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nde와 나, 그리고 3년 (장문 주의) - 국외 게시판 - 힙합엘이 | HIPHOPLE.com
값진 리뷰글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NikesFM님에게 감사드립니다.
Nirvana - Nevermind
양질의 리뷰를 읽을 때마다 명문을 작성하리란 충동에 불타오르고, 그렇게 들뜬 마음을 휘갈기다 보면 필력의 한계를 깨닫고 네다섯 번 정도 엎어버리는 반복적인 패턴. 완성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도 나는 Nevermind에게 사랑을 표하고 꾸준히 구애해온 이유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가 얕게나마 들여다보기를 목표로 해왔다. 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짊어야 할 무게도 큰 법. 모든 감상평을 늘어놓으려는 의욕을 고작 몇만 자로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긴 글을 조직력 있게 펼쳐내는 역량 따위가 없으니 절반도 가지 못한 상태에서 고뇌하고 멈춰서는 순간이 찾아온다. 한 번 식어버린 글에 다시 불이 붙는 건 상상 이상의 용기를 요구했고, 결국 이런 식의 뫼비우스의 띠를 그리는 일이 꽤 잦았다. 역시 무언가를 기피하는 이유는 장황하게 서술할 수 있어도 선호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고, 멋있게 해내는 일은 감상자로서 정말 의미 있는 값진 일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징하다.
그렇기에 내 선택은 다소 의아할 수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한 청취에 만족하지 않고 실물 음반을 소장하려는 욕구를 위해 돈을 쓰고, 앨범 하나만을 질리다 못해 구역질이 나올 만큼 미친 듯이 반복하여 청취하고, (올 한 해 너바나를 청취한 시간 13,000분 중 70% 이상이 Nevermind의 몫으로 예상된다) 정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쉴 새 없이 예찬하며 Nevermind의 위대함을 되새겼지만, 이렇게나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앨범을 별다른 논법의 역량 따위 갖춰지지 않은 제일 무지하고 멍청한 시기에 적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결여된 음악적 지식과 무작정 반복한 청취 경험에서 귀결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곡을 해석하거나 정의하지 못하겠다. 그저 사랑할 뿐이다. 오늘부로 너바나의 지지를 철회하고 한몸으로 일체가 되며 너바나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어쩌고저쩌고. 과연 너바나 그리고 커트 코베인이 바랐을 궁극적인 예술 활동의 목적지가 어디일까? 답변은 '없다', 좀 더 자세히는 '적어도 나에겐 없다'이다.
그간 너바나 외에도 내 심장을 움켜쥐고 마구 뒤흔들며 나를 눈물짓게 한 모든 음악 속에는 공통으로 은연중에 드러나는 부조화가 존재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간에겐 모순점이 존재하고 겉보기에 알아차리지 못할 뒤틀린 면이 존재하리라 생각했기에 이 일그러짐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예술들을 유독 치켜세우곤 했다. 이는 라디오헤드가 "No Surprises"에서 표현한 곡과 감정선의 어긋남일 수도 있고, 데이비드 보위가 "Lazaraus"에서 펼쳐낸 죽음에 이르는 순간과 절정에 다다르는 클라이맥스가 교차하는 비선율일 수도 있고,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soon"에서 선보인 마무리와 무한함을 동시에 망라하는 메시지의 불균형일 수도 있다. 마빈 게이,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 켄드릭 라마, 비틀즈 등 세계의 존경을 받고 훌륭히 평가받는 아티스트들이 나만의 애정 순위에서 한참 밀려난 이유는 그 모순되고 엇갈린 시그널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Donuts,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CHERRY BOMB 등 다양한 트랙들이 뒤섞이는 앨범들의 매력적인 어필은 나의 가산점이 되었고, 밴드의 커리어와 프론트맨의 생애 자체가 일그러짐 그 자체인 너바나가 장르 불문 최고의 아티스트로 선정됨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혼란과 난장판 그리고 그 속에서의 작은 낭만. 오글거린다.
과거의 내가 너바나의 매력을 언급하며 '정돈되지 않은 혼란과 난장판 그리고 그 속에서의 작은 낭만'이라는 문장으로 정리한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청취 시간이 쌓인 지금은 '작은 낭만'이 '크고 다양한 감동'으로 바뀌었을 뿐 전체적으로는 전과 동일하다. 진부한 표현으로 읊자면 늘 새롭고 짜릿하다. 어떠한 곡을 들을 때마다 요동치는 정서의 시소 위 양면적인 순간들이 뒤집히는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Live at Reading 앨범 속 "Come As You Are"에 연이어 "Lithium"에 극적으로 터진 떼창을 라이브로 즐기는 동안 누군가가 구석에 웅크리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그려지며, MTV Unplugged In New York의 "All Apologies"가 끝난 후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로 넘어가기까지의 매끄러운 대화 속 급변하는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얼어붙은 누군가와 진심으로 만족해하고 감탄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동시에 그려지기도 한다. 이들의 곡은 기쁜 곡도 기쁘지 않고, 슬픈 곡도 슬프지 않다. 소개한 대로 난장판 그 자체다. 앞서 귀결했듯 더 이상 심장박동의 주파수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선과의 마찰을 쉽사리 정의하지 않기로 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 등장한 Nevermind LP.
오랜 기억을 되짚어봐도 앨범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의 원본 출처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락 문화의 일선의 위치에서 최고의 대표작들 중 하나로 보급되었기 때문일까. 자각하고 나니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기억회로의 곳곳에 스파크를 튀기는 찰나의 지점들은 정말 앨범의 수많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목록은 꽤 다양했다. 음악사에서 영광의 금메달 자리를 앞다툴 "Smells Like Teen Spirit"의 도입부 기타 리프는 물론, "In Bloom"의 드럼 패턴, "Lithium"과 "Lounge Act"의 도입부 멜로디, 상당히 이질적인 히든 트랙의 존재 여부, 그 외 기타 등등까지. 생각해보면 꽤 많은 청취자들이 너바나의 과대평가를 주장하며 파워 코드를 주 무기로 내세운 팝 밴드라는 누명 아닌 누명을 씌우곤 한다. 워낙 그들의 강렬하고 직관적인 인상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인과 관계가 존재함을 짐작하게 된다.
대신 엄밀한 시작점을 몰라도 확실하게 아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매 해마다 갱신된 나의 Nevermind 청취 시간 그래프를 따져보면 아마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바나나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우상향 곡선의 모양새를 띄리란 사실, 그리고 그 곡선에서 본격적으로 기울기의 상한치를 꿰뚫어버린 기폭제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등장한 레코드 판이란 사실. 반투명하고 빳빳한 비닐 가방과 그 안에 들어 있는 바닷속 아기의 모습은 (여러 요소를 따져보면 바다라기엔 많은 어색함이 있지만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TV를 안 본 지도 3~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선명히 뇌리에 꽂힌 몇 안 되는 장면들 중 하나다. 인생 처음으로 구매한 LP라는 상징성과 함께 단순히 간직하기를 넘어서서 지금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드라마에게 잠시 감사하는 마음을 확인하며 넘어가고 싶다.
드라마에서 본 비닐과 유사한 포장 비닐이 있던 음반 판매점. 엘이인들의 성지인 홍대 김밥레코즈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몇 마디를 더 적어보자면 드라마에 대해서 떠올려봤을 때 겨우 두 줄 정도로 늘어놓을 시나리오와 더불어 그 줄거리 안에서 Nevermind LP가 무언가를 상징하며 꽤 비중 있게 등장했음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 한 장면이 정확히 머릿속에 나타나는 걸 보면 정말 앨범 커버가 주는 힘을 곱씹어보게 된다. 아기, 수영장, 밴드명과 앨범명, 이미지 합성으로 첨부한 돈과 낚싯줄까지. 단출한 4가지 요소로 이렇게나 뚜렷한 난해함을 표현하다니. 과거 김밥레코즈를 찾은 김에 겸사겸사 방문했던 근처 연식이 있는 레코드 샵에서 드라마에서 본 비닐 가방과 비슷한 생김새의 물건을 발견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직접 만져보며 감상에 젖을 정도면 오직 그 한 장면의 앨범 커버가 어떠한 큰 울림을 줬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앨범 커버 하나만으로도 휘몰아치는 충격에 압도당한 이유가 무엇일까.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게 예술이라지만 이 갓난아기의 오묘한 표정과 몸을 펼쳐 보인 자태는 정말 정보와 몽상의 경계를 미끄러지는 기분이다. 앨범을 수백 번 돌리고 난 지금은 더 크게 와닿는 부분이다. 대체 이 앨범의 커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각자의 해석이 곧 자신에게 정답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차치하고, 우선 직접 커버를 감상해보자.
까꿍
자고로 앨범 커버란 앨범에 담긴 모두를 포괄하며 동시에 예술적인 면모를 풍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가적인 장치들은 가산점이 되겠지만 최소한의 요건 만족을 위해선 그 두 가지면 충분하다. 예시로 비틀즈의 The Beatles (셀프 타이틀) 앨범을 떠올려보자. 비틀즈의 존재를 잠시 잊고 그 자리에 어느 고등학교의 스쿨 밴드 이름을 넣었다면 음원 유통사에서 코웃음을 칠만큼 단순하고 무성의한 형태다. 대체 흰 바탕에 밴드명 하나를 기울인 끄적임이 왜 그렇게 예술적이라 평가받는가? 전작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선회하지 않는단 의미를 담기 위해 여백 없이 빽빽하던 앨범 커버를 완전히 덜어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한 덕분에 청취자들은 두 앨범을 감상하며 확연한 대립점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앨범의 포괄과 예술적 면모 이 두 가지에 유의하며 다시 앨범 커버를 감상해보자. 들여다봐야 할 요소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는 꽤 뚜렷한 편이다. 아기는 왜 돈이 걸린 낚싯줄을 쫓는가? 물질주의를 비판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 의견에는 반대하는 편이다. '왜'라는 단어를 꺼낸 근본적인 질문부터 돌아가서 아기가 낚싯줄에 걸린 무언가를 쫓는다는 가정하에 잠시 이미지를 비틀어보자. 저 낚싯줄에 걸린 게 생선이라면? 샌드위치라면? 뇌쇄적이고 아리따운 여성이 겉표지를 장식한 성인 잡지라면? 물건이 바뀌었다면 아기의 움직임도 달랐을까? 아니면 오히려 낚싯줄이 아닌 커다란 상어가 아기의 뒤를 쫓는 형상을 그려보자. 아기가 공포에 질려 있을까? 그 무엇도 아니다.
팔 모양이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여서 당황스럽지만 얼굴을 보니 역시 귀엽다.
아기는 헤엄친다. 그저 헤엄칠 뿐이다. 본래 갓난아기를 물 속에 넣고 관찰해보면 자연스레 수영하려는 동작을 취한다. 특별한 목적이 있지도 않고 어떠한 과학적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있지도 않다. 그저 자궁 속 양수에서 성장하던 시기부터 이어지는 본능이다. 빅뱅이론을 추측할 뿐 완전히 해체하여 결론내리지 못하는 21세기의 인류에겐 이 정도가 한계 선이다. 그 외에도 가르쳐준 적 없지만 본능적으로 아는 행동들이 몇 존재한다. 호흡할 줄 알고, 젖을 빨 줄 알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쥐는 법을 알지만, 낚싯줄에 걸린 돈을 잡아채면 그 돈으로 분유를 사 맛있게 먹을 수 있으리란 상상 따위 하지 못한다. 전혀 이상한 부분이 아니다. 그런 정보는 본능에 깃들어있지 않고 배운 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커트 코베인의 인생에 비유하고 싶다. 우선 그가 삶에서 익히고 배운 가치관을 관찰해보기 위해, 으레 다수의 음악가들이 그렇듯 공통으로 가진 불우한 가정과 정신적인 고통에서 출발해보자. 그는 양가로부터 정신 질환과 관련된 유전적 영향을 받고 주변인들의 자해와 자살 사건을 목격하곤 했다. 이를 통해 내면의 고통은 사람이 자신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르게 함을 배웠겠다. 나이 9살에는 이혼가정의 자녀가 되고 주위 친척과 부모들의 집을 떠도는 생활을 하며 가족의 사랑이 결여된 이의 슬픔을 몸소 경험했겠다. 혼란스러운 가정을 뒤로 하고 이른 나이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뒤 노숙을 하며 청소와 허드렛일로 돈을 벌 때는 궁핍한 생활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를 경험했겠고, 끝내 술과 담배 그리고 대마초에 중독되어가며 망가지고 뒤틀린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바라보았겠다. 짐작하기로 다수의 아이들이 겪을 사건·사고들은 아니다. 통틀어 생각해보면 모든 아이가 하나의 개체로 자립하는 청소년 시기 내내 그는 아픔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방법들에 대해 꾸준히 그리고 끊임없이 배웠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커트 코베인만의 독자적인 정신세계 구축에 일조했다.
XX들은 신경쓰지 마라, 여기 섹스 피스톨즈가 왔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이를 견디고 해소하는 방법인, 자신과 같은 문제아들이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반감을 펼쳐내는 펑크 락을 배웠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무대를 관람하고,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하며 펑크 락의 폭발력과 저항성이 일으키는 감정의 분출과 희열감을 경험했다. 이는 2집의 앨범 제목이 Nevermind로 지어진 맥락과 이어진다. 제목은 펑크 락의 최고 걸작들 중 하나인 섹스 피스톨즈의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에서 따왔다. 펑크 락이 그의 음악에 중요하게 영향을 준 면모도 그렇고, 그가 펑크 정신과 유사하게 고집해온 태도로 미루어봐도 그의 선택과 음악적 행보는 펑크 락의 특성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꺼져. 신경 쓰지 마. Fxck you. 여러 가사 속 의미와 인터뷰 내용들을 살펴보면 너바나의 음악에는 힙합 음악을 비롯한 다수의 장르들이 선택하는 방향 중 하나인 주류 기성세대나 사회에 만연한 불만 거리를 향해 의견을 표출하고 공격하는 방식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너바나가 펑크 음악을 비롯한 여타의 저항 정신과 대조되는 점 역시 뚜렷하다. 펑크 락의 대표곡들인 섹스 피스톨즈의 "Anarchy in the U.K.", 더 클래시의 "London Calling"과 같은 트랙들을 살펴보자. 이들은 세계 전쟁 중의 상황에서 몰락한 국가 및 도시들과 굶주린 시민들을 보살피라 외치며 민중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역사적으로 시위와 운동이 많았던 시기였기에 자연스레 그들의 음악 역시 공공의 이익과 평화로운 세상에 좀 더 집중했다. 이에 비하면 너바나는 조금 다르다. 밴드 명칭인 열반의 뜻풀이에서 비롯되듯 그들은 외부의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 즉 개인과 내면의 평화를 추구한다. 때문에 많은 주제는 가사를 읊는 화자인 커트 코베인 본인에게서 나오고 발매 30년이 지난 어느 청자에게도 당시와 상응하는 울림을 준다. 사랑하던 연인과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Drain You", 우울감과 조울증에 대해 표현한 "Lithium", 자신의 청소년기 모습과 생각들을 담은 "Smells Like Teen Spirit"까지. 전부 소개할 순 없지만 커트 코베인의 여러 일화들을 살펴보면 난해해보이는 가사들도 전보다 귀에 쏙쏙 잘 들어온다.
너바나의 정규 앨범을 발매 역순으로 나열한 사진. 마치 부모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고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 같다.
펄 잼, 사운드가든, 앨리스 인 체인즈 그리고 너바나 등으로 대표되곤 하는, 펑크에서 자라나 비슷한 면을 공유하지만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장르 그런지(Grunge). 커트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치기 위해 그저 그런지라는 수영장에 빠졌다. 그 안에선 갓난아기처럼 기타를 헤엄치고 마이크를 쫓았다. 앨범 커버는 이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메타포다. Nevermind의 커버 속 아기는 커트 코베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 아기는 1집 Bleach에서 드러낸 미성숙함처럼 여전히 무지하고 부족하지만 맹목적인 자신의 모습을 일부 투영한 게 아닐까. 또한 차기작인 3집 In Utero의 의의가 그랬듯 자신의 정 반대편에 존재하는 무방비하면서도 순수하고 때 타지 않은 태초 그대로의 모습을 갈망하는 게 아닐까. 서로 반대인 앨범의 발매 순서와 앨범 커버의 시점 속 중간에 위치한 Nevermind. 의도했을 수 없겠지만 아기가 커트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 커트와 묘하게 닮은 듯 닮지 않은 모습을 보면 이 앨범은 역시나 커트 코베인 자신의 삶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커트 코베인은 그의 폭발적인 음악과 그를 대표하는 무대 위 막장 퍼포먼스와는 달리 공적인 자리와 사석에서는 대개 차분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생애와 인터뷰를 통해 드러낸 내면을 참고하면 커트 코베인의 파괴는 자기방어를 염두에 둔 게 아닐까 한다. 너바나 공연에선 잘 드러내지 않는 인간 커트 코베인의 진면모를 감상할 수 있는 명작 MTV Unplugged In New York를 감상해보자. 무대 위 부드럽고 여유로운 분위기 아래에 절제된 선율이 울려 퍼진다. 관객들에게 다음으로 듣고 싶은 곡을 물어보며 차분히 대화도 나누고, 자신의 수위 높은 가사와 자기비하를 이용한 농담도 주고받는다. 기타를 때려 부수고 반항하는 무대를 선보이는 게 가짜인 게 아니다. 차분히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도 커트 코베인이고, 깽판을 치는 사람도 커트 코베인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많은 이들 앞에 나서서 발가벗겨진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는 자기 자신 하나를 물리치기 위해 평생을 싸우다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를 괴롭히는 모두에게서 탈출하기 위한 자의적 붕괴의 결과는 씁쓸했을지언정 적어도 그는 최선의 정답을 찾은 게 아닐까.
처음 읽어본 나무위키의 가사 해석본. 해당 가사는 "Smells Like Teen Spirit"의 후렴구다.
한때 Nevermind의 리뷰 작성과 마찬가지로 가사 해석을 목표로 했던 적이 있다. 때는 Nevermind의 진짜 의미라는 무용론을 쫓아 미노타우루스의 미궁 속에 직접 몸을 던지고 길을 헤매며 울상 짓던 때였다. 마치 라디오헤드 Amnesiac 앨범 커버의 주인공처럼. 지금의 나는 사실상 앨범에 대한 무언가를 정의하는 행위의 대부분을 포기하거나 기피하는 상태지만, 그런 결정을 하기 전 앨범을 접한 초창기에는 나무위키를 구경하다 "Smells Like Teen Spirit"의 가사 해석본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혼혈인 & 백색증 환자 & 모기 & 욕망. 부족한 영어 실력에도 귀에 또렷이 들리는 네 단어의 직역된 해석은 어느 정도 유추 가능했기에 해당 문서를 통해 단어들의 맥락이나 은유하는 바가 있을지 간접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돌아온 답변은 앞에 쓰인 그대로였다. 어찌 보면 원곡을 그대로 살렸다 볼 수 있는 무성의한 해석에 과연 다른 해석들은 어떤 의견을 내보였는지 흥미가 돋았다. 과연 이 무의미한 네 단어 나열을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그럴듯한가 고민하기 시작했고, 구글, 네이버,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수많은 인터넷 자료들을 뒤져가며 고집스럽게 찾아내곤 했지만 역시 원어 그대로의 표현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는 없었다.
이 때문에 내가 Nevermind와 가진 첫 순간의 대략적인 이미지마저 기억력의 감퇴로 잃어버린 게 어쩌면 Nevermind가 나에게 계시하지 않았나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 순간에 섣불리 나만의 Nevermind를 정립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또렷하게 기억했다면 오히려 그렇지 않기를 바랐겠다. 그렇게 얼렁뚱땅 나의 Nevermind는 불완전하기에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려버린 후 나는 앨범 자체에서 추가로 파생된 정보들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기로 했다. 이는 청취자들의 사견이 들어간 가사의 해석본이나 앨범에 기여자로 표기된 크레딧을 파악하는 건 물론 CD와 LP로 모두 구매해놓은 앨범들의 자켓 사진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행위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하다 싶어도 나에겐 너무나 합당하다. 친구, 동료, 연인과의 첫날부터 상대방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다면 그만큼 지루하고도 재미 없는 관계가 있을까. 급진적인 정보 주입은 마치 평생토록 풀어야 할 퍼즐을 단번에 해치우는 기분이다. 인생의 매 순간에서 기다란 발자취를 남기는 내내 Nevermind와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가까워지고 싶다. 그래도 전혀 늦지 않다.
https://youtu.be/bRJ2V2lUb5Q?feature=shared
때문에 너바나의 음악을 들으면 언제나 인생의 교본을 펼쳐보는 기분이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이 사실은 나처럼 누군가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자기혐오와 성찰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걸작이라니. 허점 없는 완벽함을 위해 많은 일에 과하게 몰두하고 윤리적인 해방감을 위해 참뜻과 해석에 집착하려던 나를 정확히 뒤집어놓은 앨범이다. 나는 꾸준히 매 순간 변화하고, 그렇기에 어느 한 시점에 너무 오래 안주함은 불필요한 행위이며, 과거 회상의 채찍질은 자신을 손가락질하기 위함이 아닌 반면교사를 위함이라고. 너무 많은 일에 신경쓰지 마라. 나는 Nevermind라는 단어 자체에 정확히 꿰뚫렸다. 그렇기에 Nevermind는 너무나 중요한 앨범이다. 나의 모든 예술적 감상 이래 모든 앨범들 중 Nevermind는 '현재' 그리고 '지금'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나는 이 앨범을 해답으로 내놓으며 '지금'이라고 외친다.
그래서 오늘의 리뷰를 작성하기까지 수천 번 수만 번의 고민을 했다. 내게는 곧 '지금'인 이 앨범을 함부로 정의하면 나의 감상을 과거 어느 순간에 멈춰 세운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새로 태어난 내 감정이 썩기까지의 유통기한은 꽤 짧은 편이었고, 지금의 감상 역시 언젠가 잊히고 변하게 될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를 바라보는 수많은 순간들 중 하나라 생각하곤 했다. 다만 몇 번의 수정 작업 덕분에 꽤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긴 했다. 완전하지 않기에 정의할 수 없다는 건 곧 불완전함을 정의했다는 게 아닐까. 난 지금의 불완전함을 이렇게 정의함으로써 계속되는 감상의 새로운 변화를 암시하는 중이다. 이 불친절한 글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이 글은 작성한 나 자신 또한 그렇듯 이해할 수 없기에 비로소 완성된다. 마치 Nevermind가 그랬듯이.
새해 첫 곡 이야기로 많은 분들이 들떠 계시더군요. 저는 이 글을 쓰면서 "Endless, Nameless"의 비트 스위치를 정각에 맞춰 2023년의 마지막 곡과 2024년의 첫 곡으로 들었습니다. (제목값) 역시 리뷰도 그렇고 새해 첫 곡도 그렇고 큰일이 아닐지언정 한껏 만끽하고 즐기는 게 정말 짜릿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2024년에도 재밌는 음악 생활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리님이다 예리님!
보고싶었어용ㅠ0ㅠ
😋😋😋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이 글을 보니까 너바나가 너무 듣고 싶어지네요
2023의 마지막과 2024의 처음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히히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와 예리님!
근데 왜 탈퇴하셨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작성글을 정리하고 왔습니다
말그대로 Nevermind 그 자체가 떠올려지네요…내일 간만에 또 돌리러 가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ㅠㅠ감동
감동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 돌아오셨네요! 리뷰 잘봤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화이트 앨범 틀어놓고 찬찬히 읽어보고 있었는데 화이트 앨범 얘기가 나오다니 이 무슨 우연의 일치...ㅋㅋㅋ
"인생의 매 순간에서 기다란 발자취를 남기는 내내 Nevermind와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가까워지고 싶다. 그래도 전혀 늦지 않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관점을 취하실 수 있는 거죠...
예리님의 Nevermind를 향한 사랑과 관심과 고뇌가 정말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예리님께 게기?를 마련해준 NikesFM님의 글 못지 않게 예리님의 글도 저에게 많은 영감을 남길 것만 같네요.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최고에요!
히히히 무수히 많은 칭찬 감삼다 🥳🥳🥳
노프사로 돌아오시더니 필력부터 감상의 깊이까지 차원이 달라지셨군요
영감의 원천부터 그 영감으로 그려낸 낱말들까지 무척이나 사랑스럽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지저분한 글을 원했는데 얼떨떨하네요... 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웬만하면 읽고 자려 했는데 글이 엄청나게 기네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뇌 좀 깨울겸 네버마인드 들으면서 읽어야겠다
너무 길어질까봐 좀 많이 덜어낸 글이긴 합니다... 트랙들에 대한 감상이 거의 제로인 것도 그 때문에... ㅋㅋㅋㅋㅋ 네버마인드 즐감하세요!
오우 글 굉장히 잘 쓰시네여....ㅋㅋ
확실히 여러 앨범들을 듣는 것에 집착하는 것보단 하나의 앨범을 많이 돌리는 편이 뭔가 더 얻어갈게 많은 것 같아요.
와....근데 앨범 커버에 대한 리뷰는 처음 보는데 너무 참신하고 좋아요!
부조화에 대한 언급도 되게 잘 이해되네요...비틀즈랑 켄드릭 못 느꼈다고 음알못이라 한 것을 철회합니다....뒤툴린 황천의 예리님...ㅋㅋㅋㅋ
+) 혹시 아실지 모르겠는데 네버마인드의 그 아기가 또 다시 고소 박았다네요...예리님 돌아오시면 전해드릴려고 아껴두고 있었던 소식이에여 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소식은 아찔하게 하네요... 커트 좀 편히 쉬게 제발 놔줘...
돈다 프사에서 변신 ㄷㄷㄷ
🤨🤨🤨
이쯤 되면 돈 필요해질 때마다 고소하는 듯 ㅋㅋ
너바나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오셨군여!!!
내가 돌아와따
저는 파라모어나 악틱처럼 너바나한테 영향 받은 가수들은 듣지만, 막상 너바나나 펄잼 같은 정통 그런지에는 별 흥미가 안 생기더라고요. 좋은 글도 읽고 했으니 새해부터 네버마인드를 들어봐야겠습니다
그 너바나도 픽시즈 소닉유스 등등의 영향을 받았으니 역시 음악은 이어지고 이어지는 것 같네요. 너바나가 그렇게 좋아하는 비틀즈도 제가 언젠가 좋아하게 되길 바랍니다 ㅋㅋㅋㅋ
오히려 좀 더 편한 말투의 글이 나온 거 같아서 읽기 편했네요 개추!
제 사소한 독백이 이런 좋은 글이 나오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게 참 기쁘네요. 보통 큰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부정에 가까운 인상을 가진 앨범들도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글을 읽게 되면 그 인상이 확 바뀌게 되는데, 왠지 이 글을 통해 Nevermind가 딱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잘 읽고 갑니다!
히히히 목표 달성입니다 감사해요!!!
네버마인드 lp 돌려놓고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ㅋㅋㅋ 정성글 추
턴테이블이라니 부럽따... 감사합니다!
이거 보여주려고 탈퇴했건 겁니까 ㅋㅋㅋ
가슴이 웅장해진다...
올해는 이거 읽으면서 네버마인드 느끼게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히히히히 네버마인드는 신이양
She's Back!
https://youtu.be/UimodeZfA9o?feature=shared
멀리 가신줄 알았는데 돌아오셨군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애기인 청년
보고 싶은 청년.
각성하시고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마지막 문단 이거 양자역학이네요
잘봤습니다! 새복많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오 예리님..
정말 두고두고 보고 싶은 글이네요 ㅋㅋ 바로 네버마인드 들으러 가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설 이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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