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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intro)”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2023.12.31 23:52조회 수 826추천수 10댓글 12

대개 앨범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명반이라고 취급받는 앨범들에는 훌륭한 포문을 여는 다양한 인트로들이 있다.  앨범이 시작함과 동시에 청자의 귀와 마음을 휘감는 알 수 없는 요체의 서문들 말이다. 그것이 힙합이라는 장르에 있어 하나의 랩이 되었건, 악기의 울림이 되었건, 내 안의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조건에 부합한 것들 말이다. 어찌 되었든 나에게 있어서 그 최고의 인트로가 바로 “Be (intro)”라는 사실이다. 하나의 시작부터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이는 곡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하게도 “Be (intro)”를 꼽을 것이다.

 

https://youtu.be/uNKbjXrX9Uw?si=QEslXULGMw4JIrDN

 

이 글을 쓰기 위해 수많은 인트로 곡들을 들었다. ‘흑인 사회를 이룩한 것들에 대한 반전과도 같은 일침’, ‘지독히도 어두운 환상으로 가득한 이상향의 추구‘, ’먼지가 가득 낀 지하철이 오가는 뒷골목의 이야기‘, ’여러 비트로 쪼개어 놓은 치열한 작업의 과정‘, ’술에 잔뜩 취한 듯, 변조된 목소리로 전하는 진심‘ 등, 으레 명반이라고 불리는 것들에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훌륭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곡들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2분 남짓한 ‘본인을 둘러싼 것들을 축약하는 하나의 선언문’과도 같은 이야기가 어째서 나에게 최고의 인트로가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다. 그 때문이라도 어째서 “Be (intro)”가 훌륭한가라는 질문보다는, 어째서 “Be (intro)”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지가 올바른 질문이 아닐까 싶다. 엇비슷한 질문이지만 더욱 마음이 동했다는 이유로 훌륭하다는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과도 같은 추상적인 움직임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곡이 어째서 특별한가를 조명하는 것도 빠지지 않고 말이다.

“Be (intro)”는 사실 2분가량의 짧은 곡으로 전반의 1분은 악기를 쌓아가는 데 집중하며, 후반의 1분가량은 커먼(Common)의 랩으로 채워진 곡이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설명조차 뒤집을 정도로, 고작 2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한 사람의 마음을 붕 뜨도록 헤집어 놓는 것이다. 어쩌면 한 사람을 바라보고 첫눈에 반하는 시간만큼, 2분이란 턱없이 짧은 시간 역시도 음악으로서 한 사람을 반하게 만들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이토록 묘한 의문이 곡을 들을 때마다 반복하곤 하는데, 나에게 남아있는 숱한 의문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첫눈에 반한 것만큼이나 답을 찾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업라이트 베이스의 현이 울리고, 전자 신디사이저가 가세하며, 샘플링이 깔리는 1분이 그토록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베이스로 시작해 랩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합주만으로도 사람을 설렐 수 있게 한다는 점은 분명 당시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공감각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프로듀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서서히 쌓아가는 악기들의 소리만큼이나 내 안의 숱한 울림들이 함께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의 쾌감이란, 칸예가 샘플링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Be (intro)”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시작한 고독한 베이스가 어느덧 샘플링된 앨버트 존스(Albert Jones)의 “Mother Nature” 전주가 들어오는 51초로 향한다. 종종 샘플링된 원곡을 들을 때면 원 창작자 앨버트 존스의 의도까지 덮어버리는 몹쓸 생각을 하는데, ‘이 앞의 전주가 무색해지도록 이토록 심심한 곡이었나’ 라는 것이다. 종종 그 원인을 생각해 보기를, 아무래도 그 사이를 이어주는 전자 신디사이저가 야속하기 짝이 없게 적절한 가교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필터링되고 차핑된 드럼 샘플링 사이로 랩 한 마디가 떨어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심지어 커먼이 랩을 시작하기 위한 추임새마저 훌륭한 악기 사이로 기대감을 증폭시키니 고작 1분의 전조가 무서우리만큼 크게 느껴진다.

한 생명의 씨앗이 발돋움하는 것과 같은 비트 속에서 커먼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만큼, 한때의 자유를 갈망했거나 구가했던 자들을 읊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커먼이 언급한 그들은 이미 고인이 된 것이고, 고인이 된 자들의 유산은 자유를 외치는 자들이 양성한 것이다. 혹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당장의 커먼이 음악 속에서 그랬음을 말한다. 게다가 커먼이 언급한 이들은 각기 다른 직업을 지닌 사람들이나, 원하는 지향은 같은 곳이니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귀감이었을 테다. 게다가 죽음이라는 단어 다음에 사고(concept)와 부활(resurrection)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점도 재밌지 않은가? 커먼의 과거 앨범 <Resurrection>을 언급한 것만이 아니라 고인의 유산이자 사고의 부활을 말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교묘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나의 죽음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사고의 향상이며, 어머니에게는 새로운 발걸음이다. 그렇다면 커먼에게는?

나는 그 물음의 해답을 샘플링과 신디사이저 음이 꺼지는 타이밍 그리고 커먼의 랩이 제시하는 가능성에서 찾았다. 어쩌면 나의 비약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으나, 그에겐 딸이 미래라는 가능성이기에 비트가 꺼지는 타이밍도 함께 시작된 것이다. 두루뭉술하지만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를 이야기함이 아닌, 올곧이 미래를 언급하는 점에서 있어서 현재에 집중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음악적 장치 역시 현재에서 멀어졌으니, 미래의 백지를 그리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반면, 과거에서 배운 것이 있는 것처럼 미래로부터 배운 것도 있을 법하다. 마치 커먼이 딸에게서 기쁨과 순수함을 재차 발견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다시 비트를 되찾은 커먼의 랩은 미래에게서 배운 현재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것이다. 나에게 딸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이유도 단순히 비트만이 수려하기 때문에, 가사를 잘 썼기 때문이 아닌, 비트와 커먼의 랩이 합치되는 현재의 현상이 아름답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뒤돌아보지 말 것을 말하겠다고 다짐하는 구절이나, 너무 멀리 보지도 말 것이라는 말도, 현재는 선물이라는 말로 귀결될 때에는 커먼이 참 낙관적이라고 느껴져지지만 공감하게 되곤 한다.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로부터 현재‘의 만남이 매혹적이기 때문일까? 혹은 그 자체의 역사로써 누군가의 말과 합치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단순히 커먼의 낙관주의가 아름답다면 구태여 내가 말을 붙일 이유도 없을 테지만, 커먼이 내린 결론이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나의 이야기와 합치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라는 것이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작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낙관으로 촉발된 나의 이야기조차 존재 그 자체를 규명하는 데에 애썼으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한 사람의 선언문은 존재 그 자체, 존재에 대한 사랑,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을 함축하는 단어 “Be”로 끝난다. 그리고 그 단어는 어쩌면 내가 잊고 살았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일종의 선언문으로써 어떤 이유에서든지 내게 필요했던, 아니 절실히 바라와 마지않던 한마디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존재하는 삶의 회의감조차 ‘be’라는 한마디로 결론 내버리는 커먼의 마무리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처음 곡을 감상했을 때에도, 남는 여운에 다시금 인트로를 듣게 되어도, 커먼이라는 군상을 마주할 때의 ‘i just wanna be’라는 구절은 여전히도 잊히지 않는다. 당장에 플랫 캡을 꽉 눌러쓴 한 가장의 선언은 결국 짧은 한마디 “Be”로 끝나버리니 결국 현재로 다시 돌아올 뿐이다. 그렇게 2분의 마무리는 현재를 살아가라는 말로 귀결되며, 커먼의 의지와 신념, 그리고 행위에 대한 존재적 확장이 나에게 닿기까지는 필연적으로 생생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은 ‘신년을 어떻게 보낼까?’라는 생각에서 집은 곡입니다만, 뭐랄까요...2분이라는 시간이 참 먹먹한 만큼 올해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커먼은 <Be>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올해는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려 합니다.

+  1월에는 가사해석 작업을 다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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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 12.31 23:57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1 1.1 00:15
    @귀여운타일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 1.1 00:06

  • 1.1 00:06

    글 진짜 잘 쓰시네요

    한 곡만 가지고도 이정도의 사유가 가능하다는 게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1 1.1 00:16
    @midicountry

    정말 감사드립니다ㅠ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1 00:09

    올해의 시작을 최고의 인트로로 하시다니, 앞날님의 한 해가 Be 같은 명해(?)가 되겠군요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1.1 00:16
    @온암

    온암님도 올해는 그곳(ㅠㅠ)에서 몸 건강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 1.2 00:19

    힙합 역사상 최고의 인트로 트랙... (아님 말구) 예나 지금이나 처음 들을 때부터 가사 해석과 함께 한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1.2 09:25
    @예리

    가사가 진짜 아름다운 트랙이죠…저도 처음에 찡 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 1.2 04:14

    맨날 오듣앨 음부심 부리는 애들 글만 보여서 짜증났는데 오래간만에 글 추천 누르고 갑니다 크롬켰다가 좋은글 보고가용

  • title: Illmatic앞날 Hustler 글쓴이
    1.2 09:25
    @frank0cean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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