들뜬 표정으로 풍경을 즐기는 Earl과 근심 어린 Earl이 함께 등장하는데, 둘 중 더 눈에 밟히는 쪽은 아무래도 후자다. 늘 감상과 사색에 침잠하는 Earl의 굳은 얼굴은 지겹도록 마주해왔지만, 그 익숙한 모습이 앨범의 서사와는 오히려 정반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Live Laugh Love]를 지배하는 미시감이란 역시 여전한 토대를 두고 완전히 뒤집힌 분위기다. 모두 틀림없는 Earl Sweatshirt의 곡이지만, 무엇도 전작에 억지로 끼워맞추지 못할 모양새다.


Earl이 가진 천부적 재능은 삶이란 서스펜스를 최대한 잘고 여리게 조각내고, 그 화소를 RGB 값 단위로 매만지며 채도와 포화도를 조절하는 디테일이었다. [Some Rap Songs]를 기억한다면, 'Dream-'이라는 몽롱한 시작에서 "Riot!"으로 끝나기까지 총 13개의 트랙을 휘젓고 은밀하게 다가가는 구변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도 치밀한 Earl이 "gsw vs sac"의 도입을 열어젖히며, 형식처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가냘픈 음성이 울부짖는 질감을 차용하는 모습은, 설명하기 모호한 화색과 안도감이 묻어나오는 비틀림과 역동적인 감정선의 변화를 암시하는 전초로 와닿는다.


물론 겉표면은 직관적이다. [Live Laugh Love]는 벌스 한두 개와 웅얼거림 그리고 오밀조밀한 소규모 스킷들에 둘러싸여있고, 스포츠 경기 용어들로 가득한 담화의 주안점은 화제 전환으로 이룬 성취감과 직결시킨다. "Live"와 "Heavy Metal aka ejecto seato!"는 가족 결속과 중독을 감회하는 이야기에 Earl 특유의 추상적인 긴장감으로 곡의 숨을 붙들며 이어나가고, "WELL DONE!"이나 "Static"에 이르면 역동적인 장음계 구성에 기쁜 눈물을 고조시키려는 뭉클한 의도까지 엿보인다.


다시 돌아가서, 모든 요약을 "TOURMALINE"이 함축한다. 경합과 번영으로 치환되는 구기종목의 동적인 수양이 있고, 교훈적 메시지와 흐뭇함을 자아내는 분위기와 직결된다. 앨범이 머금은 가장 커다란 대주제. 곧 성장의 시각화로 해석할만하다. 다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Earl이 체화시킨 결론은 성장이 아닌 성장하는 그 과정에 있고, 이는 [Live Laugh Love]만이 아닌 그가 펼친 예술 세계 전반에 숨어든 메시지와도 같다.


삶을 곧 어떠한 골(Goal)에 도달하는 비유가 존재한다면 반쪽짜리 정답이다. 삶엔 분명 공을 꽂아넣어야 할 우리를 가로막는 그물들이 있지만, 그 그물은 어디까지나 맞이하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누군가에겐 부와 명예, 누군가에겐 가족, 누군가에겐 자아 실현. 그러니 삶은 경기도 아니고 규칙도 아니어서 ‘팀’도 ‘스포츠’도 될 수 없다.


Earl이 내린 1막은 ‘아버지와의 조우’였고, 결과적으로 목표엔 실패했지만, 그는 못지 않게 훌륭한 어쩌면 더 뛰어난 깨달음으로 이해가 아닌 포용을 선택했다. 그물을 꿰뚫지 못했지만 그물을 꿰뚫었다. 그가 성장이 아닌 성장의 과정을 말하듯, 2막 역시 ‘아버지가 되는 법’이 아닌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 'Live Laugh Love'. 


Earl에게 작품이란 마음이 앓은 잔병치레의 순간들이었고, 설명을 위해 뒤따라온 음악적 수반이 디스코그래피라는 형식으로 Earl과 함께 나아갔다. 오롯이 지금을 사는 사람이 남긴 지금의 순간. 돌아보면 모두 Earl이다. 어떠한 포착도 아니고, 특정한 사건도 아니고, 그저 살아온 삶의 전시회 앞에 늘어놓는 정서와 생각의 방명록이다. 이제 Earl은 제 등을 바라보고 자랄 어린 존재를 위해 나아가려 한다. 삶은 어린 아이처럼 어딘가로 자꾸 튀어나가지만, 흘러가는 시간처럼 나날도 계속 이어질테니까.


그러니 Earl의 걱정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찡그린 눈은, 계속되는 삶에 한 번씩 찾아오는 선물과 같은 순간들과 함께하기 위해, 그저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날카롭게 뜬 눈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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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2시간 전

    글의 내용처럼 가족이 새로 생기면서 바뀌게 될 얼의 작품들이 너무 궁금하네요. 이번 앨범은 저번 앨범들과는 뭔가 좀 다르더라구요. 각오를 단단히 한 느낌이었음

     

    듣고 3% 부족했던 감상을 리뷰로 어느정도 채워갑니다. 항상 리뷰 잘 보고 있어요~~

  • title: Jane Remover예리글쓴이
    2시간 전
    @민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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