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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Frank Ocean - Blonde

브라이언이노2025.03.27 22:06조회 수 1531추천수 21댓글 37

Cover art for Blonde by Frank Ocean

Frank Ocean - Blonde

Genres : Alternative R&B, Art Pop

Total length: 60m

10 /10

by 파라뇽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그 순간을 근원으로 하여 세상은 찢어져 버리고, 난 그 사이에서 창조된 또 다른 세상으로 끌려간다. 이곳에서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밟은 채 잿빛 현실을 떠받치게 된 나는 세상이 뒤집혀버린 것만 같은 기이한 낯섦 속에서 피어오르는 꿈과 식어가는 실재의 경계이자, 투명한 막처럼 얇지만, 분명한 층위의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곳에 섬세하게 깔린 그이의 삶을 투영하는 뿌연 물에 두 발목을 적셔가며 느낀 것은 적막이 아니라, 마치 고요하게 출렁이는 수면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부드러운 안개이다. 이러한 안개 속 가득 차 있는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그이의 목소리에 의지하다 보면 짙은 안개 속에 있지만 흐릿함 너머의 세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으며 더 나아가 미래까지도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질적인 시야를 가지게 된다.

 

내가 밟고 있는 분홍빛 하늘은 몽환이면서 생명력을 부여받은 별자리들의 공간이다. 내가 떠받치고 있는 잿빛 현실은 불안과 고통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구속의 시작이자 서로를 피로 물들이는 고슴도치들의 공간이다. 원래의 나는 현실에서 받아 온 상처들이 자기혐오라는 흉터로 새겨질 때쯤 몽환으로 도피할 뿐이었고 이 몽환 또한 그저 응결된 수증기이자 손짓 몇 번에 사라져 버림을 깨닫게 되었었다. 그렇게 난 현실로 다시 돌아가고 또다시 도피하고 이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상태로 요동쳐왔다 이 두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며 불안감만 키워오던 나를 진정시킨 것은 앞서 설명한 그이 Frank Ocean과 그이의 음악 Blonde이다.

 

Blonde는 분홍빛 하늘과 잿빛 현실 사이의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공간에 발을 디디는 순간 불안감에 잡아먹힌 감정들이 마치 이곳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한순간에 가라앉고 길을 잃은 채 요동치던 나 자신은 이 얇은 경계 위에 조용히 멈춰 서게 된다. 난 가만히 서서 두 발목을 자작한 물속에 잠그고 비로소 짙은 안개를 뚫고 흐르는 잔잔한 물결과 같은 Frank Ocean의 목소리를 느낀다. Frank Ocean의 노래가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Frank Ocean의 그토록 사적인 이야기들이 그 '개인적'이라는 본질을 초월해 나에게로 스며들며, 비록 노랫말 속에 담긴 구체적인 서사들이 나의 삶과 대응하여 맞닿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노래가 만들어낸 이 공간 자체가 마치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한 파편화된 감정들을 끌어올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결국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감각 속에서 어느샌가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흘러내린 눈물은 이 경계의 바닥에 깔린 물에 닿아 작은 파동을 만들어낸다 이 작은 파동은 Frank Ocean의 목소리에 보강되어 점차 커져 나가고 이 미지의 세상의 끝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러니까 Frank Ocean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음악이 나에게로 흘러왔고, 다시 그 음악이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건드리며 새롭게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 무한히 확장된 것이다. 앨범이 진행됨에 따라 감정의 물결이 점차 커지고 깊어질수록 나의 눈물은 단지 몇 방울 떨어져 작은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주체할 수 없이 흘러 이곳을 눈물의 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이는 단순 발목까지밖에 오지 않던 물이 내 감정에 의해 날 빠트릴 만큼 부풀어 올랐다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의 물결이 점차 커지고 깊어질수록 나는 음악 속으로, 그 경계의 공간 속으로 더욱 깊이 잠겨지게 되며 처음엔 그저 경계 위에 서 있던 내가 그 물결에 빠져 가라앉게 된다. 난 이 눈물의 바닷속에서 계속해서 가라앉아 가며 떠받치고 있던 잿빛 현실을 내려놓은 채 분홍빛 하늘, 몽환으로 떨어질 뿐이다. 이 몽환은 이전의 몽환과는 달리 견고하다 단순히 응결된 수증기이자 손짓 몇 번에 사라져 버리는 그런 몽환이 아닌 한없이 많은 감정이 개인으로부터 시작해 무한함으로 나아가는 그 과정이 응축된 위로와 안식으로써의 몽환 말이다. 그렇기에 더 견고하다 그렇기에 내 흉터들을, 트라우마들을 잊게 해준다 현실 속에서 타인의 가시에 찔려 터져 나오던 피를 멎게 해준다. 내가 나의 가시로 타인을 아프게 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흐르던 음악이 마지막 트랙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끝내 선택해야만 한다. 1광년의 시간을 담은 이 곡이 흘러나오는 동안 나는 내 아래로 펼쳐진, 나를 끌어당기는 끝없는 몽환의 바닷속으로 영원히 가라앉을 것인지, 아니면 Frank Ocean이 내게 보여준 신비로운 경험을 가슴에 품고 다시금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 

 

나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Frank Ocean의 음악은 결코 손을 내밀어주는 친절한 위로가 아니다 그저 훌륭한 앰비언스, 얼터 알앤비 사운드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며 그것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흘러 들어가고 어떤 의미로 확장될 것인지에 대한 해석을 듣는 이에게 온전히 맡긴 채 존재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세상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무심한 태도가 더 깊이 와닿는다 나는 이 앨범을 통해 현실 속에서 도피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이 음악이 알앤비의 음악적 경계를 허물었다든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든가 혹은 음악적으로 얼마나 완벽한지에 대해 따지고 싶지 않다. 그저 이 음악이 나의 불안정함을 허물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새 지평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과정이 너무나 완벽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블론드.jpg

신고
댓글 37
  • 3.27 22:07

    엘이정상화는 역시 대 오 션

  • 3.27 22:12
    @HomixideGang

    인기 똥글 사이에 들어갈 수 이쓰까

  • 3.27 22:10

    선추후감

    근데 파라뇽이 누군가요

  • 3.27 22:10
    @따흙

    접니다 ><

  • 3.27 22:11
    @브라이언이노

    아하

  • 표현을 너무 잘하시네요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의식의 흐름으로 글을 쓴 듯 한데 묘사가 너무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느낌...

     

  • 3.27 22:13
    @HaveㅣAㅣnICEㅣLife

    솔직히 말하면 한 줄 평을 급하게 늘린 거긴 해요

  • 3.27 22:50
    @HaveㅣAㅣnICEㅣLife

    공감합니다

  • 3.27 22:52
    @뾴감이

    미아내

  • 3.27 22:55
    @브라이언이노

    아녀 별로였단건 절대 아니고

    그냥 제가 느낀 것과는 다르다 이정도

    감흥 자체는 비슷했을 것 같아요

    근데 구체적으론 많이 다르다 이 얘기..

  • 3.27 22:25

    선추후감

  • 3.27 22:33
    @에미넴앨범

  • 3.27 22:36

    개추 빠르게박히네 나도 리뷰나써야하나

  • 3.27 22:36

    잘봣어용

  • 3.27 22:38
    @Melted

  • 3.27 22:38
    @Melted

    ㄱㄱㄱㄱㄱㄱㄱ

  • @Melted

    리뷰 적당히 잘 쓸 수 있으면 짭짤하게 벌립니다

  • 3.27 22:41

    흠,,,블론드는 딱 저런 느낌이네요

    사진이요

  • 3.27 22:42
    @현명한철학자

    ㄹㅇㅋㅋ

  • 3.27 22:43

    슬픔

  • 3.27 22:43
    @GunzNButter

    울어라

  • 3.27 22:43
    @브라이언이노
  • 3.27 22:52

    오히려 정성스레 쓰신만큼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 블론드의 중심이 꼭 몽환적인 감성에 있다 생각하진 않아요

    당연히 감상은 다들 환경 나름이라 저도 재밌게 읽었다만

    전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고 앳된 도시가 떠오르더라구요

    초반부는 그래도 비슷하게 느끼긴 했습니다

    실제로 자연 느낌의 사운드가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보니..

    쨌든 너무 잘 읽었어요!! 막문단처럼 작품의 평가와 별개로 제 인생의 윤활류 같은 앨범

  • 3.27 22:55
    @뾴감이

    항상 리뷰글 정성껏 읽어주시고 감상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소중한 댓글이네요

  • 1 3.27 22:56
    @브라이언이노

    추천보다 그냥 이모지 딸랑 하나 보다..

    이 글에 들어간 정성과 시간 그리고 경험들을 사람들이 더 알았음 좋겟네요

    앞으로 더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3.27 22:58
    @뾴감이

  • 1 3.28 01:02

    몇몇 극소수의 앨범들은 저에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겨를도 없이 감정적으로 파고드는데, 블론드가 그 중 최고봉 아닐까 합니다. 근데 그게 신기한게, 나만 그런게 아니란 거에요. 많은 아마추어들의 블론드에 대한 감상문을 읽어보면 놀랍도록 감정에 집중하고 있어요. 본 작이 지닌 얼터알앤비 씬에서의 영향력이랄지, 팝스러운 멜로디메이킹과 앰비언트 그리고 알앤비의 밸런스 있는 조화랄지, 사실 어느 방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내어도 훌륭한 작품이잖아요. 그럼에도 다들 각자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블론드는 참 잘 만든 음악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 3.28 12:25
    @끄응끄응끄응

    와ㅜㅇㅈ

    다들 자기 자신 얘기를 하고있었어

  • 3.28 20:37
    @끄응끄응끄응

    그니까여 정말 감정에 집중하게되는 거 같아여

  • 개추 7번 누르고 갑니다

  • 3.28 20:37
    @돈없는길치

  • 3.28 02:14

    대 황 파

  • 3.28 20:37
    @Irvine

    란노을

  • 3.29 19:01
    @DJ브라키오사우르스

    ㅎㅎ

  • 3.29 19:00

    엘이 메인 배너 ㅊㅊ

  • 3.29 19:01
    @PDFMAFIA

    ㄴㅇ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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