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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 & Pete Rock <The Auditorium, Vol. 1> 리뷰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4시간 전조회 수 194추천수 7댓글 5

노련미의 필요조건을 변하지 않는 신념과 가치관, 굴하지 않는 자부심, 부단한 노력에 어울리는 경험 등으로 생각해 보자. 그리고 여기에 그 노련미를 자랑하는 두 장인이 있다. 1MC 1PD 합작으로 돌아온 래퍼 커먼(Common)과 프로듀서 피트 락(Pete Rock)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지천명을 지난 나이에도 그들이 뭉쳐 새로 선보인 작품은 구닥다리 따위가 아닌 완숙한 세공품을 자랑하니 어떤가. 그러니까, 그들의 합작 <The Auditorium, Vol. 1>은 케케묵은 다락방 서재에서 발견한 오랜 액자 같지 아니하다. 빛바랜 트로피가 가득한 90년대의 한 서재에서 영감은 받았을지 모르지만, 담백하고도 고급스러운 맛을 자랑하는 면모는 오랜 경험과 장인 정신이 녹아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적어도 과거의 음악을 베끼거나 따라가는 데에 급급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이 뭉친 이유도 가장 잘하는 것들을 선보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이들이 거쳐간 90년대의 트로피 한편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 넣은 바가 있는 산증인들에게 이상한 오명이 생길까 걱정하는 것도 기우에 불과했다. 결국 프로젝트 <The Auditorium, Vol. 1> 속, 두 장인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들을 꼼꼼하게 짜아올린 작품이 될 전망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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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째 한결같은 신념과 가치관을 자랑하는 사람을 보고 답답해하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치관의 정의가 옳은 방면이라면 그 누구도 함부로 힐난하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커먼이라는 래퍼가 그렇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면 음악의 틀은 바뀔지언정 가사 혹은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은 큰 틀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외골수라는 오명을 받지 아니함은 커먼이라는 래퍼가 단순히 랩을 잘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오히려 커먼이 랩과 라임을 다루는 자세는 모범생에 가깝다. 중산층 출신에 걸맞은 원숙한 컨셔스 랩은 시대정신에 알맞은 일침을 가하는 모습으로, 흔히들 말하는 문화적 변혁 인사에 가까운 인상이다. 커먼의 컨셔스 랩이 추상적이지 아니한 수사학적인 설파에 가까운 이유에도 그가 중산층의 멋을 말쑥하게 차려입었기 때문이 아닌가. 커먼의 랩 가사에서 묻어 나오는 실존주의적 사고와 계승 및 연대의 태도는 삶에서 나오는 관록이자 정체성이었으니 말이다. 구태여 말을 조금 더 얹자면, 커먼의 랩에는 <Resurrection> 시절부터 발전해 온 특유의 멋이 존재했다. 커먼의 오랜 팬 입장에서 본작의 노련한 랩을 듣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만족스러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리라.

물론 피트 락의 비트 연출력도 무시할 것이 못된다. 장담컨대, 피트 록만큼이나 담백함과 산만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비트 연출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Mecca and the Soul Brother>부터 <Center of Attention>까지 피트 록의 비트 만듦새만 논한다면 그는 90~00년대 올드스쿨 턴테이블리즘 샘플링의 정수를 뽑아낸 어느 경지에 도달한 사람쯤이 된다. 물론 그 이후의 솔로 작품 내 아쉬움을 뒤로한다면, 다시금 합작으로 돌아온 피트 록의 비트 만듦새는 어느 정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데까지 성공했다. 애초에 피트 록의 가장 큰 장기는 재즈와 소울, 붐뱁을 융합한 원숙한 턴테이블리즘에 있다. 그의 프로덕션 이음새는 과거 올드스쿨 힙합의 주류 청자들이 쾌감을 느끼는 포인트를 적절히 어루만질 줄 알았으니. 즉, 겹겹이 포개어 놓은 붐뱁 리듬과 재즈 샘플링은 랩 질감을 끌어올리는 데 아주 적절한 수준까지 통달한 것이다.

커먼과 피트 록의 합은 자연스레 그들이 벼린 기술을 보여주고 증명하는 과정에 있다. 커먼에게는 아직도 남아있는 이야기를 할 재량이 있으며, 피트 록 역시 힙합 프로덕션에 뿌리 깊은 열정이 남아있다. 자그마치 30년이 달하는 기간의 경험 누적은 필시 <The Auditorium, Vol. 1> 내에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장에 인트로 아레사 프랭클린의 "Day Dreaming"을 샘플링한 "Dreamin'"에서 커먼에 의해 언급된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꿈과 현실에 엮었다. 이는 커먼이 누차적으로 언급해 온 영성적인 주제가 아닌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엮는 방식은 앨범의 발판을 구성하는 데에 분명 효과적이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Chi-Town Does It")과 자신에 대한 떳떳함("This Man")과 같은 주제도 빠질 수 없다. 어디까지나 커먼이라는 사람은 크나큰 변화는 없음에도, 그가 지닌 뚝심은 한결같은 래퍼라는 점이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본작의 또 다른 감상 지점은 둘의 역량과 시너지가 어디까지 발휘되었는가를 탐구하는 일이다. 골자는 붐뱁임에도 틈새에서 엿볼 수 있는 칩멍크, 재즈, 네오 소울, 가스펠 등의 요소들은 당연하게도 피트 록의 섬세한 손길이 거쳐갔다. 그에 어울리듯 커먼은 다량의 붐뱁 비트를 소화할 관록을 지녔으니, 이 둘의 화합은 조화로울 수밖에 없다. 피트록이 하드코어 붐뱁 식의 "Wise Up", "Stellar"와 같은 비트를 제공할 시에, 커먼은 보다 운율과 단어에 강세를 주는 랩을 할 줄 알았다. 당연하게도 이 둘의 붐뱁 장르 합은 큰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리스너의 기대에 충당하는 쾌감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피트 록이 "A God (There Is)", "Lonesome"과 같은 서정적 질감의 네오 소울 풍의 붐뱁 비트를 제공할 경우, 커먼은 그에 맞추어 최대한 완급을 조절한 랩을 선보인다. 둘의 시너지는 조화로움이라는 특징에서 최대한으로 발휘된다. 우리가 근래에 이토록 쿵짝이 잘맞는 붐뱁 앨범을 들은 적이 있나. 둘의 노고에는 붐뱁이 줄 수 있는 담백한 쾌감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붐뱁의 어떤 맛을 상기하게끔 해줄 뿐이다.

하지만 다른 말로도 둘의 합작이 2020년대만의 새로운 빛깔을 지닌 작품이라는 감상은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현대미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함은 아니다만, 둘의 음악은 다른 무엇보다도 향수에 가까운 인상이기 때문이다. Black Thoguht & Danger Mouse의 <Cheat Codes>와 짤막하게 비교해보자면, <Cheat Codes>는 2020년대에 재구성한 느와르 영화와 같은 비장미가 느껴진다. 반면에 커먼과 피트 록의 <The Auditorium, Vol. 1>은 빈티지한 질감의 영화에 가깝다. 만약 본작을 지겹게 여길 요소가 존재한다면 이 빈티지한 질감과 커먼의 답습적인 커리어에 있지 않나. 물론 이를 나쁘게 볼 요소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것이다. 커먼이라는 인간 그 자체가 랩에 묻어나온다고 생각하면, 내게는 본작이 익숙하면서도 만족스럽다. 이는 내가 단순히 붐뱁에 빠져있는 사람이여서가 아니라, 커먼이라는 군상을 마음에 들기 때문에 음악도 좋게 들릴 이야기다. 애초에 커먼은 커리어 내내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간 래퍼라기 보다도 한 자리를 지켜서 언제나 뚜렷한 사고를 대변하는 래퍼가 아니었나. 물론 그의 인생 전체를 뜯어보지 않은 이상에야 오만한 이야기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Resurrection>과 <Mecca and the Soul Brother>에서 볼 수 있던 둘의 야망을 <The Auditorium, Vol. 1>에서도 분명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앨범의 전체적인 기운이 전반적으로 따스한 질감임에도, 때로는 그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내뿜을 줄 아는 순간이 포착되는 것도 같은 이유지 않을까.

일관적이나 뚜렷한 주제를 자랑하는 래퍼의 가사들과 과거를 연상시키는 매끄러운 비트들을 제공하는 프로듀서의 만남은 나름의 걸작을 일궈냈다.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던 황금기의 비트들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랩을 잘해야 했다. 반대로 내로라하는 우수한 래퍼들이 등장하던 시기였으니, 그에 걸맞는 프로듀서가 후대까지 살아 남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치열했던 90년대로부터 2020년대 무렵으로 돌아선 둘의 만남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작업이라기보다도, 한 시절을 지나서 굳건하게 남아있는 이들이 현대에 전하는 하나의 메시지에 가깝다. 우리가 사랑했던 무언가를 일깨워주는...이것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모종의 이유로 근래에 음악 들을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물론 나오는 신보들은 쭉쭉 체크하고 있지만요. 그나마 최근에 가장 많이 돌린 앨범이 페기의 신보와 커먼 피트록의 앨범인데, 먼저 쓰고 있던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혹여나 들을 만한 앨범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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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4시간 전

    오랜만에 오셨군요..

    여전히 명필이십니다 ㄷㄷ

    대신 전 이번 합작이 좀 아쉽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담백하게 갈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썸니 Ep 추천드려요

  • 4시간 전

    나쁘진 않았던 두 거장의 합작앨범

    빈티지 영화라는 표현이 딱이네요

  • 4시간 전

     

     

    최근 2달 안에 발매된 앨범들 중에선

     

    힙합 쪽에서는

    Daniel Son & Futurewave - BUSHMAN BODEGA, Raz Fresco & DJ Muggs - The Eternal Now, Navy Blue - Memoirs in Armour

     

    비 힙합에서는

    Jack White - No Name, Skee Mask - Resort, GUM & Ambrose Kenny-Smith - Ill Times

     

    좋게 들었습니다 ㅎㅎ

     

    항상 올려주시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 4시간 전

    필력 미쳤네요 잘 읽었습니다

  • 3시간 전

    매거진에서나 볼수있을법한 글을 여기서 볼수 있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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