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세대의 공동체는 품앗이, 합주, 집단 지성의 이름으로 힘을 모았다. 그 방식이 농경의 생존이든, 음악의 즉흥성이든,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Kevin Abstract 역시 BROCKHAMPTON이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이미 공동체의 힘을 체득한 인물이다. <BLUSH>는 그가 다시 모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손길을 통해, 불완전하고 충돌하는 풍경 속에서 또 다른 공동체의 얼굴을 큐레이션한 아카이브다.
"H-Town"에서 Ameer Vann의 저음은 단단한 기초를 세운다. 이어지는 "Copy"와 "97 Jag"에서는 Love Spells의 보컬이 질감을 부드럽게 덧입힌다. 이 목소리는 후렴의 장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겹쳐질 때는 신스 패드의 은은한 떨림이 되고, 전면에 설 때는 곡의 체온을 낮춘다. Abstract가 말한 ‘sonic honey’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혼란의 절정은 "NOLA"다. JPEGMAFIA의 폭발과도 같은 랩과 여러 보컬이 부딪히며, 녹음실의 공기가 그대로 압착된 듯한 긴장이 형성된다. 직후 이어지는 "Post Break Up Beauty"는 전혀 다른 풍경을 연다. 드림팝의 결 위로 멜로디가 미끄러지고, Love Spells의 보컬이 소음을 잠재운다. 이 불연속은 허술해 보이지만, 큐레이터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충돌의 순서’가 어둠 속 불빛처럼 깜박인다.
집중의 무게는 Dominic Fike가 쥔다. "Geezer"와 "Maroon"에서 그는 가장 선명한 후렴을 남기며, 기타와 드럼 사이에 뚜렷한 중심을 세운다. 반대편에서는 Quadeca가 긴장을 높인다. "NOLA"의 과밀한 프로덕션은 그의 손길이고, "Abandon Me"는 앨범에서 가장 깊은 감정의 골을 판다. 그 주변에서 Truly Young과 E Bleu가 보조선을 긋듯 결을 다듬으며 전체 질감을 확장한다. Abstract가 물러난 자리에서, 이 목소리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앨범의 외곽에는 <NOT ON BLUSH>가 있다. 단순한 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배제의 원칙을 드러내는 기록이다. 음악적 흐름을 주도하는 곡일수록 본편에서 색이 겹치거나 과잉될 위험이 있었다. 큐레이션은 채움만이 아니라 덜어냄의 기술임을, 이 병행 공개가 보여준다.
<BLUSH>는 같은 재료로 각기 다른 방을 지은 건축 실험 같다. Love Spells가 공기의 밀도를 조절하고, Dominic Fike가 출입구에 불을 밝혀두면, Quadeca와 Ameer Vann이 길의 굴곡을 만든다. Truly Young과 E Bleu 같은 세부적인 손길들이 틈새를 메우며, 전체 공간은 다채로운 울림을 얻는다. 그 사이를 오가며 간격을 조율하는 이는 여전히 Kevin Abstract다. 문은 끝내 닫히지 않고, 틈새로 스며든 바람이 앨범의 마지막 인상으로 남는다.
요즘 리뷰 자주 쓰시네요ㅎㅎ
재밌더라구용
블로그 잘 보고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Love Spells가 많이 캐리했다 생각합니다. 이 트랙 좋다 싶어서 크레딧 보면 항상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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