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리뷰

Earl Sweatshirt [Some Rap Songs] 리뷰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4.01.27 15:44조회 수 1494추천수 16댓글 11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의 [Some Rap Songs]가 나오기 전의 작품들을 생각한다면, [Some Rap Songs]가 지닌 특색은 그간 보여준 작품의 맥락과는 지극히 달라져 더욱 농도가 진해진 내면을 담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때, 같은 크루 Odd Future 소속이자 영혼의 듀오로 이름을 날렸던 Tyler, the Creator가 한 차례의 폭발적인 반경을 지나 낙관적인 주황색의 감정 빛깔을 그려내었다면, 시작은 비슷할지언정 경로는 정반대의 비관주의로 일관했던 얼 스웻셔츠에게는 그가 느낄 수밖에 없던 감정을 토로한 [Some Rap Songs]라는 일종의 회고록이 존재했다. 

그간 얼이 보여준 난해한 가사 뒤로 숨겨진 장기는 사회에 대한 염세적인 시선을 담은 가사와 적나라한 자각이 밖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정규 1집 [Doris]에서는 보여줬던 어렸던 그의 19살 나이만큼이나 적나라하고 염세적인 결기가 돋보였다. 정규 2집 [I Don't Like Shit, I Don't Go Outside]에서는 20대에 들어선 나이만큼이나 그 결기가 정제되나, 관조적인 시선이 본인을 중심으로 사회로 확장해 나갔다. 그럼에도, 1집과 2집을 관통하는 얼 스웻셔츠 본인 특유의 우울함과 음산함은 여전했다. 10대를 마무리하는 하나의 앨범과 20대 초반을 시작하는 앨범은 감정의 토로에서 사회에 대한 깊은 의문으로 나아갔지만, 돌아온 것은 한껏 깊어진 우울증과 약물 중독, 여러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뿌리 깊숙히 그의 모습 속에 잔재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가장 진솔하고도 사려 깊은 문장으로 표현된 작품이 바로 정규 3집 [Some Rap Songs]이다.


 

IMG_0606.jpeg


 

25여 분 남짓한 볼륨을 자랑하는 [Some Rap Songs]은 제목 그대로 여러 랩 곡을 이어붙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내면의 우울과 침탄 비통을 사회로 투사하는 것이 아닌, 추상적인 랩 위로 투사하는 방식이기에 [Some Rap Songs]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조차 든다. 혹은, ‘Some'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이유 역시 여러 갈래로 쪼개진 샘플들이나 드럼이 부재한 샘플 루프 속에서 파편화된 조각 혹은 사고 자체가 그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예컨대, '어떤'이라는 용어는 그야말로 누군가(Someone)의 이야기를 단순하게 드러낸 것이기에 어느 하나의 특별함도 아닌 것이며, 절제된 그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인간적인 요소로 한정하여 개인의 고통 어린 감정과 파편화된 얼 스웻셔츠 군상의 본 모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게다가 25여 분 남짓 동안 랩으로 채워나가는 과정 중에서도 거창하거나 대자적인 주제가 아닌, 추상화된 감정을 털어놓는데 집중했으니,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제목이다.

 

첫 시작부터 얼이 초대한 곳은 다름 아닌 "Shattered Dream"이다. 그것도 James Baldwin의 모호한 말(Imprecise words)이란 단어로 작품의 포문을 여는 것은 본작의 성격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동명의 곡 The Endeavors의 "Shattered Dream"의 초반부의 보컬을 샘플링해 기막힌 순간을 재현한 것이다. 산산조각 난 꿈이 앨범의 인트로 자리를 버젓이 차지한 이유도 당시 누구도 얼 스웻셔츠의 실존적 갈등을 알아주지 못한 우울에 기인하며, 심지어 상처 입고 피 흘리고 있음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정확한 말로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표현한다. 게다가 이런 해석보다도 중요하다고 느끼는 바는 앨범 전체에 그가 지닌 우울감과 상실감을 구체화하는 장치들의 결합으로, 구성체인 애매모호한 단어들을 건네는 데 있어서 청자를 묘한 감정의 순간에 올려두는 것이다. 묘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은 세상의 고난을 실은 보트에서 구멍을 발견하며, 마치 위안과도 같은 대피로를 찾은 것이다. 고난 속에서 위안을 발견한다는 점은 앨범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게다가 이어지는 트랙 “Red Water"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전 트랙에서 언급된 보트 상의 구멍과 연결된 이야기가 트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과거 얼이 사클에 내놓은 "Solace"의 악기를 샘플링한 트랙 "Red Water"가 의미하는 바는 어쩌면 달콤한 포도주와 피와 같은 우울의 바다 사이를 헤엄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아버지가 주신 사랑을 그리워하나 동시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에 대해 증오하듯이 말이다. 양가의 감정을 주는 매개체가 같다면 어느 곳에도 더 큰 무게를 부여하기는 어려운 법이며, 본 앨범에서 아버지가 주는 감정들과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결국, 하나의 매개체로 촉발된 내재적 모순은 “Cold Summer”와 같은 기현상을 만들어 냈다. 추운 여름이 예상되는가? 툰드라를 배회하는 얼의 모습은 마치 황량한 오지를 방황하는 듯하다. 디스토션이 잔뜩 낀 건반 소리와 저음의 베이스 라인은 황량한 툰드라의 무대를 그려냈으며, 무대 위 얼의 랩은 우울을 해소하기 위한 여성과의 관계, 약물 남용, 폭력의 순간들을 묘사한다. 얼이 속한 세상 혹은 정신 상태에서 둘 중 하나는 분명하게도 툰드라를 배회하고 있는 순간이다. 아니면 양쪽 다 일지도. 이 배회의 여정을 직시한다면 다음 행선지를 경로하는 “Nowhere2go” 역시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Cold Summer”까지의 얼은 ‘[I Don't Like Shit, I Don't Go Outside]까지의 우울한 이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한 모습이 등장한다. 겹겹이 쌓인 보컬들과 독특한 타악기의 존재가 특징인 본 트랙은 개인 존재의 정의를 새로이 하면서까지, 일생을 다시금 둘러보는 모습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예컨대,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과 우울했던 한때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새로운 sLUms 래퍼 동료들(MIKE, Medhane, etc.)을 마주하면서도 쉽게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서부 랩 씬을 대표하는 래퍼가 되고 많은 이들이 칭송함에도, 동시에 희망은 부재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에서 아버지가 성공했던 만큼이나 넓어진 얼의 파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본질적으로 희망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추상화된 보컬 레이어 비트 속의 얼의 랩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우울의 늪을 헤엄치며 자아를 인지하는 작업을 행할 뿐이다.

“December 24”, 단순한 루프 하나와 랩 마디에 끊기는 장치들, 자학과도 같은 가사 속에 숨은 사회에 대한 염세적인 시선이 담긴 본 트랙은 얼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는 할머니의 죽음을 빗대면서까지 사회를 비스듬한 칼날 같은 가사로 도려내니 말이다. 반면, Soul Superiors의 “Trust In Me Baby”를 샘플링한 “Ontheway!”는 이전 트랙의 바깥의 풍파가 내면으로 향하는 과정이 정반대로 흘러간다. 갈대와 같은 마음의 변화를 나타낸 첫 가사가 이를 대변한다. 고양적 질감의 비트 사이로 정확한 자신에 대한 인식은 찰나의 휴식 시간 중의 자아를 확인한 뒤, 다시금 사회를 투사할 때에야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역전해야만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내재적 시선은 변화를 강요하게 되고 그렇게 “The Mints”라는 트랙이 등장하게 되었다. 피아노 곡을 투박하게 재가공한 비트는 과거의 삶을 털어내며 기존 사고방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그가 추구한 것은 돈보다도 삶에 가까웠고, 그 삶은 가혹하면서도 적나라한데, 이는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과 크게 연관이 있어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과 상실이 흐름을 이어간 “The Bends”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잠함병’으로 ‘깊이 잠수한 이후 빠르게 상승할 시에 급속한 압력 차이의 발생으로 생기는 병’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얼이 빠르게 얻은 명성과 동시에 함께 겪은 각종 피해를 설명하는 장치가 되겠다. 짧게 커팅한 Lindia Clifford의 목소리와 바이올린의 선율, 그리고 장치들 위에 얹은 랩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지나온 삶의 흔적을 조명한다. 물론 그 흔적들이 곡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보았듯이 꼭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높이 올라간 만큼 깊게 베인 상처가 존재함에도 망하지 않을 것을 인식하는 장면은 마치 하나의 인생의 굴곡(bends)을 연상시키니 말이다. 그렇게 하나의 굴곡이 전달하는 바는 “Loosie”라는 곡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추모하여 피는 담배와도 같다. 소문이 빠르게 퍼지듯, 아버지의 죽음으로 촉발된 더욱 극심해진 얼의 우울증은 침잠하며 기존의 관계마저 단절되는 것도 금방일 테다. 마치 허무함을 그대로 현상하여 가공한 비트 속에서 아버지의 추모에 대한 의식과 허무주의적 감정의 표출만이 공존하여 맴돌 뿐이다.

The Main Ingredient의 “Girl Blue”를 가공한 “Azucar” 역시 마찬가지다. 삶에 대한 체념과, 여러 곡에서 은유적으로 드러난 상실에 대한 우울은 얼을 잠식해 나갔으니 말이다. 마치 술에 취하여 재떨이에 털어놓는 진심은 지나온 것들에 대한 인상을 천천히 뭉그러뜨리듯 지나간다. 어머니의 전언, 같은 래퍼 동료들의 모습, 외로움에 대한 본질적 인식까지 드러내는 상태가 되고, 이제는 기어코 달이 해마저 가리는 “Eclipse(개기일식)”이자, 잠식에 가까운 우울증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울함으로 세상을 덮어버리는 일은 함께해 온 동료들에게 묘종의 기대를 걸게 되기도 하며, 필요 이상의 외로움을 자극하기도 할 것이다. 고독단신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일은 크나큰 무력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기에. 혹은, 세상의 풍파에 빛을 차단하기 위해 눈을 감아버리는 일 역시 개기일식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아의 혼란은 달과 해의 추구마저 뒤흔들어 버리기 충분한 것이다.

정맥을 뜻하는 “Veins” 트랙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핏줄은 현재의 얼 스웻셔츠를 만들어 냈고, 마치 체념한 듯한 랩 톤 위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평범한 인간이길 원했던 자신을 읊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만의 사색에 빠지는 시간은 고독에 빠졌을 때가 가장 크듯이, 얼조차도 실질적 근원에 대한 탐구가 진행될 때는 달이 그를 잠식해나갈 때이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핏줄에 근거한 본인 자신이니, 페이스를 유지하고, 신념을 지키며, 평화를 바랄 뿐이다. 

“Playing Possum”은 아버지의 시 낭송과 어머니의 축사를 피아노 샘플 위로 교묘하게 섞어 놓은 형태의 트랙이다.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의 시 낭송과 “죽은 척하기”라는 제목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청자에게 애틋한 심상을 제공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제공한 이야기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끝내 화해가 아닌 추모로 남게 되었다. 즉, 아버지의 꿈이 담긴 시 낭송과 얼이 전달한 화해의 손길이 무산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위 트랙은 상당히 복합적이라 볼 수 있겠다. 추모, 화해, 축하, 수용, 등의 여운이 박수 소리로 축약될 때의 감정이란 쉬이 설명할 수 없을 테니, 결국에 추모와 비애가 가득한 “Peanut”이 등장하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착잡한 감정이 묘사되는 본 트랙은 모종의 흐느낌마저 느껴진다. 앨범 내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그리움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주된 요소였지만, 마지막 부 “Peanut”에 가서는 분할된 목소리와 분열된 피아노와 샘플들, 통곡에 가까운 노이즈 낀 사운드가 차지한다. 결국은 상처 역시도 수용해야 하는 것이니.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였던 Hugh Masekela의 언급을 마지막으로 파란만장한 세상의 사건들을 종결 내는 밝은 빛깔의 곡 “Riot!”이 등장한다. 트럼펫과 기타, 드럼 연주로 가득한 본 노래는 말 그대로 탈출구로의 폭동을 보는 듯하다. 쇼의 마무리, 기나긴 우울의 터널의 통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감사 편지, 혹은 자신에 대한 헌정곡. 그 사이에서 맴도는 폭동의 결말은 어느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거나 모두를 포용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하나의 어떤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맞이한 절정으로 끝을 낸다. 절묘한 다음 장의 전개는 그런 식이다. 얼의 가장 아릿한 감정을 농축한 비애와 희망의 연주로 말이다.

 


 

본작이 어렴풋하고도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은 우울, 비탄, 애통 등의 감정이 작품 내에 두드러지게 그려졌지만, 그 감정들의 파고 속에서 위안을 찾는 과정이 형성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전작 중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 미움 등을 표했지만, 본작은 아버지에 대한 용서나 화해를 그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얼의 전작들보다도 가사들의 모호함은 늘어났기에 [Some Rap Songs]은 가장 추상적인 앨범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감정의 파고는 가장 직설적으로 전해진다. 앞서 내가 한 해석도 피카소의 그림을 분할하여 뜯어본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란 생각 역시 든다. 이 앨범에서 추상화된 감정의 파편들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여러 사건과 사고, 아버지와의 모순적 관계는 뚜렷한 얼의 감정을 흩뿌려 놓았다. 우리는 그 감정들을 목도하는 것이며, 가장 비애에 찬 군상을 기어코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본작이 모호한 단어들과 비트의 재배열로 이뤄진 난해한 작품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시선을 멀찍이 하고 발걸음을 살짝 뒤로한 뒤에 작품 전체를 다시 쳐다본다면, 이윽고 25분의 감정 추상화로 눈앞에 등장할 것이다. 얼 스웻셔츠의 혼재된 기억과 감정은 그런 식으로 나타난다.

그 때문에라도 앨범 내에서 반복과 절단의 용법이 주는 중요성은 상당하다. 짧게 커팅하거나 다양한 위치에서 가져온 보컬 샘플, 우울과 같은 비통의 감정 반복, 아이디어들의 활용, 모순의 되풀이는 모두 반복의 미학을 섭렵한다. 얼의 프로듀서 이명 RandomBlackDude가 활약하는 시점이 바로 이때이다. 25분이란 짧은 볼륨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커팅한 비트들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분명 그 방식은 MF DOOM, Madlib, J Dilla에게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완전히 비슷하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당장의 더욱 노이지한 질감부터가 그렇다. 우울한 침잠의 샘플링 속에서 비애를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은 쉬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얼 고유의 능력이다. 분명히 과거의 샘플링들을 활용하였지만, 그것이 애틋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얼만의 지독한 우울한 감상을 주는 것도 그의 실험성과 빛나는 예술성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위의 미학들이 더욱 빛날 수 있던 것은 얼 스웻셔츠의 랩과 어울리면서다. MF DOOM 만큼이나 모호한 단어들의 배치, 번뜩이는 펀치라인은 없지만 치밀하게 배열한 라임, 단어들을 툭툭 던지는 랩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본인의 감정을 섞기 위해선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는 전작의 [Doris]나 [I Don't Like Shit, I Don't Go Outside]에서 보여준 강세 있고 섬뜩한 랩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건조하게 내뱉는 랩이지만, 감정의 농축은 상당하게 드러나며, 커팅으로 반복되는 난해한 비트 속에서 더욱 진중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앨범 내의 이야기로써 더욱 재밌는 점은 “Veins”에서 드러나듯, Earl이 자신의 본명이 아니라고 말하며 드러나는 실제 본명의 Thebe Neruda Kgositsile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 또한, [Some Rap Songs]가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주된 차이점으로 작용하는게 아닐까 싶다. 비단 음악에 쓰인 여러 장치와 랩만을 얘기함이 아니라, 자아를 여러 차례 나눈듯한 본질에 다가가려는 듯한, 시시포스의 돌덩이를 수차례 옮기는 시도들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겹겹이 쌓인 샘플들 사이에서 다양한 악기 장치들을 배치하고 애매모호한 단어들을 던지는 이유는 자아의 결합을 통해 실제 본인을 끄집어 내는 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 시도가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던 이유는 그가 영리하게 조작한 앨범의 감상법 혹은 청자의 감상을 촉발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반대로는 우울이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 앨범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소 달라지는 양상을 띌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얼만큼이나 우울증을 경험해야만 앨범을 더욱 좋아할 수 있단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순히 리스너 본인의 경험이 음악으로 개입되는 요소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만약 그러하다면 더욱 몰입되지 않을지…)

최종적으로는 얼 스웻셔츠는 본인의 아주 지독한 우울증을 순수하고도 추상적인 예술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그렇게 25분이 짧게 느껴지지도 않으며, 오히려 25분의 시간이 본작의 가장 적합한 시간이라고 느껴진다. 세상의 부조리와 감정의 파편들 사이로 번뜩이는 것은 털어놓는 진심 섞인 감정이니 그로써 만족할 뿐이다. 우울, 불안, 중독, 회한, 가족 관계, 정신없는 샘플들, 그 사이로 가장 빛나는 것은 얼의 실존적 반복의 연대기이니 그 자체로 예술적인 걸작이 탄생했다.


처음에 말했듯이 타일러와 얼의 경로는 음악적 색채뿐만이 아니라, 작품에서 보여주는 태도마저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묶어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솔함이라는 가치였으니까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두 사람이나, 타일러가 보여준 행보만큼 얼이 보여준 행보 역시 중요하게 느껴지네요:) 

 

 

신고
댓글 11

댓글 달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회원 징계 (2024.08.05) & 이용규칙7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4.08.05
[아이콘] VULTURES 1, VULTURES 2 아이콘 출시32 title: [회원구입불가]힙합엘이 2024.08.03
화제의 글 일반 오프닝 공연때 누가오든 호응 좀 잘해주셈30 title: 2Pac왕의존재 10시간 전
화제의 글 음악 드레이크가 싫은 이유71 title: Kanye West (2023)아이돈라이크힙합 Hustler 22시간 전
화제의 글 일반 오늘 생일입니다.16 title: Madvillainymountain3 19시간 전
174429 일반 에미넴 베놈 평가 안좋나요?4 title: Frank Ocean스리슬쩍보이 2024.01.27
174428 그림/아트웍 오늘의 아티스트 [yeule]14 title: Quasimoto킹왕짱짱보이 2024.01.27
174427 인증/후기 오늘의 택배.jyp (DJ Shadow, Outkast 등등)9 title: Nas (2)killakim 2024.01.27
174426 일반 힙x) 리암 갤러거 & 존 스콰이어, 콜라보 앨범 발매 예정2 title: Eminem (Slim Shady)MarshallMathers 2024.01.27
174425 음악 독감에 걸린다음 취향이 바뀌었네요3 title: Kanye West (2023)RODDagger 2024.01.27
리뷰 Earl Sweatshirt [Some Rap Songs] 리뷰11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4.01.27
174423 음악 Benny The Butcher [EVERYBODY CAN'T GO]에 대한 5가지 시사점1 title: Ty Dolla $ignTrivium Hustler 2024.01.27
174422 음악 비행기에서 들은 앨범12 title: Kanye West (Donda)yi 2024.01.27
174421 음악 LIR2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5 title: Frank Ocean - Blondedlwjddn 2024.01.27
174420 음악 1년 전 어제, 모두의 편견을 바꾼 그 앨범이 나왔습니다.10 midwest 2024.01.27
174419 일반 요즘 핫한 신성 랩스타는 누구 있나요?6 title: J. Cole (2)Musikk 2024.01.27
174418 음악 앺뮤에 goldlink 앨범 2집 없는건가여?2 title: Playboi Carti (WLR)ReturnMPS 2024.01.27
174417 음악 이중에서 앨범듣는 순서.....뭐가 더 좋을까요?7 감자먹는오리 2024.01.27
174416 음악 제아디 미친년 ㅋㅋㅋㅋ4 title: Dropout Bear외힙린이 2024.01.27
174415 음악 마일리 사일러스 x 케빈 앱스트랙트1 midwest 2024.01.27
174414 음악 제 취향에 외힙래퍼 추천좀 부탁드립니다!!10 title: XXXTENTACIONRIZZ 202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