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 아래서의 감정 전달자: Frank Ocean - Provider
2017. 8. 27
4:04
Blonded Los Santos 97.8 FM
Frank Ocean, Jarami, Caleb Laven
프랭크 오션의 싱글 Provider는 가장 감각적인 색채를 매개로 하여 여름날과 밤 풍경의 정열적 외로움을 회고한다. Blonded 라디오로 돌아온 오션은 특유의 공간감 있는 프로덕션을 있는 그대로 발로시키며 그만의 방법으로 감정과 환경을 주조했다. 달빛을 거슬러 오르며 감정을 짜맞춘 경험들은 표면에 회화적 신디사이저와 은연 중 내면의 호소로 드러난다. Blonde가 가지고 있던 체험적 음악 연출이 싱글 곡으로도 이식되어, 그를 기다리는 팬들에게 아련한 회포를 풀어놓는다.
Blonde에서 뛰쳐나온 감정 제공자
비교적 늦은 나이에 프랭크 오션을 접하고 나서, Blonde에 완전히 마비되었던 적이 있다. 막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후의 일이다. 이제 막 잠적 4년 차를 맞은 오션의 음악은 그 양적으로는 안타까울 정도로 적었지만, 그 압도적인 체험의 사운드와 감정의 열기가 고통스럽게 담겨 막 내 세상에서도 신성으로 등장하던 참이었다. 전 국민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의 아득함 속에서 나는 그 거부할 수 없는 감각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훗날 내 자아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될 고통스런 금발의 초상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감정을 재현하고 있었다. 들어본 기억도 아슬한 60년대 팝송의 체제 속에서 음악적 덩어리도 불명확했고, 즐겨듣던 위켄드풍의 도회적인 알앤비 소스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 감정적 이야기들만은 내 세상의 요소를 뿌리째 뒤집어놓는 것 같았다. 앨범을 처음 청취했던 공간이 짝사랑했던 대상의 아파트 뒷동산이어서인지, 나는 그 불타오르는 석양 속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사랑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어언 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감각의 인상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문제는 그 뒤로 한동안 Blonde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음악들이 지질한 공치사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그건 순수한 초심자의 행운이자 악재처럼, 모든 이의 곡, 심지어는 프랭크 오션 그 자신의 곡들마저 하찮아 보이게 만들었다. 평소 좋아하는 이는커녕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인물의 음악이 삶을 그토록 기묘한 노선으로 빠뜨리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으므로, 참 이상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냈던 기억만이 난다. 그러니까 Blonde는 내 음악관의 절대적인 기준이자 완벽의 요소로 자리잡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게는 실로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특이점과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이미 Blonde를 예술을 넘어 하나의 명제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Blonde의 감정적 잔영을 충족시키느냐 아니냐가 나의 유일한 감상의 척도로 자리잡은 순간, 그를 제외한 모든 앨범들은 그저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Blonde를 제외한 나머지를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도, 아주 드물게 Blonde만큼의 감응을 이끌어내는 작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Provider와 Chanel이 그런 존재였다. 물론 그것조차 오션의 곡이긴 했지만, Blonde에 밀리지 않는 언어적 환희와 공간 구축의 프로세스가 Provider와 Chanel의 무드 안에 담겨져 있었다. 마치 블론드 속 '재현'의 작법을 주축으로 한 이 두 곡이 각각 '감정'과 '양면성'을 노래하며 다시금 우리의 세계를 블론드에게로 안내하는 듯 했다. 따라서 전작의 잔영이 남은 2020년의 여름, 내게 Provider와 Chanel은 오션이 준 가장 커다란 이별 선물이었다. 아마 다시 보긴 힘들 수도 있을 일상적 패러미터, 오션의 두 싱글은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채도로 다가온 정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Provider는- '양면성'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융기시켰던 Chanel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Blonde를 재현해냈다. 웅웅대는 신디사이저의 질감, 디스토션과 중첩된 음성 변조의 덩어리, 그 주제나 감정적 면모까지- 거의 Blonde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면약한 감성을 가장 남성스럽고 정다운 색채로 발현시키는 Provider의 질감과 Blonde는 다소 라디오적인 (Provider가 Blonded 라디오에서 비롯된 곡이므로) 디스토션을 제외하면 거의 다른 바가 없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을 가지는 Blonde는 스킷 하나도 가감될 수 없지만, 그렇다한들, Blonde 속에 Provider가 삽입된다 해도 큰 위화감이 생기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Futura Free를 연상시키는 보컬의 읊조림, Solo와 같은 빽빽한 밀도의 가사, Skyline To에 담긴 연상적 시네도키 모두가 Provider와 Blonde의 상관관계를 가리켰다. 랩을 섞는 수준까지 도달한 Chanel보다 정시적인 상관관계, 흡사 블론드의 정신적 열화판을 압축해놓은 듯한 인상은 Provider의 프로덕션적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지향점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Blonde가 바라보았던 '경험의 청각화', '감정의 상대화'가 Provider의 본질적 토대 위에 음영을 띄고 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Provider는 아마 프랭크 오션의 그 모든 싱글들 중에서도 가장 Blonde적인 싱글로써 자리할 곡 같았다. 자기 자랑이나 예술적 만족감을 배제하고, 감정의 표상만 고도로 집중한 곡의 둔중한 정체였다.
그래서 나 또한 Provider를 오션의 모든 싱글 곡들 중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음악적 척도가 Blonde로 인해 나누어졌듯이, 블론드에 가장 맞닿은 곡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미처 Blonde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틈도 없이 Provider에 깊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본능적인 부분에서 기인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거부할 수 없이 Blonde의 파고로 빠져들어갔듯이, Provider 역시 마찬가지의 작용을- 흡사 과학적 성립처럼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작용들은 한 치의 가감도 없이 내 정신으로 들어오는 면이 있다. 마치 Chanel 같이, 또는 Dust 같이, 혹은 Blonde 같이 말이다.
감정의 이식, 공간의 입체화
오션의 Provider엔 전례 없는 감정적 체험이 추억처럼 달그락거린다. 사랑이라는 감정. 그 본질과 감각에 닿은 오션의 목소리는 달빛에 흠뻑 젖어 기분 좋은 슬픔을 자아내는 것만 같다. 여과 장치가 거의 없는 우리내 헤드셋은 퍽 쉽게 이런 감정들을 공유한다. 스트리밍 음악이 자중한 이유, 오션의 음성은 완벽한 타이밍과 프레이즈를 찾아서 폭발적으로 머무는 세션이다. 그래서 우리 앞엔 흡사 달빛 아래의 사색 같은, 아련한 정취의 음악이 놓인다. '네가 준 감정'들을 노래하는 목소리, 호소력 짙은 날 것의 음색, 간단한 신디사이저와 베이스라인으로 현상되는 오션의 공간적 풍경은 해가 쨍쨍한 대낮 속에서도 달빛을 끌어와 감각을 자극한다. 더욱이 전체적인 풍경을 '달빛 아래의 사색'으로 잡은 것은, 현실의 틀에 대입되는 '보편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면이 있다. Blonde에서 마약 이야기를 꺼내며 배경을 축소시킨 것과는 다른, 그야말로 '공감 가는' 서사의 성취다. 공간을 연출하고 감정을 구조화시키는 작업이 나의 세계와 접점이 생긴다면, 그것이 오션만의 감정일지라도, 파편적인 기억들이 뒤섞여 견고한 공감의 장을 만들어낸다. 디스토션이 묻은 신디사이저의 질감에서 신비로운 달의 아득함을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감각 기저에 숨쉬던 이미지, 소리, 향 같은 감촉들이 뒤엉켜 음악의 심상을 훨씬 공간적으로 구축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음악의 영상화다. 오션이 주조한 보편적 정경, 그 풍경 속에서 음악은 공간과 감정을 입체화시키는 결정적 오브젝트다. 그리고 그 음악이 있기에 모든 감각과 공간들이 현실적으로 되살아난다. 결국 무언가의 체험이란 우리의 감각들을 뭉쳐 투사하는 기억의 시뮬레이션인 것이다.
그래서 오션은 음절의 끝부분이나 베이스에만 디스토션 변조를 주어 흐릿한 무드를 조성하고 가사를 이어붙인다. 엇박과 정박 사이를 미묘하게 가르는 드럼 라인은 의도적으로 어긋나거나 들어맞으며 리듬에서 오는 쾌감을 강화한다. 하지만 일련의 것들이 오로지 청각적 쾌감이나 리듬감만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오션은, 그보다는, 조금 더 감정적인 프로덕션에 그 기술적인 장치들을 접합하는 것 같다. 'Feelin's you provide, Feelin's you provide, I know, I know' 라는 간단한 라인과 음절 속에도 동일한 엇박이 있고 감정의 빈 공간이 있다. 단순 리듬적인 측면에서의 성과보다는 강화된 호소력의 고조가 포착되는 훅이다. 그러고보면 아주 상투적이고 특별할 것 없는 훅의 가사도 그 호소력으로 인해 격정적이어지는 면이 있다. 감정적 호소가 어슴푸레한 밤거리에 울리고 달이 휘영청 솟아오르면, 그 속에서 슈게이저들과 큐브릭, 관능적인 알몸의 구석들이 뒤엉켜 감정을 선사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Provider는 가사적인 지점에서의 성취를 온전히 음악에다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Solo에서 한 차례 이뤄냈던 '황소와 투우사' 시각화의 경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오션이 보고 있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거나 마찬가지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베크는 언젠가 '저마다의 영혼에게 다른 영혼들은 세계 너머의 세계'라고 말했고, 개개인 간의 단절에 대해 말해왔다. 그의 주장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동의하는 사람으로써 말하자면,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사는 이들에게 자신이 느낀 감정들을 재현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그 영속적인 불가능의 중간 중간에서, 아주 가느다랗게 연결과 정신을 이뤄내는 것이 예술이 아닐까 싶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마주하고, 그 감정과, 삶과, 생각 등등을 교감하는 것이 순수 예술의 기저에 깔린 요소다. 우리가 타인 행동의 근원적인 면모를 찾고자 인위적인 '성격유형검사' 따위를 갈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인간은 공감의 인프라를 구축하며, 종종 치명적인 사회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동물인 것이다. 아마 홍상수 같은 인물들이 타자의 자아가 어떤 방식으로 현상되는지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 것(<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선희>)도, 결국 같은 예술적 경지를 조감하는 행위였을 테다. 타인의 경험을 나의 경험으로 이식시키는 것, 그것이 예술이 존재하는 하나의 이유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Blonde 이후 발매 싱글들 중 Provider가 가장 블론드의 방향성과 맞닿아있다고 저념한다. 체험의 음악, 공간적 성취 면에서 Provider는 블론드의 많은 요소들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엘베크의 말을 반박하듯이, 홍상수의 기조를 따라가듯이, 오션 또한 Provider를 통해 완전한 교감을 이뤄낸다. 순수한 면에서의 완전한 전이로 표상되는 교감. 겪어보고서는 가히 전율치 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이 교감들은 이내 감정의 끝에 서서 일말의 어색함도 없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감정이, 다층적 신디사이저 위에서 달그락달그락 굴러가게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네가 줬던 감정들, 난 알 수 있어
Provider는 가사적인 측면에서도 Blonde의 많은 부분과 접해있다. Nikes나 Futura Free 같은 회고적 가사, Solo와 같은 일상적 이야기들의 재깔임에서 우리는 진득한 블론드의 향수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Provider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아주 조그만 간극을 짚는 작업이다. 거기엔 일말의 과장이나 감추는 바가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있는 그대로의 저념을 담아낸 음성만이 조용히 밤 공기를 가를 뿐이다. 그래서 Provider는 다소 실 없고 우스울지라도 솔직한 언어들로만 조직되어 있다. 여름 밤의 정적에 흐르는 확연한 메타포. 언제나 그랬듯 오션만의 색깔이다.
처음 다가오는 것은 친구다. 그것도 아주 오랜 친구의 감촉이다. 오랜 친구가 가지고 있는 교감의 축적과 얄궂은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 존재는 오션이 가진 감수성의 총체처럼 보일 때가 있다. Futura Free에서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평범한 이름의 동네 친구들, Ivy에서의 시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양성애자란 자아 사이에서 사랑과 우정의 간극을 관통하는 오랜 친구는 늘 좋은 탐구의 대상인 듯하다. 그래서 오션은 늘 그랬듯 정열과 사랑 사이에 놓인 절친을 이야기한다. 메모 거즈만(이렇게 읽는 게 맞다면)에게로의 헌사, 그것이 심상의 시작이다. '유명해졌다 해도 절친과 자주 어울릴 것'이란 따뜻한 선언과, 트로피가 표상하는 예술적 여유로 오션은 그 포문을 열어젖힌다. 네 마디로 찍어내는 환경의 스냅숏이 오션만의 함축을 생생히 전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음악적 몽타주 기법처럼 보이기까지하는 관계의 구축이다. 끝나지 않는 밤 공기의 외로움, 새로운 남자와의 만남, 우스운 대화와 섹스로 이어지기까지, 오션은 아주 조그만 어색함도 없이 두 벌스로 관계를 정립시킨다. 반전 서사가 재미 난 Wet Dreams보다 유려하고, 전설적인 Gimmie The Loot보다 스타일리시한 방식이다. 늘 그렇지만 오션의 가사와 스토리텔링은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압도적 수준을 가진 듯 보인다. 여타 싱글들 중에서도 유독 Provider가 그렇다. 메타포를 써야할 땐 일순간 난해할 정도로 강렬하지만, 중요한 순간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직관적이다. 그래서인지 Provider는 오션만의 그 완급조절이 가장 잘 적용된 싱글처럼 다가온다. Blonde의 어떤 가사들과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는 가사적 성취다.
전술했던 훅의 상투적 라인 또한 같은 맥락이다. 훅은 분명히 뻔하고 정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지만, 명쾌히 그 직관적인 어투를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줬던 감정들, 네가 줬던 감정들, 난 알 수 있어, 난 안다고' 라는 짧은 라인의 반복을 통해, 오션은 놀라울 정도의 여백의 미를 선사한다. 게다가 그 언어마저도 참 씹히는 심이 굵다. 우스우리만치 경편하지만 목 놓아 호소하는 듯한 그 언어들은 무엇이 Provider를 이루는 질료인지를 간드러지게 폭로한다. 오션만의 무기, 서사적인 재료, 그러한 요소들이 Provider에서, 그 어떤 오션의 싱글 트랙보다 유기적으로 혼합된다. 아마 그것들은 Blonde의 분위기를 명확하게 계승한 싱글'의 특권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블론드적인 감정과 블론드적인 묘사력을 담은 언어들이 돋보인다. 공간을 주조하는 프로덕션과도 맞닿아 있지만, 자신의 감정과 경험들을 놀랍도록 유려하게 풀어내는 오션의 언어 능력에서는 활황한 재능마저 보인다. 관계를 압축하고 경험을 은유하는 수준을 넘어, 가사적인 통일성이 보이고 합치적인 일관성이 포착된다. 그건 단순한 스토리텔링이나 시네도키로는 재현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오션의 가사는 언제나 그랬듯 그 모든 제재와 목적들을 함의해 근사한 비장미를 선사한다. 음악이 시각화한 풍경을 또 한 번 구체화시킨, 그만의 공간 묘사도 비장미의 한 축이다. 다소 관념적이고 난해한 가사들이 있을지언정 음악적인 부분에서의 직관성이 아슬아슬한 이 곡의 완급조절을 가리킨다. 프로덕션, 가사- 그 어디를 보나 모난 구석이 없는 Provider의 비기다. 어쩌면 프랭크 오션은 더욱 직관적이면서도 체험적인 음악에 골몰하느라 8년째 모습을 비추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흡사 시인 같은 언어들로 흑인 음악계의 선험적 단어들을 끄집어내는 그의 가사에선 일련의 생각이 들 법한 경세적 면모가 관찰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션의 잠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려보다는 기대가 커지는 것 같다. 설사 그가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앨범을 낸다 해도, 그의 가사들은 언제나처럼 깊고 눅진할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프랭크 오션이라는 희소성 속 Provider
오션이 오랫동안 음악을 내지 않고 하나의 전설처럼 굳어지면서, 이제 그의 음악은 존재 자체로써 어떠한 프리미엄이 붙는 것 같다. 흔치 않은 감수성이 피력하는 예리한 울림. 그런 것들은 여느 아티스트에게서나 얻을 수 있는 수준의 고매로움이 아닌 탓이다. 그의 과작으로 인한 절대적 양의 희소성도 물론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어디까지나 그 근간엔 신비로운 수준의 감정적 체험이 있다. 단순히 '트렌디하다'거나 '감성적이다'는 수식으로 치부하기엔 그 능력의 주지가 심히 결여되는, 오션만의 프리미엄이 아직까지도 그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형세다. 그런 것들은 별 다른 미사여구 없이 스포티파이의 Blonde 재생 수만 보아도 명징히 드러난다. 대중의 간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가히 어마어마한 수준의 음악 추종자들로 인한 음원 사이트의 기록은 그의 음악적 위용을 통계적으로 증빙한다. 아마 그가 평생 앨범을 내지 않아도 될 만큼의 부가 눈 앞에 쌓일 때,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들판에서 한적하게 대마초를 피던 초록 머리 사나이는 아주 조그만 마음의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어떤 면에선 무시무시한 마음의 변화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싱글 트랙들이 더욱 자중해지는 것 같다. 채 15개가 되지 않는, 아주 적은 수의 싱글들은 오션의 세계를 체험 해본 이들에겐 가히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Unrealesed MISC, Lonny Breaux 같은 미공개 플레이리스트들도 소중하지만 Blonde의 색채가 담긴 정발 싱글 트랙들보다는 못하다. 감정이 담긴 재현, 그것들은 오직 블론드의 잔향이 닿아야만 비로소 체험적인 것들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점에서 Provider는 정말 귀중한 존재를 발산한다. 곡 자체의 감정적 체험, 은유적 표상, 스타일리시한 가사와 센슈얼한 무드가 거의 블론드의 원형을 직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Provider는 가사나 분위기로 블론드의 전반부(Nights로 나누자면)를 아우르고 사운드나 작법적으로 후반부를 가로지른다. 곡 내에서 발견되는 것은 작법적 변화를 꾀한 DHL과 IN MY ROOM, 완연한 올드 팝으로의 회귀인 Dear April, Cayendo와는 다른 감정적 영묘함이다. 그래서인지 블론드를 회상하는 이들에게 Provider는 희구 요소를 충족시킬 하나의 선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 곡엔 오션만의 특출난 환경 재현과 감정 표현으로 다져진, 흡사 블론드의 후계와 같은 향취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들의 근간은 단지 이 곡이 Blonded FM으로부터 비롯된 곡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블론드, 프랭크 오션만이 가지고 있는 서경적이고 주정적인 관념과 작법들이 원형상징의 형체를 띄고,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욱 명확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아주 진하고, 감정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의 전형들이 오션의 음악 속에 빠르게 흡수되어 우리를 감동시킨다. 아마 그것이 우리가 오션의 음악을 사랑했던 이유일테다.
끝머리에- 나와 당신의 감정, 나와 당신의 오션
솔직히 말해, 아직도 난 Blonde를 뛰어넘는 전율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장담하건대 오션이 3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찾기 힘들 성싶다. 어쩌면 3집이 나온다 해도 전작의 감정을 뛰어넘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 건 모두 알다시피, 쉽게 나올 수 있는 감정과 사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오션이 4개(미공개반까지 하면 6개)의 앨범만을 냈지만 2010년대 대중음악 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것도 그와 관련되어있을 것이다. Blonde가 얼마나 원형적 상징의 자태를 띄고 세계와 세대를 거쳐 보편적 감정적 체험을 촉발시켰는지 더 이야기하는 것은, 이젠 무의미한 수준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그렇대도 끊임없이 오션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내가 다루지 않은 오션의 곡이 있고 앨범이 있노라면, 난 어떤 시간을 들여서라도 그의 음악과 그의 정서 표현에 대해 설파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션이 3집을 내게 되는 날. 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웃으며 눈물과 반가움으로 마주잡는 혼자만의 악수를 건넬 게 분명하다. 그건 8년 동안 참 많은 기다림을 주었지만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의 존재감으로 자리해준, 오션의 음악에 대한 내 화답과 같다. 오션은 자신에게 감정을 선물해준 '새로운 남자'를 노래했지만, 오션 역시도 그 노래를 통해 나에게, 우리에게 감정을 전달해주었다. 말하자면 다른 이가 아니라 오션이 감정 전달자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역시 그가 우리에게 준 감정이 무엇인지를 안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체험. 우리는 오션의 노래를 들을 때면 몇 번이고 음악이라는 가상 현실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Thinkin' Bout You에서 오션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절대 늙지 않는 것들이다. Provider 속 월광 아래에서의 감정이 아직 내 귓가에 맴도는 것이 그 방증이다. 내가 거의 매순간 Provider를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4분 4초의 짧은 시간 안에 아주 깊숙히, 혹은 매혹적으로- 나를 오션의 감정과 정신으로 이끄는 것이 Provider이니까 말이다.
2023. 8. 10. Thurs. Lucinda Tomas B Breaux.
앨범이 없는 곳에서도 이 정도의 필둔을 쓰다니..!
앨범도 아니고 곡 하나로 이렇게 뽑다니
미친 신예의 등장인레후
앨범이 없는 곳에서도 이 정도의 필둔을 쓰다니..!
싱글 하나하나 버릴게 없는 🎾
"그리고 마침내 오션이 3집을 내게 되는 날. 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웃으며 눈물과 반가움으로 마주잡는 혼자만의 악수를 건넬 게 분명하다."
글은 잘 봤지만 그럴 일은 없습니다.
프랭크 커리어에서 한 곡만 고르라면 이곡임
블론드 투어와 블론디드 라디오의 엔딩 크레딧
한곡으로 이렇게 긴 리뷰를 쓰다니 존경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이 곡 너무 좋죠. 블론드 이후 발표된 곡 중에서 블론드에 들어갈만한 유일한 트랙인 듯합니다
글에 서술했듯이 동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외로 만약 DHL 같은 그 실루엣으로 된 곡들이 앨범 수록이라면 전 다음 앨범이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아직 두 곡 밖에 공개되지 않았지 않은가요?
DHL
In My Room
Cayendo
Dear April
These Days (Leak)
마지막은 정발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고, Cayendo와 Dear April도 새 앨범 수록인 줄은 몰랐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애매한게 These days는 바이닐로 발매했다가 다시 회수한 곡인데 결국 유출된 곡
에휴 팬들은 싱글 하나에도 이렇게 수많은 감정이 얽히고 듣고 듣고 또 듣는데 도통 뭘 내질 않으니 답답해 죽겠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래서인지 진짜 말씀하신 것처럼 싱글 하나하나랑 유튜브 라이브 영상 하나하나가 다 소중해 졌어요. 저는 인스타 스토리에 올라간 SZA - the weekend 커버 15초짜리 쇼츠만 계속 돌려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블론드 듣고 나서 뭘 들어도 그 특이한 감상이 안 느껴져서 마음에 막 와닿지 않는다는 게 정말 공감됐습니다. 흑인음악 입문을 12년 GKMC랑 채널오렌지로 했는데 그땐 뭘 들어도 그 두 앨범보다 별로였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두 앨범 다 지겨워서 잘 안 들어요.
근데 블론드는 그렇게 지겹도록 들었는데도 지금 들어도 또 새로운 게 들리는 진짜 신기한 앨범입니다. 제 마음 속 프리미엄을 이미 갖다 붙여버린 게 가장 크겠지만요 ㅋㅋㅋ
요즘은 코첼라에서 부른 At your best 라이브 녹음본을 들으면서 신곡 부재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ㅎㅎ
같은 팬으로써 진정코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네요! 읽으면서 공감이 되셨다는 건 아마 글이 제가 쓰고자 한 방향으로 알맞게 쓰여졌단 거겠죠 ㅎㅎ 열심히 읽어주시고 장문의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어떤 댓글보다 공감과 힘을 불러오는 댓글 같습니다 ㅎ
혹시 오션빠돌이 님이세요?
오션빠돌이는 맞지만 오션빠돌이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타 유저 분 이야기하시는 것 같은데 아니에여 ㅎㅎ
"타인의 경험을 나의 경험으로 이식시키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본질이라고 저 역시 생각해왔는데, Blonde만큼 이를 너무 완벽하고, 너무 인상적이고, 너무 강력하게 해낸 음악을 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네요. 완성도, 실험성, 중독성 등등 여러 부분에서 Blonde 못지 않거나 더 훌륭한 음악이 많지만, Blonde만큼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하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Blonde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Provider는 이 글 읽고 처음 들어봤는데 정말로 Blonde 어딘가에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네요. Blonde의 연장선 상에 있는 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Blonde에 관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해봤고, 글로 써보려고 시도를 많이 했지만 도저히 만족스럽게 완성해낼 수가 없었는데, LucindatomassBBreaux님의 글이 제 막힌 혈을 대신 시원하게 뚫어주신 것 같네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제 글이 Pushedash님으로 하여금 좋은 영향을 드린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오션그는신이야
글 완전 잘 쓰시네요
가입 후 첫글이 이런 명글인 건 또 처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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