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재밌게 들었음.
저크, 브레이크코어, 슈게이징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였는데도 난잡하지 않은 느낌.
다만 듣는 내내 "이게 디지코어 차트에 있다고?"라는 의문이 좀 들었음.
rym에 누군가 이 앨범이 "퀴어 인터넷랩 버전의 TPAB"라는 아주 웃긴 댓글을 달았는데, 저도 정확히 그런 느낌을 받았음. 분명히 이 앨범은 디지코어나 서브장르란에 난잡하게 vote된 수많은 장르들을 아우르는, 아직 정확한 이름은 붙지 않은 어떤 장르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느낌. 그리고 동시에 디지코어라는 장르가 "퀴어 인터넷랩"이라고 표현된 거대한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면서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느낌을 받음.
이 징후를 강하게 느꼈던 순간들을 적어보자면
트위키피디아나 글레이브 같은 디지코어씬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 랩을 완전히 버리고 드림팝/슈게이징/이모로 이동한 것,
Fax gang과 파란노을의 콜라보 앨범 발매, 아시안 글로우의 bladee 리믹스 등 을 예시로 들 수 있음.
또 데프톤즈를 샘플링하고, 마블발을 오마주한 머천을 내고 판치코와 콜라보를 시도한 ilck 시기의 디스트로이 론리도 비슷한 사례.
hexd, 디지코어, 슈게이징, 브레이크코어 등.. 음악적으로 봤을 때 꽤나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장르들간의 교차는 이들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정서가 가진 공통점을 통해서 이뤄졌다고 생각함.
공교롭게도 <릴리슈슈의 모든 것> , <시리얼 익스페리먼츠 레인> ,<신세기 에반게리온> 을 비롯한, 아마도 내향적 낭만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경향을 가진 일본 매체들은 이 장르들에서 거의 경전에 가까운 지위를 갖고 있음. 사운드 클라우드에 가보면 레인 사진을 커버로 쓴 노래를 갖가지 장르에서 적어도 수백개는 찾을 수 있고, kuru의 앨범 제목 역시 레인에 나오는 용어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됨.
비록 이 장르들이 가진 음악적 형식과 악기는 다를지라도, 심미적인 우울함과 내향적 낭만주의, 사춘기 특유의 중성적인 느낌, 2000년대 디지털 카메라의 열화된 화질, 초기 인터넷의 인터페이스, 사운드와 이미지의 노이즈, 전깃줄이나 굴뚝과 같은 현대 도시에서 숨겨진 풍경들을 이미지의 중추로 삼는다는 점은 유사함.
https://www.youtube.com/watch?v=I25Sz3hZYjc&ab_channel=kuru
https://www.youtube.com/watch?v=nOHedcVlDzo&ab_channel=gyn
https://www.youtube.com/watch?v=f5wrW7gv7b8&ab_channel=Deathbrain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운드를 통해서 나뉜 기존의 장르간의 경계를 넘어서 추구되는 어떤 정서와 이미지가 있고, 그것들을 공유하고 있는 장르끼리는 팬덤 역시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고, 음악적인 결합도 점점 대범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느낌.
앨범 이름부터 레인향이...
뮤비도 완전 레인 스타일임
확실히 추구하는 감성이나 팬덤이 비슷한 것도 있고,
저는 뭔가 유독 디지코어라는 장르가 씬의 선두주자에 있는 아티스트들이 무언가를 더 보여줘야한다는 생각에 장르적 결합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장르로 갈아탄다거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말씀하신 kuru나 twikipedia, jane remover, underscores 등등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입니다. 리뷰 잘 읽었어요~~
하이퍼팝에 아시아인/퀴어 계열 아티스트가 많은 것도 신기함
쿠루도 아시아인이고 언더스코어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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