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러의 신작은 문자 그대로 힙합 앨범이다.
곡들은 대체적으로 랩으로 빼곡히 채워져있고 랩을 통해 연결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flower boy나 igor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첫 트랙 sir baudelaire를 듣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깨닫는다. 나는 단 한번도 악의 꽃과 파리의 우울을 쓴 전설적인 프랑스 시인인 보들레르를 타일러가 인용하면서 시작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일종의 자신감이겠지만 유희일 것이다. (더군다나 악의 꽃이 동성애를 다룬 시가 수록된 시집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그 다음 곡인 corso는 강렬한 베이스와 리듬으로 타일러와 dj drama의 퍼포먼스를 보좌한다. lemonhead는 어떤가? 42drugs와 단단한 랩으로 이끌어나가다가 종반부 부드럽게 전환된다. 그리고 그 전환은 다음 트랙은 wusyaname의 암시로 기능한다. wusyaname은 부드러운 사운드를 가진 알앤비 곡처럼 들리며 동시에 이 곡서 가장 예상치못한 전환을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manifesto에서 사회적 이슈/그에 대한 발언요구에 대한 타일러의 가사와 sweet/i thought you wanted to dance였다.
특히 sweet에서의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한 분위기와 i thought.. .에서의 레게사운드와의 연결은 그 자체로 타일러를 설명한다. 타일러가 아니면 당최 누가 이런 곡을 만들까. i thought.. 은 그 자체로 타일러 최고의 랩 퍼포먼스가 담겨져있다. 레게 리듬과 감미로운 멜로디의 결합은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청자들에게 igor를 연상시키도 한다.
피처링 진들은 타일러와 함께 곡들을 이끄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부분 역시 특기할 가치가 있다..) 특히 juggernaut에서의 릴 우지의 퍼포먼스와 dj drama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지속적으로 앨범은 call me if you get lost라는 구절과 여행이라는 모티브를 반복한다. 이는 타일러의 메시지일 것이다. 이 앨범은 사운드나 가사나 타일러의 취향의 전시장 같다. 타일러의 우상인 넵튠스부터 90년대가 연상되는 알앤비, 레게 사운드, 전형적인 힙합비트까지 타일러는 정신없는 취향을 나열하고 예상치못하게 진행한다. 가사는 머니스웩부터 사회적 발언에 대한 본인의 생각 등등을 넘나든다.
그러니까 '길을 잃으면 전화해'는 타일러의 이 다양하고 난잡한 취향의 세계서 혼란스럽다면 연락해 정도 되지않겠는가.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인 바틀비는 이런 말을 남긴다. '저는 하지않음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리고 바틀비는 그렇게 한다.
타일러가 바틀비와 비슷하다. flower boy는 타일러의 전작들과 달랐고 igor역시 그렇다. 본작은? 말할 것도 없다. 타일러는 팬들이 기대하고 예상하는 행동을 안 하는 편을 선택한다. 음악적으로나 실제 생활에서나 타일러는 자유롭게 나아가고 안 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21세기 대중음악계의 바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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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예술가가 박찬욱과 폴 토마스 앤더슨입니다. 둘 다 영화감독이고 세계적인 거장이죠.
개인적으로 이 둘의 영화에서 멋진 부분은 개성과 변화의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의 영화는 진짜 이런 영화는 이 사람들만 만들지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서도 전작에 대한 반발감이 강합니다. 전에 했던 것은 안 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죠.
서늘하고 건조한 복수는 나의 것 다음에 과잉과 폭발적인 올드보이를 만든 박찬욱이나 난잡하고 혼란스러운 인히어런트 바이스 이후 우아하고 기이한 팬텀스레드를 연출한 폴 토마스 앤더슨이나 태도가 비슷하달까요..
타일러도 유사한 방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행할까 이전에 이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고 결정하는 느낌이에요. 그 방향이 본인의 전작이든 팬들의 기대든 대중의 래퍼에 대한 관념이든 간에요. 그런 면에서 차기작이 가장 기대되는 래퍼이지않나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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