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y woods - GOLLIWOG
영화가 시작된다.
공포라는 추상은 언제나 뚜렷한 무언가가 일으킨다. 절단된 팔다리, 물밑에서 튀어올라 펄떡이는 고깃덩이, 죽은 사람과 산 괴물, AR-15, 머리 잘린 인형, 허수아비, 수류탄, 낡은 칼자루. 집 안의 존재들은 모두 널부러져있다.
billy woods는 미완성된 무언가들을 과하게 흐트려놓는다. 살고 죽은 자태들은 단 삼십 초도 등장하지 못하고, 영화에는 물론 관객들의 기억에도 또렷히 남지 못한다. 크레딧에는 수백 수천의 이름이 올라가지만, 상영관에 팔기 위해 삭제시키다 무엇도 남지 않은 모습이 된다.
billy woods의 이야기도 조각나 있다. 그는 존재들을 빌려 말을 전하려고 하지만, 본질을 허물어 잘라내고 잘라내며 정작 마주하고도 지나치고 잃게끔 한다. 거울을 매만지며 기억을 짚으려 하지만, 거울은 잔뜩 조각나고 갈라져 비치는 모습을 알아볼 수 없다. 그는 굳이 조각을 맞추지 않는다. 거울을 들여다보려면 우선 빛이 있어야 한다.
영화적 프로덕션은 관객들에게 숨구멍조차 막힌 가면을 씌운다. 그러고는 끝마무리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간다. 조악하고 일그러진 악조들이 깔리고, 가사들은 공중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게만 굼뜨게 움직인다.
이야기는 아니다. 진전할 듯 상황을 흩뿌리고 사라진다. 누군가가 죽고 다치고 도망치지만 그뿐이다. 서서히 불타는 집에서 주인공은 어디로도 달리지 않는다. 그저 잿더미가 된 곳곳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야기는 목표를 잃고 관객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인공만이 남는다.
<GOOLIWOG>은 역동적이지 않다. 듣고 보았던 회상들엔 긴박함이 사라지고, 감상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무뎌지다 다시 굳어버리고는 또 무뎌진다. 고통의 연속에서 감정의 등락은 사라진다. 잿더미에 갇혀 깔려 죽기 전까지 유영할 뿐이다. 공허함을 뒤로 하면 아무런 재미도, 보람도 남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이야기다.
관객은 한 번 본 공포 영화를 다시 찾지 않는다. 끝을 알게 된 이상 영화는 더 이상 관객을 겁주지 못한다. 그들에겐 남은 공포가 없다. 그들에게는.
billy woods는 다르다. 기억은 누군가의 경험이다. <GOLLIWOG>은 공포를 뒤집어 토해낸다. 이질적인 무언가는 삶에 저며들면 기시감으로 남는다. 그의 코끼리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공포란 식상하고도 살벌하다.
이 공포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그에게 제일 공포스러운 사실이다. 그는 되돌아간다. 영원히 이 곳에 산다.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된다.
난해해서 제대로 못듣겠던데 ㄷㄷ
장르가 의도하는 바라고 생각해요
저는 좋긴 했는데 잘하는 거 또 한다라는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네요 그리고 펄서베이션,케니 시걸의 프로듀싱 실력을 보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네요…
예술성이나 완성도 자체는 Aethiopes로 정점을 찍었으니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혁신적인 변화보다 세세한 디테일로 살아온 사람이니 이 정도 커리어에서 겹치는 앨범 하나 없이 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도 Preservation 싸랑해요잉 으항항항
Eastern Medicine, Western Illness <--이거 혹시 들어보셨나요 안 들으셨으면 빨리 ㄱㄱ
명작 🤯
나에게 오리엔탈리즘은 우탱 뿐이다... 싶지만 요것도 좋긴 합니다
아 이거 숨은 맛집인데
컨덕터의 살벌한 비트를 듣고 싸버렸습니다… STAR87의 비트는 그저 감탄만 나옴. 그나저나 윗분말처럼 잘하는거 또한건 맞긴한데 그것조차 해내는 아티스트는 매우 드물고 어려운 일이기에 빌리우즈는 이제 거장급의 래퍼인듯 합니다. 이제? 는 아닌거같긴 하지만 아무튼 빌리우즈는 next level에 존재하는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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