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드문드문 등장한 포스트-힙합 (Post-Hip Hop)이라는 (내 기억이라면 아마 Iujury Reserve의 BTTIGP 이후쯤이었을 것이다.) 조어는 대략 포스트-락 (Post-Rock)과 거의 비슷한 용례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포스트록이 통상적인 락을 뛰어넘으려 했던 시도들을 통칭했다면 포스트-힙합은 힙합의 문법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규정되지 않은 장르라 설명하긴 힘들지만 예시로 들만한 작품들은 있다. Injury Reserve의 <By the Time I Get to Phoenix>,Dälek의 <From Filthy Tongue of Gods and Griots>, 그리고 지금 소개할 Material Girl의 정규 2집 <i85mixx21~22> 일 것이다.
간단히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훑어보자면 2020년부터 꾸준히 1장씩 앨범을 드롭하고 있다. 그 장르의 폭도 주목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1집인 <Tangram>의 경우, 아방가르드 재즈와 사운드 콜라주의 요소를 활용한 익스페리멘탈 힙합, 믹스테이프인 <Drujjha>의 경우에도 전자 음악을 바탕으로 한 듯한 정신 나갈 듯한 사운드를 선보였으며, 3집인 <Izumi Hazuki End This World>와 EP인 <Chian User>의 경우에는 포스트-락적인 방향성까지 내비칠 정도였으니 그의 경이로운 장르 폭은 경악스러울 만큼이나 넓은 것이다. 이번에 리뷰할<i85mixx21~22> 의 경우는 DnB, Alternative Rock (또는 Post-Rock) 이 두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예상 불가능한 전개로서 나에게 충격을 먹여주었던 것이다. 앨범 설명란에 보면 자리에 앉아 앨범 전체를 돌려주길 바라고 있는데 이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청자들에게 체험시키고자 했나 싶다.
긴 말없이 첫 트랙인 i85mixxalbumversion을 보도록 하자. 초반부에는 정글리스트의 Anthem인 Amen Break의 루프를 활용해 흥을 돋운다. 중반부에는 다양한 악기들을 활용해 빌드업을 쌓은 후 후반부 보컬과 함께 터트리는 어떻게 보면 EDM스러운 구성이지만 후반부에서 이루어지는 해방감이라 부를만한 것은 양산형 댄스 플로어 뮤직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i85mixxradioversion의 경우도 초반부에는 변형된 트랩 비트로 빌드업을 쌓고 벌스에는 DnB 루프를 드롭시켜 이율배반적인 카타르시스를 선보인다. 전반적으로 표현되는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 또한 거슬리지 않고 곡에 잘 묻어나니 도입부에서 느낀 만족감은 거의 최상에 가까웠다.
i85mixxdemo가 그나마 정통에 가까운 힙합 넘버라고 볼 수 있지만 이도 기성 힙합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모습이다. 랩은 좀 못하는 거 같지만 강렬한 호소력으로서 곡이 채워지는 느낌이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트랙이었다. i85mixxdub에서는 덥(레게의 하위 장르) 도 시도하는데 정통 덥인지는 안 들어봐서 모르겠다. 레게 특유의 리듬 패턴을 활용하며 랩을 하다가 후반부에는 BPM을 올려 어떤 보사노바/재즈틱한 패턴으로 변화시키는 구성력은 감탄하면서 들었다. 흥분을 한차례 가라앉게 하고자 인터루드를 투입했지만 이 인터루드 이후 앨범의 흐름이 뒤바뀔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i85mixxlive에서 선보인 록적인 선언 이후 이어진 i85mixxacapella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얼터너티브 락적인 간단한 루프 위에 단출히 랩을 올렸지만 강렬한 루프의 에너지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그의 톤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탓에 베스트 트랙으로 뽑기에 손색이 없는 굉장한 트랙이였다.비련한 가사 또한 곡과 공명하며 곡의 매력을 증폭시킨다.마지막 트랙인 i85mixxextened의 경우에는 그의 테크닉적인 면모의 끝을 볼 수 있는 트랙이다. 초반부에는 컨트리스러운 루프를 돌리며 자신의 불안감을 토로한다.점차 그의 불안감이 증폭되어 간다는 듯 전자음이 양쪽 귀를 간지럽히다 퍼커션 루프의 등장 이후 사라진다. 퍼커션 비트 이후 이어지는 Cat Stevens의 Father and Son의 한 가사가 반복되는데 그 가사도 가슴을 시렵게 만든다. 나는 내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그 단순한 한 줄이 이렇게 시린 말인줄 누가 알았겠는가.
향후에 진짜 포스트-힙합이란 스타일이 정립된다면 이 앨범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정도라 생각하며 이런 작품은 나중에도 찾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언급하지 않았던 곡들조차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면서 나름의 매력을 선보인다. 이 앨범은 어떻게 이렇게나 아름다우면서 무척이나 서글픈 절규란 말인가!
Best Track
-I85mixxradioversion
-i85mixxacapella
-i85mixxentened
저 앨범 보관함에 박아놓고 잊어버린 앨범인데 오늘 들어봐야 겠네요
훌륭한 앨범
마테리얼 걸 몇 개 담아놨던 것 같은데 하나도 안 들어봤네요 들어봐야겠다
리뷰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직 장르라고 부르긴 애매하지만 포스트힙합이라는 움직임...이 점점 대두되고 있는 것 같은데 또 흥미롭게 들을 아티스트가 늘어났네요
엘이 정상화
최근에 Tangram을 들었었는데 나머지도 들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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