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말할 수 있는 것의 시간 , 여기는 그 고향이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좋은 음반은 어떤 것인가. 무엇이 좋은 예술인가에 대한 기준은 다들 다를 것- 심오함, 깊이,재미, 아니면 들을 때 좋으면 좋은 앨범이다- 이겠지만 가장 유력한 정의는 히치콕과 트뤼포, 쿤데라의 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 매체의 존재이유를 증명하는 작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형식과 주제가 일치하는- 도저히 연극이 아니면 안 되는 연극/희곡, 영화적인 영화- 예술이 훌륭하다고 사료된다.
하지만 이 명료한 정의는 때로 음반이라는 정형화된 양식을 만날 때 흔들린다. 도대체 좋은 대중음악이란 무엇인가, 그 양식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예컨데 클래식,현대음악이라면 내가 무지하지만 확신하건데 그들은 음악만이 해낼 수 있는 것에 대한 논의와 해석이 있다. 다만 나로서는, 나의 좁은 시야에 대중음악에 대한 고민이 포착되지 않는 것은 아쉽다.
대중음악이 장르 구분에 좀 더 예민한 이유도 거기 있다. '그냥 음악이야' 라고 퉁치기에는 힙합과 컨트리는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처럼 멀어보인다. 그래서 우리들은 라벨을 붙이고 분류하고 정리한다. 때때로 그 약한 실선 위의 작품이 나와도 우리는 다시 명명한 다음 서랍에 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중요하다. 장르에 걸맞는 음반인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음반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2012년이 특별한 해이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 발매된 두 앨범 gkmc와 채널 오렌지가 작금의 위상을 성취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채널 오렌지는 많은 것을 제시했다. 얼터너티브 알앤비라는 장르와 그의 정체성에 얽힌 선언 등등 그가 원하든 원치않든 프랭크 오션은 일종의 개척자가 되었다.
반면 전자의 앨범은 실험과 혁신이 소거되어 있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명시하거니와 구조적으로도 스토리텔링을 하는 앨범이며 영화에 대한 비유도 무리는 아니지만 스킷을 삽입하고 연결된 이야기를 펼치는 형식은 새롭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켄드릭 라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힙합이라는 형식이 구사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감흥을 이끌어냈다. 그게 이 작품을 명반의 위치까지 올린 가장 큰 이유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켄드릭의 역량은 곧 동세대 힙합이 다다를 수 있는 역량의 최대치가 되었다.
켄드릭과 오션의 특이점은 그 둘의 방식은 달랐지만 도달한 지점은 같았다는 것이다. 두 앨범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한 소년/청년이 경험한 세상에 대한 감상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오션의 가사가 1인칭의 수필이라면 켄드릭은 여러 인물들과 시점이 교차하는 픽션에 가깝다.
켄드릭이 구성한 이 이야기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영어가 외국어인 동시에 들리는 랩이라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나는 가사 찾고 해석하기 귀찮아서 다른 사람들이 정리한 걸 그냥 봤다. 여하튼) 켄드릭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특수한 개인의 경험이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켄드릭의 표현력-가사, 래핑 두 가지 측면- 은 흔함을 특별한 절실함으로 변화시킨다. poetic justice, good kid, m.A.A.d city로 이어지는 구성은 랩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경찰서에서의 대화와 그로 밝혀지는 컴튼의 환경,좋은 아이가 미친 도시에서 타락하는 과정들을 묘사하는 켄드릭의 솜씨는 가히 기념비적이고 왜 이 앨범이 일매틱과 비교되는 지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나는 가사들을 보고 알았지만 )대단한 작사법이다.
켄드릭의 래퍼로서 가장 큰 재능은 다양한 플로우의 구사와 거기서 오는 청각적 쾌감, 그리고 그걸 넘어서는 연기력과 가사에 있다. 이 앨범에서 단 하나의 곡을 고르라면 sing about me, i'm dying of thirst인데 세 화자들을 연기하며 그들을 엮어내는 이 놀라운 기예는 말그대로 힙합이라는 양식이 필요한 이유를 각인시킨다.
그래서 미친 도시에서 자란 착한 아이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가 겪은 비극은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반복될 것인가.
켄드릭의 랩은 이런 질문들을 올스타 프로듀서들과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절묘한 압운에 올린다. 사운드는 세련되었고 어떤 면에서 소울풀하며 재즈스럽기도 하다. 켄드릭은 랩 훅이라는 개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중독성 강한 훅들은 매혹적이다. 사운드 적으로도 랩이 가지는 현악기적 쾌감과 타악기스러운 타격감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이 앨범의 가치는 미래지향적인 혁신성에 있지 않다. 94년의 나스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통찰에, 그리고 단단한 비트와 훌륭한 라임과 래핑이라는 기본기에 있다. 그리고 그게 이 앨범이 클래식이 될 운명을 가지게 된 이유다.
음악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은거 같네요
과연 지금의 켄드릭이 이때의 켄드릭을 이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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