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jii & Swarvy - DUE RENT [Blends]
DUE RENT의 원형이 격자처럼 분절된 도시 생활의 고단함을 담은 다이어리였다면, DUE RENT [Blends]는 그 다이어리를 빗속에서 펴 읽는 행위에 가깝다. 비트는 더욱 느슨하게 풀리고, 구조는 덜 분명해졌으며, 서사는 소음을 통과한 후의 침묵처럼 감정의 골짜기에 잔잔히 가라앉는다. 여기엔 명확히 구분되는 시작과 끝이 없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마치 방 안의 먼지처럼 둥둥 떠다니며 음향의 틈새를 맴돈다.
Swarvy는 이 Blends 시리즈에서 본인의 프로덕션을 다듬기보다는, 기이하게 왜곡된 일상의 시간감을 불어넣는다. 베이스라인은 더 무겁고 두텁게 깔리지만, 동시에 그 위에 흐르는 루프는 유려하고 몽환적이다. 기존 DUE RENT의 거친 붓질을 지우개로 살짝 문지른 듯한 이 어레인지 속에서, 각 트랙은 명확한 선을 그리기보다 의식의 흐름처람 흘러간다. kol' game과 같은 트랙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신시사이저의 떨림과 공간감을 보면, 이 작업이 단순히 재편집의 차원을 넘어선 감각 자체의 재배열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lojii의 랩은 여전히 직설보다는 관조에 가깝고, 그는 문장을 명확히 마무리하지 않는다. 어미는 종종 흐려지고, 플로우는 일정한 리듬을 거부한 채, Swarvy의 프로덕션 위를 조심스레 걷는다. 원작에선 가사의 리듬이 마치 생존을 위한 신경의 긴장처럼 느껴졌다면, 이 재구성된 공간 안에서는 그것이 낮게 깔린 피로의 정서로 바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앨범이 의도적으로 나를 몰입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앨범은 오히려 뒷자리에 물러서서, 당신이 먼저 그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린다.
이 재구성은 단지 새로운 버전이라기보다, 동일한 기억을 다른 감각으로 더듬는 과정이다. DUE RENT가 사회적 현실의 가장자리에서 만들어낸 메모라면, Blends는 그 메모를 들여다보는 시선에 대해 더 많은 말을 건넨다. 무엇을 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가 중심이 되는 구조. 한 곡, 한 구절, 하나의 베이스 음이 당시에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기보단, 그것을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감각하는지를 묻는다.
이 앨범은 재생산이 아니라 재사유다. 소리와 말, 공간의 온도, 기억의 결까지 다시 조정하며 원작의 미학을 곱씹는다. 빠져 있던 리듬감은 더 밀도 높은 공간감으로 대체되고, 흐릿해진 서사는 더 넓은 해석의 여지를 낳는다. 음악의 물성이 바뀌었는데, 그 감정은 여전히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달라진 건 방식이다.
Swarvy와 lojii는 여기서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다시 들려준다. 그리고 그 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섬세하며, 무엇보다도 오래 남는다.
점수는 light 8.
커버 매우 취향이네여 듣고 읽어보겠습니다
순간 스월비인줄 알았네
암튼 잘 읽었습니다
뭔가 묘사가 이성적인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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