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boi Carti - MUSIC
"당신이 사랑에 빠진 것이 <Die Lit>인가, 아니면 카티 식의 급진주의인가". 카티의 세 번째 정규앨범의 리뷰에 즐겨보는 블로거의 "Whole Lotta Red" 리뷰 한 문장을 인용하려던 내 계획은 안타깝게도 무산되었다. 지금 와서 위의 질문에 답해보자면 나는 후자인 것 같다. 카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또 얼마나 급격하게 꺾어댈지 그 순간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팬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놈의 "Whole Lotta Red"는 아직도 오프라인 다운로드 목록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여전히 고개가 흔들리고 다리가 들썩인다. 그렇다면 "MUSIC"을 들으며 나의 고개와 다리가 요지부동인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상황을 새 앨범의 음악적 퀄리티와 곧장 결부시키기에는 카티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는 꼴이 될 것만 같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MUSIC"은 "Die Lit"의 카티도 아니고, "Whole Lotta Red"의 카티도 아니거니와 급진주의의 카티조차 아니다. 이 앨범을 어떠한 예술적인 수식어로 포장해 본들 카티의 유니버스, 오피움의 유니버스, 그리고 애틀랜타의 유니버스에서는 진부하다는 표현조차 진부할 만큼 익숙한 요소로 가득하다. 기대를 한껏 끌어올리는 낯선 오프닝, 적당한 순간에 튀어나와 적당히 감미로운 훅을 던지고 가는 위켄드, 메트로~, 항상 우울한 퓨처, 언제나 블록버스터 스타일을 고수하는 스캇까지. 이제는 애틀랜타 래퍼들이 애용하는 이 주형에 드디어 카티가 납을 부었다. 그뿐이다. 그러나 "MUSIC"은 퓨처나 메트로 부민, 21새비지가 아닌 카티의 앨범이기에 좋다/구리다의 이분법을 넘어 "이 앨범은 어떤 앨범인가"로 약간만 뒤틀어보자.
2020년의 크리스마스를 카티와 함께한 사람은 "Whole Lotta Red"에 대한 팬들의 실시간 리뷰에 표정이 굳어지며 라이브를 종료한 카티를 기억할 것이다. 왠지 귀가 아프고 믹싱이 더럽고 그냥 알 수 없고 이상하다는 절대다수의 반응과, 간헐적으로 등장한 긍정적 반응이 커뮤니티의 페이지를 규칙적으로 채워갔다. theneedledrop으로 활동하는 음악 평론가 판타노의 가혹한 평점은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에 힘을 더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연유로 이런 5점 주기도 아까웠던 알 수 없는 앨범이, 이제는 도리어 판타노의 트랩 음악에 대한 전문성을 의심하게까지 하는 역전 현상을 일으킨 걸까. 이러한 기제가 과연 객관적인 재평가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듯 감상을 사후 조작한 것에 가까울까. 카티는 그가 차곡차곡 쌓아온 레거시의 덕을 두 번이나 본 것 같다. 긴 기럭지와 적당히 마른 몸, 적당히 잘생긴 얼굴, 감각적인 패션 센스로 20년대의 시류를 시각화한 듯한 비주얼, 사운드 클라우드부터 "Die Lit"까지 트렌드와 영합하다 못해 주도하는 위치까지 올라간 독특한 에너지의 음악 스타일. 덕분에 그는 아티스트의 특성을 넘어 아티스트 그 자체를 사랑하는 젊고 혈기왕성한 팬들을 얻었고, 이러한 동력은 "Whole Lotta Red"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끝끝내 피치 포크가 그 해 최고의 앨범 9위라는 영예를 부여해도 적당히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그 레거시의 첫 번째 덕이다.
기존보다 다소 거칠고 부드러운 톤이 카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EVIL J0RDAN', 잠시나마 "Whole Lotta Red"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베이스와 그나마 켄드릭의 효용이 돋보이는 'GOOD CREDIT', 음산한 신스와 키보드가 뉴 카티와 가장 매끄럽게 맞물리는 'HBA'는 "MUSIC"의 하이라이트로 꼽고 싶다. 특히나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Fe!n'에 이어 가장 변화무쌍하고 유연하게 보컬을 운용한 작품이라는 점에서('TOXIC'의 퍼포머 리스트에 퓨처가 없는 것에 당황한 게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기다린 5년 중 대략 1년의 가치를 지닌다. 문제는 "MUSIC"의 5년이라는 제작 기간이 마치 1년간의 직접적인 음악 제작 기간 동안의 트러블을 없애기 위해 4년간 피처링진과의 인간관계에 투자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급조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망친 듯한 어정쩡한 일관성과, 또 위와 같은 팬들의 입장에서는 카티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적재적소에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과 함께 넘쳐흐르는 러닝타임이 더욱 꼴 보기 싫을 것이다. 트렌드의 최전선에 위치한 예술가들은 본인을 그곳까지 끌고 간 동력이 바닥나는 순간, 본인의 과거 혹은 여전히 음악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영향력에 질문을 던지곤 한다. 플레이보이 카티를 수식하는 '급진적인'의 태그를 이번만 자연스레 떼어내려면, 그 정당성은 비록 진부할지언정 애틀랜타 클럽의 포맷에 짜 맞춰진 레토르트성 비트에, 여전한 브랜드 가치를 자랑하는 진화된 보컬을 뽐내는 것으로 그의 에너지가 여전히 유효한 지 판단하는 것을 한차례 유예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 어떨까. 우리는 "MUSIC"이 바닥난 에너지를 쥐어짜낸 발악인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긍정적인 과도기를 함께한 것인지 당장은 판단할 수 없다.
이토록 뻔뻔한 모습에도 저항할 수 없는 것은, 결국 "Whole Lotta Red"로 쌓은 레거시의 두 번째 덕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기대한 카티의 음악이 이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공유되고 있다. 팬들이 공유하는 그 정서를 완벽히 채우지 못한 앨범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카티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는 꼴은 면하기 위해 "MUSIC"을 마치 라이브 콘서트용 앨범이라 생각해 보자. 카티가 골방에서 혼자 이러저러 목청을 다듬으며 준비해온 개성 넘치는 보컬을 라이브에서 실감한다는 상상, 암전 상태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POP OUT'의 강렬한 베이스와 따라오는 팬들의 열광, 위켄드, 스캇, 퓨처, 우지, 영 떡, 트랩의 정석을 기술한 인물들의 등장까지. "Whole Lotta Red"가 레거시를 통해 능동적인 재검토 현장을 불러왔다면, 본작 "MUSIC"은 그러한 레거시에 감사하며 축포를 터뜨리는 작품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어찌 됐든 한동안 이 앨범을 재미있게 즐길 것이다. 불과 4개월 전 발매된 타일러의 "CHROMAKOPIA"와는 결이 살짝 다르지만, 그럼에도 특정 맥락에서 동일하게 해석되는 점이 있어 나의 "CHROMAKOPIA" 리뷰의 한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MUSIC"은 카티의 음악을 우리의 관념과 언어로 포착하고 규정할 수 있는 첫 작품이 될 것 같다.
https://blog.naver.com/nikesfm/223801046556
의도적인 아방가르드 종합행위예술 — 이라는 등지의 일부 포스트모던 의견에 슬슬 질리던 차였는데, 확실히 MUSIC을 해체할 수 있는 더 명료한 관점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지인 분과의 대화에서 MUSIC은 남부 힙합 버전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을 듣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 표현이 너무나도 확 꽂히네요.
캬 잘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앨범이지만 그만큼 아쉬운 점도 잘 느껴졌어요
또 5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않는다면 이번의 아쉬움은 충분히 넘어갈 수 있을테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도적인 아방가르드 종합행위예술 — 이라는 등지의 일부 포스트모던 의견에 슬슬 질리던 차였는데, 확실히 MUSIC을 해체할 수 있는 더 명료한 관점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지인 분과의 대화에서 MUSIC은 남부 힙합 버전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을 듣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 표현이 너무나도 확 꽂히네요.
의도적인 아방가르드 종합행위예술이라는 해석이 재미있긴 하지만 제 짧은 식견으로는 적당히 가벼운 애틀랜타 트랩으로밖에 느껴지지가 않더군요.. 남부 힙합 버전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은 뭔가 그럴듯 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매력도 있네요ㅋㅋ 재미있는 앨범임은 분명해요. 그냥 카티라서 재밌을수도 있고.
언제나 멋진 리뷰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장이 참 웃픈 느낌으로 심금을 울리네요.. 잘 읽었습니다.
자고로 래퍼라면 이런 앨범 하나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있는 리뷰도 쭉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카티식 급진주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앨범 자체는 많이 아쉬웠네요. "'MUSIC'의 5년이라는 제작 기간이 마치 1년간의 직접적인 음악 제작 기간 동안의 트러블을 없애기 위해 4년간 피처링진과의 인간관계에 투자한 게 아닌가 싶"다는 얘기 무척 동의하게 됩니다ㅋㅋ 그럼에도 동시에 판단을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도 공감이 가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피처링이 이번 앨범에서 특히나 많다보니 뜬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ㅋㅋ 그래도 이번에 가져온 보컬 좀 더 다듬어서 다음 앨범에서 제대로 보여주면 정말 대단한 뭔가가 나올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카티의 급진주의를 좋아하는 후자의 경우에 속하기에 많은 기대를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 듣고 이것밖에? 더 없어?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5년이나 기다렸는데 그에 걸맞는 보상을 받지 못한 느낌 ㅋㅋㅋ WLR 나오고 다음 해에 바로 나왔으면 그냥 아쉽네 하고 말 텐데 긴 제작 기간이 아쉬움을 배로 만든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네이버 블로그에서 아까 읽었는데 엘이 들어왔더니 인기글로 올라와있네요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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