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평을 남겼고 그 평들은 마치 20년 전에 발매된 19세 소년의 데뷔작을 향한 것이거나 혹은 20년 후에 이 작품이 교과서에 실릴 때 가장 먼저 인용될 찬사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태어나자마자 산업종사자/ 비평가/리스너들이라는 동방박사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걸작인가?
10년이 지난 후 지금 생각해보면 이 앨범의 지위는 공고해졌고 (나를 포함한 )대다수 힙합팬들은 통찰력이나 지식의 차이와 관계없이 다 걸작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왜 to pimp a butterfly는 걸작이라는 칭호를 얻었을까?
선명한 주제의식?, 켄드릭의 신들린 래핑과 가사?,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직조된 사운드? 도대체 무엇이 이 작품을 시대를 대표하는 힙합 레코드로 만들었을까?
당연히 켄드릭의 플로우와 래핑은 완벽하다. 사람의 목소리 역시 하나의 악기고 랩은 일종의 타악기이기도 하다 라고 주장하는 나로서 이 앨범에 담겨진 켄드릭의 리듬감과 청각적 쾌감은 거부할 수가 없다. the blacker the berry에서 선보인 공격적인 래핑이든 you ain't gotta lie 에서 보여주는 타이르는 듯한 래핑이든 i에서 말그대로 물흐르듯 유려하게 이끌어나가는 플로우든 켄드릭은 실망시키지않고 훌륭한 청각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다른 화자를 소환해 연기하는 트랙들(for sale이나 how much dollar cost)에서 보여주는 랩이 청자에게 주는 몰입감은 그 자체로 그의 재능에 대한 보증수표다. 나는 늘 노래나 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할까보다 어떻게 들리는가 라고 생각했었고 여기서 켄드릭의 플로우와 톤 변화는 랩이 주는 들리는 즐거움을 완벽히 증명한다.
비트와 사운드 역시 더없이 만족스럽다. 앨범 전체에 흐르는 재즈사운드와 단단한 리듬을 제공하는 드럼은 이 앨범의 사운드를 일관되게-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나간다. 관악이 이끄는 재즈선율, 선명한 훅, 드럼, 켄드릭의 래핑이 어우러진 alright,긴장감 넘치는 비트에다가 강력한 어쌔신의 훅이 얹어진 the blacker the berry, 그루브 넘치는 선율로 구성된 i, 몽롱하게 울리는 사운드와 켄드릭의 탁월한 랩퍼포먼스가 조화를 이루는 for sale, 아예 재즈트랙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뒤에 흐르는 부드러운 피아노와 드럼이 인상적인 for free 등등 이 앨범은 재즈, 펑크 등 고전적인 흑인음악들의 레퍼런스들을 취합해 인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것은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름들이다. 카마시 워싱턴, 썬더캣, 그리고 사용된 샘플들. . 이런 이름들은 이 앨범의 사운드와 비트를 교과서적인 힙합사운드와 거리를 두게한다. 더없이 경탄스러운 부분은 다채로운 흑인음악 박물관처럼 보이는 사운드들이 정연하게 통일되었다는 점이다.
가사적인 측면서 역시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다.
웨슬리 스나입스의 이야기로 포문을 열면서 미국을 살아가는 성공한 흑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wesley's theory는 스나입스와 스나이퍼를 연결시킨 펀치라인이 유명하지만 말끔하게 연결되는 라임 역시 대단하다.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를 레퍼런스삼는 king kunta의 가사 역시 인상적이다.
흑인으로서의 자부심, 미국 기득권 사회에 대한 공격, 흑인 커뮤니티에 내재된 폭력의 씨앗에 대한 비판으로 진행하다가 마지막에 본인을 최악의 위선자로 칭하는 반전으로 갈무리하는 the blacker the berry는 인종차별의 피해자로서 고통받지만 동시에 그들 스스로에게 큰 위협이 되는 커뮤니티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겨있는 훌륭한 트랙이다. 특히 마지막 두 라인으로 곡을 전환시키는 구조는 감탄스럽다.
상처도 고통도 없는 판타지가 아닌, 흉터를 얻더라도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웃을 수 있는 정확한 자신감과 자기애를 표현하는 i의 가사 역시 그의 커리어서 빛나는 발자국이다.
인종에 관해 써내려간 complexion은 슬프고도 감동적이다. (니 피부가 검은데 눈이 파랗다면 엄마가 도망치지 못한 것이겠지..) 아웃트로인 mortal man은 시적인 훅(The ghost of Mandela, hope my flows they propel it)과 진지한 질문들, 투팍의 목소리를 결합시켜 긴 여운을 남긴다.
나에게 이 모든 트랙들을 제치고 가장 감탄스러웠던 트랙은 결국 how much dollar cost이다.
변장한 신의 시험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끌고와 일 달러조차 나누지 않는 화자를 보여준 이 곡은 켄드릭의 랩이 해낸 스토리텔링의 정수이다. 마지막 신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의 반전은 the blacker the berry와 같은 구조전환의 경우이다. 마치 오헨리처럼 켄드릭은 곡을 뒤집어버리는 전개를 너무나 잘 사용한다. 무엇보다 섬세한 필치로 화자의 심리를 표현하는 켄드릭의 가사와 연기력은 이 트랙을 이 앨범 최고의 자리에 올리기에 충분하다.
이 앨범의 가사들은 말끔한 압운들이 지탱하며 탄탄하게 감정과 생각을 전개한다. 흑인으로서 살아가는 켄드릭의 자부심과 자기애,혼란. 공격과 차별 속에 박해받는 공동체구성원으로서의 분노.하지만 그 공동체 안에 있는 폭력성에 대한 근심과 걱정, 그럼에도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경해야한다는 메시지까지 이 앨범은 생각깊은 청년이 살아가면서 느끼고 사색한 것들로 채워져있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당신이 혼란스러웠던 것 알아'는 투팍을 향한 말임이 드러나고 첫 곡의 인트로에서의 고치 떡밥은 켄드릭이 새로운 나비가 되면서 회수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힙합 사상 가장 빛나는 비상 중 하나이다.
앨범이 RYM차트서 1위를 차지하고 나비 착취가 칸예의 어두운 환상과 더불어 21세기 힙합의 상징이 되고 켄드릭이 미국대중예술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는 동안 수많은 층들이 이 앨범에 쌓였다. 우리는 종종 내용과 목적의 숭고함과 깊이를 예술의 위대함과 연결한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자. 예술은 형식이 곧 내용이며 과정이 목적이다.
우리가 진정 이 앨범에 매혹된 이유는 무엇인가. 왜 켄드릭의 신묘한 래핑이나 흑인음악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면서도 통일성을 지키는 탁월한 프로덕션이 아닌, 흑인인권과 커뮤니티에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가. 우리가 이 앨범의 플레이버튼을 누르는 이유가 흑인인권 혹은 미국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인가. 전자를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결국 우리는 켄드릭이 탁월한 래퍼이기에 이 앨범을 선택한다.
앞에 했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이 작품이 걸작인 이유는 힙합앨범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힙합이라는 예술형식의 존재이유를 증명했다. 이 작품의 감동과 생각들은 순전히 힙합이라는 형식- 비트, 사운드, 랩 무엇이든간에-이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는 앞에 열거한 사운드,플로우,래핑,가사가 총체적으로 결합한 힙합이라는 예술형식만이 가능한 아름다움이 있다.
to pimp a butterfly. by far, realest hip hop album alive
최근 리뷰글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것 같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엘이 정상화 개추
너무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글 너무 잘 쓰시네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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