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영화의 제목은 영화를 대표하는 경우가 대다수지요.
이 ’헌트‘또한 그러합니다.
Hunt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사냥’, ‘추적’, ‘물색’, ‘탐구’같은 명사와
‘사냥하다‘, (찾기 힘든 것을)‘찾다’, ‘몰이하다‘, ‘몰아내다’같은 동사로 다양한 뜻을 가지는데요.
모두 행위의 주체가 어떤 목적을 갖고있느냐에 따라서 뜻이 갈리는 단어입니다.
영화는 이 hunt의 다의를 밑바탕으로 깔고있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나온 거의 모두가 저만의 목표를 노리고 있고, 그들 중엔 단순히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들도, 아니면반대의 입장이 되어 쫓기거나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등.
다양한 의미들이 인물로 형상화 되어 영화 곳곳에서 저신의 일을 하는 게 보입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명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하나같이 당위성 보다는 ‘-를 위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와 같은 정당화를 위한 명분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서, 정부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한국을 위해서.
선악 구도는 의미 없습니다. 누가 야생의 세계에 선악을 요합니까? 이 영화의 세계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선자’라 부를것입니다.
모두가 사냥하고 모두가 사냥당하는 세계. 저는 여기에서 한국 사회를 엿보았습니다.
허구한 날 서로를 물어뜯고, 서로를 혐오하고, 서로를 과연 동등한 인격체로 봐주는 것일지 모르는 사회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 사회는 개인이란 개념이 있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개인이 사라질 때까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이러니 조선시대에서 못 벗어났다라는 소리가 종종 나오는 것입니다.
뭐, 하지만 우리 모두 하나의 목표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사회가 더 살기 좋아지길 바라는 목표입니다.
그걸 영화에서는 대표적인 두 인물을 통해 보여주었고,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보여주었습니다.(물론 탐관오리는 있기마련이지만요.)
여하튼 목표는 같지만 우리들은 서로 싸울 것입니다. 왜냐면 서로를 이해할 겨를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죠.
역사에 남거나 안 남은 피해자들을 우리는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지금.
이러한 헌트를 하는 이들을 저는 성인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정치에 완전히 참여가능한 인원이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가 가해자입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헌트는 곧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로 걸쳐 고초를 겪어왔습니다.
저는 그 바통을 넘겨받을 나이가 곧 다가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무엇을 위해, 제가 만들어 낼 새로운 피해자들을 생산해내야만 하는 걸까요.
시간만이 흐릅니다.
헌트 진짜 최고죠 극장에서 개봉했을때 여러번 봤어요
헌트는 딕션빼고 참 재밌게 봤네요
솔직히 기대없이 영화관 갔다가 의외로 재밌게 봤던-
최근에 본 영화중에 제일 인상깊게 본 영화중 하나인듯
보통 첫 영화는 설익은 부분이 도드라져보이는데
(물론 진입장벽이라던가 전개가 약간 매끄럽지 못하고 난잡한 부분 등 흠은 있지만서도) 그러기는 커녕 영화 자체가 상당히 준수한 완성도를 가졌고
또 감독의 도발적인 메시지가 맘에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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