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 야구, 하키 등 수많은 북미 스포츠가 있지만 농구는 흑인 커뮤니티에 있어서 단순 스포츠를 넘어 정당한 방법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였다. 이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북미 흑인들의 주류 문화인 힙합의 요소 중 하나로 불릴 만하며 30년 넘게 그 정통성을 이어오고 있다. 농구가 그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는 J. Cole의 <4 Your Eyez Only> 앨범 속 가사를 통해 대강 알 수 있다. 'They telling’ hittas sell dope, rap or they go to NBA, in that order.' 해석하자면 '사람들은 말해, 갱스터들은 마약상이 되거나, 랩을 하거나 혹은 NBA에 가지' 정도가 되겠다. 흑인으로서 크게 성공하려면 불법적인 일로 부를 축적하거나 랩 혹은 농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상황은 비교적 나아졌지만, 2~30년 전까지만 해도 흑인들 사이에선 진심 반 장난 반으로 이런 이야기가 오갔을 정도로 뼈 있는 농담이나 다름없었다. Michael Jordan의 우아한 페이더웨이 슛 폼, Kobe Bryant의 맘바멘탈리티, Lebron James의 강렬한 플레이메이킹 등 흑인 슈퍼스타들의 능력과 명성 덕도 있지만 이것만으로 흑인 사회에서 농구가 이렇게나 비중이 큰 문화인지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처럼 말이다.
농구가 흑인들의 스포츠가 된 이유를 자세히 파고들자면 비용, 사회적 분위기, 흑인 대이동을 뽑을 수 있다. 먼저 흑인 대이동(1900~1970)은 미국의 산업화 시기와 맞물려 진행됐다. 흑인들은 노예 시절부터 자유인이 된 시절까지 주로 농업에 종사하였고 농사에 최적화된 남부에 위치해있었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여러 산업과 상업적인 것들이 북부에 생기자 흑인들은 가난과 실업을 벗어나 북부 대도시로 떠났으며 백인 자본가 아래 값싼 일력이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 당시 흑인들이 위에 명시된 미식축구, 야구, 하키를 즐길 수 없던 이유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농구는 농구공과 골대 하나만 있다면 모래나 아스팔트 위라도 교실보다 작은 반코트에서 4 대 4로 최대 8명이 즐길 수 있는 방면, 위 세 개의 스포츠는 기본 10만원을 호가하는 장비는 물론이거나 정기적으로 관리가 이루어지는 매우 큰 크기의 운동장을 요구한다. 당시 대도시 빈민가에 거주 중이었던 흑인들의 인구 밀도는 매우 높았을 뿐더러 백인과의 연봉 차이도 기본 몇 배는 차이났기에 중산층들이 사용하는 잘 관리된 운동장은 사용할 수 없었다. 더불어 힘들게 사용권을 얻는다 한들 백인 중심 시스템의 운동장에선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 심하면 집단 구타를 당할 수 있었다. 또 복잡한 룰과 어려운 입문 단계가 높은 스포츠들과 달리 농구는 입문 단계가 쉽고 혼자 연습하고 배울 수 있는 스포츠인 것도 한몫을 했다.
흑인들이 다수 거주 중인 고인구밀도 빈민가에서 농구란 최적화된 스포츠였고, 이런 환경과 잘 맞물리면서 흑인 인재들이 우후죽순 생기게 되었다. Magic Johnson과 Kareem Abdul Jabbar 등 여러 초기 농구 스타들은 어린 흑인 꼬마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들의 명성과 부는 지옥 같은 환경에서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꺼내줄 수 있는 방법으로 보았다. 래퍼와 더불어 농구라는 꿈은 정당한 방법으로 부유한 백인들 그 이상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달콤한 기회였다.
.
[오후 7:08]
미국 농구선수 출신들 중 빈민가, 편부모, 폭력 등 래퍼들과 동일한 아픔을 공유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들의 아픈 개인사를 돌이켜 보면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았고 이러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상호존중과 동료 문화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버림받고 고달픈 노숙생활에서 비롯된 허슬플레이의 Dennis Rodman, 홀어머니의 바쁜 경제활동으로 인해 유년 시절 거실에 혼자 차갑게 남겨진 Kevin Durant, 마약과 살인 등 각종 범죄가 도사리는 컴튼에서 갱스터와 함께 자란 Demar Derozan 등 그들에겐 선택권이란 없었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빈민가 출신 흑인 래퍼들 또한 최악의 조건을 뒤로 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다.
그렇다고 꼭 아픔만을 공유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영감 또한 얻었다. 대표적으로 끈질긴 끈기가 마치 독사를 보는 것 같아 '맘바멘탈리티'로 칭해지는 Kobe Bryant를 뽑을 수 있는데,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한계치를 뛰어넘으려는 그의 모습은 여러 가사에 인용될 정도로 래퍼들의 허슬 정신을 자극했다. 또 선수들의 멋있는 플레이를 통해 영감도 받는 경우가 있다. 마치 Stephen Curry의 3점 슛과 Lebron James의 현란한 덩크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하이라이트를 통해 말이다.
또 농구선수들이 성공 후 자신의 연고지 또는 고향에서 헌신하고 기부하는 모습은 흑인 사회에서 바람직한 모습으로 인식되는데, 이러한 모습 역시 래퍼들에게 후드 정신으로서 선명히 나타난다. 결국 이런 상황들은 어린아이들의 꿈을 만들어내며, 선순환을 지속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유대감이 강화되는 효과를 낳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서로 공통적인 뿌리를 지녔으며 추구하는 가치들이 다수 겹치기에 이러한 시너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이전까지는 둘의 관계가 힙합의 거의 일방적인 러브콜이었다면, Allen Iverson을 기점으로 전환된다. 멋있게 땋은 그의 머리, 잘생긴 외모, 헐렁한 저지, 타투, 래퍼들이 많이 사용하는 흑인 남부식 말투 등 그는 딱딱하고 질서정연한 NBA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었다. 힙합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는 멋은 날것의 미가 무엇인지를 톡톡히 보여줬다. 좌우로 튀기며 상대를 뚫고 돌파하는 크로스오버 같이 농구 팬들의 심장과 힙합 팬들의 심장을 같이 뛰게 만든 그는 2000년대 이후 힙합과 농구의 결맹을 더 견고히 해주었다.
최근들어 Drake와 Lebron James, Travis Scott과 James Harden 등 래퍼와 농구선수의 친밀감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으며 Damian Lilard와 Lamelo Ball 등이 힙합 앨범을 발매하면서 농구 선수들 또한 래퍼를 자처하는 상황이 나오고 있다. 농구와 힙합, 90년대부터 시간이 지나갈수록 둘의 사이는 가까워지고 있으며, 단순 상이한 두 독립 분야의 합산로서는 정의하기 복잡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쩌면 나중엔 힙합의 요소 중 하나로 농구가 소개될 수 있을 수 있다고 보며 두 사이의 밝은 전망을 기대해 본다
https://blog.naver.com/qazplmgv046/223284195818
잘 읽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농구와 힙합 모두 좋아하는 입장으로써 너무 흥미로운 주젠데다 글을 굉장히 잘 쓰셔서 진짜 순식간에 읽었네요 ㅋㅋ
농구 처돌이로써 추천 드립니다
추천!
농구 관심있는 사람으로서 잘 읽었습니다
ㅇㅅㄹㅅ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