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나에게 눈에 띄는 신예들의 부류는 항상 두 가지로 나뉘는 느낌이 있는데, 어디서 들어보았던 음악을 적절하게 배합해 제시해놓은 부류, 세간에 주류가 아니나 새로운 장르를 끌고 올라온 부류로 대표된다. 그리고 여기 내게 있어 마븨(mavi)라는 래퍼는 전자에 가까운 인상이다. 마븨의 랩 커리어를 쭉 돌아보고 있노라면, 성장하는 하나의 아티스트로서 주변 영향을 강하게 받은 티를 냈지만, 점차 자신의 색깔을 찾아나가는 양상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싶다.
그러니까, 마븨가 세상에 내놓은 첫 정규 앨범 <Let The Sun Talk>가 아래와 같은 감상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의 <Some Rap Songs>의 태동이나 마이크(MIKE)등이 속한 sLUms의 음악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서는 자기의 색깔로 준수하게 풀어낸 그런 작품으로 말이다.(실제로 두 아티스트 모두 마븨의 처녀작에 참가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영향이 좋든 나쁘든 간에, 마븨라는 래퍼의 성장 서사는 주변 영향에서 벗어나 서서히 자기 색깔을 진득하게 녹여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나. 게다가 위와 같은 지적은 마븨 본인도 잘 인지한 것으로 보보이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작품 <Laughing so Hard, it Hurts>에서 보여준 변화로써, 기존에 지적받는 엇비슷한 색깔들을 벗겨내기 위한 발돋움이 눈에 띈다. 다양하고도 독특한 비트 선택을 선보이는 한편, 마븨 본인이 자랑하는 추상적인 가사 흐름은 유지한 그런 형태로 말이다. 덕분에 감칠맛으로 더해진 것은 아티스트가 자랑할 수 있는 세련된 매력이자 개성이다. 개인의 삶을 사색하고 반추하며, 일련의 과정을 앨범에 풀어냄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초기 작품의 감정적 과잉보다도 리스너와 소통할 수 있는 가교를 놓아주게 되었다. 한데, 독특하게도 그의 세 번째 앨범 <shadowbox>은 여러 빛깔을 벗겨내고 벌거벗은 채로 돌아온 나신의 래퍼를 보는 듯하다. 이는 <Let The Sun Talk>의 감정적 증폭제를 한껏 들이킨 모양새와는 다르다. 사색과 고백을 맴도는, 그런 와중에도 놓치지 않은 음악 사이의 연결고리가 짐짓 음악에 대한 사고를 연거푸 들이키게 만든다.
Art can only make the world look at itself
"20,000 languages"의 시작이 그렇듯, <shadowbox>는 마븨 본인을 자신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작품이라 못 박고 시작한다. 혹은 본작을 감상하는 리스너에게 마븨의 뇌 속을 엿볼 초대장을 마븨 본인이 넘겨준 것일지도 모른다. 본작의 기원이 마븨 본인의 의도처럼 사실-관음주의 및 다큐멘터리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마븨의 실존적 갈등을 멀리서 엿보는 것 같은 감상을 주는 것 역시 우연 아닌 일이다. '예술은 그저, 세상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죠.'라는 말로 끝나는 "open water"라는 경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고통에서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괴롭고 헛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open water"속 마븨는 어떤 괴로운 투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또한, 이 두 곡의 재밌는 점은 앨범의 오프너를 맡은 드럼리스 비트들이 각기 다른 분위기로 국면을 전환하기 때문이다. 전자가 앨범의 성격을 암시한다면, 후자는 이어나가는 헛된 발길질로 예상되는 무언가에 대해 힌트를 주기에 재밌다.
경우에 따라서 그의 목소리는 불안하거나 초조하게 느껴지곤 한다. 혹은 절망적으로 보이거나, 고뇌에 가득 찬 것과도 같은 모습이 인상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역시 있다. 일례로 "I'm so tired"는 말 그대로 피로감으로 가득한 무언가이며, 그 곡에서 바라는 소망은 고통이나 상처 없이 새로운 곡을 만들기 희망한다는 점이다. 서서히 시야가 빨려 들어가는 그림 한 폭처럼, 마븨의 이야기는 점차 나아가며 마븨라는 전시품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으로 향하게 될 뿐이다. 죽음을 잊지 말라는 '메멘토 모리'라는 격언을 활용한 것대로 마븨의 "I'm so tired"는 어떤 아픔에 얽매여 곡을 만드는 것에 지친 일일지도 모른다. 반면 "tether" 역시도 죽음에 대한 비슷한 인상을 그리지만 흐릿하지만 펑키한 신스 드럼에 나긋한 랩으로 이야기를 드러낸다. "tether"는 마븨의 선과 악을 한 군데에 묶어놓는 것인데, 이것조차 마븨의 일면이라 생각한다면 고통을 양분한 트랙 배치가 이해된다.
본작의 감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사료된다. 첫째는 모순되는 행동과 그럼에도 살아가는 마븨의 모습을 멀찍이서 감상하게 되는 것, 둘째는 앨범 전체적으로 쓰인 장치들. 이 두 가지가 병치되며 우리는 본작에 저의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주요하다. 즉, 두 가지의 성격이 적절히 배합된 마븨의 <shadowbox>는 섬세하게 디자인된 전시회에 가까운 인상이다. 드럼리스, 붐뱁, 트랩, 재즈, 소울 등의 다양한 힙합 내 장르를 이용하는 가운데에서 앨범의 주요 흐름을 묶어주는 것은 마븨의 싱잉처럼 느껴지는 랩과 추상적인 가사들로 대변되는 마븨의 속마음 뭉치들이다. "grindstone" 같은 붐뱁 트랙에서는 열렬히 살아가는 본인을 어필하는가 하면은, "drunk prayer"와 같은 트랙에서는 소울 샘플 위로 술에 취해 떠드는 신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지나친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흐릿하지만 부드러운 멜로디를 사용하는 한편으로 대비되는 지나간 애인으로 추정되는 이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같은 "the giver"와 같은 트랙 역시 주목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모순과 자신의 뒤틀린 모습을 유유자적 지나가는 것은 싱잉과도 같은 마븨의 랩이다. <Let The Sun Talk>에서 통렬하게 랩을 내뱉던 한 청년이 이 정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때로는 담담하게, 떄로는 피로에 젖은 듯한 랩은 적절한 완급 조절을 보여주며, 이것이 앨범 내의 다양한 프로덕션의 이음새 역할을 맡아준다. 오로지 피처링 없이 자신만의 랩을 담은 본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그의 모습이며, 작품에 이 정도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든 공도 그만큼이나 솔직한 가사의 결과물이다.
내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서는 작품에 나지막한 경의를 내비친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다. "testimony"에서 "my own way"로 이어지는 클로징은 마븨라는 아티스트의 전시장에서 두말할 필요 없는 적절한 클로징이 아닌가 싶다. 삶에 대한 증언으로 주변의 사랑과 본인이 받은 영광들을 읊는 장면부터 시작해 수많은 역경을 담담히 이야기하며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엔딩은 왜 본작이 <shadowbox>라는 제목을 가졌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끔 해준다. 본인이 성장할수록 더욱 커져가는 그림자와 대비하여, 잠시 여러 추상적이거나 숨은 은유를 접어두고 더한 끈기를 보여주는 장면은 무언의 애틋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니까, 세상과의 분투는 누구나 하고 있기 마련이지만, 이를 어떻게 여길지는 본인에게 달려있지 않나. 우울과 고난에 빠진 이가 있다면, 활력이나 도취를 느끼는 이도 있지 않을까. 마븨의 경우에는 전자에 가깝다. 세상과의 분투를 섀도복싱이라 명하면서까지 본인의 아픔들을 들추어 낸 모습이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끈기와 자신만의 길이라고 명할 뿐이다. 그는 삶을 무어라 정의하기보다도 모순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모습이다. 결국 앨범의 해답에 대해 어떤 뚜렷한 대답조차 내놓기 어렵지만, 수많은 모순이 휘말리는 인간 자체의 군상에는 나지막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사이의 마븨라는 한 래퍼이자 인간의 성장과 투쟁이 달갑게 느껴질 뿐이니 어떤가.
근래에 가장 마음에 든 힙합 앨범입니다. <Some Rap Songs>에서 느꼈던 묘한 애틋함을 여기서도 비슷하게나마 느꼈다고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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