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Grips - Exmilitary
초점 빠진 뇌까림. "Beware"의 지직거림엔 역사에 실재한 슈퍼빌런의 정신이상이 녹아있다. 찰스 맨슨. 그는 어느덧 맨슨 패밀리의 지휘봉을 내려놓고 철창에 묶인 신세다. 말의 내용은 흔해빠진 망상 환자나 다름 없고, 비록 손발이 묶인 채로 자신의 전지전능을 입증하는 꼬락서니지만, 그는 늙고 초췌한 얼굴로도 여전히 주인공이 되지 못할 유신론을 모독으로 받아들인다. 음성 뿐인 전달로도 미간에 박은 하겐크로이츠가 생생하다. 악명 어린 이름값을 떠나서 삶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그의 몰락은 알타몬트 사건과 더불어 극단주의 히피의 최종장처럼 쓰인다. 모두를 악인이라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비틀즈의 후예들에게 묻기로, 당신들은 정말 진심이지 않았나? 만물의 영장이 번식으로 옮은 병원균과 마취제에 굴복하여 낙원을 잃었다. 멍청한 꿈과 멍청한 결말. 공산주의자들과 향락주의자들이 한 데 뒤섞이고 녹아든다. 맹목적이지 않은 예술엔 조소가 뒤따르고, 누군가의 추락은 새 생명의 탄생에 불을 붙인다.
I close my eyes and seize it (Seize it)
난 내 눈을 갑고 그걸 꽉 붙잡아 (붙잡아)
I clench my fists and beat it (Beat it)
주먹을 꽉 쥐곤 때려 부숴 (부숴)
I light my torch and burn it (Burn it)
내 횃불을 밝혀 불태워 (불태워)
I am the beast I worship
난 내가 숭배하는 야수야
(Death Grips - Beware)
1945년 지구본의 열도가 뒤흔들릴 때. 우라늄 폭격 조타수의 결단으로 바벨탑의 이웃 주민들은 머리 위에 떨어진 새로운 세계를 맞이했다. 역사가 사건을 종전이라 부르며 세상은 전쟁만큼이나 무서운 결과가 전쟁의 끝임을 받아들였다. "Beware"는 라디오에 퍼진 종전선언이다. 낙관적인 죽음과 결핍뿐인 삶을 부르짖는 모습. 일종의 타협이자 굴복이다. 죽음은 언제나 찾아올 수 있고, 남은 삶은 그 죽음을 자각하며 비로소 실현된다. 야욕과 카르마의 실현 그리고 붕괴로 완성되는 허무주의. MC Ride(스테판 버넷 코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실은 쓰고 상상은 달다.
찰스 맨슨 인용이 찬양인지 격하인지는 모호하지만, 확실히 동일시는 아니다. 그는 짐승으로서 스스로를 숭상하지만, 6분간 이어지는 피조물의 자각은 신격화가 아닌 무신론의 설파처럼 보인다. 단지 파급과 한낱 주목을 위해서 희대의 부랑아와 제 삶을 견주었다기에, 대담하게 내뱉는 목소리의 위엔 니힐리즘 전시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이제부터는 나의 삶이고, 나의 시대며, 나의 세상이라는 일종의 선언이다. 물론 스테판은 아직 어떤 단계에도 닿지 못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다. 포문을 여는 가장 차분한 순간. 운율만이 감도는 읊조림엔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말라는 경고문이 엿보인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포인트는 ‘없는 낙원’이 아니라 ‘도망’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어딘가로 도망칠 뿐이고, 그 어딘가들이 낙원을 빙자할 뿐이다. 스테판은 언제까지나 도망쳐왔고 여전히 도망칠 뿐이다. 지금이 아닌 어딘가로, 낙원이어야 할 어딘가로. 모두에게 중지를 올리고 마네킹들을 학살하며 운을 뗀다. 죽음이란 언제나 가깝고도 멀다고. 그에겐 진리가 존재하며 묵시록은 단 한 문장이다.
Beware, God is watching
전깃줄을 끊고 퉁겨대는 줄악기, 전신주를 잘라 두드리는 쇳덩이. 소리는 기다란 운구용 리무진에서 새어나온다. 앞서 소개한 운전수 하나 그리고 송장 운반수 둘. 잭 힐과 앤디 모린. 그들은 앙상한 에펠탑을 지향한다. 파라핀 없이 촛대 위에 심지를 세우고, 썩어 닳아버릴 살점 따위는 애초부터 모두 도려낸다.
스테판이 폭발적인 흡인력을 보여줄 때, 소음 내지 아방가르드의 극치처럼 비유하는 배경 악기들의 구조력은 하나하나의 포화도가 짙을지언정 절대 수가 많지 않다. 그래서 <Exmilitary>의 어떤 곡을 꺼내도 프로덕션이 스테판의 아성을 물리치는 순간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전자음악과 글리치 성향을 한껏 흡수한 후기작에도 스테판의 펑크 미학만큼은 잡아먹히지 않는데, 오늘날에도 그들이 힙합이란 카테고리에 묶이는 지침이라 생각한다.
<Exmilitary>는 그리 많은 시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보위, 핑크 플로이드, 배드 브레인즈와 블랙 플래그 정도의 이름난 카데바들이 누워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독자적인 국경을 깨트리지 않으며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이 전시회에서 주된 메시지는 스테판의 정신질환과 과대망상이고, 연주자를 포함한 세 주연을 빼면 소품 따위의 샘플들이란 간접적인 메타포로 발현할 뿐이다. 플런더포닉스를 죽이던 음악 산업의 재산 권리를 지나치며, 시대가 당면한 예술의 자충수 그 자체를 음악에 흡수시킨 듯하다.
초장에 선포한 "Beware"를 벗어나면 향락과 소비로 점철한 가사들뿐이다. 본 주제를 드러내는 곡이 그리 많지 않다("Takyon (Death Yon)", Culture Shock", "Blood Creepin"). 호르몬을 태우는 냄새가 퍼지고, 가끔 문화를 비꼬는 통찰도 갖추고, 이야기 내내 스테판이 몇 명을 죽이는지 셀 수 없지만, 모든 은유가 ‘강렬하게 상상을 찢는 음악’이란 값어치 뒤에서 천천히 몸집을 불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어디까지나 세크라멘토 트리오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면, 이 피카레스크 시나리오가 암시와 암시의 거듭으로 끝나는 이유는 꽤 뚜렷하다. 관객들과 소통할 대화 주제는 정해졌고 남은 건 전달 매개 뿐이다. 유망한 잠재력으로 멀게 내다보며 "On GP"에 도달하기까지. 글리치 사운드의 도입이든, 하드코어 펑크 랩이든, 한 예술가의 혓바닥까지 뽑아 만든 박제든, <Exmilitary>는 이후의 컨셉츄얼한 작품들에 앞선 프리퀄처럼 작동한다.
모든 허무주의가 죽음과 연결되어있고, 그 죽음은 마치 소멸과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이 화장터는 분명히 예술을 피워낸 창조와 잉태의 현장이다. 그 염세적인 시선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만든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2011년에서 오늘날까지 닿는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오늘보다 더 깊게 오늘과 마주하는 듯하다. 예술과 예술가는 여전히 구렁텅이에 처박혀있지만, 누군가는 오늘도 그 아스팔트 위를 밟고 지나간다.
길로티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인
🤔
'강렬하게 상상을 찢는 음악' 앨범 그 자체를 나타내는 구절이네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당 😋
난해하게 쓰신 만큼이나 재밌게 읽었는데, 딱 하나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면... 찰스 맨슨에 대해서라면 전 쿠엔틴과 의견이 같다는 겁니다. 반어적인 표현으로 쓰셨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 외에는 — 저는 데스 그립스의 음악을 힙합으로 보는 건에 대하여 아직까지 조금의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입장인데, 라이드의 펑크 정신이 팀의 음악을 힙합 카테고리에 묶이게 하는 지침이라는 대목이 마음에 들었네요. 그 펑크 정신에 좀 더 집중해봐도 될 것 같아요.
제 글을 다시 읽어보니 저야말로 찬양인지 격하인지 잘 모르겠는 입장이네요 🤔 다른 얘기로 결론내리자면 세상에 존재한 어떤 괴물이든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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