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음악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오래 고민해온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음악은 내게 언제나 배경에 가까운 것이었다. 처음 진지하게 들었던 힙합 앨범은 Kanye West의 Graduation이었다. 11학년 무렵, SAT를 준비하던 어느 무기력한 오후에 무심코 플레이리스트를 넘기다 들었고, 그때의 필자는 그것이 단순히 좋은 사운드라고 느꼈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변화는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 나타났다. 룸메는 필자보다 두 살이 많은, 어딘가 체념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MF DOOM의 MM..FOOD를 건네주었다. 별말 없이 틀었고, 나도 별생각 없이 들었다. 앨범이 끝을 맺고, 나는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왜 그랬는진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조용해졌고, 그냥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무언가가 남았던 것 같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때부터였다. 필자는 힙합, 그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의 조용하고 모호한 힙합들에 끌리기 시작했다. MIKE, Ka, billy woods, Mach-Hommy, 그리고 이어지는 무수한 이름들. 캠퍼스 벤치에 혼자 앉아 있던 공강 시간, 책가방도 안 풀고 듣던 MAY GOD BLESS YOUR HUSTLE, 기숙사 침대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보며 듣던 Honor Killed the Samurai. 그 음악들은 늘 주변 풍경과 어긋났지만, 내 감정엔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그들의 음악이 마치 삶과 삶 사이의 틈에 흘러들어오는 소리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필자는 종종 생각한다. 음악은 왜 그렇게 자주 우리를 혼자 두는가. 아니, 왜 어떤 노래는 들을수록 나 자신을 더 낯설게 만드는가. 음악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의 빈자리를 가리킨다. 무엇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감정. 그 희미한 감촉만을 되살린다. 때로는 몇 년 전 버스 창가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혹은 밤늦게 부엌에 혼자 앉아 있던 그 기분이 되살아난다. 언더 힙합은 특히 그렇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구체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일상 속에서 지나쳐버린 어떤 순간을 천천히 끌어올려 보여준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알게 된다. 음악이란 건 어쩌면,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잠시 느끼게 해주는 일시적인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느 날 밤, 학교 도서관에서 혼자 리포트를 쓰다가 잠깐 밖으로 나왔던 적이 있다. 눈에 띄게 추운 날이었는데, 그 짧은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헤드셋으로 Ka의 That Cold and Lonely가 흐르고 있었고, 그건 그날 내게 유일하게 진심으로 들리는 말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를 꼭 집어서 얘기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말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 덤덤했다. 그냥, 내가 언젠가 사라진다는 걸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은 어떤 장례보다도 더 조용하게, 더 정확하게 인간을 위로한다. 그리고 언더 힙합은 그중에서도, 말의 끝에서 시작되는 마지막 언어다. 나는 그것을 기숙사 침대에 앉아 듣는다. 지금도, 아주 조용히, 어딘가에서 내 마음 속의 작은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좋은글.
갠적으로 음악은 현실에 처한 나의 맥락을 바꾸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음악에 따라 주변의 것들이 달라보이기 때문입니다.
구름은 왜인지 모르게 사람들의 연기가 뭉쳐진 것 같고,
등교 길이 왜인지 모르게 따뜻한 아침을 느끼며 나서는 것 같이 느껴지게 만드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을 바꾸는 힘은 시간적 요소가 담긴 음악의 특별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맥락은 시간에 의해 형성되기에 특히 그렇습니다.
세상은 시간으로 맥락을 만들어 지금까지 맥락을 만들고 있고,
음악이 우리들의 심상에서 꺼내와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거든요.
저는 이러한 특성이 음악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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