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pping. - Dead Channel Sky
모든 게 송신 중단됐다. 신호는 잡히지 않고, 화면은 하얗게 죽어 있다. 그 속에서 clipping.은 다시 목소리를 낸다. 한 번도 손을 놓은 적 없던 실험 정신, 무자비한 소리의 외곽에서 끌어낸 공포와 저항의 어휘들은 이번에도 여전히 강박적일 정도로 정교하고 극단적이다. Dead Channel Sky는 그들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서사적 공포 힙합의 정점에 닿는 작품이자, 아예 그 너머의 공백을 탐색하는 앨범이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건, 이들이 이제 서사마저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엔 분명히 이야기꾼이 있었다. 피와 살의 묘사를 늘어놓으며 도시의 지옥을 리포트하던 래퍼가 있었고, 나는 그 지옥을 몰래 엿보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Dead Channel Sky에선 그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깨져 있다. '누가, 왜, 어디서' 같은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다. 목소리는 더 조각나고, 문장은 누락되며, 대부분의 트랙은 무언가 전해지지 않은 채 유실된 문서처럼 들린다.
이런 무질서의 중심에서 Daveed Diggs는 여전히 랩을 한다. 하지만 그 랩은 더 이상 표현이 아니라 기록에 가깝다. 정보가 사라지고 의미가 죽어가는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말의 껍데기를 남기는 것뿐이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톤으로 반복과 암시를 쌓아가며, 내가 무언가를 이해하기보다는, 점점 더 피로해지고 굶주려지게 만든다. 전파가 끊긴 세계에서 말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 그 자체가 이 앨범의 윤리이자 메세지다.
사운드 디자인은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이다. clipping.은 더 이상 힙합이라는 장르의 테두리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이건 노이즈, 글리치, 다크 앰비언트, 혹은 그 어떤 것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드럼이 사라지고, 리듬을 무력하며, 때로는 말소리조차 붕괴된다. 하지만 이 무질서함은 결코 즉흥적이지 않다. 오히려 소리 하나하나가 광적으로 조율되어 있다. 트랙들은 불쾌하고 둔중하지만, 동시에 밀도 있고 서늘하다.
Dead Channel Sky는 명확한 메세지를 들려주는 앨범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메세지가 더 이상 전달되지 않는 세계, 통신이 의미를 잃은 시대, 말이 도달할 수 없는 거리. 그 비극적 공백 자체를 견디며 끝내 입을 여는 앨범이다. clipping.은 우리에게 질문도, 해답도 주지 않는다. 다만 죽어가는 송신기 앞에서, 그것이 작동하던 마지막 순간을 귀에 들려준다. 그리고 그 순간의 절실함은, 우리가 사라진 언어 위에서도 뭔가를 붙잡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점수는 Strong 8.
신보 나오고 썼던 글 재탕입니다.
글 잘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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