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2020년대에 들어서고, 어느덧 힙합 씬에도 수많은 변화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일각의 커뮤니티에서는 칸예 웨스트를 대체하는 인물로 제이펙마피아, 퍼렐 윌리엄스를 대체하는 인물로 타일러를 지목하는 한편, 둠을 대체하는 인물로는 얼이나 마이크 같은 인물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오버와 언더를 가리지 않고 하나의 장르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를 내어주며, 여러 변화를 맞이하는 것도 역사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게다가 그 후계자들은 위인들의 발자취를 좇는 것만이 아닌, 영역을 넓히고 발전을 추구하는, 혹은 아예 또 다른 변화를 꿰차는 양상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커다란 열매를 맺고 나면, 씨앗을 퍼뜨리며, 새로운 씨앗이 발아할 때를 기다린다. 나는 그 과정에서 훗날의 마이크(MIKE) 역시도 '가장 좋아하는 래퍼의 가장 좋아하는 래퍼'중 한 명이 되리라 예상하곤 한다. 그런데, 하나의 예상은 생각보다 다른 방식으로 들어맞았달까. 다르게 말하자면 힙합의 본질은 의식하되, 드러나는 양상은 그는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현장에서 마이크가 음악을 구성하는 방식은 그의 우상인 둠의 것과 닮아있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제조하고, 아낌없이 랩을 털어놓는 형식으로, 심지어 이를 구성하는 틀 역시도 둠을 연구하고 도출한 데에서 기인한다. 짧은 빈 공간에 욱여넣는 라임 수식들,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뚝심, 비트를 창조하는 창의성, 벌스를 털털하게 얹는 목소리 등. 어째 마이크의 작업 방식은 다방면으로 둠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 그가 빚어낸 세계는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가득하기에 제2의 DOOM이 아닌 MIKE로 기록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녹음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다시 녹음하는 방식으로써. 이제 마이크의 프로듀서 이명 dj blackpower 명의의 비트는 집의 골자를 구성하며, 위의 콘크리트는 일상을 살아가는 MIKE의 추상적인 랩으로 펴 바른다. 그렇게 <Showbiz!>는 마이크가 일상이자, 습득한 취향의 방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 되었다. 쇼 비즈니스라는 말 뜻대로, 마이크의 태도는 보여주기 위한 음악을 제작한 것처럼 느껴진다. 공연 투어 이후의 심상이 그대로 드러난 일기로 말이다. 투어를 마치고, 녹음을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치 일기와 같은 제작 방식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 게다가 마이크의 일기는 지나치게 개인적이지도, 지나치게 형식적이지도 않다. 그는 항상 중간의 적정선을 지키고자 한다. <Showbiz!> 전반에 걸쳐서, 마이크는 우울에 젖기도 하고, 약에 중독되기도, 엄마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한다. 게다가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말투에는 일상적인 어투 속에 아티스트의 면모가 한 스푼 더해진 기분이랄까. 그것도 Michael 개인의 삶과 래퍼로의 삶을 적절히 포개어 둔 형세로 말이다. <Showbiz!>가 이전 작품과의 차이점을 발하는 장면 역시도 이제는 그가 위치한 아티스트로서의 자리를 인식하고, 자신의 훗날을 보는 사이의 기로에 위치한다.
The prize isn't much, but the price is abundant, uh
Artist of the Century
<Showbiz!>는 이전 이야기쯤 되는 <Disco!>보다, 심지어 <Burning Desire>보다도 발전한 샘플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dj blackpower의 진두지휘 아래에서 여러 샘플링들이 빛을 발하는데, 그의 샘플링 실력은 작품의 세계관을 투영하는 데 가히 또 다른 경지에 도달했다. 인트로 "Bear Trap"와 같은 곡의 드럼 리스 및 재즈 보컬 활용은 이젠 마이크의 가장 크나큰 장기로 여길 만하며, "man in the mirror"의 건반 리듬을 "Artist of the Century"의 강렬한 플루트 리듬으로 이어가는 장치는 과연 작품의 백미이자 온전한 마이크의 프로듀싱 역량으로 볼 수 있겠다. "Then we could be free..", "Watered down" 같은 트랙의 소울 보컬 챠핑은 딜라의 그것과도 견줄 만하며, "#82", "Da Roc"의 먹먹한 로파이 비트들은 매들립의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The Weight (2k20)"의 거칠기 그지없는 재즈 색소폰 루프과 "Lucky"의 강렬한 소울 보컬 루프는 페기의 앨범에 들어가도 무색할 정도의 독특한 감상을 자아낸다. 마치 본인이 직접 페기의 샘플 창고를 간택하고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가공한 곡처럼 느껴진다. 이외에도 둠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보이스 내레이션 샘플들이나, 곡 끝이나 스킷으로 삽입한 글리치나 덥 사운드, 그리고 위 설명한 샘플들을 조각조각 내어 자기 입맛에 맞게 소화시킨 역량까지, 유행을 긁어모아 잘 기워낸 수공예 패치워크 음악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결국 쇼 호스트를 맡은 마이크의 비트들은 여러 힙합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고는, 기호에 맞게 다양한 악기들과 샘플들을 섭취한 뒤, 본인만의 가공 방식으로 독특한 스타일의 의복으로 완성하여 제공할 따름이다.
그런가 하면 패치워크의 바느질은 마이크의 랩으로 완성된다. 촘촘히 기워낸 랩 바느질이 <Showbiz!>의 구색을 맞춰준다. 둠의 DNA를 이어받은 다음절 라임이나, 공간 사이에 매워 넣는 하나의 벌스로 이뤄진 긴 길이의 랩과 코러스들이 마이크의 주된 장기로 등장한다. 다만 가면 뒤로 숨은 악당과의 크나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마이크의 섬세한 내면에 있으니, 그는 강하고도 약한 존재의 복잡성을 끊임없이 설파하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는 고유의 스타일 무대 위에서 몇 분 남짓한 시간으로 생각 및 주제를 정리하고, 한결 편하게 말하고 싶은 랩을 할 뿐이다. 다양한 문제를 마주하고 질문을 던지고 논의하는 뇌 안의 장면 역시도 음악과 랩으로 설득력을 부여한다. 마이크가 뇌 안의, 내면의 추상적인 흐름을 입 밖으로 끄집어 내는 순간의 마법은 둠이 부리는 신묘한 재주와는 또 다른 맛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파고드는 나선형의 랩 작법은 둠의 것과 대동소이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니, 둠과 다르게 그가 내뱉는 가사는 때로는 친근하나, 때로는 무겁기도 하다. 물론 올곧이 마이크가 고른 일상적인 단어를 통해서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셀프 타이틀이자 또 다른 인트로인 "Showbiz(intro)"는 19개의 트랙 뒤에 등장하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양질의 공연이자 세계관을 보여주려 한 마이크의 모습이 등장한다.(In this, my show, I have tried as much as possible to bring quality)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일련의 과정이 무대를 준비한 뒤, 본 무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짐짓 이해되는 구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던졌던 쇼 비즈니스의 서두는 아련한 duendita의 보컬과 이어진 두 개의 곡으로 마무리되는데, 이것이 곧 마이크의 끝이자 또 다른 출발로 보인다. <Disco!>의 마무리가 생존의 위대한 몸부림이었다면, <Showbiz!>의 마무리는 모호한 영체이자 무대로서, 래퍼이자 아티스트로의 발걸음을 다시금 뗀 게 아닐까. 친근하기만 하여 보였던 래퍼의 새로운 발돋움은 어디로 향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의 사색이 마음에 든다면 이 또한 별 수 없는 일이다.
으레 여러 신세대 힙합 스타들이 그렇듯이 본작에서 드러나는 마이크의 가장 큰 강점이자 장점도 여러 힙합 장르를 수용하고, 자기 뜻대로 편집할 줄 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랩이 되었든 프로듀싱이 되었든, 결과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마이크라는 거대한 아티스트 하나뿐이다. 적어도 나는 둠 이후에, 이토록 장인 정신에 고집이 드센 아티스트를 본 적이 없다. 당연시될 수 있는 서사나 이야기의 배려는 차치하고, 꾸준하게 자신이 우선된 방식의 작품은 몇 되지 않는다. 둠이 흩뿌린 씨앗이 어떤 랩 이야기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곤, 다시금 마이크의 디스코그래피로 발전했다. 그 가운데, <Showbiz!>는 현재의 마이크와 가장 가까운 음악이자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음악이다. 청자의 감상 역시 그러지 않을까? 내게 있어 음악적 요소들이 오로지 한 지점을 향해서 돌진하는 나선형의 앱스트랙트 작품을 마주하면 형용할 수 없는 몰입감의 출처에 대한 아리송한 물음표를 달아주곤 했는데, 이제는 <Showbiz!> 역시 엇비슷하고도 긍정적인 물음표를 하나 더 달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달까.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겠지만 벌써부터 정말 대단한 앱스트랙트 앨범이 나온 것 같습니다.
올해 마이크와 Surf Gang이 함께한 <Pompeii>도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서프갱????좆도ㅒㅆ네
쇼비즈 듣는데 중간에 surf gang bitch 나와서 ㅈㄴ놀람 ㅋㅋㅋㅋ
Xaviersobased 노래에서 나오던 태그인데
근데 원래도 자주 놀긴 해서 놀랍진 않앗음
아
전 처음앎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한 번 다시 돌려봐야겠네요 :)
개추
잘 읽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엘이에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던데.. 전 정말 좋게 들었어요
아 또 돌려야겠다
마이크는 신인가
아직 안들어봤는데 들어봐야겠네요
멋진글 정말 감사합니다!
앱스트랙 특유의 모호함을 이렇게 여러갈래로 뻗어내는게 참 대단함
둠은 별로 안 좋아해서 몰랐는데 이렇게 비교해서 보니 흥미롭네요
마이크는 자가복제를 하는가 싶으면서도 언제나 미묘하고 섬세한 차이를 두며 새로운 시도를 하죠. 그리고 그 폭은 단순히 들음으로써 파악하는 인상보다도 훨씬 엄청난 수준입니다. Burning Desire 이후로 또 한번 취향이나 완성도 양면에서 만족할 만한 마이크의 최고작 중 하나가 나와버렸네요.
"man in the mirror"에서 "Artist of the Century"로 넘어가는 거 보면서 진짜 싸버렸어요.
Burning Desire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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